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은 열정이고
사랑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아이디어맨이고 동료교사들에게는
‘알~지’ 행복바이러스다. 쉬는 시간에 어쩌다 교무실에 들르면 만능박사인 선생님 자리에는 학생들이 찾아와 질문하거나 지도하는 모습으로 분주하다.
학생들이 제시한 사소한 생각이라도 항상 격려하고 의문과 발상을 하게 된 동기를 묻고 원리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발명지도
선생님이시구나!’하고 지도 방법에 감탄한다. ‘이렇게 하니까 선생님께 배운 아이들이 성장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문병기 상관중 교장의 스승상 추천서
중
상관중
느티나무 발명동아리 학생들과 발명품에 대해 이야기 하는 홍 교감
세계표준시각 학습장치
“발명은
열정이고 사랑입니다. 매사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는 것, 늘 아이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일에서 발명교육은 시작되지요. 발명 그
자체가 남을 위한 일 아닌가요?”
홍정태(60)
한국치즈과학고 교감은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 수시로 “이 아이디어 어때요?”라며 묻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뤄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그에겐
발명이란, 아이들과 대화하는 창구이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발명으로 이룬 시골학교의
기적
1982년 3월 낙도인 전북 부안군
위도중에서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산으로 바다로 아이들과 함께 다니며 “참 재밌었다.”고 했다. 수시로 바닷가에 나가 조개로 표본을 만들어
보고, 지천에 보이는 식물과 곤충을 채집하기도 했다. 소규모 학교에서 한 명의 교사가 여러 교과목을 담당하다 보니, 과학과 기술교과를 함께
가르치면서 기계를 조립하거나 만드는 일은 일상으로 이뤄졌다.
“위도고가 설립될 때 교문을 만들고 현관
진입로를 설계했어요. 뭔가 만들거나 수리하고 고치는 일을 어쩌다보니 제가 맡고 있더군요. 하하. 몇 해 전 위도고에 갔을 때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만능박사로 통하면서 부임 첫해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참가를 시작으로, 아이들과 몇몇 대회에 나가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였다.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상상을
그대로 끝내지 않고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2005년 산서중고로 부임한 후 발명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20여 년간 도시학교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다,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시골학교 아이들을 만나면서 발명은 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의욕이 없고 학습 동기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어 줄 대안으로 발명을 꺼내든 것. “훗날 나는 무엇을
했다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심어줬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은 발명교육에 대한 더 큰 애착으로
이어졌다.
치즈산업으로 유명한 임실군에 위치한
한국치즈과학고는 식품분야 특성화고로, 최근 교내 학교기업센터를 개관하고 모짜렐라 등 신선치즈와 요거트 등을 생산해 판매하는 학교기업을 운영한다.
창업동아리를 만들어 창업의 붐을 일으키고 싶다는 홍 교감
상관중
복도에 설치된 발명아이디어함
그는 아이들에게 발명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 넣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4시간 진행되는 과학수업 중 1시간은 야외수업으로 진행하면서 ‘자연탐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야외수업 동안 주변을 보고 관찰하며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뿌리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넝쿨은 왜 꼬여서 올라가지?’라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무르익을 때, 그는 다양한 생각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생각할 수 있는 ‘창의발명반’ 동아리를 만들었다.
어느 날 발명반 준환이는 “별자리가 어떻게
반시계 방향으로 한 시간에 15도씩 이동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되물었다. “어떻게 알려주면 이해가
쉽게 될까?”라는 말에 준환이는 며칠 후 “천구의라는 기구에 지평면을 달면 이해가 잘 될 것 같다.”는 답을 내왔다. 이를 그려서 설명해 보도록
과제를 내주자 아이는 연습장에 자세히 그려와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참 훌륭한 생각이다.”라며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천구의를 구해주고 여러 가지 탐구활동을 이끌었다. 그렇게 만든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다용도 천체세트’는 제28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지도논문대회에서 전국 은상을 수상했다.
“인근 공업사로 가서 부품을 구하고 납땜하고
발품을 참 많이 팔았어요. 발명품을 만들려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최소 7~8번은 다시 만들어야 하나의 완성품을 얻을 수
있지요.”
결과는 놀라웠다. 침체돼 있던 시골학교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고, 전국대회에서도 아이들은 두각을 드러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와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 등 전국대회에 입상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 11년간 학생을 지도한 작품만 150여 개가
넘는다.
쓰리고(쓸고 닦고 담고) 청소기를 발명한
상관중 3학년 김혜정, 김예나 양
10년
연속 전국대회 입상 비결… 남과
다르게 생각하기 |
홍 교감과
느티나무 발명동아리 학생
느티나무
발명동아리 슬로건
상관중에서는
‘느티나무 발명동아리’를 이끌다 발명교육이 학교 특색사업으로 발전했다. ‘발명이 미래다’라는 슬로건 아래 발명아이디어함을 설치하고, 매년
발명노트를 제작·보급하는 한편, 발명품 만화 전시회 등을 다채롭게 운영했다. 완주군 예산 2천여만 원을 지원받아 지역거점학교 발명교실은 물론,
찾아가는 발명교실 등을 운영하자 인근 학교까지 발명교육이 확산됐다. 소규모 면단위 학교인 완주 상관중은 이젠 발명교육의 으뜸 중학교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지금도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발명은 쓸고 닦고 담고를 한 번에 하는 바닥걸레와 거꾸로 접는 우산, 물에 뜨는 안경 등이
생각나네요.”
넓은
강당 청소를 하면서 힘들어 하던 두 여중생의 고민에서 시작한 바닥걸레는 V자 형태의 걸레받이와 쓰레받기를 탈부착하도록 하여 청소기를 밀고만 가면
각종 오물들이 모아지고, 담겨지고, 닦이도록 한 원리다. 이 발명품은 ‘2015 청소년 미래상상 기술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학생들은
홍콩과 중국으로 기술연수도 다녀왔다. 생각의 물꼬를 튼 아이들은 기발한 생각을 쏟아냈다. 생활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우선 곰곰이 생각한 후 꼭
만들어 봤다. 한 손으로 줍고 담는 봉달 집게, 지저분한 휴지통을 개선하기 위해 뚜껑으로 손쉽게 압축할 수 있도록 한 가구형 압축 휴지통,
세계표준시각 학습장치 지구본, 챙의 방향과 각도조절이 편리한 썬 캡 등 톡톡 튀는 생각이 눈길을 끈다.
“발명은 남과 다르게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발명이 미래다’라는 슬로건도 변화하는 미래에 새로운 생각, 창의성을 기르자는 뜻으로 아이들과 매번 구호처럼 외치고
있지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아이디어가 없다거나 어렵다고 해요. 그럴 때 선생님이 생각할 거리를 먼저 던져줄 수 있어야
합니다.”
홍 교감은 아이들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라고 믿기 때문에 주말이나 방학에도 아이들과 함께 캠프나
체험활동을 바쁘게 찾아다닌다. 사비를 들여 체험을 다녀온 후에는 손수 자가용을 이끌고 멀리 떨어진 시골집까지 내려주며 안전하게 귀가시키고 있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 ‘함께’ 해야 하며, 아이들 곁에서 늘 지켜봐야 지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만드는 공간이 중요하다. “학교 공간이 너무 획일화돼 있다.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없어 안타깝다.”는 게 평소 그의
생각이다.
올 9월에는 교감으로 승진해 특성화고인
한국치즈과학고로 부임했다. 그는 이곳에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동아리를 통해 남다른 아이디어로 창업의 붐을 일으켜 보겠다는
포부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후에는 발명교육에 힘을 보태며 재능기부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결국 창업도 발명도 남다른 생각과
아이디어, 학생 내면에 숨어있는 창의력을 길러주고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요?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꿈을 길러주고자
합니다.”
가구형
압축 휴지통
글_ 한주희
본지기자
출처_
행복한 교육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