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인재들, 특히 여성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할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탈락하는 현상을 새는 수도관으로 비유한다.
아까운 물이 줄줄 새버리는 소모적인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애초 세웠던 목표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다른 길로 새는 것이
꼭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적성에 맞는 더 좋은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다른 길로 빠지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아 이탈하는 상황이 훨씬 많기에 새는
수도관은 분명히 낭비적인 상황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학업성취도나 역량에 대한 국제조사에서
평균 이상 성적을 보인다.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도 남녀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는 비율에서는 남성 79% 대
여성 58%로 차이가 난다. 일을 하더라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평균 37%나 적은 임금을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곳이 우리나라다.
여성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직종을 주로 채우고, 전문직이나
상급 직위에서는 매우 희소해진다.
대학에서 대학원을 거쳐 전문직으로 가는 경로의 예를 보자.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서울대 대학원생 중
약 43%가 여학생이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정규직을 갖기 전에
강사나 연구교수, 또는 박사 후 연구원 등으로 전업(full-time)
근무하는 비전임 교원·연구원도 46%가 여성이다. 정년 트랙의
전임교수는 약 15%만 여성이다. 46%와 15% 사이의 갭에서
많은 사람이 탈락한다. 준비된 여성 박사의 상당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찾기까지, 또는 찾은 후에도 각종
장벽에 부딪혀 일터에서 사라져버린다. 이보다 더 아까운 자원의
낭비가 없다.
잘 길러진 여성 인재의 누수를 막으려면 그들에게 집중된 출산과
육아의 짐을 직장과 사회가 함께 감당해줄 현실적인 방안들이
여러 층위로 시행돼야 한다. 모성 보호를 위한 각종 법령이
존재하지만 시간을 다투며 업적을 내야 하는 전문직 세계에서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성의 역량을 낮게 평가하는 숨겨진 편견이 좋은 직장과
높은 직위에 여성이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는 불편한 사례들을
드러내고, 감춰진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일하고 싶은 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