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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제72회-1
송강은 충의당에서 등 구경하러 갈 인원을 정하였다.
“나와 시진, 사진과 목홍, 노지심과 무송, 주동과 유당, 이렇게 네 길로 나누어 가겠소. 나머지 두령들은 남아서 산채를 지켜 주시오.”
이규가 말했다.
“동경에 등 구경 간다면, 나도 가야겠다.”
송강이 말했다.
“네가 어딜 가려고?”
이규가 죽어도 가야겠다고 하자, 그 집요함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송강이 말했다.
“네가 꼭 가겠다면 절대 말썽을 피워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인으로 꾸미고 나를 따라다녀야 된다.”
송강은 연청을 불러 이규와 붙어 다니게 하였다.
그런데 송강은 얼굴에 문신이 있는데 어떻게 경성에 갈 수 있을까? 신의 안도전이 산채에 온 후에, 문신을 독약으로 지운 다음 좋은 약으로 치료하여 붉은 흉터가 생기게 하였다. 그리고 좋은 금과 옥을 갈아 가루를 만들어 매일 흉터에 바르자 피부가 깨끗하게 되었다. 의서에 ‘옥이 점을 없앤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뜻이었다.
그날 송강은 먼저 사진과 목홍을 나그네로 꾸며 내려 보내고, 노지심과 무송을 행각승으로 꾸며 내려 보냈다. 그 다음에는 주동과 유당이 객상으로 변장하여 각각 요도를 차고 박도를 들고 몸에 무기를 감추고서 내려갔다.
송강과 시진은 한량관(閑良官)으로 분장하고 대종은 군관으로 분장하여 따르게 하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산채로 달려가 알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규와 연청은 하인으로 꾸며 보따리를 짊어졌다. 두령들이 모두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했다. 오용이 이규에게 재삼 분부했다.
“자네가 산을 내려갈 때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사건을 일으켰어. 이번에 형님과 함께 동경으로 등 구경하러 가는 것은, 다른 때와는 다르니 도중에 술 마시지 말고 십분 조심해야 하네. 만약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말썽을 피웠다간, 형제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고 함께 살기도 어려울 거야.”
이규가 말했다.
“군사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이번에는 절대 말썽피우지 않겠소.”
송강 일행은 제주, 등주, 단주, 조주를 지나 동경의 만수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 객점을 찾아 들어가 쉬었다. 송강이 시진과 상의했는데, 때는 정월 11일이었다. 송강이 말했다.
“내일 대낮에 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정월 14일 밤에 사람들이 시끌벅적할 때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시진이 말했다.
“제가 내일 연청과 함께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길을 알아놓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좋습니다.”
다음 날, 시진은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두건도 새것으로 쓰고 깨끗한 가죽신으로 갈아 신었다. 연청도 깔끔하게 꾸몄다. 두 사람이 객점을 나서서 성 밖의 인가들을 살펴보니, 집집마다 떠들썩하게 원소절을 경축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태평스런 풍경이었다. 성문에 당도했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경은 과연 번화한 곳이었다.
시진과 연청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궁궐의 한 대문인 동화문 근처로 갔다. 비단옷을 입고 꽃모자를 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복색을 하고 다방과 주점을 드나들고 있었다. 시진은 연청을 데리고 작은 주루로 들어갔다.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방에 자리를 잡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많은 관원들이 동화문을 출입하는데 모두 머리에 푸른 잎이 달린 꽃가지를 하나씩 꽂고 있었다. 시진이 연청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차여차하게.”
연청은 영리한 사람이라 자세히 묻지도 않고 급히 주루를 내려갔다. 주루의 문을 나가는데, 마침 늙은 관원 한 사람과 마주쳤다. 연청이 인사를 하자, 관원이 말했다.
“누구신지요?”
연청이 말했다.
“소인의 주인은 관찰님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소인더러 관찰님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장관찰님 맞으시죠?”
“나는 왕씬데…”
연청은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주인께서 왕관찰님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깜빡했습니다.”
왕관찰은 연청을 따라 주루 이층으로 올라갔다. 연청은 발을 걷으며 시진에게 말했다.
“왕관찰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시진은 왕관찰을 방안으로 맞이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왕관찰은 시진을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다.
“제가 눈이 어두워 족하를 어디서 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시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와 족하는 어릴 때 알던 사이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시진은 술과 고기를 주문하여 왕관찰과 술잔을 주고받았다. 점원이 안주를 가져오자 연청도 은근히 왕관찰에게 술을 권하였다. 술이 좀 오르자 시진이 물었다.
“관찰님의 머리에 꽂은 꽃가지는 무슨 뜻입니까?”
“금상천자께서 원소절을 경축하시면서 우리 24반(班) 5천7백여 명에게 각기 옷 한 벌과 푸른 잎이 달린 꽃가지 하나, 그리고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새겨진 금패 하나를 하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점검할 때 이 꽃가지와 비단옷이 있어야 궁을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술을 몇 잔 더 마신 다음, 시진이 연청에게 말했다.
“따뜻한 술을 좀 가져오너라.”
잠시 후 연청이 술을 가지고 오자, 시진이 일어나 왕관찰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족하께서는 이 아우가 따라 드리는 술을 한 잔 받으십시오. 그러면 이제 제 이름이 생각나실 겁니다.”
왕관찰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성함을 알려 주시지요.”
왕관찰은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는데, 잠시 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두 다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의자에서 벌렁 뒤로 넘어졌다. 시진은 황망히 자신의 옷을 벗고 왕관찰의 옷을 바꿔 입고 꽃가지가 꽂힌 모자를 썼다. 그리고 연청에게 분부했다.
“점원이 와서 물으면, 이 관찰은 취했고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게.”
연청이 말했다.
“분부하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시진은 주루를 나와서 곧장 동화문으로 들어갔다. 금문(禁門)을 통과하는데, 복색을 갖추었기 때문에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전을 지나 문덕전에 당도해 보니, 문마다 쇠사슬이 걸려 있어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응휘전을 끼고 돌아가다 보니 작은 편전이 있는데, ‘예사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관원들이 문서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진은 옆에 있는 주홍색의 작은 문으로 살짝 들어가 보았다. 정면에는 어좌가 놓여 있고, 양쪽에 늘어서 있는 책상에는 문방사보, 붓·종이·먹·벼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가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책마다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정면 병풍에는 청색과 녹색으로 산하와 사직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병풍 뒤로 돌아가 보니, 흰색 병풍이 또 하나 있는데 거기엔 천자의 친필로 네 명의 큰 도적 이름이 쓰여 있었다.
산동 송강(山東 宋江)
회서 왕경(淮西 王慶)
하북 전호(河北 田虎)
강남 방랍(江南 方臘)
시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국가가 우리 때문에 피해가 많아, 잊지 않으려고 여기에 써 놓았구나.”
시진은 칼을 꺼내 ‘산동 송강’ 네 글자를 잘라냈다. 황망히 예사전을 나왔는데 누가 뒤쫓아 오는 것 같기도 해서, 재빨리 내원을 지나 동화문 밖으로 나왔다. 곧장 주루로 돌아와 보니, 왕관찰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빌려 입었던 왕관찰의 의복을 벗어서 옆에 두고, 시진은 자신의 의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연청에게 점원을 불러 술값을 계산하게 하고, 덤으로 10여 관을 더 주었다. 주루를 내려가면서 점원에게 부탁했다.
“나와 왕관찰은 형제인데, 그가 마침 취했기 때문에 대신 점고를 받고 왔는데 아직 술이 깨지 않았네. 나는 성 밖에 살기 때문에 성문이 닫히기 전에 나가야겠네. 거스름돈은 자네가 가지게. 그의 의복은 모두 옆에 놔두었네.”
점원이 말했다.
“나리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시진과 연청은 주점을 나와서 만수문을 나갔다.
왕관찰은 저녁에 되어서야 깨어났는데, 의복과 모자는 그대로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점원이 시진이 한 말을 전해주었는데, 아직 술이 덜 깬 왕관찰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누군가가 왕관찰에게 말했다.
“예사전 병풍에 쓰여 있던 ‘산동 송강’ 네 글자가 사라졌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각 성문을 철통같이 지키면서 출입하는 사람을 철저히 검문한다고 합니다.”
왕관찰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감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한편, 시진은 객점으로 돌아가 궁궐 안에서 있었던 일을 송강에게 자세히 얘기하고 천자의 친필로 쓴 ‘산동 송강’ 네 글자를 보여주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서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14일 황혼 무렵 밝은 달이 동쪽에서 떠올랐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송강과 시진은 한량관으로 꾸미고 대종은 군관으로 꾸몄으며, 연청은 하인으로 꾸몄다. 이규는 남아서 방을 지켰다.
네 사람은 놀이패들 사이에 끼어들어 봉구문으로 들어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밤인데도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도 온화하여 놀기 좋은 날이었다. 마행가를 돌아가니 집집마다 문 앞에 등불을 걸어놓아 대낮처럼 밝았고, 누각 아래위에도 등불이 비추고 있는데 수레나 말을 탄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마행가를 지나 어가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기생집임을 알리는 연월패(煙月牌)가 걸려 있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집에 푸른 휘장이 쳐져 있고 그 안에 대나무발이 걸려 있는데, 양편에는 푸른 그물창이 나 있었다. 창문 밖에 걸린 두 개의 패에는 각각 ‘가무신선녀(歌舞神仙女)’ ‘풍류화월괴(風流花月魁)’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 다방으로 들어가 차를 주문하면서 점원에게 물었다.
“저 앞 모퉁이에 있는 기생집은 누구 집이오?”
점원이 말했다.
“그 집은 행수 이사사의 집입니다.”
“금상께서 좋아하는 그 기생이오?”
“큰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송강은 연청을 불러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사사를 한번 만나서 몰래 일을 꾸며보고 싶네. 자네가 어떻게든 해보게. 우리는 여기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겠네.”
송강은 시진·대종과 함께 다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연청은 이사사의 집으로 가서 푸른 휘장을 젖히고 대나무 발을 걷어 올리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원앙등이 걸려 있고, 물소가죽을 씌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구리 향로에서는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쪽 벽에는 명인이 그린 네 폭의 산수화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물소가죽을 씌운 의자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어 연청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큰 손님방이 있었는데, 향남목으로 만든 꽃무늬가 영롱하게 새겨진 침상이 세 개 있는데 낙화유수를 수놓은 보랏빛 비단 이불이 깔려 있었다. 옥으로 만든 시렁에는 아름다운 등불이 걸려 있고 이상한 모양의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연청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자, 병풍 뒤에서 계집종이 하나 나와 인사하면서 물었다.
“손님은 누구시며 어디서 오셨습니까?”
연청이 말했다.
“아가씨! 번거롭겠지만 마님 좀 나오시라고 하시오. 내가 할 말이 있소.”
계집종이 들어가고 잠시 후, 이사사의 어미인 듯한 노파가 나와 연청에게 자리를 권한 뒤 네 번 절을 하고 말했다.
“손님은 누구십니까?”
연청이 대답했다.
“할머니! 잊으셨습니까? 저는 장을의 아들 장한입니다. 멀리 나가 있다가 오늘 막 돌아왔습니다.”
원래 세상에 장가·이가·왕가가 제일 많았기 때문에, 노파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등불 아래에서 자세히 볼 수는 없어 문득 생각했다.
“네가 태평교 아래 살던 꼬마 장한이냐? 어딜 가서 오랫동안 안 왔냐?”
“제가 한동안 집에 없어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지금 산동에서 오신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 재산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하북에서 제일가는 부자일 겁니다. 이번에 원소절 구경도 하고 경성에 있는 친척도 찾아보면서 장사도 할 겸 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낭자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시는데, 이 집에 어찌 함부로 출입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자리에서 술이나 한 잔 나누려는 것이지 별 다른 뜻은 없으십니다. 금은을 댁으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노파는 이익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라, 연청의 말을 듣고 욕심이 동하여 황망히 이사사를 불러냈다. 연청이 등불 아래에서 이사사를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용모였다. 연청이 절을 하자, 노파가 자세한 얘기를 하였다. 이사사가 말했다.
“그 원외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연청이 말했다.
“요 앞 다방에 계십니다.”
“모시고 오세요.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시니 함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노파가 말했다.
“빨리 가서 모시고 오너라.”
연청은 다방으로 달려가 송강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했다. 대종이 찻값을 치르고, 세 사람은 연청을 따라 이사사의 집으로 갔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계집종이 나와서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이사사가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하며 말했다.
“좀 전에 장한에게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산간벽지에 사는 무식한 촌놈이 이렇게 꽃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게 되니 실로 평생의 행운입니다.”
이사사는 자리를 권하고서, 시진을 보고 물었다.
“이 분은 누구십니까?”
송강이 말했다.
“이 사람의 나의 이종사촌 섭순간입니다.”
송강은 또 대종을 이사사에게 인사시켰다. 송강과 시진은 왼쪽 손님자리에 앉고, 이사사는 오른쪽 주인자리에 앉았다. 계집종이 차를 내오자, 이사사는 직접 송강·시진·대종·연청에게 차례로 찻잔을 건넸다. 차를 마신 다음, 송강이 숨긴 뜻을 얘기하려고 하는데, 계집종이 와서 알렸다.
“나리께서 뒤채로 오셨습니다.”
이사사가 송강에게 말했다.
“감히 더 앉아 있지 못하겠습니다. 내일은 어가가 상청궁으로 가실 것이니, 여기로 못 오실 겁니다. 여러분이 그때 다시 오시면 술이라도 몇 잔 대접하겠습니다.”
송강은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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