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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이른바 실학자들이 꿈꾼 것은 이상 국가다. 그 최초의 형태를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계수록』은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하고 정교한 국가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제도를 실현시키려면 엄청나게 강력한 국가권력이 필요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의 개혁 프로그램은 실천될 수 없었다. 하지만 경화세족(京華世族) 중 개혁적인 성향의 지식인들에게 『반계수록』은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 영향의 끝자락에 홍대용이 있다. 홍대용의 국가, 백성을 엄혹하게 통제하는 존재 홍대용은 「임하경륜(林下經綸)」이란 짧은(그리고 상당히 무체계적이고 부실한!) 글에서 『반계수록』처럼 국가 제도의 재정비를 주장한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그 국가가 백성을 엄혹(嚴酷)하게 통제하는 강력한 국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임하경륜」은 『반계수록』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담헌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서 8세가 되면 호패 대신 이름을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야 한다. 백성이 신분을 숨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백성은 또 자신이 태어난 향리를 결코 떠날 수 없다. 죽어도 향리에 묻혀야 한다. 이사도 허락되지 않는다. 부득이 이사해야 한다면 관(官)의 허락을 받아서 즉시 이사하는 곳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전지(田地)를 받아야 한다. 마음대로 이사를 했다가 발각될 경우, 형벌을 가하고 다시 향리로 돌려보낸다. 여행도 자유롭지 않다. 여행할 경우, 관청에 보고하고 어디서 어디까지 여행을 허가한다는 증명서를 얻어야 한다. 도로에는 감시소를 설치해 여행허가증이 없이 여행하는 자를 가려낸다. 도둑 역시 죄가 가벼울 경우 왼쪽 뺨에, 재범일 경우 오른쪽 뺨에 이름을 먹물로 새기고, 삼범일 경우 즉각 죽여 버린다. 강력한 국가 권력으로 담헌은 인간을 철저히 통제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허생전」의 섬, 돈과 지식인과 신분 차별이 없는 곳 ‘여전론’의 ‘여(閭)’보다 더 완벽한 공동체는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상상한 것이다. 허생은 변산반도의 도둑을 모두 데리고 사문(沙門, 어딘지 미상)과 장기(長崎, 일본 나가사키) 근처의 무인도에 내려놓는다. 천리가 되지 않는 작은 섬이었다. 허생은 도둑들을 내려놓은 뒤 돈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신이 타고 갈 배만 남기고 모든 배를 태워버린다. 섬을 떠날 때 허생은 ‘이 섬에서 화근을 끊어버린다’고 하면서 글을 아는 사람, 곧 지식인을 데리고 나온다. 연암은 화폐와 지식의 권력적 속성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허생전」의 ‘섬’은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가 없는 곳이다. 그곳은 국가 아닌 국가, 어떻게 보면 ‘사회’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것도 오직 농업만이 생업인 사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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