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사막과 초원
1. 이주민 행렬
한편,
해천과 중부 일행은 홍산 마을에서 거주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부상병들의 상처도 많이 치유 治癒되어, 중상자 두어 명만 제외하면 이제는 병사로서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담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중부는 동무를 새로 사귀었다.
부족장 서휴의 아들 ‘누리’다.
성격이 서글서글하여 중부와 잘 통하였다.
부상에서 회복된 병사들은 들에 나가 농민들의 봄 파종에 힘을 보탠다.
해천이 촌장에게 앞 개울의 명칭을 물어보니 구천 九川이라고 하였다.
여기저기 물길이 많아 냇가 이름이 구천이라 불리어지고 있다한다.
이 개울물이 북동쪽으로 흘러 노합하로 유입되고, 노합하는 동으로 계속 흘러 압록수(후일의 요하)로 합수 合水한다고 한다.
개울에는 메기. 붕어를 비롯하여 물고기가 지천이다. 물 반 고기 반이다.
서누리는 낚시를 잘하였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 개울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대낚시를 드리우니 팔뚝만 한 봄 메기와 잉어가 잘 낚여 올라온다.
부상병들은 상처가 치유되고 기분이 좋아지니 입가에서 절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며칠 후.
오후 신시 申時경,
한 무리의 이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동쪽에서 나타나 서쪽으로 이동하는 무리는 수천 명이 넘어 보였다.
그 무리들은 남부여대 男負女戴 형태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말을 탄 자도 있고 소 달구지에 타고 가는 자도 있으며 양을 몰고 가는 자, 각양각생 各樣各生이다.
말을 탄 자들은 지휘관급이고 수레에 탄 자들은 노약자들이며, 건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보로 행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무리의 이동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흉노족의 이동이다.
그렇다.
흉노족과 몇 몇 부여의 맥 족이 뒤섞인 동이족의 대이동이다.
이를 먼 발취에서 구경하던 이중부.
해천과 이주민들의 인솔자를 찾아가니, 젊은 천부장 오환 림 烏丸 林이 나선다.
“어디에서 오시는지요?”
“대릉하의 금주에서 오는 길이오”
“어, 금주는 제 고향인데요”
“그래요, 우리는 고향인 항가이산으로 가는 중이오”
“그럼, 산동성 북해에서 3년 반 전에 떠나온 동이족이네요”
“어, 어떻게 잘 아시오?”
“저도 산동대군 휘하에 있던 백 부장 출신 해천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반갑소.”
“그런데, 어떻게 이곳으로 오셨죠? 사로국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 고향인 알타이산으로 먼저 출발한 형제들이 ‘초원으로 오라’하여 태반은 지금 이렇게 이주 중이오”
“아하, 그러시구나”
“우리가 선발대고 차후로 계속 이동할 것입니다.”
그러자 옆의 일궁이 아는체 한다.
“저도 항가이 출신입니다. 시루 是樓 부족입니다”
“하아, 그래요. 그럼 집안이 고씨 高氏겠구먼? 우리 오환 부족과 가까운 사이인데”
“네 맞습니다. 고 발후 發厚라 합니다”
“형제를 이렇게 만나니 반갑군” 그러더니 붉은 저녁놀을 띄우며 서산을 넘어가는 석양을 잠시 바라보더니, 옆의 백 부장에게 말한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는 게 어떻겠소?”
“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하더니, 유달리 목소리가 큰 백 부장은 주위를 돌아보며 크게 외친다.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합시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중부는 3년간 같이 조선하 박달촌에서 무술 수련을 하면서도, 오늘 고발후의 본명을 들으니 새삼스럽다.
이때까지도 북해 봉래 포구에서 처음 보았을 때 지어준 별명 ‘일궁’을 그대로 지금까지 불러왔었다.
아니, 몇 번 부르지도 못하였다.
수련 입단 시에 뒤늦게 참석한 관계로 서로 간에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고발후는 나이 어린 동생 뻘되는 중부에게 당한 것이 남세스러워 입을 떼지 못하였다. 중부와 한준은 나름대로 나이 많은 형을 때린 것이 미안하여, 서로의 관계가 맹글맹글하게 회피하던 사이였다.
수련 기간에는 훈련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은 아예 하질 못했고, 또 한준과 단짝으로 지내다 보니 다른 동료, 실은 나이가 서너 살씩 많아, 형님 신분들이다.
말 붙이기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도외시 度外視 한 탓도 있었다.
고발후는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고 키도 더 크지만, 중부가 워낙에 뛰어난 무예 고수인지라 예전에 단단히 혼이 난 적이 있어, 감히 토를 달 엄두도 못 내는 처지였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고 무술 수련을 같이했지만, 서로가 통성명조차도 제대로 없었던 것이었다.
중부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발후에게 미안한 감이 생겼다.
“일궁.. 아니, 고형 예전 봉래 바닷가 사건 미안해”
“아..아니야, 내가 도리어 미안하지, 고수를 몰라보고. 하하하”
“나이도 많은데 형이라 불려야 되겠네”
“형은 무슨... 같은 동기생인데 서로 편하게 말 트고 동무로 지내자”
“응, 좋아 그러지, 고마워”
“그래, 하하하”
불량스러워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성격이 활달하고 호쾌하다.
“근데, 그때 말괄량이와는 어떻게 되지?”
“아...우문청아 얘기하는구나”
“험, 걔가 우문씨 于文氏였구나”
“그래, 부친은 백 부장 출신이신데 얼마 전 천부장으로 승격하셨지, 계집애가 아주 씩씩하고 영특하지”
“흠. 그렇구나”
“그날도 청아의 기지 奇智가 아니었음. 우리 일행은 박살 났겠지. 하하”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지?”
“글쎄, 박달촌 수련단에 들어오기 전, 대릉하의 금주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수련기간 동안 서로 연락이 안 되었으니...”
“그렇겠군”
“아.. 좀 전에 이동을 지휘하는 오환 림 천 부장님께 물어보면 알 수도 있겠네”
“아, 아니 갑자기 지난 생각이 나서 얘기한 것 뿐이야.”
입으로 말은 그렇게 무심한 듯이 이야기했지만, 중부는 갑자기 맹랑스러운 우문청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청아의 손목을 잡았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이 새삼 떠오른다.
괜히 혼자 귓불이 붉어진다.
해천의 병사 중, 세 명은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만나게 되어, 지휘관인 백 부장 해천에게 개인적인 사정 事情을 이야기하여 가족을 따라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흉노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나니, 마을에서는 난리가 났다.
소와 말이 이십여 두, 양과 염소가 30여 마리가 사라지고, 파종할 곡식 씨앗들도 상당히 없어졌다.
필시 이주자들의 소행이다.
그런데 피해 물품은 많은데, 범인을 특정 特定할 수가 없다.
그러니 수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상대로 항의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자 주민들은 해천 일당들마저도 곱지 않은 눈길로 본다.
불꽃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어차피 떠날 사람들...
그때는 이번 이주민처럼 도둑으로 변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 壯談할 수가 없다.
정주민 定住民 입장에서는 이주민들이 뿌리 없는 부평초 浮萍草 (개구리밥)처럼 여겨진다.
떠날 사람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사람들,
떠나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혈연 血緣, 지연 地緣 등,
연결의 끈이 없는 사람들
무연고자 無緣故者들이다.
부평초 같은 무리들.
떠나버리면,
더 이상 만날 일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서로의 소식에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태도가 쌀쌀맞게 변하자 다음날 해천이 병사들에게 말한다.
“이제 마을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모두들 말이 없다.
한 달 동안,
지금까지 편하게 지낸 이곳을 떠나기는 아쉽지만, 주민들의 싸늘해진 눈초리를 무시할 수 없다.
“이틀 후, 금주로 떠나자”라고 결정하였다.
중상자들도 부상 상태가 많이 호전 好轉되어 이제 거동 擧動하기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틀 후,
병사들이 서 촌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서 촌장도 도둑 피해 被害 입은 마을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애서 만류 挽留하지 않았다.
이별의 정표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린 육포 두 자루와 콩 한 자루를 주었다.
해천 일행은 마을을 떠나 대릉하가 있는 동쪽으로 반 시진을 걸었다.
그런데,
잠시후, 서누리가 큰 양 한 마리를 끌고 뒤따라왔다.
동무와 헤어지기 아쉬워 배웅차 왔다며 양을 한 마리 선물한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두어도 상하지 않는 살아있는 커다란 대형 도시락이다.
일행 모두 ‘고맙다’며 인사한다.
그때 앞쪽에 한 무리의 이주민들이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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