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괴짜 마라토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석양이 드리워진 수요일 오후였다.
그러니까 그날도 저녁 무렵, 마석의 신설 비포장 도로에서 달리기를 마치고
조깅을 하면서 정리운동을 하고 있는데, 라이트를 켠 자동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추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마라톤 하세요?"라고 말을 건네 왔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짜고짜 나의 10키로 미터 최고기록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다.
내가 멈칫 멈칫 하면서 대략 38분쯤 될 거라고 했더니 그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보다 1분이 빠르네요" 하고는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 지역에서 내가 가장 빠른 줄 알았는데 나보다 빠른 사람이 있네요'
라고 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1분 차이면 실력차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하루에 몇 킬로 미터를 달리는지,
주로 어디에서 어느 시간에 훈련을 하는 지를 물어봤다.
그리고 자기의 훈련방법과 훈련시간 등등 마라톤 훈련에 대한
제반 사항을 장황하게 이야기 했다. 그는 괴짜 마라토너답게
훈련방법이나 훈련시간이 독특했다.
그의 훈련시간은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주로 사람들이 단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에 훈련을 한다고 했다. 왜 그 시간에 훈련을 하냐고 했더니,
초저녁에 잠이들어 새벽 1시만 되면 잠이 깨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대략 일과가 7시에 끝나고 숙소에서 8시에 잠을 청하면 새벽 1시에는
꼭 일어난다고 한다.
일단 잠에서 깨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달리기를 하러 나가게 되고
그렇게 습관이 되어 지금은 새벽에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단다.
그래서 습관처럼 달리기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달리기를 한지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맑은 날은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달릴 수가 없고
비가 오는 날에 주로 비를 맞고 달린다고 했다.
그는 일단 달리면 하프거리 이상을 달린다고 한다. 달리는 코스도
구리나 청평, 또는 양수리 쪽으로 국도를 달린다고 했다.
찻길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새벽에 달리니 차들도 많이 없고
그리고 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그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나에게 풀 코스를 몇 번이나 달려봤으며
최고기록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다. 내가 대략 00회를 달렸으며
최고기록은 겨우 3시간 이내에 몇 번 달렸다고 했더니 자기는 3시간
20분이 최고기록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느 마라톤 대회에서 기록한 기록이냐고 했더니
경춘가도를 따라서 마석에서 가평 근처까지 자동차로 거리를 측정하여
연습 삼아서 달려보니 3시간 20분이 걸렸다고 했다. 그것도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려서 일궈낸 기록이라고 했다.
정식대회는 몇 번이나 나갔냐고 했더니 딱 한번 10킬로 미터를 목표로
작년에 대전 MBC 마라톤에 나갔다고 했다. 그는 잠시 그때를 회상하고선
말을 이어갔다.
"그때 사실 입상을 목표로 나갔었죠.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입상을
할 걸로 생각했어요. 헬스장이나 길거리에서 나보다 빠른 사람을 보지 못했
으니까요. 그래서 처음부터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고 출발 총성을 기다렸지요.
출발 총성과 함께 달려 나갔는데, 출발하자마자 다들 무지하게 빨리 달려가더군요.
그래서 나도 뒤질세라 2킬로 미터까지 줄곧 선두를 따라서 달렸지요.
그러나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조금 속도를 줄여 달렸더니
선두가 금세 멀리 내 달리더군요. 결국 지지부진한 레이스로 42분 여로 골인을
했습니다. 그때 초반에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았어도 입상을 노려봤을 텐데.......
무척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습니다.
사실 나의 경우 4킬로 미터까지 힘들다가 4키로 미터를 지나면 몸이 새처럼
가벼워져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거든요. 다음에는 오버페이스에 주의를 하고,
또 그때 우승한 주자의 기록을 보니 36분 정도 되는 것 같던데,
내가 연습으로 38분 정도만 달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그와의 이야기가 길어졌는지 벌써 어둠이 내려 주위가 어둑어둑 해졌다.
내가 다음에 한번 만나서 함께 달리게 연락처나 한 장 달라고 하니까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면서 "나는 포크레인 일을 해요.
주로 포크레인으로 돌을 깨는 일을 하죠.
여기 마석에는 공사 때문에 와있고 집은 인천입니다."
그날 그렇게 만난 뒤 3일이 지난 토요일 오전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내용인즉 오늘 오후 5시쯤에 자기와 달리기로 맞짱을 뜨자고
했다. 이 지역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 나와 승부를 겨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 긴장이 됐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승부에 대해서
예상을 해 보았다. 페이스 조절만 잘하면 지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