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123180484
5일에 마음에 이끌려 현충원 다녀왔는데요
지나가다가 묘비가 두개 인 걸 보고 가서 봤는데
형제분들께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셨더군요.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73년 만에 만난 19살·21살 형제의 넋...‘호국의 형제’ 안장식 거행
형의 이야기
故 최상락 하사는 1929년 4월,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6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상락 하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한 든든한 아들이었다.
최 하사는 광복 이후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 속에서, 1949년 2월, 부산에 있는 제5연대에 자진 입대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와 이별하면서도, 자유로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 전선으로 이동하여 ‘울진-영해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동해안 최대의 병참기지인 경북 포항을 사수하기 위해 ‘영덕-포항전투’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을 벌이던 중에 1950년 8월, 21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동생의 이야기
故 최임락 일병은 1931년 1월, 셋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산에 살던 외당숙의 식당에서 일을 배우며 집안을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형의 뒤를 따라 1950년 8월, 부산에서 입대 후 미 제7사단 카투사로 배치되어 일본 요코하마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인천과 서울 등을 수복하고 북진 작전에 합류했다. 북한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해 ‘장진호 전투’에 참전 중, 안타깝게도 1950년 12월, 19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故 최임락 일병은 긴 세월 동안 북한지역에 잠들어 있던 중, 1995년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인계됐다. 이후 한·미 양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올해 7월 대한민국 공군 특별기를 타고 F-35A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현역 군인인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의 품에 안겨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https://www.emozak.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10761
* 호국의 형제 안장 사례
- 1호 : '11. 6. 6. / 국립서울현충원 / 故 이만우(형) 하사와 故 이천우(동생) 이등중사
- 2호 : '15. 6. 4. / 국립서울현충원 / 故 강영만(형) 하사와 故 강영안(동생) 이등상사
- 3호 : '23. 6. 6. / 국립서울현충원 / 故 김봉학(형) 일병과 故 김성학(동생) 일병
- 4호 : '23. 6. 28. / 국립제주호국원 / 故 허창호(형) 하사와 故 허창식(동생) 하사
- 5호 : '23. 11. 23. / 국립대전현충원 / 故 최상락(형) 하사와 故 최임락(동생) 일병
첫댓글 꽃 같은 나이에…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참군인
헉 ㅠ 너무 어린 나이에 두 분 다 .. 잊지않겠습니다
너무 어려.. 나이들이 너무 어리고 안타깝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 눈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