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에게 화두를 타가지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가면 아무 병폐가 없는 것이여.
‘유(有)’니 ‘무(無)’니,
‘이 선지식은 이렇게 말씀허시고 저 선지식은 저렇게
말씀허시고 그러니 어떤 것이 옳으냐, 마냐?’ 허고
여기 가서 물어보고 저기 가서 물어보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해서 공연히 분별심을 내가지고 자기 선지식으로부터 지도받은 고대로 해나가지를 않고 공연히 이리저리 따져보고 의심하고 분별심을 내고 거기에서 화두에
병은 생기는 것이다 그 말이여.
오늘 아침 들은 법문도 옳게 들으며는,
그러헌 분별 내지 아니하고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나가라고 이렇게
자세히 법문 허신 것이지 여기에 나오는 열 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허신 거 그것을 낱낱이 무슨 듣고 외아서(외워서) 따지라고 허신 법문이 아니다 그 말이여.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다못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이 돈발을 해서 꽉 맥혀가지고 맥힌 그 의심 하나만이 현전을 헌다고허며는 그 사람은 법문을 참 옳게 들은 것이고, 그렇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사리상량을 붙여서 따지고 이런다며는 그것은 법문을 옳게 들은
사람이 못되는 것이여.
화두는 의심이라,
자기가 과거에 경을 보았거나 또는 어떠헌 법문을
들었거나,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 그러헌 지식, 교리,
상식, 그러헌 것을 동원을 해가지고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생각해보고, 이리 분석하고 저렇게 종합허고
이래가지고서 그런 것으로 살림을 삼고,
또 이 선지식한테 가서 법문을 듣고 가서 이러쿵저러쿵, 저 선지식한테 들은 것과 비교해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이런 식으로 공부를 삼는다고 허며는
그 공부는 미륵불이 하생(下生)헐 때까지 공부를 해도
점점 중생의 알음알이만 더 조장이 될 뿐
깨달음이라고 허는 것은 영원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이여.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