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물에 뜨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느 정도 나름대로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원칙을 따라 살다보면 그만한 댓가가 주어지기도 하고 또한 자신 만의 만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칙에 따라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하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자’이 글은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앤드류 매티스의 글로 참으로 의미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돌은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는 다는 것은 상식이고 진리입니다. 물과 돌은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돌은 물속에 가라 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커다란 바위도, 작은 모래도 가라앉습니다. 돌에게 아무리‘아름답고 예쁘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줘도 물에는 가라앉습니다.‘건국무공훈장’을 열개나 붙여 주어도 돌은 물에 뜨지 않습니다. 돌이 물에 뜰 수 있도록 본질이 바뀌던가, 아니면 물에 뜰 수 있는 것에 얹혀 지든가 하여야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시체는 아무리 값비싼 꽃으로 장식해도 무덤으로 가야 합니다. 금은, 보석으로 꾸미고 천하에 둘도 없는 훈장과 작위를 수여해도 죽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무덤에 가서 묻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인간은 죄를 범했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 한 가지 이유로 죽어야 합니다.“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명예와 지위가 높아도, 권세가 있고 재물이 많아도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죄인이 자선사업을 하고 수십억 원의 물질을 드려 교회를 지었다 해도 죄인의 본질이 변화되지 않는 한“죄의 삯은 사망”이라 심판을 면할 길은 없습니다. 성경은“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2)라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로 공회원이며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높은 자였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불법을 행하던 사람들을 쫓아내신 주님의 일을 통쾌하게 생각해서 감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요, 공회원이요, 백성의 지도자라는 화려한 지위가 있어도 본질이 변화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돌이 그 본질이 바뀌어야 물에 뜰 수 있고,죽은 시체가 생명이 있어야 무덤에 묻히지 않는 것처럼, 죄인도 그 본질이 거듭나서 변화되어야 심판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