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생사의 문제, 실존의 문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위대한 작품은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인’ 저항성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훌륭한 수필이라면, 미적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수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려면, ’비판정신’이 필요하다는 작가인식이 형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때 문학성과 철학성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언어예술로서 수필의 문학성은 당연히 언어적 형상화에서 나오겠지만, 수필은 언어적 형상화 못지않게 작가의 내면 풍경과 체취 그리고 사회를 보는 작가의 의식 또한 중요하다. 수필 부문 대상에 빛나는 당선자의 수필 <부르카와 마스크>는 문학적 형상의 측면과 작가의 인식적 측면을 동시에 잘 부각시킨 작품이라 심사위원은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이 수필을 대상적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히잡을 쓴 라티프의 눈썹과 눈물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편향의 문제를 반성적 성찰로 부각시키면서 여성적 문제를 정조준해서 이 수필을 감동의 고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작가는 부르카와 히잡에 담긴 생사의 문제, 여성 인권의 문제, 마스크에 담긴 실존의 문제 등을 심도있게 파헤치면서 여성문제의 현장을 인권적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어 훈훈함을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의 압권은 결말부의 의미화인데, 전개부의 무거운 문제를 결말부로 끌고 가면서 가볍게 하는 데 있다. 부르카를 생사의 문제로, 마스크를 실존의 문제로 놓고, 여성의 문제를 양가적 가치로 풀어내었다는 점이다. 수필가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바람직한 사회의 거울이 되어 휘청거리는 가치를 바로 비추어 내어야 한다. 어깨가 무거운 자들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수레 같은 역할을 해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필은 사회적 이슈를 내용으로 형상화하는 것도 구조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당선작 <부르카와 마스크>는 반드시 있어야 할 당위적 가치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글로써 히잡이나 부르카를 쓴 여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적 시각을 작가가 체험을 통해 교정하면서, 히잡, 부르카, 마스크에 가려진 여성의 욕망에 대한 한 단면을 체험의 구체화로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하겠다. 이 수필은 수필문학이 갖는 본질적 특성인 ‘반성적 성찰’을 통해 한편으로는 여성의 문제를, 다른 한편으로 욕망의 문제를 의미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사유와 형상미학이 빛난다고 하겠다. 욕망의 주체는 처음부터 만들어져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그것을 필요하다고 느끼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된다. 이 수필은 욕망의 주체가 되는 삶이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데서 문학의 교훈성도 충족시킨다. 이 수필의 우수성은 ‘있어야 할’ 당위적 가치가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발상의 측면에서 작가가 보이는 비범성은 수필을 전략적 글쓰기의 본보기로 삼는 데 충분하다고 하겠다. 부르카와 마스크, 눈썹과 눈물, 마스크와 마스카라를 대립항으로 이루게 해서 손맛을 안겨주고자 하는 전략도 돋보였다. 좋은 수필가는 단연히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 나아가 있는 것보다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실과의 타협보다는 현실의 극복을 도모해야 한다. 이 수필은 글로써 세상을 보는 독자의 시선을 변형시키고 말겠다는 현실에 대한 따가운 작가적 인식이 문장과 같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당선작은 지루한 잡문으로 폄하되기 쉬운 우리 수필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을 단순에 뛰어넘을 수 있도록 문학성과 시대성을 글의 배면에 깔아 눈맛도 우려내었다. 부르카의 ‘검은 색’에 대해 ‘움직이는 관’ 같다는 당선자의 해석은 숨겨져 있는 여성적 삶의 양상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작가의 의식 속에 각인된 선연한 기억을 체험과 여성적 인식으로 호명하며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다’의 눈 갖기를 촉구한다.
누구에게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삶과 욕망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삶의 특성은 가려진 것에 의해 더 선연히 드러나는 욕망이다. 수필은 응축된 정서와 사상의 지도다. 인간은 자연과 사회 환경 그리고 정신이라는 삼각의 동그란 지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개인적인 삶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그 지도에는 작가가 거처하고 있는 위치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견고한 주체의 자화상이다. 날카로운 작가의 인식이 돋보이는, 수필 <부르카와 마스크>에서 작가는 추적 대상을 대립항으로 대조해가면서 욕망의 근원으로 달려갔다. 그 접근 과정에서 작가의 해석이 공감을 자아낸다. 마스크를 쓸까 벗을까의 문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 실존의 문제로 다가와 있지만, 부르카를 쓸까 벗을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로 이슬람 여성들에게 고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지식이 많고 능력이 불어나면 욕망으로 확대된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부르카’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부르카예요, 누님. 저 나라에서는 생리할 나이만 되면 여자는 그림자 취급을 당해요. 그러면서 후배는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수필은 이런 어둠의 그림자에 주목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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