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5일 우리나라 태권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홍희 선생이 평양에서 숨을 거뒀다.그는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최홍희가 태권도의 창시자로 기록되어 있다.
최홍희의 고향은 함경도이다. 어려서 택견을 배웠고 일본에 유학하여 가라데 2단자격을 얻었다. 그는 가라데와 택견의 기술에 만주권법등에서 새로운 발차기 기법을 도입하여 태권도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는 1953년 제1훈련소 제주도 모슬포에 29사단 창설임무를 맡게 된다.29사단은 익크부대.주먹사단.태권사단으로 불렸다. 최홍희 장군이 장병들에게 최초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경례구호도 태,권,으로 외치게 했기 때문이다.
1954년 명칭제정위원회를 만들어 당수도.공수도.태수도.태권도등에서 태권도로 통일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태권도 휘호를 받았다. 한국의 태권도 역사는 제주도에서 최홍희장군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군인이었던 최홍희 장군이 예편하고 1966년 국제 태권도 연맹 (ITF)을 설립하였다. 60년대 말 월남파병이 시작되면서 군대내에 의무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게 하였으며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하였다. 1973년 국기원이 건립되고 한국 태권도는 한국 고유의 무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밉보인 최홍희는 캐나다로 망명하였다.1973년 최홍희가 캐나다로 가서 ITF 본거지를 토론토로 옮기자 대한태권도 협회는 세계태권도 연맹 WTF를 창립하였다. 한국인제자 양성을 하고자 하는 최홍희에게 김일성으로 부터 섭외가 들어 왔다.
그는 북한으로 가서 ITF 태권도 제자들을 양성하고 공산권 국가에 태권도를 보급하였다. 그 후로 최홍희는 친북세력으로 낙인찍혀 국내에 입국하지 못한채 2002년 숨을 거둔다. 그는 남북이 통일되려면 먼저 ITF와 WIF가 통합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남한에서는 스포츠 외교의 달인인 김운용의 노력으로 1988년 태권도가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메달종목이 되었다. 현재 WTF에는 18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약 680만명의 유단자가 배출되었다. ITF에는 현재 102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태권도는 한류열풍의 뿌리 역할을 크게 하고 있다.
태권도가 일본 무술 가라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면 가라데는 어디에서 유래 되었을까? 바로 오끼나와테 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끼나와의 맨손 무술 오끼나와테는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제주도에서 전해진 것이다.
고려의 무인들은 수박희를 통하여 선발하였다. 그 중 에서도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들인 삼별초는 수박희의 달인으로 일당백의 무술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당시 세계 최강인 몽골군과 고려의 정예병을 상대로 강화도.진도.제주도로 옮기며 항전을 계속하였다.
역사에서는 항파두리 전투의 패전으로 삼별초의 반란군은 완전 소멸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삼별초 집단은 여.몽 연합군에 맞서 싸울 승산이 없자 모슬포에 배를 대고 오끼나와로 집단 망명한다. 그전까지 문명이 없던 섬은 고려 삼별초 집단의 망명으로 새로운 해상강국 유구국이 출현하게 된다.
유구국 슈리성에서 출토된 기와를 보면 진도 용장산성의 기와와 똑같고 청자를 굽던 가마터도 발견되었다. 삼별초 집단들이 오끼나와에서 가르친 맨손무술이 오끼나와테로 변형되고 열도로 건너가 가라데라는 이름의 일본무술이 된다.
우리 태권도는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고 가라데는 우리 전통무술 수박희의 영향으로 이루어 졌다.노르웨이에서 한국 무술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은 여름마다 한국을 찾아 온다.
태권도의 뿌리인 수벽.수박희를 체험하기 위해 대원사를 찾는다. 육태안 선생이 우리 전통무예인 수벽의 전수자이기 때문이다.
근대 태권도의 발상지는 제주도 서궈포시 대정읍 상모리 2820번지 29사단 자리이다. 그리고 고려 삼별초가 오끼나와로 떠난 곳도 모슬포 포구이다.
이제라도 제주가 한국 태권도의 발상지라는 역사를 알리고 국제 학술세미나도 열어서 학술적인 점검을 받기를 바란다.
사진 1번 김일성 주석의 초청으로 북한으로간 최홍희
사진 2번 을밀대앞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는 최홍희
사진 3번 진도 용장산성 출토기와와 오키나와 출토기와가 모두 고려장인의 작품이다.
사진 4번 삼별초는 항파두리전투에서 승산이 없자 오키나와로 집단 망명하였다. 그들은 해상 무역으로 새로운 문명국가를 수립하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