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가 경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현명한 정책 결단이 필요한 시점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나라경제 2022년 07월호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는 석유 위기, 가스 위기, 전기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고, 이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석유 위기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자문이었던 로버트 맥낼리는 현재 위기가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며 경제적·정치적·지역적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에너지·금융·경제 전문가가 에너지 위기는 경제 위기로 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가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것이라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위기가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범위와 규모로 번질 것이라는 경고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의 친환경 일변도 정책이
에너지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
6월 5일 기준으로 석탄은 연초 대비 246% 상승했고, 원유는 브렌트유 가격이 68%, 천연가스는 미국 헨리허브 가격이 175% 오른 상태이며, 동북아 천연가스는 3월 현물가격(JKM)이 MMbtu(열량단위)당 85달러로 2021년 초 대비 10배 이상 상승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에너지 위기의 원인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전쟁만 끝나면 단기간에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주요국이 온실가스 저감과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친환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며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와 기업들을 재무적 투자자들을 통해 압박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추세가 불씨를 제공하고 전쟁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론적으로는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화석연료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를 통해 공급을 늘리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다시 하락해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사이클을 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화석연료를 공정에 사용하는 것이 글로벌 경제활동의 주요한 생산방식임에도 탄소중립과 ESG 투자를 강조하다 보니 화석연료 투자자는 좌초자산화(시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자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를 걱정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쉽게 화석연료에 신규 투자를 늘리는 결정을 할 수 없다. 즉 수요는 여전히 높으나 공급을 늘리는 주체가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원유 정제시설 증설 규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순감소를 경험했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하에서는 원유 정제시설 투자가 쉽게 일어날 리 없다. 현재 글로벌 정제시설 중 40년 이상 된 노후 설비가 30% 이상이고 새로운 시설 투자는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원유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천연가스 부족이다. 원유는 증산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천연가스는 신규 개발부터 판매까지 약 5년 이상이 필요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조달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유와 마찬가지로 최근 탄소중립 트렌드로 인해 신규 천연가스 투자결정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에 파이프라인 공급 천연가스(PNG) 공급량을 절대적으로 줄이고 있다. 전쟁 전에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공급의 40%를 담당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늘려주지 않으면 유럽 주요국은 여름 전력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고, 겨울에 난방수요까지 겹치게 되면 재앙적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특히 독일은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독일이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40%까지 늘렸으나 바람과 태양은 우리가 원할 때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간헐성 높고 불안정한 발전원이라서 이를 안정적으로 보완해 줄 에너지원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쟁 이전에도 석탄을 포함한 전통 발전원을 늘리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석탄 발전 비중을 25%에서 37%로 늘렸다. 탄소중립 선진국이라고 칭송받는 독일이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결국 에너지 전환보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수급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다.
더 불안한 사실은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PNG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물량이 약 5,100만 톤인데 유럽이 이 정도 물량을 현물로 구매하려 나서는 경우 ‘에너지 부족 사태(energy crunch)’는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도 겨울에 LNG 현물을 구매해야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량이 부족해 수급을 맞추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예견이 가능하다. 천연가스는 도시가스용으로 난방이나 공장의 연료·원료로 사용되거나 LNG 발전에 필요하다. 수급 불안이 커질수록 전력시장이나 열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경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뾰족한 묘안이 없는 상태다.
에너지 가격 상승, 한국의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면 에너지 가격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탄소를 저감하라는 압박은 철강산업의 코크스(cokes)를 활용한 저렴한 생산 공정을 전면적으로 값비싼 친환경 방식인 전기로나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개편하도록 한다. 시멘트도 저렴한 석탄 대신 친환경 연료를 활용해 생산해야 한다. 친환경 운송비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철강과 시멘트 가격 상승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화석연료 가격 상승은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암모니아 가격을 올려서 비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곡물 및 식량 가격 인상으로 전파된다. 각국이 자원과 물자 수출을 금지하고 자원과 식량을 무기화하는 단계에 접어드는 신호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 이미 현실이 돼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종식돼 수요견인 인플레이션까지 겹치게 되면 단순한 인플레이션 문제가 아니라 경기침체와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이 GDP의 30%를 차지하고 주력 산업에 전기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포진해 있다. 특히 수출과 수입이 GDP의 70%를 차지하는 개방경제 구조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해외의 탄소중립 추세를 무시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에 치명적인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전면적인 경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현명한 정책적 결단과 국민들의 에너지 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