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린 친구들은 교회에서 잘 섬기려고 하지 않는 거 같아.”이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혹시 교회에서 나이 지긋한 목사님이나 집사님이 청년부의 임원에게 염려하는 장면이 연상되는가? 그렇다면 놀라지 마시라. 위의 말은 교회 청년부에서 20대 후반의 섬김이들이 같은 청년부 20대 초반 동생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이 에피소드는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교회 내 세대 갈등과 소통의 문제’가 단순히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라는 범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언급하였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세대 갈등과 소통’에 대해 짙은 우려가 표명되고 있다. 자주 거론되는 세대 문제는 현대의 청년 기독교인 수 감소로 인해 다음 세대로 믿음의 계승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러 기독교 미디어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개선을 위한 시도를 촉구한다. 주로 제시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기존 주일예배 방식이나 모임 형식 등을 대폭 수정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의식을 발현하는 단계를 넘어 제대로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소위 ‘청년과 기성세대 갈등’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는 지점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교회에서 ‘세대 갈등과 소통’ 문제에 접근하려면 교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세대 갈등에 있어서 교회의 특수성은 사회에서와 달리,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아닌 신앙적 가치관의 계승 여부가 핵심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 문화는 게토화되어 기독교의 가치관이 비기독교 문화권으로 전해지기보다 기독교 문화권 내에서 전달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가치관 전수가 조직의 존폐 여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기보다 기존 가치관이 변질될 것을 우려하여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다. 그러므로 교회 내의 세대 갈등은 사회적인 맥락보다 신앙적 가치를 고수하는 방법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예로, 주일 성수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과 개인이 인터넷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읽어도 된다는 입장이 대립하는 것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성도들의 예배에 대한 경향성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회 내 갈등 원인을 ‘세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위의 일화처럼, 신앙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에 있어 같은 세대 구성원들끼리도 충돌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조직의 관점에서 세대 갈등의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나 실상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나이와 직분에 따라 수직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청년’으로 호명되는 20, 30대 성인들은 다음 세대로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함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 ‘일꾼’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기성세대와 ‘동등한 동역자’로서 그 독립성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교회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결혼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몇몇 대형교회에서 미혼이라는 이유로 30대가 훌쩍 넘은 성인들을 기혼 부부들과 구별 지어 청년부에 소속시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청년 성도들은 조직 내부자로서 수평적 관계 안에서 동등한 지위가 아닌, 수직적 관계를 요구 받으며 모순을 느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 내 세대 갈등은 성경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연령대를 통합하여 함께 사역하지 못하고, 사회적 인식과 편의를 기반으로 성도들을 구별 지은 후, 우세한 세력이 그들의 방식대로 신앙적 가치를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대’보다는 조직 내부의 맥락이 우선적인 원인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교회의 ‘세대 소통 문제’는 오히려 세대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야 해결책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위와 같은 갈등 양상을 극복하고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소통할 수 있을까?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막연하게 느껴진다. 이를 돕기 위해 성경 속에서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세대’ 개념을 재정의할 수 있는 말씀을 찾아보았다.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씀은 성령이 세대에 따른 역할의 구분을 넘어서 그 개념을 전복시킨다. 오히려 우리가 세웠던 ‘다음 세대’의 정의가 한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 말씀을 보면 젊은이, 늙은이의 역할이 세상에서의 요구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예언이나 환상처럼 미래에 대해서 조언하는 일은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은 늙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소외된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에게 허락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 ‘나이’와 그에 따른 사회적 ‘고정관념’은 중요하지 않다. 예레미아에게 예언자로서 부르심은 청년의 시기였고,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은 나이는 80대 이후였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다음 세대’란,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으로부터 믿음을 전달받은 사람들로 나이와 크게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은 모두와 ‘친구’가 되어주신 것이다. 이처럼, 복음 안에서 영적 가족들과 진정한 친구로서 소통하는 일에 굳이 사회에서 정의한 ‘세대’ 개념이나 역할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소통, 그리고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