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버지께서 예쁜 모란꽃을 그려 주셨다. 액자를 만들어 벽에 걸어두라고 하신다. 새로 이사온 우리 집 벽을 보시더니 그림 하나 그려 걸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셋째 언니 집에는 시원한 바다 풍경의 그림을 그려 주셨다. 화가이자 서예가이신 작은 아버지는 이렇게 이사의 선물을 그림이나 서예로 대신한다.
밋밋한 벽에 모란꽃 액자 하나가 턱 하니 걸리면서 액자는 우리 집의 작은 꽃밭이 되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꽃들이 액자 안에서 생글거리고 이리저리 발자국 뗄 때마다. 따라다니는 시늉을 내며 귀염을 떤다. 활짝 핀 꽃송이는 고개를 쑥 내밀고, 필 듯 말 듯 오므리고 있는 꽃송이는 잎사귀 안으로 수줍은 듯 숨어 숨바꼭질한다. 어린아이 모습 같아 온 집안이 꽃밭 속에 들어 있는 분위기다.
어릴 때 큰 집에 가면 우물가 꽃밭에 모란꽃이 수북하게 피었다. 우리 마을에 모란꽃이 피는 집은 큰집 한 집뿐이었다. 해마다 오월이면 모란꽃이 큰집 우물가에서 환하게 필 때면 모란꽃을 보기 위해 학교길을 돌아서 큰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가지마다 봉긋한 꽃송이를 단 모란이 나를 기다릴 듯하여 다가서면, 여린 가슴이 연방 부풀고 마음이 물결로 일렁거렸다. 보라색 예쁜 꽃잎이 불라우스에 그려진 예쁜 그림이라는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 모란꽃이 유달리 예뻐 보였던 것은 우리 마을에서 보기 드문 꽃인 데다 가장 큰 꽃이었기 때문이지 싶다. 그만한 시절엔 키도 빨리 크고 싶었으니까 큰 것에 애착이 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도시에 살면서 화단을 가꾸는 집이 그리 많지 않기에 모란꽃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 이사했던 어느 해 화단이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다. 아파트 뜰에는 줄 장미가 유난히 많았는데 이듬해 봄, 새싹이 올라올 무렵 줄 장미 사이에 모란꽃 나무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아래였다.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하마터면 큰소리를 지를뻔했다. 유년의 큰 집 생각이 뭉클했다. 그날 이후 꽃밭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우리만 아는 다정한 인사를 무언으로 나누게 되었다.
아이가 내 품에서 자랄 그 시절 가끔 도시락을 싸서 아파트 베란다로 소풍을 나갔다. 아파트 거실과 베란다는 문틈 하나 사이지만 나는 여러 가지 화초가 보이는 베란다를 소풍 장소라 정하고 일부러 도시락을 싸서 아이와 소풍을 가는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에게 소풍 분위기를 즐기며 밥을 잘 먹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베란다에 예쁜 자리를 깔고 산이나 들에 소풍 나온 분위기에 젖어 엄마가 소풍 노래를 부르며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고 밥뚜껑을 여는 사이, 아이는 창문 틈으로 꽃밭을 내려다보며 “엄마 꼬꼬” 하며 좋아했다. 그 틈을 타서 아이 입에 한술 두술 밥을 떠 넣어주면 아이는 쏘옥쏘옥 잘 받아먹었다. 밥을 잘 먹는다고 박수를 치면 아이도 따라서 좋아라, 고사리 손으로 짜악짜악 박수를 쳤다. 지금도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내겐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 싶다. 아이와의 잔잔한 행복이 어여쁜 모란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모란은 원래 부귀화라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꽃의 모양이 소담스럽고 여유와 품위를 지녔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밥사발 같은 봉긋한 꽃, 국 사발 같은 넓적한 잎사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넉넉해짐을 알 수 있다.
모란은 또한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안정감이 있어 가정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유별나게 가볍지도 않은, 누구나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기품을 드러낸 꽃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작은아버지는 기품도 선비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도 큰집을 생각하면 유년의 예쁜 모란꽃이 떠오른다. 아마 작은아버지도 그 시절 큰집의 꽃밭에서 해마다 바라보았던 모란꽃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싶다. 늘 아둥바둥 살어가는 조카에게 모란꽃처럼 큰집처럼 넉넉하게 살라는 뜻이 저 그림에 담겨있으리라 생각하니 작은아버지의 사랑이 절로 느껴진다.
오월의 화사함을 일깨우는 모란꽃, 가끔 거실에 앉아 모란과 마주 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엔 저절로 모란의 친구가 된다. 때로는 나비가 되어 모란꽃잎에 앉아 보기도 한다. 또 벌이 되어 꽃술을 빨아 먹어보는 시늉도 내 보고 모란과 밀어를 속삭여 보기도 한다.
큰집의 모란이 우리 집으로 온 이후, 나는 내 유년의 추억과 아이와 함께한 도시락 풍경을 떠올리며 액자 속 모란으로 젖어 들어 행복의 단잠에 취해보는 것을 즐긴다.
우리의 가슴 속에 누구나 추억 한 장쯤 넣고 살아간다. 소중한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추억의 벽에 걸어두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번쯤 힘들고 복잡한 삶의 길을 잠시 떠나 액자 안의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강이 되고 산이 되어 볼 일이다. 또 아이가 되고 내가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동안 상대방을 내 안의 풍경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유년의 큰집 모란꽃이 우리 가족의 멋진 사진으로 걸린 모란꽃 액자, 우리 가정의 아름다운 꽃밭!
베란다에서 모란꽃을 내려다보고 밥을 잘 받아먹던 아이의 추억꽃은 무엇일까. 아이가 성년이 된 지금, 그 시절 모란꽃 풍경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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