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추기경 논산본당 미사 집전]
“논산에 평화가 있을지어다”
유흥식 추기경이 14일 고향 논산을 찾았다. 교황으로부터 한 달간 휴가를 받아 귀향한 것이니, 휴가 중에는 로마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라기보다 추기경 호칭이 더 어울림직하겠다.
지난 6월 24일 귀국한 유흥식 추기경(이하·추기경)은 30일에는 천안 두정동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집전하였다. 7월로 넘어와서, 지난 7일에는 서산에 있는 해미국제성지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14일에는 고향이자 본당인 논산 부창동 성당을 찾아온 것. 성당은 9시 반을 넘어서면서 자리가 거의 다 차갔다.
10시부터 시작된 미사는 1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다. 미사를 마친 신자들은 마당에 서서 기다리는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며 사진도 찍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20여 분을 넘기지 않았다. 400여 명의 교우들은 점심 식사차 세 군데로 분산하여 이동하였다. 메뉴는 갈비탕이었다. 추기경이 식사를 한 도서관에는 주로 노인층이 함께 했으며, 추기경 관련한 작은 의식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추기경은 1시쯤 연무대 성당으로 향하였다. “주일이니까 본당 신부가 어디 가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여유로운 행보를 이어갔다.
전쟁이냐 평화냐, 인상이냐 미소냐
강론 시간에 추기경은 교황이 누군지, 어떤 인물인지 소개를 하였다. “지금 87세로 무릎이 좀 안 좋아 휠체어 타고 다니시는데, 지팡이 집고 가시면 몇십 미터는 걸으세요. 교황님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시는 분,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십자가를 지신 분’이에요.”
“교황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죠. 기회 있을 때마다 ‘평화를 건설하자. 우리 모두는 평화의 건설자, 평화의 장인’이라고 하세요.” 이러면서 추기경은, 평화(平和)에 대하여 긴 시간을 할애하였다.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평화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였다면서, 우크라이나 어린이병원에 터진 폭탄 사건을 환기시켰다. 무기는 어떤 것이 됐든 더 이상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참으로 미련한 짓이니 당장 멈춰야 한다고 강변한 다음, 일상에서의 평화로 넘어왔다.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인상을 찌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니, 늘 웃으면서 화평케 하는 자가 돼보자고 권면하였다.
“나는 못생겼지만 그래도 웃으니, 업무를 모를 때에는 더 경청을 하니 낯선 곳 로마교황청에서도 3년간 장관을 나름 수행해왔다”고 술회하면서 “미션 스쿨인 대건에서 예수를 알게 되었고 당시 내게 잘 해주시는 수녀님들 권유로 사제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개인사도 털어놓았다.
“예수님은 12제자를 파송하면서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말고 맨 몸으로 떠나라’ 했으며, 과정과정에서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는 성경 말씀에도 공을 들였다. 지금까지 추기경 본인의 삶이 그래 왔노라면서,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자, 생활 가운데서 말씀대로 성경대로 살자”며 시노드(=함께 걸어간다) 교회를 강조하였다.
눈높이 맞추는 프란시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휴가를 떠난다고 인사를 하자 “한국에 가시면 만나는 한분한분에게 교황의 이름으로 교황의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라는 부탁의 말씀을 들었다면서 미사 마지막에는 교황모자로 바꿔 쓴 다음 프란치스코 교황 이름으로 해주는 특별 축복 기도를 거행했다.
강론 도중 공동체는 여전히 강조되었다. “교황님은 모든 이와 눈높이를 항상 같이 하시는 다정한 분이세요. 교황이나 신자 사이에는 높낮이가 없답니다.”면서, 성직자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였다. 미사 중에도 그 기도 시간을 가졌고, 추기경의 선교 여정을 위한 특별헌금도 증정되었다.
미사가 끝난 후 마당에서는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었다. 동네분들, 동창들과 안부 묻고, 순서대로 사진을 찍었다. 특별기도가 필요해 보이는 분은 콕 찝어서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다. 동네할아버지처럼 친근한 가운데서 영적 권위가 맴돌았다. 현장에서의 대화와 해결 분위기는, 상이 차려진 작은도서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평소 만나기 힘든 터였을까, 식사 도중인데도 한 사람이 잠깐 다녀가면 좀 이따가 다음 사람이다. 부적 사신다는 할머니 하나가 추기경님 여비 쓰시라고 성의를 표해왔는데, 추기경은 사진만 찍고서 손사레 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마침 이날은 김홍신 작가의 139번째 신작 『겪어보면 안다』가 출판된 날이다. 작가를 대신하여 남상원 회장이 잉크가 채 덜 마른 책을 전달하였다.
신자의 정성을 모아 드렸으나 개인적으로는 사양
동네분들과 식사를 하면서 환담
김홍신 작가의 139번째 신간을 남상원 회장으로부터 전달받으면서
인간적인, 해학적인
식사를 마친 다음 옆방에서 갑작스런 초청이 들어왔다. 작은 공간에 운집해 있던 할머니들 20여 명이 하트를 연출하면서 “사랑해요” 연호로 동년배인 추기경을 반겼다. “갈비탕이 이렇게 실할 수가 없네요. 논산 인심 같아서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추기경은 자신을 그 방으로 안내해온 할머니는 고향 여자 친구라며 “자칫하면 내 어릴 적 치부가 다 드러나겠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입을 막으셔야죠!” 사진 찍으러 들어간 기자의 제안에 추기경은 “막을 것은 입이 아니라, 마음이죠.” 유머 속의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웬수 같지만 그 사람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되면, 사랑의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선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평화로운 사람은 평화를 주지만 신경질적인 사람은 신경질만 줘요. 기억해야 돼요, 그 중간은 없답니다!”
고령화 현상은 성당에도 예외가 아닌 거 같다. 대건고 학생 하나가 순서가 됐고, 신학교를 갈 거라고 교목이 소개를 해주자 추기경은 본인이 쓰고 있던 빨간 모자를 즉시 벗어서 학생에게 씌워준다. 공식행사를 마친 추기경은 본당 신부와 함께 2층 성당역사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만 한참을 이야기하고서야 나왔다. 이 때 마당에서는 초딩 3학년이 그래도 서있었다. “추기경님 가시는데 인사 드려야죠!” 집에 안 가려는 이유다. “사람들이 그래요, 우리 애는 성당에서 다 키웠다고요.” 엄마의 보충 설명이다. 성당 주보에는 초중고 신앙캠프와 초딩주일학교 물놀이 안내가 실려 있는데, 요즘은 참석 인원이 과연 얼마나 될지 급궁금해진다.
성지 논산에도 다양한 순례길이.....
이날 논산 부창동 성당 미사에는 원근 각지에서 온 손님도 좀 있었다. 부산 개인택시도 보였다. 다만 해미국제성지 미사 때와는 분위기 다소, 사뭇 다른 듯도 싶었다. 서산 해미에는 행정가로는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과 김태흠 충남지사, 국회의원으로는 성일종, 강승규, 박수현 의원이 떴다. 미사에는 이완섭 서산시장도 참석했다.
일종의 종교행사랄 수도 있는 곳에 공직자들이 동참하는 것에 대하여는 관점이 갈릴 수 있겠지만, 외양으로만 봐서는 대비가 될 성도 싶다. 좀더 중요한 것은 내실(內實)이다. 해미국제성지는 2020년 교황청 승인을 받아 국내 유일의 천주교국제성지가 됐다. 충남도와 서산시는 현재까지 해미국제성지 디지털역사체험관 조성, 야간 순례길 경관 조성 등의 사업을 완료했다. 논산 주변인 대전 장태산~금산 진산성지 순례길도 확장 일로이다.
논산, 특히나 상권으로 흥청이던 강경에서는 종교 또한 융성하였다. 여러 종교 중에서도 그리스도교 유서가 꽤나 깊은 곳이 강경이다. 천주교는 김대건 신부가 들어온 길목이며 사목지가 있어 순례길로 최적지다. 개신교도 신사참배 거부 등 기독교역사박물관이라 할 만큼 ‘최초’ 수식어가 즐비한 성지가 강경이다. 『사람의 아들』에서 이문열 작가가 꼬집은 것처럼 이제는 종교, 사상도 골방에서 나와 햇살 내리쬐는 앞마당에서 논하는 논산이 된 거 같다, 그럴 만한 유산과 자원이 즐비하기에.
- 이진영 편집위원
▶ 위 기사는 놀뫼신문 이진영 편집위원께서 보내주시고 동의를 얻어 스크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