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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목득자(建木得子)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는 뜻으로, 나무 목(木) 자에 아들 자(子) 자를 덧붙인 것 즉 이(李) 자에 대한 파자(破字)로 흔히 이씨(李氏)를 가리키는 말이다.
建 : 세울 건(廴/6)
木 : 나무 목(木/0)
得 : 얻을 득(彳/8)
子 : 아들 자(子/0)
출전 : 이정형(李廷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 上
동각잡기(東閣雜記)는 조선 명종(明宗)과 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정형(李廷馨)이 지었다. 고려 말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배경으로 부터 선조(宣祖) 때까지의 정치와 명신(名臣)들의 행적을 기록한 야사(野史)로 대동야승(大東野乘)에도 실려 있다.
○ 군사를 돌린(위화도 회군) 후에 윤소종(尹紹宗)이 정지(鄭地)를 통해 태조에게 만나기를 청하면서 '곽광전(霍光傳)'을 품고 와서 바쳤다. 조인옥(趙仁沃)으로 하여금 읽게 하고 들었는데, 인옥이 왕씨를 다시 세우자는 의론을 극력 진술하므로 태조가 왕씨의 후손을 세우려 하였다. 그러자 조민수(曺敏修)는 우(禑)의 외삼촌인 이임(李琳)의 척당(戚黨)으로서, 우의 아들 창(昌)을 세우려고 이색(李穡)에게 문의하여 드디어 의론을 확정하여 창을 세웠다.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문 앞에 찾아와 이상한 글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지리산(智異山) 바윗돌 속에서 얻었습니다"고 하였다. 그 글에 "목자(木子)가 돼지를 타고 내려 와서 다시 삼한(三韓)의 지경을 바로잡으리라(書有木子乘猪下, 復正三韓境等語)"는 등의 말이 있었다.
태조가 사람을 시켜 영접해 들이게 하였는데, 이미 떠나버려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려의 서운관(書雲觀)에 비장된 기록에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建木得子)'는 말이 있고, 또 '왕씨가 망하고 이씨가 일어난다(王氏滅李氏興)'는 말이 있었는데, 끝내 고려가 망할 무렵까지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다.
또 사람의 운명을 잘 알아 맞히는 혜징(惠澄)이란 자가 사사로이 그의 친한 사람에게 이르기를, "내가 남의 운명을 점친 것이 많으나 이성계(李成桂)만한 이는 없었다(吾相人之命多矣. 無如李成桂者)"고 하였다.
그 친한 사람이 묻기를, "타고나 운명이 비록 좋더라도 지위가 정승에 이를 뿐이겠지(位極於冢宰耳)"라 하니, 혜징이 말하기를, "정승쯤이면 어찌 족히 말하겠는가. 내가 알아 맞힌 것으로는 임금이 될 운명이니, 그가 왕씨를 대신하여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若冢宰何足道哉.吾之所相者. 君長之命也. 其代王氏而必興乎)"고 하였다.
■ 구변지국(九變之局)
왕조의 교체를 예언한 도참서(圖讖書)
일명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 구변도국(九變圖局), 구변도(九變圖)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곧 진단의 왕조 변혁이 아홉 차례에 이른다는 예언서로서, 저자는 단군조선 때의 신지(神誌)라고 전해져 오나 신빙성이 없다.
내용은 그 전문이 밝혀지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건목득자(建木得子)'가 요지로 되어 있다. 이는 이(李)자의 파획(破劃)으로 '십팔자(十八子)'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씨 성을 가진 자가 9왕조 중의 하나를 세운다는 것이다.
권근(權近)이 지은 건원릉(健元陵)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이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된 기사에 따르면 구변국과 '십팔자' 설은 단군시대부터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지금에야 그 징험(徵驗)이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동문선(東文選)'과 '금석총람(金石總覽)' 가운데의 '최사전묘지(崔思全墓誌)'에도 보인다. 이 비문에는 두 설을 담고 있는데, 첫째는 목자(木子)가 다시 삼한을 통치한다는 내용의 글이 지리산 바위 속에 있던 것을 이인(異人)이 가져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건목득자(建木得子)가 조선의 왕이 된다는 글이 서운관(書雲觀) 구장(舊藏)의 비기(秘記)에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3권 15장에도, "공주강 남 저샤 자손 치신 구변지국이 사디리잇가(公州江南, 畏且訓嗣, 九變之局 豈是人意)"는 노래가 보이는데, 이는 이씨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혀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 거현(車峴) 이남과 공주강(公州江)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배역(背逆)의 형상이라 하여 그 지방의 인재등용을 경계하였던 제8조를 풍자한 것이다. 이성계의 선조가 바로 이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의 주(註)에는 '구변지국(九變之局)'이 신지의 찬(撰)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권위를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용비어천가 제16장의 주에 따르면 고려 숙종 때 김위제(金謂磾)가 한양 천도의 상소문에 신지설과 도선(道詵)의 도참설을 인용하였다 하므로 '구변지국'의 성립은 적어도 숙종 이전에도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도참사상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널리 유포된 것으로 모두 정치와 밀착되어 있었다. 즉, 왕조의 교체기에 있어서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빠짐없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 신지비사(神誌秘詞) 이야기
신지비사(神誌秘詞), 조선 건국의 불씨였는가?
3천여 년 후를 예언하고 기다려 한 나라 수립의 정당성과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는 신기의 비기(秘記), 찬란한 문화를 간직했던 단군시대의 수많은 유물 중 한 권의 서책이 천추(千秋)의 세월을 기다려 신생 조선 건국의 꿈을 이루고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했다.
이 예언서가 절대자의 비명(碑銘)에 새겨지고 또한 입을 모아 이를 칭송하고 노래(謳歌)하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다 했으니, 이 뜻이 참 역사와 부합되었다면 한민족은 세세토록 영광을 받아 마땅하리라.
BC 2049년 기록된 비기 신지비사(神誌秘詞), 이를 인용한 비명(碑銘)과 용비어천가를 짓게 된 미로(迷路)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개연성을 살펴보자.
"서운관(書雲觀)에 예전부터 비장하여 오는 비기(秘記)의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에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建木得子)'는 말이 있다. 조선을 진단(震檀)이라고 하는 설이 수천 년 동안 떠돌았는데 이제야 특별히 증험되었으니, 하늘이 덕 있는 이를 돌보아 돕는다는 것이 진실로 징험이 있는 것이다"라 하여 권근(權近)은 건원능 신도비(建元陵神道碑銘)에 기록했다.
"이는 사람의 지혜로 구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라 하고, "구변도십팔자(九變圖十八子)의 전설이 단군(檀君) 때부터 있어 수천 년을 지났는데, 지금에 와서 징험할 수 있다"고 병서(幷序)에 썼다.
이는 서운관(書雲觀)의 비기(秘記)와 지리산(智異山) 석굴로부터 이승(異僧)이 전한 것이 단군시대에 나왔다는 것과 서로 부합된다고 했으니, 미어(謎語) 같은 기막힌 산술적 배합이 이제 풀리게 되었다.
비기(秘記)가 전하는 구변진단지도란 무엇인가?
6세 단군 달문(達門)께서 천제(天祭) 후에 신지 발리(神誌 發理)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게 했다. 이 비기가 신지비사였으니, 조선 개국 3,441년 전의 일이다. 3천여 년 전 신지 발리가 지은 글을 사실적(史實的) 예언 기록인 것으로 비명에 기록한 것이 아닌가.
구변진단은 고조선, 삼조선,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치고 통일신라, 발해, 고려까지 국명이 9번 변했다는 뜻이다. 진단(震檀)은 진방(震方) 즉 진역(震域)의 단군조선을 일컫고 동방(東方)으로 목(木)을 상징한다. 여기서 비명(碑銘)에서 적시한 '建木得子'와 합을 이뤘다.
"진단(震檀)이라고 하는 설(朝鮮卽震檀之 說)..."의 '說'은 혀(舌)가 어원이다. 말(言), 말씀(語), 이야기(話)도 있다. 言은 그냥 입에서 나온 말이고, 說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전제한 말이다. 설(說, 舌)과 살(殺)은 한 치 차이로 항상 동행한다. 설은 얼마든지 살(殺)로 돌변할 수 있는 법이다.
'說'에 대해 논어(論語) 구절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 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아무리 빨라도 혀에서 나온 말을 이길 수 없다"라 했다. 說을 빙자하여 여론의 만세(萬歲) 파급 효과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 3장 두 구절에서 윗글을 다시 살펴보자.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라 하여 나무(木)를 대입하고 진방인 동방과 이(李)의 木을 절묘하게 이음질했으니, 비명의 구절과 닮았다.
"周國大王(주국 대왕)이 豳谷(빈곡)애 사샤 帝業(제업)을 여르시니... (주나라 대왕이신 고공단보께서 빈곡에 사시면서 제업의 기초를 닦으...)"라 하여 사대(事大)의 예를 다함을 밝혀 대국에 대한 종속 계념을 심어 놓았다.
BC 3,895년 배달국의 진서(眞書)인 녹도문(鹿圖文)과 3세 단군 가륵(嘉勒)께서 BC 2,181년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 명하여 지은 가림토(加臨土, 正音 38字)가 훈민정음으로 재 창제되었으나, 고의적 또는 의도적으로 고조선과의 관계 설정은 배제했다.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윤4월 13일 을묘 6번째기사
건원릉에 비석을 세우다.
비문은 권근의 찬
○立健元陵碑. 文曰:
○건원릉(健元陵)에 비를 세웠다. 비문(碑文)은 이러하였다.
天眷有德, 以開治運, 必先現異, 彰其符命.
하늘이 유덕(有德)한 이를 돌보아 치운(治運)을 열어 주실 적에는 반드시 먼저 이적(異蹟)을 나타내어 그 부명(符命)을 밝게 하니,
夏有玄圭之錫, 周有協卜之夢.
하(夏)나라에서는 현규(玄圭)를 내려 준 일이 있었고, 주(周)나라에서는 협복(協卜)의 꿈이 있었다.
(註)
○현규(玄圭) : 현(玄)은 검은 빛이요. 규(圭)는 큰 홀(笏)이다. 예전에 요(堯)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이 현규(玄圭)를 하사 하였었는데, 이것은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을 물려준다는 뜻이다.
○협복(協卜) :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갈 때 꿈을 꾼 것을 점치고, 그의 대업(大業)을 도운 강태공(姜太公)을 얻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由漢以降, 代各有之, 皆由天授, 非出人謀.
한(漢)나라 이후로 대대로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모두 천수(天授)에서 나온 것이요, 인모(人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惟我太祖大王之在龍淵也, 勳德旣隆, 符命亦著.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 공덕(功德)이 이미 높았으며, 부명(符命)도 또한 나타났었다.
夢有神人執金尺, 自天降而授之曰: 公宜持此正國. 夏圭周夢, 可同符矣.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것을 주면서 말하기를, "공(公)은 마땅히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 잡으리라"고 하였으니, 하(夏)나라의 현규(玄圭)와 주(周)나라의 꿈과 동부(同符)하다고 하겠다.
又有異人來門獻書云: 得之智異山巖石之中, 有木子更正三韓之語.
또 어떤 이인(異人)이 대문에 와서 글을 바치며 이르기를, "지리산(智異山) 암석(巖石) 가운데서 얻은 것이다"고 하였는데, 거기에는, '목자(木子)가 다시 삼한(三韓)을 바로 잡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註)
○목자(木子) : 이씨(李氏)
使人出迎則已去矣.
그러므로 사람을 시켜 나가서 맞이하게 하였더니,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書雲觀舊藏秘記, 有九變震檀之圖, 建木得子.
서운관(書雲觀)의 옛 장서(藏書)인 비기(秘記)에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란 것이 있는데, '건목득자(建木得子)'라는 말이 있다.
(註)
○건목득자(建木得子) : 이씨(李氏)를 이르는 말이다.
朝鮮卽震檀之說, 出自數千載之前, 由今乃驗, 天之眷佑有德, 信有徵哉.
조선(朝鮮)이 곧 진단(震檀)이라고 한 설(說)은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지금에 와서야 증험되었으니, 하늘이 유덕(有德)한 이를 돌보아 돕는다는 것은 진실로 징험이 있는 것이다.
臣謹按璿源李氏, 全州望姓.
신(臣)이 삼가 '선원록(璿源錄)'을 살펴보니, 이씨(李氏)는 전주(全州)의 망성(望姓)이었다.
(註)
○망성(望姓) : 이름 높은 양반 성씨.
司空諱翰仕新羅, 娶宗姓之女; 六世而至兢休, 始仕高麗.
사공(司空) 휘(諱) 이한(李翰)은 신라에 벼슬하여 종성(宗姓)의 딸에게 장가들었고, 6세손(世孫) 이긍휴(李兢休)에 이르러 처음으로 고려에 벼슬하였다.
十三世而至皇高祖穆王, 入仕元朝而長千夫, 四世襲爵, 咸能濟美.
13세손 황고조(皇高祖) 목왕(穆王)에 이르러 원조(元朝)에 들어가 벼슬하여 천부장(千夫長)이 된 뒤, 4세를 습작(襲爵)하였는데, 모두 아름다운 업적을 이루었다.
元政旣衰, 皇考桓王還仕高麗, 恭愍王.
원(元)나라의 정치가 쇠퇴하여지자, 황고(皇考) 환왕(桓王)은 돌아와서 고려의 공민왕(恭愍王)을 섬겼다.
至正辛丑, 紅寇陷王京, 恭愍南遷, 遣使克復, 我太祖先登獻捷.
지정(至正) 신축년에 홍건적(紅巾賊)이 고려의 서울(王京)을 함락하니, 공민왕은 남쪽으로 피난하고, 군사를 보내어 싸워 이겨 수복(收復)하였는데, 우리 태조께서 맨 먼저 첩서(捷書)를 올렸다.
明年壬寅, 擊走胡人納哈出; 又明年癸卯, 却逐僞王塔帖木.
이듬해 임인년에 호인(胡人) 나하추(納哈出)를 쳐서 패주(敗走)시켰고, 또 이듬해 계묘년에 위왕(僞王) 탑첩목(塔帖木)을 물리쳐 쫓았다.
恭愍恃倚益重, 累官至將相, 出入中外, 樂觀經史, 亹亹無倦, 濟時之量, 好生之德, 出於至誠.
공민왕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 여러 번 벼슬이 올라 장상(將相)에 이르러 중외(中外)에 출입하였으나, 경사(經史)를 읽기를 좋아하여 부지런히 읽고 게으르지 않았으니, 세상을 구제하는 도량(度量)과 호생지덕(好生之德)은 지성(至誠)에서 나온 것이었다.
恭愍薨, 異姓竊位; 權奸擅國, 濁亂朝政; 海寇深入, 焚掠郡縣.
공민왕이 훙(薨)하자 이성(異姓)이 왕위에 오르니, 권간(權奸)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여 조정의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해적(海賊)이 나라 안 깊숙이 들어와 군현(郡縣)을 불지르고 약탈하였다.
(註)
○이성(異姓) : 신씨(辛氏). 곧 우왕(禑王)
洪武庚申, 我太祖戰捷雲峯, 東南以安.
홍무(洪武) 경신년에 우리 태조께서 운봉(雲峰)에서 싸워 이겨, 동남 지방이 편안하여졌다.
戊辰, 侍中崔瑩誅戮權奸, 過於慘酷, 賴我太祖, 全活頗多.
무진년에 시중(侍中) 최영(崔瑩)이 권간(權奸)들을 주륙(誅戮)할 적에 지나치게 참혹하게 하였는데, 우리 태조의 힘을 입어 살아난 자가 자못 많았다.
瑩以太祖爲侍中, 仍授右軍都統節鉞, 逼遣攻遼.
최영이 태조를 시중으로 삼고, 이어서 우군 도통사(左軍都統使)의 절월(節鉞)을 주어 억지로 요동(遼東)을 치게 하였다.
師次威化島, 倡率諸將, 仗義旋旆.
군사가 위화도(威化島)에 머물렀을 때, 앞장서서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정의(正義)에 의한 깃발을 돌이켰다.
師旣登岸, 大水沒島, 人皆神之.
군사가 강 언덕에 오르자 큰물이 섬을 휩쓸어 버리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執退瑩, 代以名儒李穡爲左侍中.
최영을 잡아서 물리치고, 대신 명유(名儒) 이색(李穡)을 좌시중(左侍中)으로 삼았다.
方是時也, 權奸濁亂, 狂悖構隙, 危亡岌岌, 禍亂莫測, 非我太祖轉移之力, 一國殆矣.
바로 이때 권간(權奸)들이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광패(狂悖)한 자들이 중국과 흔극(釁隙)을 만들어, 위망(危亡)이 눈앞에 닥치고 화란(禍亂)이 헤아리기 어려웠었는데, 우리 태조의 돌이킨 힘이 아니었더라면 나라가 위태하였을 것이다.
穡曰: 今公擧義以尊中國, 然非執政親朝, 則不可.
이색(李穡)이 말하기를, "지금 공의 의거(義擧)는 중국을 높인 것인데, 집정 대신(執政大臣)이 친히 입조(入朝)하지 않으면 불가(不可)합니다"고 하고,
剋日如京, 太祖爲擇諸子, 以今我主上殿下, 與穡偕朝, 高皇帝嘉賞而遣.
날을 받아 명나라 서울로 가려 하매, 태조가 여러 아들 중에서 지금의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를 골라 이색과 함께 조현(朝見)하게 하였더니, 고황제(高皇帝)가 가상(嘉賞)히 여겨 돌려보냈다.
(註)
○주상 전하(主上殿下) :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
己巳秋, 帝責異姓爲王, 太祖與諸將相, 選立王氏宗親定昌君 瑤, 盡心輔政.
기사년 가을에 황제가 이성(異姓)이 왕이 된 것을 문책하였으므로, 태조께서 여러 장상(將相)과 더불어 왕씨(王氏)의 종친(宗親) 정창군(定昌君) 요(瑤)를 선택하여 왕으로 세우고, 마음을 다하여 정사를 보필하였다.
(註)
○이성(異姓) : 신씨(辛氏). 창왕(昌王)
革私田汰冗官, 群情胥悅.
사전(私田)을 개혁하고 용관(冗官)을 도태시키니, 여러 사람의 마음이 모두 기뻐하였다.
功高見忌, 讒慝交構, 定昌頗惑焉.
공(功)이 높아지자 시기(猜忌)를 받아, 참소(讒訴)와 간계(奸計)가 번갈아드니, 정창군(定昌君)이 자못 의혹하였다.
太祖以盛滿, 請老而不得謝.
태조(太祖)는 지위가 성만(盛滿)하다고 하여 노퇴(老退)하기를 청하였으나, 사퇴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註)
○성만(盛滿) : 차고 넘침 곧 정승의 자리를 말한다.
會因西行, 遘疾而還, 謀者益急.
그때 마침 서쪽 지방에 행차하였다가 병을 얻어 돌아왔는데, 이 틈을 타서 모해(謀害)하는 자들이 일을 더욱 급박하게 만들었다.
我殿下應機制變, 群謀瓦解.
우리 전하(殿下)가 시기에 응해 변(變)을 제압하여, 모든 모해(謀害)가 와해되었다.
洪武壬申秋七月十六日, 殿下與大臣裵克廉、趙浚等五十二人, 倡義推戴, 臣僚父老, 不謀僉同.
홍무(洪武) 임신년 가을 7월 16일에, 전하가 대신(大臣) 배극렴(裵克廉), 조준(趙浚) 등 52명과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왕으로 추대(推戴)하니, 신료(臣僚)들과 부로(父老)들이 모의하지 아니 하고도 모두 뜻을 같이하였다.
太祖聞變驚起, 牢讓再三, 勉登王位.
태조(太祖)가 정변(政變)을 듣고 놀라 일어나서 두세 번 굳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왕위에 올랐다.
不下堂陛而化邦國, 非天啓佑有德, 疇克如玆.
집의 섬돌을 내려오지 아니하고 한 집안을 나라로 화(化)하게 하였으니, 하늘이 유덕(有德)한 이를 계도(啓導)하여 돕지 아니 하고서야 누가 능히 이같이 할 수 있겠는가!
卽遣知中樞院事趙胖奏聞, 帝詔曰: 三韓之民, 旣尊李氏, 民無兵禍, 人各樂天之樂, 乃帝命也.
즉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조반(趙胖)을 중국에 보내어 주문(奏聞)하니, 황제가 조(詔)하기를, "삼한(三韓)의 백성들이 이미 이씨(李氏)을 높였고, 백성들은 병화(兵禍)가 없이 사람마다 각각 하늘이 주는 즐거움을 즐기고 있으니, 이는 상제(上帝)의 명(命)이다"고 하였다.
繼又有勑: 國更何號.
또 칙명(勅命)하기를, "나라 이름은 무엇으로 고쳐 호칭하려 하는가?" 하였으므로,
卽遣藝文學士韓尙質奏請,
즉시 예문 학사(藝文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주청(奏請)하니,
又詔曰: 維朝鮮之稱美, 可以本其名而祖之. 體天牧民, 永昌後嗣.
또 조(詔)하기를, "조선(朝鮮)이란 명칭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근본으로 하여 지었으면 좋겠다. 하늘을 몸받아 백성을 기르고, 길이 후사(後嗣)를 창성하게 하라"고 하였다.
繇我太祖威聲義烈, 升聞于上, 簡在帝心, 故當請命, 輒蒙兪音, 豈偶然哉.
우리 태조(太祖)의 위엄(威嚴)과 명성(名聲)과 의열(義烈)이 천자(天子)에게까지 높이 들려서 황제(皇帝)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고명(誥命)을 청하자 문득 유음(兪音)을 받게 된 것이니,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越三年甲戌夏, 有構國家者, 帝命遣親男入朝.
3년을 지난 갑술년 여름에 나라를 모함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친아들을 보내어 입조(入朝)시키라고 명하였다.
太祖以我殿下通經達理, 賢於諸子, 卽遣應命.
태조께서 우리 전하가 경서(經書)에 능통하고 사리(事理)에 통달하여 여러 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하여, 즉시 보내어 명(命)에 응하게 하였다.
旣至, 敷奏稱旨, 優禮賜還.
명나라에 이르러 부주(敷奏)한 것이 황제의 뜻에 맞으니, 우대하여 돌려보냈다.
其冬十一月, 定都于漢陽, 營宮室建宗廟.
그해 겨울 11월에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고 종묘(宗廟)를 세웠으며,
嘗已追尊四代, 皇高祖爲穆王, 配李氏爲孝妃; 皇曾祖爲翼王, 配崔氏爲貞妃;
일찍이 4대(四代)를 추존(追尊)하여 황고조(皇高祖)를 목왕(穆王)으로, 배위(配位) 이씨(李氏)를 효비(孝妃)로, 황증조(皇曾祖)를 익왕(翼王)으로, 배위 최씨(崔氏)를 정비(貞妃)로,
皇祖爲度王, 配朴氏爲敬妃; 皇考爲桓王, 配崔氏爲懿妃.
황조(皇祖)를 도왕(度王)으로, 배위 박씨(朴氏)를 경비(敬妃)로, 황고(皇考)를 환왕(桓王)으로, 배위 최씨(崔氏)를 의비(懿妃)로 하였다.
修禮樂而毖祀事, 定章服而辨等威; 興學以育材, 重祿以勸士; 辨析詞訟, 愼簡守令.
예악(禮樂)을 닦고 제사하는 일을 삼가며, 장복(章服)을 정하여 관등(官等)의 위의(威儀)를 구분하고,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육성하며, 봉록(俸祿)을 후하게 하여 선비를 권장하고, 소송(訴訟)을 바르게 판결하며, 수령(守令)을 신중히 뽑았다.
(註)
○장복(章服) : 관복(官服)의 제도
弊政悉革, 庶績惟熙; 海寇來服, 四境按堵.
피폐한 정치를 모두 개혁하고, 여러가지 업적이 빛나니, 해구(海寇)가 와서 복종하고, 온 나라 안이 평안하여졌다.
我太祖巍蕩盛德, 眞所謂天錫智勇聰明神武雄偉之主也.
우리 태조(太祖)의 높고 넓은 성덕(盛德)은 참으로 이른바 하늘이 주신 지용(智勇), 총명(聰明), 신무(神武), 웅위(雄偉)의 임금이라고 하겠다.
奸臣鄭道傳, 以表辭獲譴帝庭, 陰謀拒命.
간신(奸臣) 정도전(鄭道傳)이 표문(表文)의 글 때문에 중국 조정의 견책(譴責)을 받게 되자, 명(命)을 거역하려고 음모하여,
戊寅秋八月, 乘我太祖不豫之隙, 欲挾幼孼, 以肆己志.
무인년 가을 8월에 우리 태조(太祖)가 편찮은 틈을 타서 어린 얼자(孽子)를 끼고 자기의 뜻을 펴 보려고 하였는데,
(註)
○얼자(孽子) : 이방석(李芳碩)
我殿下炳幾殲除, 以嫡以長, 請建上王爲世子.
우리 전하가 기미(幾微)를 밝게 살펴 이들을 섬멸하여 없애고, 적장(嫡長)이라 하여 상왕(上王)을 세자(世子)로 세우도록 청하였다.
(註)
○상왕(上王) : 공정왕(恭靖王) 정종(定宗)
九月丁丑, 太祖以疾未瘳, 禪于上王.
9월 정축일에 태조가 병이 낫지 않은 까닭으로 상왕에게 선위(禪位)하였다.
上王未有繼嗣, 且謂開國定社, 咸我殿下之績, 乃冊爲世子.
상왕은 계사(繼嗣)가 없고, 또 나라를 세우고 사직(社稷)을 안정시킨 것이 모두 우리 전하의 공적이라고 하여, 곧 세자로 책립(冊立)하였다.
庚辰秋七月己巳, 獻太祖以啓運神武太上王之號.
경진년 가을 7월 기사일에 태조(太祖)에게 계운 신무 태상왕(啓運神武太上王)의 호(號)를 올렸다.
冬十有一月癸酉, 上王亦以疾禪位于我殿下.
11월 계유일에 상왕도 또한 병 때문에 우리 전하에게 선위하였다.
遣使請命, 永樂元年夏四月, 帝遣都指揮使高得等, 奉詔印來封我殿下爲國王, 繼遣翰林待詔王延齡等, 來賜殿下袞冕九章, 秩視親王.
사신을 중국에 보내어 고명(誥命)을 청하니, 영락(永樂) 원년 여름 4월에 황제가 도지휘사(都指揮使) 고득(高得) 등을 보내어, 조(詔)와 인(印)을 받들고 와서 우리 전하를 국왕(國王)으로 봉(封)하고, 이어서 한림 대조(翰林待詔) 왕연령(王延齡) 등을 보내어 와서 전하에게 곤면 구장(袞冕九章)을 하사하였으니, 품계(品階)가 친왕(親王)과 동일하였다.
我殿下奉養兩宮, 誠敬備至.
우리 전하가 양궁(兩宮)을 봉양(奉養)하는데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였다.
(註)
○양궁(兩宮) : 태상왕(太上王)과 상왕(上王)
永樂戊子五月二十四日壬申, 太祖晏駕, 春秋七十四歲, 在王位七年, 老不聽政十有一年.
영락(永樂) 무자년 5월 24일 임신일에 태조께서 승하하니, 춘추가 74세이고, 재위(在位)가 7년이며, 늙어서 정사를 보지 않으신 지 11년이다.
弓劍忽遺, 嗚呼痛哉.
갑자기 활과 칼만 남기시니, 아아! 슬프도다!
(註)
○갑자기 활과 칼만 남기시니 : 옛날 중국의 황제(皇帝)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갈 때 활[弓]을 떨어뜨렸고, 또 황제(皇帝)를 장사지냈다는 교산(橋山)이 무너졌을 때 그 관중(棺中)에는 다만 칼[劎]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곧 귀인(貴人)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我殿下哀慕罔極, 諒闇盡禮.
우리 전하께서 애모(哀慕)함이 망극(罔極)하여 거상(居喪) 중에 예(禮)를 다하였다.
奉冊寶上太祖 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之號; 以是年九月初九日甲寅, 葬于城東楊州治之儉巖山, 陵曰健元.
책보(冊寶)를 받들어 태조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太祖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의 호(號)를 올리고, 이해 9월 초9일 갑인일에 성동(城東) 양주(楊州)의 경내 검암산(儉巖山)에 장사하고, 능(陵)을 건원릉(健元陵)이라 하였다.
及訃聞, 皇帝震悼罷朝, 卽遣禮部郞中林觀等, 賜祭以太牢.
부음(訃音)을 듣고 황제가 놀라고 슬퍼하여 파조(罷朝)하고, 곧 예부 낭중(禮部郞中) 임관(林觀) 등을 보내어 태뢰(太牢)의 예로 사제(賜祭) 하였는데,
(註)
○파조(罷朝) : 철조(輟朝)
○태뢰(太牢) : 나라 제사에 소를 통째로 올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소, 양, 돼지를 아울러 올렸으나, 뒤에 소만 올리게 되었다.
其文略曰: 惟王明達好善, 出於天性, 敬順天道, 效義攄忠, 恭謹事大, 保恤一方之民, 我皇考深嘉忠誠, 賜復國號曰朝鮮. 王功德之著, 雖古朝鮮之賢王, 無以過也.
그 글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왕은 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하며 선(善)을 좋아하였으니, 천성에서 나온 것이며, 천도(天道)를 공경하여 순종하고, 의(義)을 들어 충성을 다하여 공순히 사대(事大)하기를 힘쓰며, 한 지방의 백성을 보호하고 긍휼(矜恤)히 하니, 우리 황고(皇考)께서 그 충성을 매우 아름답게 여겨 다시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내렸다. 왕의 뛰어난 공덕(功德)은 비록 옛날 조선의 어진 임금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 없으리라"고 하고,
又賜誥命, 諡曰康獻.
또 고명(誥命)을 내려 시호(諡號)를 '강헌(康獻)'이라 하였다.
又勑殿下賜賻特厚.
또 전하에게 칙유(勅諭)하고 부의(賻儀)를 특별히 후하게 내렸다.
寵異之典, 備極無憾; 蓋我太祖畏天之誠, 殿下繼志之孝, 前後相承, 克享天心.
남달리 사랑하는 은전(恩典)을 극진히 하여 유감(有感)됨이 없었으니 대개 우리 태조(太祖)의 하늘을 두려워하는 정성과 전하의 그 뜻을 이어받드는 효성이 전후(前後)에 서로 이어서, 천심(天心)을 잘 누렸기 때문이다.
故於始終之際, 大獲天人上下之助如此其至, 嗚呼盛哉.
그러므로, 시종(始終)의 즈음에 있어 하늘과 사람이 위 아래에서 돕는 것이 이처럼 지극함을 얻은 것이니, 아아, 거룩하도다!
首妃韓氏, 安邊世家, 贈領門下府事安川府院君諱卿之女, 先薨.
수비(首妃) 한씨(韓氏)는 안변(安邊)의 세가(世家)로서 증 영문하부사(贈領門下府事) 안천 부원군(安川府院君) 휘(諱) 한경(韓卿)의 딸인데, 먼저 훙(薨)하였다.
初諡節妃, 後加諡承仁順聖 神懿王后.
처음에 시호(諡號)를 절비(節妃)라고 하였다가, 뒤에 승인 순성 신의 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의 호(號)를 더하였다.
誕六男二女, 上王居二, 我殿下居五.
6남 2녀를 낳았는데, 상왕(上王)이 둘째이고 전하가 다섯째이다.
長曰芳雨, 鎭安君, 先卒; 次三芳毅, 益安大君, 亦先卒.
맏이는 이방우(李芳雨) 진안군(鎭安君)인데 먼저 졸(卒)했고, 세째는 방의(芳毅) 익안 대군(益安大君)인데 역시 먼저 졸(卒)하였다.
次四芳幹, 懷安大君; 次六芳衍, 登科不祿, 贈元尹.
그 다음 네째는 이방간(李芳幹) 회안 대군(懷安大君)이고, 여섯째는 이방연(李芳衍)인데 과거에 올랐다가 곧 죽으니 원윤(元尹)을 증직(贈職)하였다.
女長慶愼宮主, 下嫁上黨君 李佇, 非一李也.
장녀(長女)는 경신 궁주(慶愼宮主)인데 상당군(上黨君) 이저(李佇)에게 시집갔다. 같은 이씨가 아니다.
次慶善宮主, 下嫁靑原君 沈淙.
다음은 경선 궁주(慶善宮主)인데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淙)에게 시집갔다.
次妃康氏, 判三司事允成之女, 初封顯妃, 先薨, 諡神德王后.
차비(次妃) 강씨(康氏)는 판삼사사(判三司事) 강윤성(康允成)의 딸인데, 처음에 현비(顯妃)를 봉하였으나 먼저 훙(薨)하자, 시호(諡號)를 신덕 왕후(神德王后)라고 하였다.
誕二男一女, 男長芳蕃, 贈恭順君; 次芳碩, 贈昭悼君.
2남 1녀를 낳았는데, 장남(長男)은 이방번(李芳蕃)이니 공순군(恭順君)을 증직하였고, 다음은 이방석(李芳碩)이니 소도군(昭悼君)을 증직하였다.
女慶順宮主, 下嫁興安君 李濟, 亦非一李也. 皆先卒.
딸은 경순 궁주(慶順宮主)이니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에게 시집갔는데, 역시 같은 이씨는 아니다. 모두 먼저 졸(卒)하였다.
上王妃金氏, 今封王大妃, 贈門下侍中天瑞之女, 無嗣.
상왕(上王)의 비(妃)는 김씨이니, 지금 왕대비(王大妃)를 봉하였으며, 증 문하 시중(門下侍中) 김천서(金天瑞)의 딸로서 자식이 없다.
我中宮靜妃 閔氏, 驪興府院君諡文度公諱霽之女.
우리 중궁(中宮)은 정비(靜妃) 민씨(閔氏)인데,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시(諡) 문도공(文度公) 민제(閔霽)의 딸이다.
誕四男四女, 長男世子禔; 次祜 孝寧大君; 次祹 忠寧大君, 次幼.
4남 4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세자(世子) 이제(李禔)이고, 다음은 이호(李祜) 효령대군(孝寧大君), 다음은 이도(李祹) 충녕대군(忠寧大君)이며, 다음은 어리다.
(註)
○이호(李祜) : 효령대군의 초명.
○이도(李祹) : 금상(今上)의 휘(諱).
女長貞順宮主, 下嫁淸平君 李伯剛, 亦非一李.
장녀는 정순 궁주(貞順宮主)이니 청평군(淸平君) 이백강(李伯剛)에게 시집갔는데, 역시 같은 이씨는 아니다.
次慶貞宮主, 下嫁平壤君 趙大臨; 次慶安宮主, 下嫁吉川君 權跬; 次幼.
다음은 경정 궁주(慶貞宮主)이니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경안 궁주(慶安宮主)이,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어리다.
鎭安娶贊成事池奫之女, 生二男, 長曰福根 奉寧君, 次曰德根元尹.
진안군(鎭安君)은 찬성사(贊成事) 지윤(池奫)의 딸에게 장가들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은 복근(福根) 봉녕군(奉寧君), 다음은 덕근(德根) 원윤(元尹)이다.
益安娶贈門下贊成事崔仁㺶之女, 生男曰石根, 益平君.
익안 대군(益安大君)은 증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최인두(崔仁㺶)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으니, 석근(石根) 익평군(益平君)이다.
懷安娶門下贊成事閔璿之女, 生男曰孟衆, 義寧君.
회안 대군(懷安大君)은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민선(閔璿)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으니, 맹중(孟衆) 의령군(義寧君)이다.
臣觀歷代受命之君, 德業之盛, 符命之神, 輝映簡冊, 流光罔極; 今我朝鮮之誕興也, 盛德貞符, 于古有光.
신이 역대(歷代)의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을 보건대, 덕업(德業)의 성대함과 부명(符命)의 신기함이 간책(簡冊)에 밝게 나타나서 그 빛이 끝없이 흐르는데, 우리 조선이 일어남에 거룩한 덕과 신령한 부명(符命)이 옛날보다 빛남이 있다.
是宜旣得其位, 又得其壽, 峙洪基流景祚, 與天地而久長矣.
이는 마땅히 이미 그 위(位)를 얻고 또 수(壽)를 얻었으니, 넓은 기업(基業)을 더 높이고 큰 복조(福祚)를 이어받아 천지와 더불어 장구하리다.
臣近濫承勒碑之命, 敢不竭精鋪張盛德, 以垂耿光.
신 권근(權近)이 외람되게 비(碑)에 새길 글을 지으라는 명을 받았으니, 어찌 감히 정성을 다하여 성덕(盛德)을 드러내서 밝은 빛을 후세에 드리우지 않으리오!
然臣筆力鄙拙, 不足以發揚盛美, 稱塞明旨, 謹撰勳德之在人耳目者, 敢拜手稽首而獻銘.
그러나 신은 글재주가 비졸(鄙拙)하여 성(盛)하고 아름다운 덕(德)을 드러내서 밝은 뜻을 남김없이 칭송하기에는 부족하와, 삼가 공훈(功勳)과 덕업(德業)이 사람들의 귀와 눈에 남아 있는 것만을 찬술(撰述)하고, 감히 손으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명(銘)을 드리노라.
其詞曰: 天生斯民, 立以司牧, 迺長迺治, 迺眷有德.
그 글[詞]은 이러하다. "하늘이 이 백성 낳으시고 사목(司牧; 임금)을 세워, 기르고 다스리실 제 유덕(有德)한 이 돌보시네.
非天諄諄, 有命赫赫; 禹錫玄圭, 周夢協卜.
하늘이 순순(諄諄)히 말하지 않건마는 명(命)은 혁혁(赫赫)하게 나타나 있나니, 우(禹)임금은 현규(玄圭)를 내려 주고, 주(周)나라의 꿈은 협복(協卜)일세.
惟我朝鮮, 肇基王迹; 夢有神人, 授以金尺; 符籙前定, 天命昭晣.
우리 조선 처음 왕업(王業)을 여실 제,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금척(金尺)을 주었으니, 부록(符籙)이 먼저 정해지고, 천명(天命)이 아주 분명하였네.
麗運旣終, 君昏相酷; 農月興師, 大邦構隙.
고려 운수 이미 다하매, 임금은 어둡고 재상은 혹독하여, 농사철에 군사 일으켜 중국(中國)과 흔극(釁隙)을 일으켰네.
我師義旋, 罪人斯得.
우리 군사 의(義)의 깃발 돌이키니, 죄인(罪人)들 복죄(伏罪)하여 벌받았네.
忠誠上聞, 帝心載懌.
충성이 위에 들려 황제 마음 기뻐하였네.
曆數有歸, 輿情斯迫; 大業旣成, 市肆不易.
천운(天運)이 돌아오고 여정(輿情)이 절박(切迫)하여, 대업(大業)은 이미 이룩되었건만, 저자[市肆]는 바뀌지 아니하였네.
高皇曰咨, 惟爾有國, 民無兵禍, 樂天之樂. 繼賜國號, 朝鮮是復.
고황제(高皇帝) 조(詔)하기를, '그대 나라를 세웠으매, 백성들 병화(兵禍) 없고 하늘이 준 기쁨 즐기네' 하였고, 이어서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회복하여 주었네.
相地定都, 于漢之北.
땅을 골라 도읍(都邑)을 정하니 한강의 북쪽이라.
虎踞龍盤, 王氣攸積.
범이 웅크린 듯 용이 도사린 듯, 왕기(王氣)가 쌓인 바라.
宮室崇崇, 宗廟翼翼.
궁실(宮室)은 높디 높고 종묘(宗廟)는 의젓하네.
仁深好生, 治蔚思輯; 百度俱修, 萬化斯洽.
임금 어진 마음 깊어 살리기를 좋아하고, 정사는 아름답고 생각은 화순하여, 온갖 제도 갖춰지고 모든 교화(敎化) 흡족하네.
乃倦于勤, 傳付聖嫡; 乃讓于功, 惟世惟及.
정사에 지치시어 적사(嫡嗣)에게 선위(禪位)하니, 공 있는 이에게 양보하셨네.
明明我后, 有幾必燭; 禍亂再平, 其慶克篤.
밝고 밝은 우리 전하 기미(幾微)를 밝게 살펴, 화란(禍亂)을 두 번이나 평정하니, 그 경사 지극히 돈독하네.
開國定社, 咸我之績; 大命難辭, 神器有托.
나라를 세우고 사직을 안정시킨 것 모두 우리 전하의 공적이니, 대명(大命)을 사양하기 어려워 신기(神器; 임금자리)를 부탁받았네.
祗奉兩宮, 虔恭愈恪.
양궁(兩宮)을 공경히 받드니, 경건하고 공순함이 더욱 지극하도다.
孝弟通神, 帝眷尤渥.
효제(孝弟)가 신(神)에 통하여, 상제(上帝)의 돌보심이 더욱 우악(優渥)하네.
遭喪惸惸, 哀慕踴擗.
태조의 상(喪)을 만나 근심에 잠겨, 애모(哀慕)의 슬픈 정 몸부림치네.
帝聞震悼, 遣使弔哭, 太牢有祀, 厚賻有勑, 美諡褒嘉, 恤典備飭.
황제가 듣고 놀라고 슬퍼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곡(弔哭)하고 태뢰(太牢)로 제사하며, 칙명(勅命)하여 후부(厚賻)하고 아름다운 시호(諡號)를 주어 포장(褒奬)하니, 휼전(恤典)은 온전히 갖추어졌네.
自天佑之, 終始不忒, 景祚緜緜, 子孫千億, 宗祀攸長, 與天罔極.
하늘의 도우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어, 큰 복이 길이 이어지고, 자손이 번창하여, 종사(宗祀)가 유구(攸久)하여 하늘처럼 무궁하리라."
吉昌君, 權近所製也.
이 글은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지은 것이다.
政丞成石璘書, 前判漢城府事鄭矩篆額; 賜石璘鞍馬, 矩馬一匹.
정승(政丞) 성석린(成石璘)이 쓰고, 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정구(鄭矩)가 전액(篆額)을 쓰니, 성석린에게는 안마(鞍馬)를, 정구에게는 말 1필을 하사하였다.
▶️ 建(세울 건/엎지를 건)은 ❶회의문자로 䢖은 속자, 㨴은 동자이다. 聿(율)은 붓을 세워서 글자를 쓰다→ 사물을 하나 하나 차례를 정하다의 뜻이다. 민책받침(廴; 걸어감)部는 행동(行動)을 나타낸다. 建(건)은 법을 정하여 나라를 다스리다→ 물건(物件)을 세우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建자는 '세우다'나 '일으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建자는 廴(길게 걸을 인)자와 聿(붓 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廴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글자의 조합으로만 본다면 建자와 律(법 율)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建자가 律자와 廷(조정 정)자의 생략형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조정의 법률을 바르게 세우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도로를 설계하다'가 본래의 의미였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建(건)은 ①세우다 ②일으키다 ③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④개진하다(開陳--) ⑤끼우다, 사이에 두다 ⑥엎지르다 ⑦열쇠(≒鍵) ⑧월건(月建: 달의 간지/干支)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發(필 발), 立(설 립/입, 자리 위), 竪(세울 수), 興(일 흥, 피 바를 흔), 起(일어날 기) 등이고, 반의어로는 壞(무너질 괴, 앓을 회), 崩(무너질 붕) 등이고, 통자로는 健(굳셀 건), 鍵(열쇠 건/자물쇠 건) 등이다. 용례로는 건물을 짓거나 시설들을 이룩함 또는 어떤 사업을 이룩함을 건설(建設), 흙 나무 돌 쇠 등을 써서 집이나 성이나 다리 같은 건조물 따위를 지음을 건축(建築), 사람의 손으로 건조한 집 따위 또는 땅 위에 세운 집 따위를 건물(建物), 나라를 세움을 건국(建國), 의견을 말함 또는 국회나 의원이 정부에 희망을 표시함을 건의(建議), 배 따위를 설계하여 만듦을 건조(建造), 절이나 탑이나 동상 따위를 세우거나 이룩함을 건립(建立), 사업을 일으킴을 건업(建業), 군대를 창설함을 건군(建軍), 나라의 연호를 세움을 건원(建元), 건축하는데 쓰이는 갖가지 재료를 건재(建材),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움 또는 단체나 모임 등을 다시 조직함을 재건(再建), 처음으로 세움을 창건(創建), 건축물 특히 사찰이나 왕궁 따위를 고쳐 세움을 중건(重建), 고쳐 세우거나 지음을 개건(改建),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건양다경(建陽多慶), 항상 덕을 가지고 세상일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이름도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을 덕건명립(德建名立), 의義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공을 세운 신하를 이르는 말을 건공지신(建功之臣) 등에 쓰인다.
▶️ 木(나무 목)은 ❶상형문자로 땅에 뿌리를 박고 선 나무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무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木자는 나무의 뿌리와 가지가 함께 표현된 상형문자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를 표현한 글자라 할 수 있다. 중·고등용 상용한자에서는 木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가 많다. 쇠를 능숙하게 다루기 이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가공하기 쉬운 성질을 가진 것이 나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무와 관련된 한자를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나무를 어떻게 활용했고 인식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木자는 나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나무의 종류나 상태에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木(목)은 (1)무명으로 된 것 (2)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동쪽, 철로는 봄이다. 빛으로는 푸른색으로 가리킨다. (3)어떤 명사 앞에 쓰여 나무로 된 무명으로 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성(姓)의 하나 (5)목요일(木曜日) (6)팔음(八音)의 한 가지이다. 지어(枳敔)와 같은 종류의 나무로 만든 일종의 마찰(摩擦) 악기 등의 뜻으로 ①나무 ②목재(木材) ③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관(棺) ④오행(五行)의 하나 ⑤목성(木星; 별의 이름) ⑥목제 악기 ⑦형구(刑具; 형벌을 가하거나 고문을 하는 데에 쓰는 여러 가지 기구) ⑧무명(무명실로 짠 피륙) ⑨질박하다(質樸;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⑩꾸밈이 없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수풀 림/임(林), 수풀 삼(森), 나무 수(樹)이다. 용례로는 나무 인형을 목상(木像) 또는 목우(木偶), 나무 그릇을 목기(木器), 나무 도장을 목도장(木圖章), 나무를 다루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공(木工), 나무와 풀을 목초(木草),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를 목침(木枕),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을 목수(木手), 술청에 목로를 베풀고 술을 파는 집 목로주점(木壚酒店),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목석(木石),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곳이 없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외로워서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를 이르는 말을 목석불부(木石不傅),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데가 없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외로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목석난득(木石難得), 나무 인형에 돌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감정이 전연 없는 사람 또는 의지가 굳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목인석심(木人石心), 나무나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이르는 말을 목우석인(木偶石人), 나무 인형에 옷을 두른 것이라는 뜻으로 아무 능력이나 소용이 없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목우인의(木偶人衣), 나무나 돌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마음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목석간장(木石肝腸), 나무 껍질이 세 치라는 뜻으로 몹시 두꺼움을 이르는 말을 목피삼촌(木皮三寸) 등에 쓰인다.
▶️ 得(얻을 득)은 ❶회의문자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貝(패; 화폐)와 寸(촌; 손)의 합자이다. 돈이나 물품을 손에 넣어 갖고 있는 일의 의미로, 옛 모양은 貝(패)와 又(우), 手(수)를 합(合)한 자형(字形)이다. ❷회의문자로 得자는 '얻다'나 '손에 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得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貝(조개 패)자,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得자를 보면 마노 조개를 쥐고 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마노 조개는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중국에서는 화폐로 쓰였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의 得자는 화폐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得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得(득)은 (1)소득(所得)이나 이득(利得) (2)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열반(涅槃)의 증과(證果)를 얻음 (3)풍수지리의 혈(穴), 또는 내명당(內明堂) 안에서 흐르는 물 등의 뜻으로 ①얻다 ②손에 넣다 ③만족하다 ④고맙게 여기다 ⑤깨닫다 ⑥알다 ⑦분명해지다 ⑧적합하다 ⑨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⑩이루어지다 ⑪만나다 ⑫탐하다, 탐내다 ⑬사로잡다 ⑭덕(德), 덕행(德行) ⑮이득(利得), 이익(利益)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획(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잃을 실(失),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 있다. 용례로는 쓸 만한 사람을 얻음을 득인(得人),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꼭 알맞음을 득중(得中),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딸을 낳음을 득녀(得女), 얻음과 잃음을 득실(得失), 뜻을 이루어 자랑함을 득의(得意), 투표에서 표를 얻음을 득표(得票),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풍악이나 노래 등의 곡조가 썩 아름다운 지경에 이름을 득음(得音), 어떠한 시험이나 경기 등에서 점수를 얻음 또는 그 점수를 득점(得點), 목적을 달성함을 득달(得達), 참여할 수 있게 됨을 득참(得參),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도를 깨달음을 득도(得道), 바라던 것이 뜻대로 됨 또는 뜻을 이룸을 득지(得志),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남의 말이나 행동을 잘 알아차려 이해함을 납득(納得), 얻어 내거나 얻어 가짐을 획득(獲得),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어떤 자격을 취하여 얻음을 취득(取得),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아내는 것을 터득(攄得), 물건을 주워서 얻음을 습득(拾得),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뜻한 것을 이루어 뽐내는 기색이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만(得意滿滿),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롱망촉(得隴望蜀), 얻은 도끼나 잃은 도끼나 매일반이라는 뜻으로 얻고 잃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득부실부(得斧失斧), 얻은 것으로는 그 잃은 것을 메워 채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손해가 됨을 일컫는 말을 득불보실(得不補失), 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득일망십(得一忘十),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썼던 사물을 잊어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어망전(得魚忘筌), 득실이 상반한다는 뜻으로 이로움과 해로움이 서로 마찬가지임을 일컫는 말을 득실상반(得失相半),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우쭐거리며 뽐냄을 일컫는 말을 득의양양(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서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 참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면(得意滿面), 좋은 때를 얻으면 태만함이 없이 근면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을 득시무태(得時無怠),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좋은 기회를 일컫는 말을 득의지추(得意之秋), 부모의 뜻에 들고 부모의 뜻에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득친순친(得親順親), 그 뜻을 펼 수가 있음 또는 그 뜻을 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득신기정(得伸其情),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를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여자가 친척 아닌 남자를 일컫는 말을 외간남자(外間男子), 오륜의 하나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는 친애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부자유친(父子有親), 효자는 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될 수 있는 한 오래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여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효자애일(孝子愛日), 풀잎 끝의 이슬 같은 천자라는 뜻으로 덧없는 대장으로 강도의 수령을 뜻하여 일컫는 말을 초두천자(草頭天子),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