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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8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행복을 찾는 열 가지 방법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 하고 싶어 합니다. 행복이라는 말의 행(幸)자는 ‘다행 행’자라고 합니다. 이 글자는 본시 ‘좋은 운’이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행' 이라는 한글을 영문으로 잘못 치면 무엇이 나오는지 아시나요? ‘god’ 가 나옵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우리의 행복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겨줄 것이고 우리 자신을 당신 자신처럼 존경하고 사랑해주길 바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행복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고난을 견디기도 하며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복을 쉽게 잡을 수도 없고, 쉽게 도달할 수도 없는 지고지난(至高至難)의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이 저 멀리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OECD 35개국 중에서 행복지수가 31위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행복을 멀게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10계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면 행복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행복을 차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철저한 반성으로 냉정하게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반성을 자주하다 보면 자신을 구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자주 구박하다보면 심약해져서 소심해지고 자신을 궁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런 때는 지난 잘못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냉정하게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2.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살자는 것입니다. 남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남에게 눈치를 보듯이 스스로를 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환상에 취해서 가면을 쓴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우울해지고 가장 슬퍼질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3. 매일 매일 '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주자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그만큼 나에게 행복의 씨앗을 뿌려주어야 합니다. 행복이 그냥 하늘에서 비 쏟아지듯 내리지 않습니다. 내가 농작물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듯이 매일 자신에게 긍정적인 사랑의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4. 단 5분이라도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통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눈을 감고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속의 진실 된 감정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느꼈을 때 비로소 행복의 참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5. 내 운명은 내 스스로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이다.' 라는 말은 행복에 직결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과 성공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이외의 부분은 내 마음에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어제까지 운명이었다면 오늘부터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6.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최고의 방법은 감사입니다. 모든 고통은 부정적으로 보는 불만족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명예가 많아도 그것이 즐겁지 않으면 길거리에 있는 거지보다도 삶이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할 것이 진정으로 없다면,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해보는 겁니다. 찾다보면 무수하게 많을 겁니다.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고 원망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7. 저항하고 싸우기보다는 수용하고 화해하자는 것입니다. 싸워서 잘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면 그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되고 그것은 나의 카르마가 됩니다. 결국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볼 때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마음을 볼 때도 괴롭히기보다는 충분히 이해하고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평온함과 지혜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8. 모든 선택의 기준을 행복에 둬야 합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가장 현명하고 행복하게 사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 기준이 돈, 명예, 권력, 집착의 사랑 등이 된다면 결국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위의 것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고 좋아하면 할수록 욕심만 많아져서 우리를 괴롭히게 됩니다. 행복에 기준을 두는 삶은 올바른 명예, 권력, 돈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이로운 방법으로 잘 활용하리라 생각합니다.
9. 나를 믿고 빠른 선택을 하고 당장 실행에 옮기자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믿었으면 그것을 그대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 선택을 믿고 당장 행복으로 옮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춤거리고 불신하는 순간 내 마음은 혼란과 방황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신중한건 좋지만 어차피 결정이나 고민은 짧게는 3초면 이미 결판이 납니다.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지금의 기회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믿음과 확신이 강해집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10. 과거와 미래를 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자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면 회한이 밀려옵니다. "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 미래를 보면 " 아, 막막하고 두렵다 " 물론 과거를 거울삼아 긍정적으로 보고 미래를 희망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제일 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순간이라는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할일은 오늘 해야 한다. 잠시 귀찮고 두렵다고 해서 도망가거나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상처받을 것이 있다면 상처를 받고 욕먹을 것이 있다면 욕을 먹어주는 겁니다. 그래야 이월이 되지 않고 다시 털어 버리고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4ㄴ-9.15-17
4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축일2월 8일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Josephine Bakhita)
신분 : 수녀
활동 연도 : 1869-1947년
같은 이름 : 요셉피나, 조세피나, 조세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a Bakhita)는 1869년 아프리카 수단(Sudan)의 다르푸르(Darfur)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9살쯤 아랍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고통스런 청소년기를 보냈다. ‘바키타’라는 이름도 노예상인들이 지어준 것으로 ‘행운’이란 뜻이다. 이름과는 달리 그녀는 수단 중부 엘오베이드(El Obeid)와 현 수도(首都)인 카르툼(Khartoum)의 노예시장에서 팔리고 또 팔리는 신세가 되어 모진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1883년 이탈리아 공사(公使) 칼리스토 레냐니(Callisto Legnani)에게 팔리면서 그녀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처음으로 욕설이나 매질이 아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그녀는 그 후 공사의 친구인 아우구스토 미치엘리(Augusto Michieli) 가족에게 보내졌고, 1885년 미치엘리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그 가족의 유모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미치엘리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자신의 큰딸과 유모인 성녀 바키타를 베네치아(Venezia)에 있는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맡겼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세상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1890년 1월 9일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상징으로 요세피나라는 세례명을 정했다. 그리고 1893년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입회하여 3년 뒤인 1896년 12월 8일 첫 서원을 했다. 그 후 남은 50년의 생애를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Vicenza)에 있는 시호(Schio)라는 곳에서 카노사(Canossa)의 수녀로서 또 하느님의 겸손한 딸로서 살았다.
그녀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고, 어떠한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행하며,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데 온힘을 다 쏟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흑인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말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1947년 2월 8일 선종하였다. 그녀가 선종하자 그녀의 덕행을 기억하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의 겸손과 높은 덕행으로 인해 선종 12년 후부터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1978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역시 그녀의 영웅적인 덕행을 인정했다. 그녀는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10월 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녀에 대한 아프리카 교회의 현양 열기와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꽃’으로 불리고 있으며 수단의 수호성녀로서 존경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세피나 바키타 (Josephine Bakhit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