한미군사훈련, 역발상이 필요하다!
[정욱식 칼럼] 한반도 상황, 한가하지 않다
매년 한반도는 초봄과 초가을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다. 훈련을 하려는 한미동맹과 훈련을 중단하라는 북한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신년 들어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남북대화 및 핵실험 임시 중단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반면 한미 양국은 그러한 조건은 수용 불가라고 거부했다.
그리곤 3월 2일부터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시작됐다. 지휘소 훈련인 키 리졸브는 이번달 13일까지, 야외기동 훈련인 독수리 훈련은 다음 달 24일까지 계속된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훈련 개시일에 2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로 응수했다. 또한 한미 군사훈련에 "통일대전으로 응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대화의 기회도 사라졌다"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남한은 "어떤 도발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처럼 매년 군사 훈련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는 지역은 전세계적으로도 한반도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미군사훈련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군대가 있으면 군사훈련을 해야 하고,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 연합훈련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일 수 있다. 더구나 한반도는 아직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에 있다. 군사적 대치 상태도 여전하고 북핵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면 격퇴할 준비를 하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연함 속에 위험이 잉태되고 있고 막대한 기회비용도 치르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대표적이다. 흩어진 가족이 만나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시기는 설 연휴와 추석 연휴가 다가올 때이다. 그런데 대개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은 설 연휴 직후에 실시되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은 추석 연휴 직전에 실시된다. 북한은 이러한 군사 훈련을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와 연계시킨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군사훈련에 반발하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경우가 많았다. 사이가 좋을 때에는 군사훈련의 파고도 남북관계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은 증폭되어왔다. 그 원인은 다차원적이다. 우선 MB 정부의 흡수통일론을 들 수 있다. 2008년 하반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자, MB 정부는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구했다.
그 갈등은 2009년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때 폭발했다. 한미 군 수뇌부는 이 훈련이 북한 급변사태 대비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그만큼 북한의 반발 수위도 높아졌다. 특히 북한은 새롭게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게 군사훈련 중단 여부를 북·미 관계의 시금석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를 일축하자 북한도 대규모의 무력시위에 나섰다.
유사한 상황은 2011년에도 반복됐다. 남한 군 당국자들은 한미군사훈련이 김정일 유고 등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언론에 흘렸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평양에까지 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도 '서울 불바다' 발언을 다시 내놓으면서 위기 지수를 높였다. 이처럼 MB 정부 이후 한미군사훈련의 목적이 북한 급변사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북한의 반발 및 이에 따른 한반도 위기도 증폭되어왔다.
북한의 권력 세습 및 핵 능력 증강도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 수위를 높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영국가'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지도자는 군 장악과 최고 군사령관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미국의 위협을 과장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미군사훈련은 이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왔다. 아버지의 급서로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서도 이러한 필요를 강하게 느껴왔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해지면서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같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강압 외교'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
미국 측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군사력을 패권주의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미군사훈련의 매력을 강하게 느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군비증강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미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과 위기가 증폭된 데에는 남한의 흡수통일론, 핵의 위력을 과신한 북한의 모험주의, 남북관계 악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등이 종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에 있다. 서로 근력을 과시하고 말폭탄을 던지는 수준에서 군사훈련 고비가 넘어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여러 차례 경험했고 오늘날에도 그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듯이 언제든 무력 충돌이 일어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특히 촌각을 다투는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어온 것도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아울러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의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 국방부는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한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의 요구대로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에게 끌려다닐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현실은 이러한 아전인수만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선제적 조치를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발상이 요구된다.
이러한 역발상이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바로 노태우-부시 콤비였다. 이 사례를 비롯해 한미군사훈련의 역사를 다음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