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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뒤흔든 R군의 로맨스
-프롤로그-
"오라버니!"
"들어가, 얼른."
"…오라버니!!"
또 악몽을 꾸었다.
이마가 땀에 흥건이 젖었다.
오빠가 끌려가는 꿈.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들고 오빠를 후려치면서,
오빠를 끌고가던 그 우악스러운 손길이 생각나자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 은호였다.
오빠는 경성에서 이름난 수재였다. 당연히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자식이었다.
처음 오빠가 독립투사가 된다고 하였을때 말리지않았던 것이 그땐 얼마나 후회스러웠던지.
벌써 2년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끌려간지. 집안의 기둥이었던 오빠의 부재에 오늘도 한숨만 나왔다.
"후..."
새벽의 거리, 집 앞에 쭈구리고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울지말고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으라던 오빠의 말이 생각나서 울수도 없었다.
"하아-"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후 은호가 고개를 빼꼼히 들기 시작할때,
와락- 그녀의 손목을 잡아끄는 무엇! 놀러 소리를 지를뻔 하였지만, 곧 누군가의 손이 은호의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분명, 이건 사내의 품에 안긴게 분명하다!
와락, 은호를 끌어당겨 안아버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진 못하였으나,
떡벌어진 어깨와 가까이서 들리는 거센 숨소리를 보아하니 분명 남자일 것이다.
순간 두려움을 느낀 은호가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다.
"잠깐만. 진정해봐."
나즈막하게 말하며 남자가 은호의 입에서 손을 뗐다.
"지…지금…"
"쉿."
'쉿'이란 말에, 그만 입을 꾹 다물어버린 은호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길거리, 일본순사 여러명이 골목을 헤매고있는 것이 보였다.
슬쩍 그 중 한명과 눈이 마주치고 만 은호는 눈을 동그랗게뜨며, 숨이 멎을 듯 놀라다가
곧 일본순사가 사라지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갔어?"
"…아…네…."
남자의 물음은 곧 '일본순사'를 일컫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독립투사? 순간 은호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기…쫓기신…"
이제 품에서 놓아줄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껴안는 두 손을 놓지 않았다.
남자와는 손목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은호로써는 상당히 불편한 자세였다.
벗어나려고 몸을 뒤척일때, 그가 주머니에 손을 놓고 부스럭 부스럭 거리더니 뭔가를 꺼냈다.
"착한 숙녀분께 드리는 선물.
보다시피 난 쫓기는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놈이니까 오늘일은 쉿- 잊어줘."
거칠어진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을때쯤, 은호에 손에 쥐어지는 자그만한 만년필.
그리고 그의 쉿-이란 말에 다시한번 숨이 멎어들 것만 같이 떨리고 있는 가슴.
매력적인 목소리로 은호의 귓가에 대고 말하던 그는
곧 은호를 품에서 떼어내자 마자 그 얼굴을 보일새도 없이 골목 맞은편을 향해
달려나갔다. 은호는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그가 끌려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부디 그가 무사하기를.
-1-
반듯하게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 멋진 수트차림에 럭셔리 실크 행거치프.
맥고모자를 쓰고, 당시 경성까지 주름잡은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꼈던
명품 로이드 뿔테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는 그,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는지 웃으며
한쪽눈을 찡긋- 윙크를 해보인다.
이정도면 여자들이 모두 뻑가겠지 하는 자만한 얼굴.
"죽이는 군."
감히 여자들이 '넘보지 않을 수 없는' 탁월한 외모에, 말쑥한 식사의 그,
자칭 타칭 경성 최고의 스캔들메이커이자, 모던보이, 조금 더 보태 경성의 황태자, 류 한 되시겠다.
*
"너, 이 새끼, 일어나!!"
조선인 출신 일본순사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강이를 보는 은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강이의 앞을 막아서서, 순사의 눈을 또렷이 노려보는 은호.
"저리 안비켜? 이년이!"
순사의 큼지막한 손이 은호의 왼쪽 뺨을 붉게 물들였다.
"이 새끼랑 연루되서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 썩 비켜!
대 일본제국의 순사인 내 앞을 막아서는 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더러운 꼴 보고싶지 않으면 썩 비키란 말이야!!"
찍, 길바닥에 침을 갈기고서 순사라는 그가 사납게 두 눈을 두릅떴다.
은호는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강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강한 척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은호역시 악명높은 그 순사를 알고있었기에 떨림을 완전히 감출순 없었다.
"오호. 이 년 이제보니...."
그가 은호의 턱을 손에 쥐며, 음흉하게 웃었다. 은호는 그 시선이 싫은지,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손에 힘을
세게주며, 은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있는 것이었다.
"이 손 놔, 이 나쁜놈아!"
은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에게 욕을 내뱉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다시 그 큼지막한 손이 은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탁. 감히 순사의 손목을 잡아채버린 남자.
순사는 그를 보더니 곧 거북한 낯빛을 띄었고, 한은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죄 없는 사람에게까지 이럴 필욘 없는것 같습니다, 김순사님."
한의 말에 김순사는 아니꼽다는 듯 한을 쳐다볼뿐, 아무말도 대꾸하지 못한채 다른 순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경찰서로 연행해."
그 순사는 다시 침을 찍- 내뱉으며 한을 흘기며 사라지자, 은호는 안타깝게 강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강이를 끌고가는 순사들의 손을 보며, 은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은호를 조롱하는 듯 웃으며 순사가 사라지고 있었다.
은호는 순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강이가 결국 종로경찰서로 끌려가고 있었다. 제 오빠처럼...2년전, 오빠가 끌려가고있는
모습을 두 손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때처럼, 강이가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손을 뻗어 은호를 일으켜세웠다.
"고맙습..."
은호는 인사를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 남자의 얼굴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경성에서 내로라하는 집 아들로써, 경성에선 말그대로 '개망나니'로 통하는 자였다,
공공연하게 뒤에서 쑥덕쑥덕 그 집을 흉보는 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친일행위를 하고 있단다.
고리대금업에 불법으로 토지를 사들이는 것도 모잘라 친일행위까지….
"…왜 인사를 하다말어. 별로 고맙지 않나?"
한은 뭔가 잔뜩 불만이라는 듯 말했다.
그 악독한 순사부장에게서 그녀를 벗어나게끔 한 건, 류 한이라는 남자의 든든한 집안배경과
그동안의 친일행위에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하니 고맙다고 말이 나올리 없었다.
물론, 그의 집안이 친일파인지, 그가 친일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걸 떠나고서라도 경성 최고의 망나니 모던보이로 소문이 자자한 상태였다.
인텔리이면서도, 번든한 직장없이 돈을 흥청망청 쓰고다니며, 여자들이나 울리고 다니는 개
망나니일뿐이라고.
종로서며 조선총독부 관리들에게 매달 바치는 뇌물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까지라는 이야기
를 들은 적도 있었다.
(소문으론 경성에 내로라하는 백화점들이 모두 류하명-류한의 아버지-의 소유라고도 했고,
어린아이가 울다가도 '류하명'이라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 할만큼 경성에선 알아주는 자였다.)
어쨌든 은호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은호가 가장 증오하는 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봐. 날 모르나?"
"...."
"아, 나같은 개망나니는 상종하기 싫다?"
그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있다는 듯이 은호와 눈을 맞추려 무릎을 반쯤
굽히고 물었다. 막상 그가 그렇게 물어오자 "예" 라고 대답하기가 껄끄러워 말을 삼갔다.
"…그만 갈길 가세요. 전 바쁜…"
"어딜가는건데. 급한거면 태워다줄게."
"됐습니다."
번쩍이는 차를 타고 다닌다더니, 정말 그랬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서양식 옷차림의 그는 정말이지 말그대로 '모던보이'였다.
맥고모자에 화려한 수트빨! 최신 유행하는 명품 로이드 뿔테안경!
경성에서도 모던걸 모던보이들의 근거지로 유명한 진고개(명동)에서 조차도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이자, 모던보이, 유행의 선두주자인 그였으니 알만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차고 넘치는 '자신감', 너무 과해 '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에게 잘난 외모와 번듯한 집안만 있었다면 결코 경성을 주름잡는 모던보이가 되긴 어려웠
을 것이다.
"거참 당돌한 아가씨던데? 위험에 처할뻔 했어. 아까 그 순사부장, 성격이 장난이 아니거든.
아마 몇분 더 버텼다간 아주 작살이 났을걸?"
"지금 제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제가 보기엔 남걱정할 입장은 못되는 것 같..."
"하긴."
눈웃음을 살살 치는 것도 모잘라, 여자를 홀리는 재주가 아주 남달라 보여 은호는 경계하는 눈빛을
풀지않은채 그를 멀리했다.
일제식민지하에서 본인들에겐 화려하지만 남들보기엔 방탕하기만 한,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십상이었고, 그들을 좋게 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시기하거나 그들처럼 살수없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분노를 그런식으로 표현한건지도.)
모던보이, 모던걸들의 내면속엔 어떠한 상처도, 꿈도 없을 거라는 건 어쩌면 착각일런지도 모르지만,
류 한이라는 자를 보아하니, 그 꼴이 방탕한 것이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자 첨 봤어."
"비웃는겁니까?"
"알긴 알아? 그 옷 엄청 촌스러운거. 누가 아직까지 그런 뒤떨어진 옷을 입고다니냔 말야.
고운 자태를 뽑낼 수 있는 맵시있는 한복도 있구만. 차라리 그런걸…."
"이봐요!"
은호도 안다. 경성 길거리에, 이렇게 검은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거. 그래도 요즘 시대에 도포자락 휘날리며 갓을 쓴 어르신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은호는 고리타분한다 할지 모르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모던보이인 류 한이 보기엔 충분히 최악이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근대문물이 쏟아져들어오고있어, 너도나도 양옷을 입고, 양음료를 마신다는 것쯤은 안다.
허나, 아직도 전통적 여성상에 더 근접한 은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양 문물로 치장을 한 그에 눈에는 은호가 촌스러워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여러 부류의 여자 다 만나봤지만 넌 좀 특별한 것 같군."
은호가 따져물으려던 그때, 한이 은호에게 바짝 다가서며, 은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 순간, 낯선 남자와 거리가 너무나 가까워진 탓에 알수없는 거부감이 들어 흠칫 물러섰
다. (남자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느낀것은 처음이었다. 나름의 충격이랄까.)
"첫눈에 반했다면, 믿겠어?"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에게 빠져들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겠냐만은,
은호는 치마를 꼭 쥐며, 화를 삭히고 있었다.
'이런 정신빠진 놈을 봤나!' 조국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이때에
여자들에게 사정없이 유혹의 말을 날리는 한심한 작자일 뿐이었다, 은호의 눈에 그는.
"목숨은 귀중한거야, 몸 좀 사리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은호에게 말하고서 윙크를 하더니 사라졌다.
*
지친몸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고 있을때, 자신의 팔목을 붙드는 영숙의 손에 의해 은호가 멈춰섰다.
"큰일났어! 수경이가…수경이가…!"
영숙의 말에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한강은 많은 사람들의 투신장소였다.
인도교가 들어선 후, 자유연애가 만연해진 조선땅에서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이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한 한강이었다.
그런 한강에서 수경이 투신을 했다니. 어째서 왜….
"수경아."
간신히 구해진 수경은 살아있다고만 짐작할 정도로 어렵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영숙에게 캐묻자, 요즘 수경이 '못된 놈'을 만나 된통 당했단다.
여자 후리는 재주가 남달랐더랬다. 생긴것도 기생오라비 처럼 생긴게, 기방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든단다.
수경은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몇달째 고생중이라 했다.
순수하고 여린 수경에게 닥친 첫사랑으로 수경이 앓았을 가슴앓이를 생각하니 딱하기 그지
없었다. 친구로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수경을 투신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자의 이름이 뭐래?"
"이름은 모르고, '매향관'에서 방금 그 남자와 만났다가 바로 한강으로 와서 투신 했다고…."
"뭐 더 아는거 없어?"
"어쩌려구?"
"그 자식 찾아내야지! 사과받고 말거야! 나쁜놈..."
"은호야, 참아, 나중에 수경이 깨어나면 그때...."
영숙의 그 말을 끝으로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은호가 매향관으로 향했다.
당장 그 자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한강으로 끌고와 수경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도록 할 것이다.
"무슨 일이시죠? 잘못 찾아온듯 싶은데요. 여긴 한복집이 아니라, 기방입니다."
남자의 말에 은호가 씩씩거리며 남자를 쏘아보더니, 그를 획 밀치고 매향관 안으로 들어갔다.
은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기며 '뭐야, 이 차림은.' 하는 시선쯤은 익숙하다지만,
한복집이 아니라 기방이라는 남자의 놀림투에 잠시 발끈했다.
그를 붙들고 한바탕 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수경을 그렇게 만든 놈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
었다.매향관으로 무작정 들어간 은호가 큰 방문을 열어제꼈다.
"뭐야, 너."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넓은 방 안에 술상을 차려놓은채 혼자 앉아있었다.
"나 만나러 온건가? 나한텐 관심 없는 척 하더니, 역시 관심이 있었군 그래."
그의 말에 은호는 기가막혀 방 문을 닫아버렸다.
천하의 한량, 류 한이 어디가겠는가. 초저녁부터 기방을 들락날락 거리는게 일이겠지.
옆방 문을 열려고 손을 뻗치던 은호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시죠? 거긴 제 손님이 계신 방인데요. 방 문을 함부러 여시는건 곤란합니다."
여자의 날카롭고 자신감 넘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은호가 고개를 돌렸다.
한 눈에 봐도 매혹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서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클로슈를 쓴 여자의
고운 얼굴은 화장이 덧입혀져 더욱 더 세련되고 아름답게 보였으며,
그녀의 당당한 걸음걸이에 은호는 기가 죽을 뻔했다.
"전 사람을 찾으러…."
재빨리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은호, 그때, 옆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류 한이 걸어나왔다.
그 여인을 아는 듯, 류 한이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미자, 여기서 보는 군."
"약속이 있어서. 그럼 난 이만."
미자가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은호는 류 한과는 볼일이 없다는 듯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방 제대로 찾았어. 나 류 한을 찾아왔다면. 들어가자구."
은호의 손을 무작정 잡아끌고 방안으로 밀어넣은 한이었다.
은호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그를 쏘아보았다.
"뭐 하는 짓입니까!"
"튕길거없어. 나만나러 온거면 잘왔어. 어차피 시간도 조금 남았는데..."
"착각 그만 하십쇼! 하, 그러고보니 제가 찾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군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것이 기방을 제 집 드나들듯 드나들고, 여자 후리는 재주가 남다른 자'
이니 말입니다."
한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상상이상, 기대이상이었다. 봐도 봐도 이 여자라면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날아
든 순간, 한이 어딘가를 한대 얻어맞은 듯, 이 신선한 충격에서 잠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앞으로 걸리지 않고 몸 조심하십쇼! 죽는 수가 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어 한의 눈 앞에 대고 휘두르며 은호가 말하고는 씩씩거리며 방을 나가려고
하다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진짜로 저 작자일 수도 있었다.
왜 그는 용의선상에서 빼놓고 생각했을까. 기생오라비처럼 생긴게,
여자들이나 홀리고 다니는 한심한 놈, 딱 류 한에게 어울리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은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류 한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민망하게끔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는 은호의 시선.
"뭐야. 이제야 내 조각같은 외모가 눈에 들어오시나보지?"
한의 말에 그제서야 시선을 거둔 은호였다. 한 번을 진지할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시도때도 없는 농담에, 헛소리만 주절주절.
한이 어깨를 쫙 펴며 손가락으로 눈 , 코, 입을 순서대로 가리켰다.
"총기가 흐르는 눈에 오똑한 코, 섹시한 입술까지. 이만하면 번듯하잖아."
"죽고 싶으십니까?"
은호는 진심이었다. 이런 방탕한 자와 얼굴을 마주대고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한심한 작자같으니! 은호의 '죽고싶으십니까?' 라는 위협에도 뭐가 재미있는지 실없이 웃고있는 한을 보고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정강이를 걷어차 주고 싶지만, 지금은 '확인'이 필요했다.
"혹시 이수경이라고 아십니까?"
"알지~ 너도 수경일 알아? 네가 어떻게?"
한의 물음의 은호가 주먹을 다시 쥐었다. 역시, 혹시나 했던게 이 자가 맞았다.
뻔뻔스럽게 수경일 투신하도록 몰아넣고 저는 기방에나 들락거린다?
"그 입 닥치시고 내 말 똑똑히 들으십시오."
은호가 잔뜩 화난 얼굴로 인상을 팍 쓰며 한의 멱살을 잡아챌 것 같이 한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
1편은 좀 짧습니다.^^
고 3이라서
성실연재는 못할것같습니다,
끈기...가 필요하실거예요 ㅠㅠ
첫댓글 잘읽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재밌네요
와-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