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살구나무 잎사귀가 푸르다 못해 검푸른 색을 띠는 7월입니다. 시간이 참 유수처럼 흐릅니다. 선생께서 이승에서의 92년간의 삶을 정리하신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으니까요.
저는 선생께서 계시던 곳에서 태평양 건너 멀리 떨어진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재즈 팬입니다. 아울러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오래 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선생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는, 너무도 큰 행운을 누렸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94년 선생께서는 격년으로 열리는 피아노 음악회인 ’100개의 황금 손가락 One Hundred Gold Fingers'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셨죠. 그 해 이곳의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선생은 음악회에 출연하신 연주자 전원을 당시 대학로 이화동에 있던 자신의 클럽 야누스에 초대 하셨는데, 그 날 연주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공연 기획사의 주선이 저를 그 자리에 앉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긴 테이블의 오른쪽 끝에 앉았는데 제 맞은편에는 고(故) 진 해리스와 그의 부인 그리고 제시카 윌리엄스가 앉아 계셨고, 테이블의 왼쪽 끝에는 한국의 트럼페터 최선배 선생, 시더 월턴, 고(故) 존 루이스와 함께 선생께서 앉아 계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는 그날 너무 긴장해서 맞은편의 해리스씨 부부와 제시카 윌리엄스 그리고 모임이 끝날 무렵 케니 배런 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 멀리 앉아 계신 선생을 비롯한 다른 피아니스트께는 차마 인사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어두운 제 눈이라 할지라도 선생이 진정으로 품위 있는 신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76세의 고령이셨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꼿꼿한 걸음걸이와 입가에 머물고 있는 잔잔한 미소는 단아한 선생의 음악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훗날 최선배 선생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그때 최선생께서 당신께 맥주 한 잔을 따라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때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젊은 시절엔 술을 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늙은 제 몸이 쉬라고 마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같은 한국의 재즈 뮤지션이 따라 주신 것이니 오늘밤 이 한 잔만은 천천히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의 베테랑 트럼펫 주자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의 배려 깊은 그 한 마디를 잊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 날 저녁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공연에서도 전 잊을 수 없는 선생의 장면 하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연의 호스트인 피아니스트 주니어 맨스가 ‘백 개의 황금 손가락’의 기획자인 이시즈카 타카오씨와 두 명의 리듬섹션(베이시스트 밥 크랜쇼와 드러머 그레디 테이트)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아홉 명의 피아니스트를 한 명씩 무대에 소개하는 순서였습니다. 소개 받은 선생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올 때 공연장을 꽉 메운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앞서 소개 받았던 같은 명성의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를 비롯한 몇몇의 연주자에게 쏟아진 갈채보다도 훨씬 큰 소리였습니다. 맨 처음 선생은 객석을 향해 몇 번의 인사로 갈채에 답례했습니다. 그런데도 박수가 계속되자 옆에 서 있던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선생께 웃으며 박수를 보내주었죠. 그때 부끄럽게 미소 짓던 당신의 모습을 전 아마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예술가들- 예를 들어 클라우디오 아라우, 아이작 스턴, 로스트로포비치, 안네-소피 무터 심지어 겸손하다는 요요 마까지 -에게서도 결코 볼 수 없던 모습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재즈의 얼굴이었습니다. 근엄한 귀족의 후원이 아니라 민중들의 틈바구니에서 들풀처럼 자라난 이 소박한 예술이 화려한 음악당에서 수많은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 그 얼굴은 응당 선생의 웃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날 왜 유독 선생께 많은 박수가 쏟아졌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당시 재즈음반이 한국에 그리 왕성하게 보급되기 이전임에도 선생께서 이끌던 그레이트 재즈 트리오의 음반이 이곳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것이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이 사이드맨으로 참여했던 수많은 명반 덕택이었을 겁니다. 진 애먼스의 [배드! 보사노바 Bad! Bossa Nova](프레스티지), 콜먼 호킨스 [호크, 높이 날다 Hawk Flies High](리버사이드)와 같은 음반이 척박했던 국내 재즈계에도 이미 LP로 소개가 되었으며 찰리 파커의 [재즈 앳 더 필하모닉 1949 Jazz at the Philharmonic 1949], [지금이 그때다 Now's the Time], 진 크루파와 버디 리치의 [드럼배틀 The Drum Battle](이상 버브), 캐넌볼 애덜리의 [섬싱엘스 Somethin' Else] 폴 체임버스의 [최고의 베이스 Bass on Top](이상 블루노트)와 같은 명반은 당시 재즈 컬렉터들에게도 필청의 음반이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선생께서는 재즈 역사상 손에 꼽힐 가장 탁월한 반주자 중 한 명이셨습니다. 언젠가 평론가 냇 헨토프가 재즈 피아노의 제럴드 무어는 지미 롤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만약 독주자, 밴드 리더로서 선생의 많은 경력 때문에 제럴드 무어라는 칭호를 지미 롤스에게 양보해야한다면 전 대신 선생을 재즈 피아노의 미치슬라브 호르초프스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타건. 90세를 넘어서도 여전히 무대에서 들려주었던 기품 있는 연주. 여든 여덟 개의 건반 위에 약 한 세기의 세월을 바친 두 명인의 이름은 제 마음 속에 자연스레 겹치게 됩니다. ‘50년대 작품 [행크 존스 사중주-오중주 Hank Jones Quartet-Quintet]와 도널드 버드, 허비 맨 등이 게스트로 참여한 [블루버드 Blue Bird](이상 사보이)에서부터 패츠 월러 작품집인 ’78년 작 [실수하지 않겠어요 Ain't Misbehavin'](갤럭시), ‘91년 작 [메리디언 현악 사중주단과 함께 With Meridian String Quartet](LRC), 2000년대 프랭크 웨스(리니지), 제임스 무디(IOP)와의 녹음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간 선생의 연주는 재즈 피아노의 ‘실내악적인 본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리더 음반에서 조차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미적 균형을 먼저 염두에 두었던 선생은 분명 재즈의 고전주의자였습니다.
지난 2005년 <다운비트 Down Beat> 6월호에 실린 조 로바노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선생의 피아노에 영향을 준 인물로 패츠 월러, 아트 테이텀, 테디 윌슨을 직접 꼽으셨지만 제가 보기에 그중 테디 윌슨의 부드러운 스윙과 우아한 터치는 보통의 피아니스트에게는 포착되지 않은 선생만의 값진 자산이었습니다. 선생의 연주는 재즈밴드에서 피아노란 악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줍니다. 피아노란 리듬의 악센트며 코드 전환의 이정표이고 앞에 나선 솔로의 길을 터주고, 밀어주며, 맺어주는 노련한 교사였음을 선생은 보여 주셨으니 까요.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한편으로 밴드 내부에서도 연주자 사이의 암묵적인 경쟁이 벌어지는 재즈의 본성상 쉽게 잊혀 지기 마련입니다. 테디 윌슨에게서 꽃을 피운 반주의 미학은 선생을 통해 모던재즈로 흘러들어 갔고 그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디트로이트 악파의 후배 토미 플래너겐과 또 다른 반주의 대가 지미 롤스, 엘리스 라킨스에 의해 한 동안 그 아름다움을 유지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떠나고 없습니다. 선생의 악우(樂友) 조지 시어링과 선생과 플래너겐씨의 전통을 잇고 있는 케니 배런 그리고 새로운 기대주 빌 찰랩만이 이제 남았을 뿐입니다.
2004년 로바노의 [나는 당신을 위한 모든 것 I'm All for You](블루노트)을 들었을 때 로바노의 색소폰 뒤편에서 없는 듯, 있는 듯, 그렇지만 사운드 전체를 푸근히 감싸 안고 유유히 밴드를 밀고 나가는 선생의 피아노는 저를 진정으로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플래너겐이 커티스 풀러, 롤랜드 커크를 받쳐주던 그 소리, 라킨스가 엘라 피츠제럴드와 나누던 그 교감이 로바노와 선생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통해 2000년대에도 여전히 재즈에는 그런 풍경이 남아 있었고 이젠 그 풍경은 서서히 지는 석양처럼 서산에 걸려 있습니다.
선생의 음악은 상대방의 연주를 세심히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 콜먼 호킨스에서부터 포스트 밥 리듬섹션의 대표 주자였던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에 이르기까지 선생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들과 최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었던 선생의 부드러운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선생께서 아무런 음악적 혁신이 없었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으로부터는 아무런 예술적 주장을 발견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들이 지지하는 음악이 때때로 새로움의 미명아래 재즈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할 때, 현대음악에서 차지하고 있는 재즈의 의미를 헤아리지 않을 때, 저는 불행히도 저물어가는 재즈의 지금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상대방의 연주와 교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개성을 완전히 통제하더라도, 심지어 로봇과 연주하더라도, 새로운 재즈라는 이름으로 그 음악이 조명 받는 지금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재즈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재즈의 가치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재즈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선생께 보낸 안부의 편지가 오히려 제 넋두리가 되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패츠 월러의 대표곡이지만 선생께서 펜더로즈로 연주한 <당신 발은 너무 커요 Your Feet's Too Big>의 깊은 스윙을 들으면 괜한 근심은 어느새 사라지니까요. 음반이 사라져가는 지금이지만 레코딩의 유산은 여전히 커다란 위안이니까요.
아참, 이곳에 있던 선생과 유사한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너무 일찍 선생 곁으로 갔습니다. 이름은 최장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연주하시면 괜찮은 제자 한 명 만나 즐거우시라 생각됩니다. 저희도 선생이 남긴 수많은 음악을 평생 즐겁게 듣겠습니다. 육체의 버거움을 벗으셨으니 이제 좋아하시는 맥주 한 잔 마음 편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날이 무척 덥습니다. - 2010년 여름, 한 재즈 애호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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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크 존스 걸작음반 6선>
그레이트 재즈 트리오 [빌리지 뱅가드에서 At the Village Vanguard] (Test of Time/ TOT-2) '77년 이미 환갑의 나이를 목전에 둔 행크 존스는 ’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출신의 탁월한 리듬섹션 론 카터(당시 40세)와 토니 윌리엄스(당시 32세)와 매주 빌리지 뱅가드에서 정기 연주를 가졌다. 이때 결성되어 행크에 의해 30년간 지속된 그레이트 재즈 트리오(GJT)는 이후 많은 멤버 변동에도 불구하고 정형화된 감이 없지 않지만 초창기 이들의 연주는 연주자 각각의 개성이 날카롭게 부딪힌 역동적인 작품이었다. 이 음반은 행크 존스의 순발력과 폭넓은 음악성을 들려줌으로써 같은 해 녹음된 트리오 걸작 [리듬의 요동 Rockin' in Rhythm](콩코드)를 안타깝게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당시 GJT의 뱅가드 실황은 두 장 더 녹음되었다.
토미 플래너겐/ 행크 존스 [우리들의 기쁨 Our Delight] (Galaxy/ OJCCD-752-2) 행크 존스는 여기 토미 플래너겐 외에도 존 루이스(아틀란틱), 조지 시어링(콩코드) 등 일급 피아니스트들과 2중주 음반을 남겼다. 이들 음반의 영롱한 아름다움은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모두 뛰어나다. 하지만 플래너겐과의 이중주는 이들의 음악이 첫 씨앗을 뿌렸던 거친 자동차 공업도시가 실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연주의 대가들을 낳은 비인과 같은 예향임을 일깨운다. 이들이 연주한 데머론, 파커의 작품은 얼마나 정연하고 반짝이는가. 그 전통은 현재 배리 해리스, 케니 배런에게 전승되었다. ‘78년 녹음.
행크 존스 [메이벡 리사이틀홀 실황 Live at Maybeck Recital Hall, Vol. 16] (Concord/ CCD-4502) 콩코드 레코드의 칼 제퍼슨이 '89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의 한 작은 홀에서 시작한 일련의 독주회를 통해 행크 존스는 고희를 넘긴 연주자가 흔히 잃게 되는 기교의 완전성을 들려준다. 양손의 밸런스는 탁월하며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손끝은 정확하고 날렵하다. 하지만 그는 기교를 위해 그 어떤 경우도 피아노를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노장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의 헌정이다. 여기 담긴 스탠더드 넘버들은 그것이 잘 알려진 곡이든 혹은 숨겨진 곡이든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낸다. ‘91년 녹음.
행크 존스 [회상 Upon Reflection: The Music of Thad Jones] (EmArcy/ 514 898-2) 그의 집안은 히스(퍼시, 지미, 앨버트), 마살리스(엘리스, 브랜포드, 윈턴) 가문 만큼이나 대표적인 재즈 페밀리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성향의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음악 스타일을 치열하게 모색하며 한 평생을 살았다. 그래서 이 음반은 더욱 감동적이다. 일흔 다섯 번째 생일을 목전에 두고 맏형은 동생 엘빈(1927~2004), 베이시스트 조지 므라즈와 함께 새드(1923~1986)의 작품을 기렸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은 깊은 상념에 젖어 있으며 엘빈은 이를 위해 브러시를 들고 콜트레인 쿼텟의 이전의 시절로 되돌아간다. ’93년 녹음. 플래너겐의 새드 존스 작품집(엔자)과도 비교해서 들어 볼 것.
찰리 헤이든/ 행크 존스 [저희를 붙들어 주소서 Steal Away] (Verve/ 527 249-2) 햄프턴 하우스, 케니 배런(이상 버브), 크리스 앤더슨, 존 테일러(이상 네임), 에그베르투 지몽티, 데니 자이틀린, 최근의 키스 자렛(이상 ECM)에 이르기까지 일급 피아니스트들과 많은 2중주 음반을 녹음한 찰리 헤이든이지만 이 음반의 색체와 매력은 독보적이다. 그것은 헤이든이 고백했듯이 흑인 영가와 민요에 대한 행크 존스의 깊은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76세의 피아니스트는 마치 인생의 고해성사를 하듯이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건반을 어루만지고 그 뒤에서 헤이든은 특유의 거트현으로 드문드문 음악의 핵심을 짚어준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우리의 눈물처럼. ‘94년 녹음
로베르타 감바리니/ 행크 존스 [취한 삶 Lush Life] (EmArcy/ 06025217370678) 노대가란 말은 실상 얼마나 허구인가. 과연 만년의 노련함이 전성기의 완벽함을 능가했던 것을 우린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 87세의 행크 존스는 노년의 심미안은 물론이고 아직도 흐트러지지 않은 핑거링으로 바야흐로 정상에 올라선 이탈리아 출신의 가수를 완벽하게 반주해준다. 반세기 전 이 피아니스트가 디트로이트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남기를 결정했을 때 수많은 독주자와 가수들이 환호했다는 전설은 이 음반을 통해 여전히 증명된다. ‘93년 애비 링컨과의 2중주(버브) 역시 가수의 노래에 다소 불만이 있어도 반주만큼은 환상적이다. ’05~06년 녹음.
- 황덕호 (재즈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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