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람을 '점잖다'고 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점잖다'를 '언행이 묵중하고 야하지 아니하다, 품격이 속되지 아니하고 고상하다(『표준국어대사전』), '몸가짐이 가볍거나 까불지 않고 례절있게 듬직하고 의젓하다(북한의『조선말대사전』)로 각각 풀이하고 있는데, 이들 풀이말 중에 그 의미로 보아 가장 가까운 단어는 '듬직하고 의젓하다'가 아닌가 한다. 왜 그런 사람을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의문은 '점잖다'의 어원을 이해하면 쉽게 풀릴 것이다.
'귀찮다'가 '귀치 않다(아니하다)'에서 온 말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점잖다'가 '점지 아니하다'가 줄어든 말임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점지 아니하다'의 '점다'가 무엇일까? '점다'는 '젊다'로 변화한 것인데, '젊다'로 되기 이전에는 '졈다'였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 人生애 免리 업스니다 <석보상절(1447년)>
이 '졈다'가 '졂다'로 변화한 시기는 16세기인데, 이때에 '졂다'가 '젊다'로도 표기된다. 왜 '졈다'에 'ㄹ'이 삽입되어 '졂다'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졈다'의 대립어 '늙다'의 ''에서 유추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계뫼 세 아 나하 다 졀머든 <이륜행실도(1518년)> 졀믈 쇼(少) <칠장사판천자문(1661년)> 졂다(少年) <한불자전(1880년)> 슌인니 나히 절멋더니 <이륜행실도(1518년)> 젊은 사람이 물이 만흔 고로 <신약전서(1900년)> 젊을 쇼(少) <신정천자문(1908년)>
그러니까 '점잖다'는 '졈디 아니다'가 줄어든 말이고, 그 뜻은 '젊지 않다'인 것이다. 이러한 추정을 내린 것은 '졈디 아니다'가 최초로 나타날 때에 '젊지 않다'가 아닌 '점잖다'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셜 넉넉히 역적질 엿다 고 졈디 아니 거시 엇디 가히 지만리잇가 <속명의록언해(1778년)> 우리 친히 가 빌고져 되 졈지 아닌 사이 염치업 매 公 아라셔 되도록 셔도라 주쇼셔 <인어대방(1790년)>
이미 15세기에 '졈다'가 보이니까 그 부정형인 '졈디 아니다'도 15세기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졈디 아니다'가 오늘날처럼 '젊지 아니하다'의 뜻이 아닌 '점잖다'의 의미를 지니고 쓰인 관용어로서만 사용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점잖다'를 '젊잖다'로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물론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사전』에는 '젊잔타'와 '젊잔하다'가 올림말로 쓰이었지만), '졈디 아니다'의 '졈다'는 '젊다'를 뜻하는 '졈다'와는 다른 변화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졈다'가 '졂다' 또는 '젊다'로 변화하였어도 '졂다'는 오늘날의 '젊다'를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 '졈디 아니다'는 '점잖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미 관용구가 되어 '젊다'의 의미를 잃어버린 '졈디 아니다'가 '졂디 아니다'로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졈지 아닌 사이 졀믄 사과 詰亂여 무얻올고'<인어대방(1790년)>에서 보듯이 '졈지 아닌 사람'은 '점잖은 사람'을, '졀믄 사'은 '젊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의외이지만, '졈디 아니다'가 문헌상에 처음 나타나는 시기는 18세기이다. 그리고 '졈디 아니다'가 '졈잖다'나 '점잖다'(표기상으로는 '졈잔타'나 '점잔타')로 축약되어 표기된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졈잔타〔長者〕<한불자전(1880년)> 네 샤특 교 저러 졈잔은 사들이 증참 거 듯냐 듯지 못냐 <천로역정(1894년)>
이것이 오늘날 '점잖다'로 된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점잔타'로 표기되면서 이것을 '점잔다'가 축약된 것으로 해석하여 '점잔다' 등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졈잔하신 도련임이 이 거시 웬 이리요 <춘향전> 점잔하다〔儼偉〕<국한회어(1895년)>
이것이 오늘날 '점잖다'에서 '점잔'이 명사처럼 쓰이게 된 동기이다. 즉 '점잔 + 다'로 분석되니, '점잔'을 명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미 19세기의 대역사전에 '점잔'이 그 뜻은 오늘날과 약간 다르지만 올림말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다.
점잔〔俊秀〕<국한회어(1895년)>
이것이 오늘날 '점잔을 빼다, 점잔을 피우다, 점잔을 부리다, 점잔스럽다, 점잔이' 등처럼 사용하게 된 동기인 것이다.
결국 '젊잖다'는 '졈디 아니다 > 졈지 아니다 > 졈지 않다 > 졈잖다 > 점잖다'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단어이다. 젊지 않은 사람은 '듬직하고 의젓한' 사람인 셈이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야 '점잖은' 사람인가 보다. 대신 젊은 사람은 옛날부터 '점잖지' 못했나 보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