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다’ 이케다 선생님 대화록 <2>
<페루 국립 산마르코스대학교>
후안 데 디오스 게바라 총장
△소카대학교 창립자인 이케다 선생님이 산마르코스대학교를 공식 방문했다. 게바라 총장(맨 오른쪽)이 환영 메시지를 낭독한다. (1974년 3월 26일, 수도 리마 시내)
◈ 후안 데 디오스 게바라
1910년 3월 1일, 페루 남부 피스코 출생. 1931년에 산마르코스대학교에 입학.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딴 뒤 20년 넘게 거듭 연구해 이 대학의 명예교수가 된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산마르코스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페루화학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 페루 정부가 수여하는 ‘교육최고영예장’, 스페인 정부가 수여하는 ‘알폰소10세훈장’ 등 여러 훈장을 받았다. 2000년 5월 6일, 아흔 살에 서거.
인간의 진가는 역경을 만났을 때 빛난다
차창 너머로 비치는 풍경은 대학이 폭풍우에 휩싸여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벽이라는 벽에 빨간색과 검은색 페인트로 정치적인 주장이 휘갈겨 씌어 있었다.
1974년 3월 26일, 페루를 방문한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국립 산마르코스대학교 후안 데 디오스 게바라 총장을 만나기로 한 회견장소로 향했다.
당시 대학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이 세계적으로 고조되어 산마르코스대학교도 학생과 대학 당국이 대립했다. 캠퍼스에서는 시위행진이 벌어지고 총장의 집은 폭탄테러의 표적이 되었다.
도저히 캠퍼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수도 리마 시내에 있는 대학사무국이 회견장이 되었다.
이케다 선생님을 맞이한 게바라 총장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리는 이케다 회장을 그저 큰 조직의 회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회장의 인생과 저서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창조적인 활동에 충실한 위대한 스승, 인도주의자, 철학자, 작가라고 봅니다.”
과학자다운 냉정하고 침착한 말투였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선생님을 우러러보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저는 소카대학교 창립자로서, 또 인류의 행복과 평화와 번영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으로서, 그 모든 열쇠는 청소년의 교육에 있다고 자각하고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번 초청은 총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산마르코스대학교는 1551년에 설립한 뒤로 역대 대통령과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등 페루를 짊어지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총장에게는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형성’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세계를 휩쓴 대학분쟁의 폭풍우를 이겨내고 페루의 등대가 되어 미래를 제시하는 대학의 참모습을 모색하던 중에 일본의 소카대학교를 주목했다.
설립 400년이 족히 넘는 산마르코스대학교에 비하면 소카대학교는 개교 4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졸업생도 나오지 않은 신생 대학이었다.
그러나 총장은 단언했다. “두 대학의 목적은 본원적으로 하나입니다. 우리 대학은 소카대학교와 목적이 같음을 긍지 드높이 선언합니다.”
◇
회견에는 게바라 총장뿐 아니라 부총장, 교수 12명이 동석했다.
긴 탁자에는 각 자리마다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보도진도 몰려들어 마치 국제회의 같은 분위기였다.
먼저 ‘교수와 학생 간의 단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
부총장이 첫 말문을 열었다.
“역시 첫째는 대화입니다. 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대학에는 전진이 있습니다. 둘째는 학생이 대학의 여러 행사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대학의 모습’ ‘학생회 운영’ ‘교수의 재교육’ 등 격렬한 논의가 이어졌다. ‘학생이 바로 대학의 주역’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교수진에게 이케다 선생님은 깊은 찬동을 보냈다.
선생님은 일본의 대학분쟁이 가장 격심한 시기에 소카대학교 건설에 착수했다. 그 근저에는 소카대학교가 학생 중심의 대학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든 학생이 창립자라는 기개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한 건학 정신을 언급하면서 선생님은 교육흥륭을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국제교육연합’ 구상을 말하고 그 준비단계로 ‘세계대학총장회의’ 개최 등을 제안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총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구상을 실현하면 대학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 진흥을 위해 인류의 모든 영지(英智)를 결집할 수 있습니다. 굉장합니다! 이 장대한 규모의 제창을 저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1974년 3월에 실시한 산마르코스대학교 방문은 이케다 선생님에게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교류이기도 했다.
일본을 출발한 지 이미 20일이 지났다. 페루 체류는 중남미 방문의 반환점에 해당했다. 대학 방문은 산마르코스대학교가 네 번째였다. 선생님은 북미와 파나마를 방문해 계속 격려하고 페루에 도착한 뒤에도 찌는 듯한 더운 날씨 속에서 동지를 철저히 격려했다.
대학을 방문하는 날 아침, 피로는 극에 달했다. 열이 나서 걸음걸이도 불안했다. 회견하기 직전, 동행자가 대학 방문을 중지하자고 말하자 선생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게바라 총장은 대학의 참모습을 깊이 생각하고 나와 대화하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뵙는 것이 사람의 신의이지 않은가.”
회견 다음날에도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선생님은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고 숙소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날 밤 숙소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게바라 총장이 직접 문병을 온 것이다.
“폐가 될지도 모르지만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총장은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저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지만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페루에 오십시오.”
선생님은 ‘총장의 후의를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답했다. 숙소 밖에는 총장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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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카학원을 방문한 게바라 총장(가운데)이 이케다 선생님가 이야기를 나눈다.(1981년 4월 10일)
벚꽃이 활짝 핀 봄날에 맞이한 도쿄 소카학원 제14회 입학식(1981년 4월 10일). 강당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산마르코스대학교 폰스 무조 신임 총장이 게바라 총장 부부와 함께 멀리서 일본을 방문해 이케다 선생님에게 이 대학의 ‘명예교수’ 칭호를 수여했다.
일본인 최초의 영예이자, 이례적으로 대학 이외의 곳에서 한 수여였다.
이케다 선생님에게는 모스크바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1975년)에 이은 두 번째 명예학술칭호였다.
게바라 총장은 그 뒤에도 페루와 일본에서 선생님과 재회하는 등 2000년 5월 아흔 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친교를 이어갔다. 만년이 될 때까지 선생님의 저서를 옆에 두고 페루SGI 행사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지지난해 8월에는 산마르코스대학교와 소카대학교가 교류협정을 맺었는데, 그때 이케다 선생님은 이 대학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생님은 게바라 총장과 만난 일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썼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잇따른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그 삶의 자세가 나타나고 성실성이 빛난다.”
신의에는 신의로 보답한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보답한다.
그러한 실천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더하는 참된 우정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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