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788]명재(明齋)윤증(尹拯)선생7절과 南山玄豹(남산현표)
明齋先生遺稿卷之二 / 詩
贈金上舍 萬吉。증김상사만길
次其與拱弟韻。차기여공제운
多少工夫靜裏宜。다소공부정리의
南山霧豹可能知。남산무표가능지
君家自有書千卷。군가자유서천권
何用床頭一局棋。하용상두일국기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4
명재유고 제2권 / 시(詩)
김 상사(金上舍) 만길(萬吉) 에게 주다.
그가 아우 공(拱)에게 준 시에 차운한 것이다.
공부를 하기에는 조용한 곳이 제일 / 多少工夫靜裏宜
남산의 안개비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지 / 南山霧豹可能知
그대 집에 서적이 천 권이나 쌓였는데 / 君家自有書千卷
어찌하여 상머리에서 바둑만 두는 건가 / 何用床頭一局棊
[주-D001] 남산(南山)의 안개비 속 표범 :
한(漢)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실린 내용이다.
도 답자(陶答子)가 3년 동안 도(陶)를 다스렸는데,
명성은 얻지 못하고 집안의 재력(財力)만 세 배로 늘어났다.
그러자 그 처가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안개비 속에서 이레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산 위에 가만히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그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문장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하였다 한다. 여기에서는 조용한 곳에서 수양하며
독서하는 것에 비유하여 한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2006
이하 조선일보= 입력 2011.03.10. 23:05
[정민의 세설신어] [96] 남산현표(南山玄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증(尹拯·1629~1714)이 게으른 선비에게 준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법,
남산의 안개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네.
그대 집엔 천 권의 서적이 있건만,
어이해 상머리서 바둑이나 두는 겐가
(多少工夫靜裏宜, 南山霧豹可能知.
君家自有書千卷, 何用床頭一局?)."
공부는 외면한 채 바둑 같은 잡기로 세월을 낭비함을 나무란 내용이다.
시 속에 남산무표(南山霧豹), 즉 남산 안개 속에 숨어 있는 표범 이야기는
한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나온다.
도답자(陶答子)란 사람이 있었다.
3년간 질그릇을 구워 팔았다.
명예는 없이 재산만 세 배나 불었다.
그의 아내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남편에게 여러 차례 그러지 말라고 간했다.
도답자는 들은 체도 않고 부의 축적에만 몰두했다.
5년이 지나 그가 엄청나게 치부해서 백대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
집안 사람들이 소를 잡고 그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도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서 울었다.
시어머니는 이 기쁜 날 재수 없이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玄豹)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녀를 내쫓았다.
1년이 못 되어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짙고 기름진 무늬로 문득 변한다.
그 변화가 참으로 눈부시다.
"주역"에도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이다.
부스스 얼룩덜룩하던 털이 내면이 충실해지면서
어느 순간 빛나는 무늬로 바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공부를 내팽개친 채 여기저기 기웃대면,
문채는 갖추어지지 않고 그저 지저분한 개털만 남는다.
잠깐의 포만감과 빛나는 문채를 맞바꾼다면 민망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