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烏川) 문화재 단지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안동에서 퇴계로를 따라 도산 방면으로 16Km 쯤 가다보면 군자마을 이있다. 그 안에 「오천 문화재 단지」가 있다. 여기가 와룡면 오천리, 「오천 문화재 단지」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군자마을'로 부른다.
*본래 여기에서 2Km 떨어진 '외내'에 있던 광산김씨 예안파의 중요 건물들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 되게 되자 1974년 이곳으로 옮겨 하나의 건축 문화재 단지를 이룬 것이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면밀히 관찰하고 싶다면 이곳 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리라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각기 특징과 표정을 취하고 있는 바, 아름다움이 다르면서도 기품이 있고, 제각기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예안 광산김씨(光山金氏)의 내력
광산김씨의 예안 입향조(入鄕祖)는 농수 김효로(1455∼1534)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행에 열중하여 퇴계선생이 그의 덕을 칭송하는 묘갈명(墓碣名)을 지을 정도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연과 유는 중종 때 명신으로 이름을 얻었고, 이들의 자손들이 번창하여 명문으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진보 이씨, 봉화 금씨, 안동 권씨 등과 통혼함으로써 영남 사림(士林)의 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오천 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유물
지금 오천 군자리에 있는 옛 건물들은 모두 광산김씨의 예안 입향조 농수 김효로에서 시작하여 그의 증손자들까지 4대에 걸쳐 지어졌는데, 사랑채와 정자들로 이런 예는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드문 것이다.
*건물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이곳에서 엄청난 유물이 나왔다. 교지(敎旨), 호구단자(戶口單子), 토지 문서, 분재기(分財記), 혼서(婚書) 등 고문서 2,000 점과 고서 2,500여 권이나 들어 있었다고 한다.
*군자마을로 옮겨 온 집들 가운데 두 채는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세 채는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물전시관인 숭원각(崇遠閣)을 지어 1350년 고려 말기의 호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5백년동안의 호적, 교지, 노비 문서, 분재기 등 고문서 1,000여 점과 각종 문집 2,000여 권 등 광산김씨 문중의 중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문서 7종 429점은 보물 제1018호로, 고서 13종 61점은 보물 제1019호로 지정 받았다.
*군자마을 문화재 단지 안에는 후조당, 대종택 사랑채, 읍청정, 설월당, 탁청정, 낙운정, 침락정 등 일곱 채의 사랑채와 정자가 있다. 또 여러 사랑채 이외에 재사(齋舍)와 사당(祠堂)이 있다.
후조당(後彫堂)
*집들은 조붓한 언덕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후조당이다. 예안파 대종택에 딸린 별청인 후조당은 조선 중기인 선조 때 김부필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지은 제청(祭廳)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227호이다.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후조당 대종택은 사랑채만 이곳으로 옮겨졌고 안채는 안동 시내로 옮겼다.
*후조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고무래 정(丁)자형 평면 건물로 잡석 기단에 네모 기둥을 세운 것, 기둥머리에 모를 죽여 팔각으로 돌리면서 단순성을 살린 것, 사방으로 툇마루를 돌린 것, 한 칸 방을 가마 모양으로 붙인 것 등등 너무나 멋스럽고 아름답다.
대종택(大宗宅) 사랑채
*후조당 옆에 붙어있는 긴 일자 집은 대종택의 사랑채로, 나뭇결이 아름다운 위풍당당한 건물이다.
*건물 앞 쪽 기둥들은 모두 두자 반 짜리 돌기둥 위에 세워졌으며, 두 칸 마루 좌우로 큰방과 작은 방이 있다. 닭다리 모양을 닮았다는 계자각(鷄子脚) 헌난(軒欄)을 둘렀다. 스케일이 크고, 당당하여 힘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이 건물을 으뜸으로 꼽는다고 한다.
읍청정(읍淸亭)
*대종택 사랑채 옆으로 읍청정이 있다. 이 집은 김부필의 아우인 김부의(1525∼1582)가 지은 것으로 구조에 변화가 많다.
*정자 양쪽으로 두 칸 반 짜리 온돌방 둘이 있고 가운데 마루는 전툇마루를 세 칸으로 넓힌 다음 마루 둘레에는 헌난을 둘렀다. 이곳으로 옮기면서 뜰 아래에 연못을 만들었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기도 하다.
설월당
*대종택 아래쪽에는 김부륜(1531∼1598)의 정자인 설월당이 있다.
*설월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단을 높이 쌓고 전면을 마루로 꾸미고, 계자 난간을 달아 누각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읍청정과 반대로 아담한 크기로 축소하여 조용하고 고요한 느낌이 들게 한다.
탁청정(濯淸亭)
*문화재 단지의 동쪽으로 대청마루가 널찍하니 눈에 띄는 건물이 탁청정이다. 입향조의 아들인 김유(1491∼1552)가 조선 중종 36년(1541)에 지은 정자이다.
*김유는 성품이 호탕하고 의협심도 강해서 사람을 좋아하여 항시 손님이 들끓었다고 하는데 그런 성품 때문인지 그가 지은 탁청정(중요 민속자료 제226호)은 영남지방의 개인 정자로는 그 구조가 가장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2칸은 방으로, 4칸은 대청마루로 나누었다. 대청은 높은 주초 위에 세워 누마루의 위용을 강조했고, 누마루 둘레에는 난간을 두르고, 온돌방 측면에는 평난간을 둘렀다. 그리고 정자 앞에는 방형 연못을 파서 그 운치를 더했다.
*"처음처럼님"께서 올린 자료를 복사해다가 올림. 후손들에게 들으니 현판 글씨는 한석봉선생의 친필이라고 함
*"처음처럼님"께서 올린 자료를 복사해다가 올림. 계족 난간(鷄足 欄干)이 아름답다.
낙운정(落雲亭)
* 탁청정 아래로는 입향조의 손자, 즉 김유의 아들인 김부인(金富仁) 이조좌랑,병마절도사, 1512∼1584)이 세운 낙운정이 있다. 낙운정은 디귿자로 두른 난간이 정겹고, 아담하면서도 소탈하다.
침락정(枕洛亭)
*김해의 아들인 마원 김광계(金光繼1580∼1646)가 조선 현종 13년(1672)에 세운 침락정은 낙운정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침락정은 일종의 강당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0호이다.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을 들인 간소한 건물로, 공부하는 건물의 단아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동서로 마주 세운 출입문이 반월형으로 어찌나 맵시 있고 아름다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천 문화재 단지의 집들은 규모가 크면 큰대로, 아담하면 아담한대로 제각기 멋과 품위를 지니고 있다. 집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창과 문의 위치와 비례, 창 위쪽의 쪽창, 은근히 화려한 창살 등 구석구석 눈길 줄 곳이 여간 많은 곳이 아니다.
*도움 자료가 490번에 처음처럼님께서 올린 아주 좋은 사진자료가 많이 있으니 그 사진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