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산은 지리산 전망대로 일컬어지는 광양의 백운산이 거느리고 있는 산이다.
호남정맥이 뻗어가는 굵직한 산줄기를 멀건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지리적으론 백운산의 중심부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거기다 옥룡사지(사적 제407호)와 동백림(천연기념물 제489호) 그리고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최대의 황동약사여래상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운암사와 광양의 휴양명소인 백운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으며 수백 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 들었다고 한다.
이때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려고 인근에 사찰을 세웠는데 이곳이 바로 운암사다.
운암사는 1878년 화재로 소실된 뒤 폐사되었다가 1969년에 현재의 건물로 다시 세워졌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려고 심었다는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순수 자연림으로 7천여 그루의 동백이 7만㎡ 산자락에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옥룡사(玉龍寺)는 통일신라 말 고승이자 한국 풍수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자리를 잡고 35년간 머무르면서 수백명의 제자를 가르치다 입적한 곳이다.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적인 기록으로는 도선국사(827-898)가 최초로 그는 풍수사이기 전에 선승이였다.
그가 큰스님으로 풍수를 활용하였기에 당연히 불교풍수가 우리나라 풍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풍수가 활개를 치는 광양의 백계산엔 사이비 반풍수들도 넘쳐난다.
이 풍수 저 풍수를 종합해보면 모두가 각양각색으로 자기의 반풍수 사상을 합리화 시키는데 침튀기며 열심이다.
산행코스: 운암사-옥룡사지(동백림)-백계산 갈림길-백계산(U턴)-금목재(B팀 탈출)-도솔봉 갈림길-제비추리봉-백운산 휴양림-외산마을(4시간)


호남정맥(湖南正脈)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주화산(珠華山, 600m)에서 시작하여 내장산을 지나 전라남도 장흥을 흘러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갈라 광양 백운산(白雲山)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백운산 개념도

고지도에 나타나는 순천과 광양,그리고 백운산과 운암사를 살핀다.

버스가 도선교를 막 건너려는데,오른쪽으로 우뚝 선 거대한 황금불상이 보인다.운암사의 약사여래불상이다.

도선교를 건너선 그린황토민박 오른쪽으로 90도 꺽어...

2차선 아스팔트를 따라 오른다.

그리곤 황동불상이 환대하는 운암사 대형주차장에 차를 댄 후 A B팀 모두 함께 오르기로 한다.
(B팀은 운암사와 옥룡사지 동백림을 탐방한 후 2시간 후에 버스로 귀환하기로 하였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은 왼손에 작은 약항아리를 들고, 오른손에 시무애인(施無碍印)을 하고 있다.

웅장한 규모의 운암사 황동약사여래입상은 좌대높이를 포함해 40m 규모다.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은진미륵불보다 3m가 더 크고,황동도 75톤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불상 앞의 연못에 노니는 잉어들.

약사여래불은 질병의 고통을 없애주고,재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님.

관음전 앞으로 돌아...

.

명부전을 올려다 보며...

대웅전 좌측으로...

삼성각을 돌아...

조사전 뒤 동백림 숲속으로 빨려든다.

동백숲 입구의 망울진 동백꽃

조사전 뒤로 열린 옥룡사지 동백림 가는 길.

사찰 맨 위의 동백숲에 산신각도 보인다.

동백은 아직 일러 활짝 피진 않았지만...
백계산 동백림에 봄이 하마 어지렸다
가슴속 옛 기억이란 이리도 쓰라린 건가
동백꽃 백 년 핀데도 내사 어이 보겠나.
백계산 동백림에 꽃 한창 피거들랑
그대들 부디 와 눕고 앉아 거닐어보세
내 차마 못 보는 뜻을 그제사 짐작하리.
<이 은 상>

안내판

도선국사와 동진대사(洞眞大師) 비
동진대사의 법명은 경보(慶甫)이고 자는 광종, 속성은 김씨이며 전남 영암군 구림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산사에서 머리를 깎고,
백계산(白鷄山)의 도승(道乘) 밑에서 수도하였다.
당나라 소종 임금 경복 1년(892)중국으로 건너가 무주의 소산으로 가 광인(匡仁)화상의 가르침을 받았다
스님은 세수 80년, 법랍 62년문명(文明:定宗)3년에 가부좌를 한 채 열반에 들었다.
사찰의 역사를 볼 수 있었던 고려 의종 4년(1150)에 세워진 '선각국사 증성혜등 탑비(先覺國師證聖慧燈塔碑)'와 광종 9년(959)에 세워진
'동진대사 보운 탑비(洞眞大師寶雲塔碑)'는 1910~1920년대 사이에 사라졌다고 한다.

도선탑.

안내문

선각국사 도선탑 안내문

아직 채 피지않은 동백림 숲속으로 오르면...

백계산 지능선에 '도선국사참선길'이정표가 백계산 들머리를 가리킨다.

지능선 바로 아래에 옥룡사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옥룡사는 8세기 초 창건되어 도선, 통진대사 경보(洞眞大師 慶甫), 지문(志文) 등이 그 법맥을 이어져 오다 조선후기인 1878년 화재로 소실, 폐사되었다.

옥룡사지의 동백림 아래에 무슨 동굴같은 게 보인다.

용도가 뭔지?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1994) 및 5차례 발굴조사(1997~2005)결과 건물터와 명문비조각 90여 점이 발굴되었고 석관속에서 유골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자료사진>석관속의 유골은 당시의 고승들의 장례방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도

발굴조사가 모두 끝난 옥룡사지의 모습과

갓을 씌운 우물.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9마리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를 도선국사가 몰아 내지만 유독 백룡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하여 쫓아낸 후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작은 연못과 이정표.

동백림 사이에 자리잡은 황량한 옥룡사지에서 이 시대 사람들은 쑥을 캔다. 쑥을 캐는 것은 잔디를 관리하는 잡초뽑기로 일석이조요, 도랑치고 가재잡기다.

그 한켠에 버려진 듯 서있는 석주 하나와 깨어진 옥개석.

그리고 발굴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유적 부스러기들.

동백은 옥룡사의 영화를 못본 체하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능선자락의 이정표(도선국사참선길)를 따라 백계산으로 오르면서 돌아보는 거대한 황동불상의 옆모습.

이후 산길은 솔숲 산책길로 변한다.


세우암자(細雨庵子)터 갈림길을 만나지만 패스.

세우암자는 도선국사가 어머니를 모신 암자라고 한다. 옥룡사가 소실된 비슷한 시기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세우암자 갈림길에서 20여분 만에 또 만나는 눈밝이샘 갈림길(눈밝이샘 50m라는 표시가 있다.)

눈밝이샘으로 내려가는데,에구~150m는 족히 되겠넹. 거기다 저 아랫쪽 계곡 나무 테이블이 있는 지점이니...

발품을 판 게 아까워서 예까지 내려왔땅.
샘은 낙엽에 파묻혀 있고,새 찍어 먹을 물 한 방울도 없는 '눈밝이 샘'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는 ‘눈밝이샘’을 마을 주민들은 ‘눈볼기샘’으로 불러왔는데, 옛날 옥룡사를 창건한 도선 국사가 이 물로 눈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또한 백계산 옥룡사지에는 마시면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약수터가 있다고 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되기 전 이곳을 찾아와 물을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을 뒷받침하는 스토리텔링만 요란하더니 결국 초로산객(初老山客)의 기운만 빼고 있다.ㅠㅠ

선각국사 도선이 전국으로 참선 수행 길을 다니던 중 비천오공(飛天蜈蚣:하늘을 나는 지네)의 혈지로 천하의 명당인 이곳 백계산에 옥룡사를 창건하고자 했지만
이 곳에 큰 연못이 있어 곤혹스러워 했다.
도선은 숯을 한가마니 씩 가져와 연못에 넣고 샘물을 마시면 눈병이 낫는다며 샘물의 효험을 널리 전파했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눈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사람들은 연못에 숯을 넣고 샘물을 마신 후 눈병이 완쾌되고 눈이 밝아지자 이때부터 이곳을 ‘눈밝이샘’이라 불렀다.
이처럼 예로부터 이곳은 ‘비천오공(飛天蜈蚣:하늘을 나는 지네)’의 생식기에서 동향서출(東向西出)하는 형세를 가지고 있어 눈병에 특약이 되는 샘이라 전해진다.

눈밝이샘에서 되올라와 금목재 갈림길을 만난다.
백계산 정상은 더 진행하였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백계산 정상판 뒤로 보이는 헌걸찬 백운산 능선이 잡목사이로 하늘금을 긋고 있다.

사진의 좌측 끄트머리가 백운산 정상이고,우측 끄트머리의 암봉이 억불봉이다.

살짝 당겨본 억불봉과...

백운산 정상.

좌측으로 똬리봉(또아리봉 또는 따리봉)과 도솔봉도 보인다.

금목재 갈림길로 돌아왔다.

나무숲 사이의 동곡계곡 상류의 논실마을 위로 따리봉과 좌측으로 도솔봉이 보인다. 호남정맥은 그리로 이어 달리고 있다.

좌측 능선으로 바라보는 제비추리봉

금목재에 내려선다. B팀들은 금목재에서 좌측 백운학생야영장으로 탈출하고 우리는 가로질러 계단을 오른다.

금목재의 이정표

동곡계곡 상류의 논실마을과 중앙의 잘록한 한재와 따리봉과 좌측 새총가지 사이로 참샘이재와 좌측 끄트머리의 가려진 도솔봉

억불봉과...

백운산이...

길게 이어지더니...

따리봉을 넘어 도솔봉에서 호남정맥을 이탈하여 우리를 향하여 내려서고 있다.

그러더니 이 지점(도솔봉 갈림길)에서 우리와 만난다.

지친 이회장 뒤로 호남정맥이 길게 이어달리고...

우리는 이제 바지가랑이로 낙엽을 쓸며 내려선다.

오늘 온종일 백운산과 억불봉은 우리를 호위하듯 함께 간다.

당겨본 억불봉 아래에 '광양제철 수련원'인 듯.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도솔봉은 작은 산에 가렸다.
문뜩 다산이 7살 때 지었다는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멀고 가까움의 지리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는 과학적 사실을 초로의 늙은이는 간과하고 있었다.

제비추리봉에 섰다.

제비추리봉은 도솔봉갈림길에서 한참이나 하산하듯 내려와서 있었다.

공동묘지인 듯,혹은 가족묘지인 듯한데 관리가 잘 되고있지 않다.

백운산자연휴양림 제일 상류의 임도에 내려선다.

돌아서서 본 우리가 내려온 우측 산길.

진공청소기가 설치된 지점에서 옷과 신발을 털어내고...

작은 계곡에서 땀을 씻어낸다. 우리는 일행들이 있는 지점의 계곡과 나란히 내려왔다.

휴양림에서 내려가면서 보는 안내판.

백운산자연휴양림 매표소를 만난다.
우리는 카메라가 있는 이 지점(백운산 멧돼지 농장가든 방향)에서 나왔는데,이 길은 입장료와 무관한 것같다.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야만 입장료를 내는 게 아닐까?
우리는 휴양림 안에서 나온 게 아니고,지금 내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위치의 오른쪽에서 나왔으니까.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입장료와 무관한 것 아닐까?)
아무튼 우리는 휴양림 안에서 나온 것 같은데...

우리 차가 대있는 외산교가 있는 도로변. 백운산자연휴양림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이다.
봄볕이 따스히 내리쬐는 논두렁.
봄을 캐는 아줌마들과
무언가 잃어버린 듯
이리저리 서성대는
남정네들의 망중한
모란 동백 <詩 이제하,노래 조영남>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산의 버꾸기 울 ~면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녁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불고 덧 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뻘에 외로히 외로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동백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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