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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선생께서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내려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절을 했다는 풍기의 소백산
소백처럼 높지 않음에도 사방을 보며 절하고 싶은 산이 합천땅의 591m 대암산이다.
대암산에 올라 해가 뜨는 동쪽을 보면 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크레이터 내부에 자리하는 합천의 초계면과 적중면을 사이에 두고 동, 서 7km 남-북 4km 정도의 땅을 볼 수 있겠다
그 크기는 축구장 530개 정도의 탁 트인 평지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요즘은 산불 문제로 입산 통제되는 곳이 많은데 입산 하시기전에 읍,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알아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자가용으로 합천땅으로 가보며...
봄 날씨란 늘 그러하듯
이른 아침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들머리에 서게 되면 합천 운석충돌구 표지판이 서 있는데 전체 거리는 28,8km 정도 된다는 표시글이 반긴다
그 옆에 절충장군(정삼품 당상관 벼슬을 하셨고 무관이니 준장급의 벼슬)과 가선대부(도지사급의 벼슬)오씨 비석이 4기가 나란히 서있다
전체코스:적중교-단봉산-덕정재-작은 대암산-대암산-무월봉-태백산-대양고개-천황산-미타산-홀로재-옥두봉-적중교까지
합천군에서 설치한 거리는 도상거리 기준인 듯 28,8km이지만 걸어보면 실거리로 31km가 나온다.
지나간 경로
경로가 끊어져 조금 줄어들어 있지만 31km의 거리다
들머리에서 떨어진 참나무 낙엽 무성한 등산로 따라 오르면 풀이 전혀없는 무덤을 여러 기 지나는데
그중에 가선대부(도지사급) 한성부 좌윤(종 2품의 벼슬로 좌윤과 우윤이 있음, ) 김공 묘가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얼굴도 못 볼 정도의 지체 높고 뼈대 높은 가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세월이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어르신 "좀 지나가겠습니다."하고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 보니 점심시간 때 도착할 날머리 옥두봉이 보이고
해가 뜨려나
이른 아침이라 박무가 조금 있는 편인데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듯 봄은 그렇게 겨울이라는 상자를 열고 나왔고
벚나무는 또 누굴 반기려고 저렇게 정성들여 꽃을 피웠는지...
잠시 걷다가 뒤돌아 보니 일출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계절이 꽃피는 봄이라
단봉산까지 등로가 좋아 진행하기 좋고
운동시설이 되어있기에 허리도 한번 돌려보고
배낭에 물 6리터를 짊어지고 왔더니 등골에 땀이 흐른다.
물은 다음에 이 길을 지나는 이가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진행해 보라며 천황산 인근에 숨겨 두려고 짊어지고 가는 중이다
조용하기만 한 초계면과 뿌연 조망이 많아 아쉽다.
등로는 아주 좋고
밤 사이에 누가 빗자루로 휘~~~쓸고 간 듯 말끔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아막골재
쌍책면과 초계면을 연결하는 도로
들머리에서 2,5km 지점
단봉산에서 보는 조망으로 멀리 좌측에 미타산 그 옆은 천황산으로
천황산은 최고봉이건만 조망도 없고 정상석도 없는 산이다.
조망 좋은 대암산 방향으로
들머리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조망이 좋은 곳이다
단봉산 정상에서 등산로 따라가면 200M가량 돌아가는 길인데
마루금대로 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머리에서 3,5km 지점 50분 거리
합천군에서 5억 원을 들여 운석충돌구를 알리느라 많은 돈을 썼는데
걸어보니 등산로 보다 이런 대문짝 크기의 안내판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돈을 쓴 것 같다.
단봉산에서 잠시 등산로는 10년 전과 같다는 생각이 들고 초보자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은 길이 잠시 이어진다.
시멘트 임도길인 골안재를 지나며
4,2km 지점 1시간 거리
이제 대암산으로 올라 가기에 고도를 점차 높인다.
합천군 율곡면과 초계면을 이어주는 왕복 4차선 도로 마루금은 절개지와 철조망으로 되어 있는데
초계면 방향으로 잠시 올라가야 한다.
도로 따라 잠시 올라가면 우측에 다음 등로를 알리는 안내판이 두 팔 벌려 서있다.
5,1km 지점 1시간 10분
4차선 도로에서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어느 양반가의 초라하지만 무덤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며 서있는 문인석(文人石)과 함께 조그만 자연석으로 만든 비석(碑石)이 서 있는데
가선대부(도지사급) 벼슬을 하셨던 분이다.
지금은 땅의 기운이 다되어 후손들도 찾지 않은지 관리가 안되어 있다.그럼에도 지체높은 분이라 인사드리고 간다.
경북지부 분들께서 다녀가셨고
창원지부 시그널도 많이 보이고
박골재
도로 건너보면 등로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시그널 따라 몇발짝 올라가면 도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난다.
박골재부터 대암산까지 잔잔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게 오를 수 있다.
초입에서 8km 지점 1시간 45분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곳 안에는
가선대부를 지내셨던 광산 김공 묘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는데
지나온 능선에 도지사급의 벼슬을 하셨던 분들의 묘 3기를 있다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었고
소나무가 자라는 등로마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대암산과 큰고개재 방향으로
대암산 정상석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12KM 2시간 58분 거리
초입에서 박골재까지 편안한 길이고
박골재 이후에는 잔잔한 오름길이 이어졌으나 올라보면 안다, 얼마나 조망이 좋은지
좋은 코스를 만든다는건 ...
바다의 무법자이며 작은 제왕인 복어로 요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 복어를 먹은 사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물론 요단강 건너갔으리라 확신한다
그다음에 도전했던 사람은 분명 어떤 부위를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겠으나 또다시 골(棺)로 갔으리라 생각이 들고
또 그다음, 또 그다음 사람도 어떤 부위는 피해 가며 먹었을 것 같으나 분명 북망산에 갔을 것 같고
어느 누가 최초로 그 부위를 제거하며 먹었는지...
조그만 복어가 바다를 안방 삼아 유유히 돌아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테트로도톡신"
모르고 먹으면 북망산천이 바로 코앞이건만 알고 먹으면 맛이 있으니까 찾게 되는 복어
장거리 산행도 맛있는 복어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그 맛은 잊을 수가 없겠다.
비석뒤 미숭산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산은 국립공원 팔공산 주능선이며 팔공산 뒤에 군위의 선암산까지 조망되고
우측에 높은곳은 비슬산이다
대암산 정상을 지키며 한여름에 그늘을 제공해 주던 80년생의 팽나무가 3년 전쯤에 고사(古死)했다고 한다.
이유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인근 사람들이 산분장? 혹은 수목장? 매장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바뀌어 그랬나
화장하고 난 후에 유골을 나무 아래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무가 죽었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의 기운이 산 나무도 죽게하는 듯하다.
멀리 서쪽으로 지리산을 필두로 첩첩산중(*疊疊山中) 속에 만첩(萬疊)의 산들이 펼쳐지는데
지리산 그 앞에 황매산과 그 옆으로 마고할미의 외동딸의 전설을 간직한 월여산과 바람의 풍차 언덕이 있는 가을 국화축제를 한다는 거창군 신원면의 감악산이 줄지어 서있고 그 뒤에 고개를 내미는 산은 기백산인 듯 고개를 내민다
가야 할 무월봉과 그 뒤로 경남 의령의 양천 발원지가 있는 성현산과 산성산과 한우산 그리고 자굴이 서있는데 좌측에는 사천의 와룡산인 듯 보인다
자굴산 우측으로는 진주의 집현산과 그너머로 남해의 망운산과 하동의 금오산이 고개를 내민다
대암산 정상
정상에는 합천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하기 위해 대가야 때 쌓은 석성 초팔성이 있고
초팔성은 신라가 대가야를 정복하고 관리했으나 정상으로 물이 부족하여 소규모의 인원이 성을 지켰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산성은 대략 2천300여 개 정도지만, 아직 미확인의 성이 남아 있어 지금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는듯하나 참고 자료로 알고 넘어가면 좋을듯하다
운석이 떨어진 곳이고
저 멀리 희미한곳은 팔공산이며 그옆에 참꽃나라 비슬산에서 비둘산 그리고 청도의 남산과 그 옆에 밀양의 화악산이 있고
그 앞에 천왕산과 창녕조 씨(曺氏) 신화가 있는 화왕산이 늘어섰다.
보름달이 둥실 떠있을 무렵 이곳에 서면 어떤 감동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어느 날 밤 조각배 위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수면에 비친 달을 보고 잡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던 이태백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눈감고 저곳에 물이 가득 차 있다는 상상과 늦가을날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을 상상해 본다
운석이 떨어진 시기는 대략 6만 년 전 구석기시대
전체인구 2~4천명 정도?머릿니를 잡아먹던 시기쯤 되었을 것 같고
가운데 보이는 곳은 초계면과 적중면으로 가로 7KM, 세로 4KM
산 아래 평야지대 둘레는 대략 20km
가로 세로 5㎢쯤되니 500헥타르 1,512,500평으로 축구장 530개 정도 넓이다
드넓은 곳에는 마늘과 벼농사를 지으며 인심 좋은 두 개의 면(面)은 분지형이며
사방은 막혀있어 한때는 나라의 종묘사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왕이 누군지 전쟁이 났는지 몰랐거나 관심이 없었을 것 같은 곳이다.
대암산에서 무월봉으로 와서
정상에는 말라버린 억새가 가득하고 그 옆에 전망대가 자리를 지킨다.
등로는 아주 좋은 편이며
13,3km 지점 3시간 23분 거리
태백산에서
15km 지점 3시간 48분 거리
큰 고개 16KM 지점 4시간 거리
태백산에서 내려오면 소나무 길이 이쁘게 이어진다.
큰 고개에서 천황산 2KM 가는 길은 잔잔한 오름이 이어지는데
등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져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별다른 특징없는 최고봉 천황산(687M)을 지나면 아직 봄과는 거리가 먼 진달래 밭을 지나는데
이곳 천황산은 초계면과 적중면을 가로지르는 유하천이 발원되는 곳이다.
들머리에서 18,5km 지점 4시간 42분 거리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진달래가 조금씩 피었고
저기 앞에 두 번째 천황산(655M)이 보인다
천황산 삼거리
이곳에 물 4리터를 숨겨 놓는다.
누군가 이 길을 지난다면 꼭 찾아서 드시기 바라고
이놈 짊어지고 오느라 고생 좀했는데
이제 좀 살 것 같다.
삼거리 우측 나무 사이에 보이시죠
물 필요하시면 가지고 갈 만큼만 가져 가시고 나머지는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천황산에 도착해서 잠시 운기조식하며 쉬어 간다.
이후 미타산까지 등로는 아주 좋고 미타산까지 3KM 거리다.
출발지점에서 19km 지점 4시간 55분 거리
미타산 방향으로
등로는 이렇고
상홍사 안부에서
상홍사 안부를 지나면 어린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수년 후에 오면 아주 좋을 듯하다.
미타산성
합천땅과 의령땅을 경계하는 곳에 자리하는 성(城)으로 의령땅에 좀 더 많이 쌓여있다
옛 신라시대 때 김유신이 백제군과 싸워 이겼다고 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넓은 초계 평야에서 말 타고 싸우기 심심했나 이 높은 662미터의 산정에 올라와 치고받다니...
이곳 합천땅에는 대암산에 초팔성을 비롯한, 황강 강가 대야성, 야로면에 미숭산성, 합천호 옆에 악견산성, 쌍책면에 성산산성이 있는데
황강 옆 낮은 산의 대야성은 642년 대야성 전투 때 백제군사에 의해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가 죽자 복수를 하겠다며
김춘추는 동맹을 찾아 고구려로 갔으나,고구려는 신라가 차지한 "한강 위의 땅을 돌려주면 협조하겠다"해서 "치아뿌라"며 포기하고 당나라에 무려 17년간 굴욕적인 외교를 펼쳤고,
야로면의 미숭산성은 이미숭 장군이 이성계가 공양왕을 폐위하고 왕으로 즉위하자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며 마지막까지 싸우다 순절한 곳이다.
황강 맞은편의 성산토성은 가야국의 옛 산성으로 이후에 신라가 대야성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 같은 곳으로 보면 될듯한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토성이고
악견산성은 비탈지고 경사가 심한 곳에 만든 성으로 누가 그곳에서 싸울까 싶은 생각이 드는 성이다.
등로 따라 오르면 만나는 어느 설치 미술가? 의 세월이라는 작품을 만나는데(믿거나 말거나)
나 같이 무지몽매한 돌팔이 산꾼이 보면
청춘을 돌려다오... 고장 난 벽시계...
시간아 멈추어다오... 이런 노랫가사가 생각날뿐이고...
아침인 듯 저녁인 듯 알 수 없지만 하루 두 번은 정확하게 맞다는 이야기가 전래동화처럼 전해진다.
미타산
극락왕생을 상징하는 아미타불(佛)의 기운이 서린곳이며,김유신장군께서도 백제군과 싸우기 위해 땀흘리며 올랐던 산이다
그 이후에 고려시대 무인이며 도끼 하나로 천하를 호령하던 이의민, 그의 아들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집에 가서 비둘기를 빼앗았던 일이 크게 번졌는데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이의민이 이곳 미타산 별장에 있다가 최충헌 형제에 의해 죽음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의민에게는 늘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하나 있었는데 자기를 그렇게 챙겨주던 고려 18대 왕 의종의 허리를 부러트려 죽인 사건이 있었다.역사상 가장 처참하게 죽은 왕으로 허리가 반으로 부러져 죽은 것도 억울할 지경인데
이의민의 부하장수가 의종의 시신을 이불에 둘둘 말아 가마솥에 넣은 다음 연못에 던져 버렸는데 이를 지켜보던 스님이 연못에
뛰어 들어가 시신은 그대로 연못에 버리고 가마솥만 들고 나왔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이 스님은 가마솥 들고 가서 뭘 하신건지... 사실이던 그렇지 않던
"사치와 향락에 빠져 민심을 저버렸다"는 의종의 죽음이야기다
*의종의 부친은 인종으로 서해바다 태안에 굴포운하를 처음 건설하게 했던 왕이셨는데
이후에 조선 현종까지 530년 동안 굴포운하를 팠으나 전체 7KM 중 3KM는 화강암 때문에 결국 포기했으니
금북정맥길에 꼭 확인해 보시기 바라고..
자신을 아껴주던 주군의 허리를 반으로 접었던 인간 백정 이의민은 최충헌 형제에 의해 삼족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권불십년이라 했는데 천민으로써 출세하고자 자신의 알아주고 아껴주던 주군을 죽이면서 까지 출세하고자 했던 이의민이 죽은곳
정상뒤로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고
21,8km 지점 5시간 32분 거리다.
전망대에서 본모습
환종주길에 조망이 아주 좋은곳은 이곳 미타산과 대암산인데
이곳은 북쪽 조망만 있으나 대암산은 사방 조망이 아주 좋다
적중면 모습
물이 빠져나가는 곳 옆에 날마리 옥두봉이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곳은 합천 덕곡의 소학산으로 보인다.
소학산은 칠곡의 나라를 지킨 산으로 알려진 유학산과 비슷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묘를 쓰기 위해 남의 비석을 파내자 그 속에서 학 세 마리가 하늘로 날아가
그중의 한 마리가 산아래 뒷산에 앉았다고 해서 소학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나온 초계면과 대암산 방향
도깨비 뿔 같은 송전탑이 조망을 망치는데 저놈만 없다면...
저 녀석 이름은 별쿵이로 합천군 캐릭터로 보인다.
별이 날아와 쿵 떨어졌다는 뜻인 듯
미타산에서 홀로재까지 4KM 등로는 떨어진 낙엽이 많아 미끄럼 주의 필요
등로는 별로다.
바위틈 좁은 곳으로 지나
이곳에 고인 물로 세수하면 젊어진다나 뭐라나
송림재까지 5KM 구간
커다란 바위에 틈새가 보이는데
저속으로 지나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들판을 바라보고 들판도 나를 바라보는 곳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 본 적중면과 날머리 옥두봉
우측으로 비슬산이 길게 보인다.
진달래 꽃길
오늘 이길을 지나며 진달래는 대부분 소나무와 친한듯
참나무 아래에는 진달래가 거의 없다.
"나 보기 에이꼬워 가실 때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 보기 에이꼬워 가실 때
죽어뿌도 아니 눈물 흘리 오리다."
이런 멋진 시(詩)가 생각난다.
홀로재
이런 곳은 홀로 가야한다는 뜻인데
임도길로 차가 올라오기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대형 안내판이 보란듯 서있다.
간혹 산꾼들 이외 마을사람들이 경운기 몰고 지나가는 길로 보이는데 이렇게 큰 안내판이 필요할까
이런 거 말고 경사진 등로에 굵은 자일이나 좀 묶어 두었으면 좋겠구먼
들머리에서 25,5km 지점 6시간 27분 거리
앞에 날머리의 옥두봉이 보이고
잠시 잡목길이 이어지다가 길은 좋아지고
송림재 4차선 24번 도로
우측은 경남 창녕이나 의령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적중면으로 가는 길
이곳에도 어김없이 대문짝 만한 안내판이 서있고
다음 등로는 앞에 소나무 보이는 곳으로 가면 나무 계단이 보인다
들머리에서 28km 지점 7시간 거리
"어서 오이소" 라며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는 돌기둥
나무 테크 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미타산에서 6KM 지점이며 날머리까지 3KM 정도다.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 낙엽이 쌓인 등로가 반기는데
길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옥두봉 오름길은 조금 지루하고
253M의 옥두봉 정상
조망은 없다
그러니 갈길 빨리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옥두봉 정상
움푹 파진곳을 지키는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꽃을 피웠고
옥두봉 인근으로는 복숭아나무가 많이 보인다
적중교까지 1KM
떨어진 낙엽으로 인해 길 찾기 조금 신경 쓰이지만 여름철이라면 숲이 우거져 고생 좀 할 것 같다.
날머리 풍경
초입과 날머리가 공존하는 곳인데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계단 끝지점부터 등로는 나무만 조금 베었을 뿐
숲이 우거진다면 고생 좀 하는 곳이다.
이런 똑같은 대형 안내판 만들지 말고 많은 등산객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등산로 제정비 하는 게 더 좋을듯하며
한 바퀴 돌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잘 놀았으니 식사 정도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적중면. 초계면에 맛집 같은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다면 좋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총 공사비 5억 원 중에서 저놈의 운석 충돌구 안내판 만드는데 4억 9천은 쓴 것 같으니
전체 등로는 대부분 지난날 걸었던 그 길과 사뭇 다르지 않다.
천황산에서 대암산까지
물길은 옥두천과 상부천, 유하천이 모여 산내천이 되어 빠져 나가는 곳이다
물도 어미가 그랬던것처럼 몸을 낮추며 아래로 흐르니
나 홀로 뭔가를 지키고자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는 안될 것 같다.
이곳에서 긴 하루를 정리하며 식당 인근에 주차해 둔 곳에 가서 집으로 향한다.
31KM 7시간 50분 땡
참고로 들머리에서 초계면 방향으로 1KM 정도 가면 "신가네 칼 짬뽕집"이 있는데
주인께서 친절하시고 맛있게 하는 맛집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입구에 "동부 숯불 가든집"이 있으나 가보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고
주차는 동부 숯불가든 앞 도로가 벚나무 아래에 주차하시면 됩니다.
*개인택시 번호 필요하신분은:010-2332-4335 진창수님
(개인적으로 지원이 필요 하시면 물품 구해서 도로가로 배달해 주신답니다.)

첫댓글 합천의 대암산 운석충돌구
전망 좋은 대암산에 진달래가 많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천황산 삼거리 나무 사이에 물 4리터 숨겨 놓기 위하여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 안내판 자재대랑 설치품까지 고려하면 1식당 기천만원인데, 수 년이 못가 빛바래고 흉물이 되겠지요...? 합천에 유독 맛집이 귀했는데, 그 중 옥석을 발견하셨군요. 먼 길 다녀가신 방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태백산 정상패를 예쁘게 달았네요 ㅎㅎ
다른거는 크게 변한건 없는것 같군요.
대암산 고목은 안타깝네요.
제가 갔을때만해도 괜찮았는데...
일출이 참 근사합니다.
언제 일출보러 한번 가야겠네요..
대암산 들어본 산이름이라 확인해 보니 도솔지맥에 있는 다른 대암산이네요.
다른 이를 위해6kg의 무게를 짊어지시고...
등로가 편안해 보이고 조망도 좋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석공 환종주 합천군에서 주변을 알리기위해 꾸며놓고 했지만
다른 지자체에 비해 조금은 모자람이 있는것 같습니다.
대암산정상이 정말 멋진 조망 최고인데
그리고 나무 한그루가 명품이였는데
고사되였다니 안타까움입니다.
운석공 주변을 계속 맴도시더니
결국 그 길을 다시 가셨네요.
아담한 분지인 초계면과 적중면이
계속 볼때마다 부럽다고 느끼고
전라도의 곡창지대가 부럽다고 느끼는건
척박한 동해안 바닷가에서 자라나 그런걸까요?
여유로움이 포근함이 묻어나는 길
그 길을 즐거이 걸으시고 오셨군요.
즐감하고 조용히 물러납니다.
우주가 6만년전에 만든 환종주코스!ㅎㅎ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오버하는건가요? 암튼 시계반대방향(CCW)으로 종주하셨네요! 봄 기운이 올라오는 모습입니다. 봄이 지나고 한여름 7월중순쯤 방장님 뵈러 대구 팔공산 가고싶은데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안되면 가을이라도~ㅎㅎ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는 수소문해서~^^
대구 오실때 연락 주십시요
010-9082-6172번 입니다.
@배병만 감사합니다.^^
최고봉인 천황산이 정상석도 없다니 정상석 좋아하는 저로서는 실망입니다
다음분을 위해서 물6L나 메고 가셨다니 그 수고로움에 다음분은 덜 수고 할듯 합니다 종주코스가 뭔가 좀 있어 보여서 멀지만 땡기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내고향(합천봉산)이기도 하지만 사임당님고향(초계)에 다녀오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