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여백
요13;31-36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상처이든 혹은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그 자리에 여백으로
우리 가슴에 새겨져 생각나게 만들고 그 사건 속으로 다시 접어들게 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날 이후에도 제자들의 가슴에는 이 여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그 놀라운 역사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가시던 날, 모든 제자들은 제 각각 흩여졌다.
돈을 받고 선생을 판 제자,
심지어는 선생을 부인하고 저주한 제자,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제자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이 떠난 그 자리의 여백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다.
그러하기에
요한복음 13장 1절은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은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 남겨진 서글픈 여백을 오히려 사랑으로 채우고 계셨다.
더욱이 거룩한 성만찬은 사랑으로 채워진 여백을 더욱 선명히 증언한다.
사람들의 실패와 배신으로 가득 찼던 시간,
그러나 주님은 인간의 배반은 상관치 않으시고 인류 구속의 아름다운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셨다. “그가 나간 후에...”,
주님은 유다가 나간 후에 위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러한 주님의 본것은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
배반과 음모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그 너머에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제자들은 비로소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본문 31절 말씀을 기억했다.
사랑하는 제자가 음모를 꾸미는 시간, 어두움과 좌절로 가득한 시간에
예수님의 영광이 밝히 드러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후 제자들은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정치적 약자인 예수님을 사형 틀에 매달았던
로마제국의 승리로 보였지만 십자가의 장엄한 승리가 하늘에서부터 이미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32절 말씀처럼
실패로 보이는 여백을
십자가의 영광,
구원의 영광,
생명을 살리는 영광으로
채워 넣고 계셨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결국 주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음모로 세워졌으나
거기에는 오히려 구원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으며,
또한 추한 음모로 물들었던 그 자리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새겨진 역사의 맷돌이 십자가와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배신과 저주로 가득 찼던 여백을 사랑으로 채워 놓으시던,
그래서 온 세상을 가슴에 안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 안에 움틀 수 있었던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오직 사랑으로만 여물게 하시고
그 여백을 또한 오직 사랑으로만 채워가셨다.
그러하기에 인류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영광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시간,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비난, 저주,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면,
그 여백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워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를 지켜내지 않겠는가?
하루, 하루 이를 지켜 간다면,
사랑, 그 아름다운 이름의 여백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우리의 인생에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 예수사랑의 물감으로 더욱 짙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