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의 탈상바위 전설
옛날 진도군 서남쪽 조도에 효성이 지극한 상재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열다섯살 된 아들, 막내딸 다섯 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3년 전에 아버님을 여의고 나서 어느 날 연로하신 노모님을 위해 진도읍 북상리 구기자가 좋다하여 구기자를 사러 나섰다. 다행이도 구기자 두어 되와 10년생 구기자 나무뿌리를 구하여 괴나리봇짐을 둘러매고 서둘렀으나 갑자기 거센 태풍이 몰아와 도저히 발길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재 씨는 “오늘이 아버지 탈상일인데 반드시 가야 한다”라며 효성이 지극한 상재는 비바람을 헤치고 왼 종일 걸어 저녁 땅거미 질 무렵에야 조도를 앞에 둔 임회면 팽목항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폭풍으로 노 젖는 작은 배로 바다를 건너갈 수가 없어 조도를 건너지 못한 마음씨 착한 상재는 조도 섬이 제일 잘 보이는 팽목 바닷가 뒷산에 올랐다. 멀리 장죽수도 앞 진대섬(장죽도) 바위를 금세 덮을 듯이 파도가 넘치고 있었다. 조도는 흔히 새섬무리라고 한다. 관매도라 하는 볼매섬, 병풍도, 서거차도, 동거차도, 만재도, 대마도, 모도, 죽항도, 독거도, 슬도, 혈도 등 새떼처럼 수많은 섬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재는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느님에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폭풍은 멎지 않고 어느덧 밤은 깊어 사방은 캄캄하여 지고 간혹 바다를 자르는 듯 한 번갯불만이 시퍼런 바다 멀리 조도근해를 비쳐주곤 하였다.
마침내 상재는 ‘난뿌리’라는 넓적한 바위위에 입었던 두루마기를 벗어 깔고 술 한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망곡요배(望哭遙拜)로써 섬에 있는 자기 집을 향하여 불효를 사죄하며 아버지의 탈상 의례를 가졌다.
그 순간 관매도 하늘다리 쪽인듯 어디선가 섬광 같은 불빛이 장죽도 바다 건너 조도섬으로 떨어지는 듯 했다.
다음날 폭풍이 지난 바다를 건너 조도 어류포 집에 돌아가 부리나케 아내를 찾았다.
너무 조용해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집안을 살피는데 그때 효자인 상재의 아내가 노모님을 부축하며 싸리문으로 들어서면서 『오매 여보 어느새 내려왔당가요.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텃밭 아래서 기다리다 오는 데라』하였다.
상재는 이상한 눈초리로 아내를 보며 아 어제저녁 아버지 탈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늦게 왔길래 책망하는 것일까 생각하였으나 어제 그 비바람을 무릅쓰고 찾아온 나에게 또한 어제저녁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바위 위에서 탈상을 맞은 나에게, 어이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어리둥절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배야 얼마나 피곤하것냐. 읍내까지 갔다 와서 어제저녁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니 아버지 탈상을 하고 산소에까지 혼자 다녀오느냐. 어서 방에 들어가 인자 잔 쉬도록 하그라” 어머님이의 말씀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상재는 방에 들어와 부인에게 그 연유를 물어본 즉 “아니 당신께서 어제 그 폭풍 속에 비에 흠뻑 젖은 채 돌아오시어 탈상을 지내고 오늘 아침 혼자서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지 않았오”하였다.
상재는 어젯밤 팽목리 난뿌리 바위 위에서 몰아치는 비속에 밤을 지새우며 아버지 탈상을 지내던 자신을 생각하였다.
이는 상재 씨의 효성에 감동한 하느님께서 상재와 똑같은 사신을 보내어 가족과 함께 탈상을 지내도록 하였다고 뒤늦게 알려졌다.
그로부터 매년 그날 밤이면 효성 지극한 상재부부는 이곳 팽목항 난뿌리 바위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있는데 진도읍에서 서남방으로 25km 떨어진 이 바위를 그때부터 탈상바위라 이름하여 전해오고 있다.(
namin4002@hanmail.net)
첫댓글 얼척없는 사고에 찰로 고상덜 많아십니다.
어서 빨리 실종자덜 모도 찾고 수습 댜가꼬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기럴 기원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