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류지(法隆寺)는 쇼토쿠 태자가 부처의 힘으로 병석에 누운 부친 요메이 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백제의 건축가들을 불러 들여 607년에 건립한 사찰이다. 일본 아스카 문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호류지 금당탑 파중문비 재건론'을 썼던 도쿄대학의 세키노 다다스 교수는 당시 백제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고구려 자로 직접 호류지를 실측, 7세기말에서 8세기에 사용한 당나라의 자와 치수가 틀리다는 것을 밝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임을 입증했다. 1993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류지는 고대 사원 형식으로 중문, 탑, 금당, 경장, 종루, 승방에 욕탕까지 갖춘 대가람이다. 전체를 토담으로 둘러싼 가람은 동원과 서원으로 나뉜다. 중심이 되는 동원은 흰색의 토담과 연자창의 회랑 안에 32m의 5층탑이 장엄하게 서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과 같은 양식이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 벽화에는 삼존불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의 보살상과 인간들이 그려져 있다. 서원의 회랑 가운데 '건축의 진주'로 불리는 팔각형의 유메도노(夢殿)가 있다. 유메도노는 쇼토쿠 태자가 기거했던 곳. 태자는 일본 왕실로 건너온 백제의 학승 혜충과 고구려의 혜자를 스승으로 삼고 유년시절부터 불경을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메도노에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백제 27대 위덕왕이 선왕을 그리워해 존상인 구세 관음상을 만들어 일본 왕실에 보냈고 아스카의 어느 사찰에 두었다가 다시 호류지로 옮겼는데 오랜 세월동안 그 행방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1884년 미국인 동양사학자가 유메도노의 한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큰 짐보따리를 발견했다. 사찰에서는 그 보따리를 풀면 부처의 노여움을 받는다고 하여 금기시하고 두려워해 짐을 감싼 천을 풀 때 승려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이렇게 유메도노에서 1200여 년간의 잠을 깬 구세관음상은 높이 179.9㎝의 녹나무로 조각해 금각을 입힌 불상이다. 광배 부분에 조선식 금동 조각으로 된 관과 보석을 흩뿌린것 같은 여러 줄의 긴 영락들이 늘어져 있어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일본 불교예술의 으뜸으로 친다. 호류지의 또 다른 보물로 백제 관음상이 있다. 오각형 틀 뒤에서 허공장대륜(虛空藏台輪)이라는 먹글씨로 인해 허공장보살이라 불리다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사적기의 기록에 따라 이후 백제 관음이란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구세관음상 백제관음상 둘 다 일본의 삼대 목조 국보급 불상이다.
일본에 불교를 전했다는 백제 26대 성왕은 한일 고대사의 인물들 가운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그는 신라와의 전투로 신라 병에게 전사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지만 일본과 백제를 넘나들며 활약을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다. 고대 백제왕들과 화신립 왕후의 신주가 있는 교토의 히라노 신사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이마키(今大神 ·염직수예의 신) 쿠도(久度· 부엌의 신) 후루아키(古聞神·불의신) 히메신(桓武·천황의 생모 화씨부인) 등 4개의 상을 차린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나이토우 코난의 저서 '번신고(蕃神考)'는 물론 일본과 한국의 사학자들 상당수는 '이마키신은 성왕, 쿠도신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후루아키의 후루는 온조왕의 친형인 비류왕, 아키는 백제의 5대왕인 초고왕'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대 일본을 통치했던 한반도의 지배자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일본 땅에서 더듬어 보는 것은 시공을 넘나드는 기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