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당산 무청
십이월 둘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아침 기온은 여전히 빙점 부근이라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등굣길에 올랐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는 타고 창원역 앞으로 나가 근교 농촌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출발지에서 타면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어 시간 여유를 두고 기점으로 가면 마음이 편하다. 미니버스에는 얼굴을 익혀둔 기사와 출근길 몇 승객과 함께 도계동을 지났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동읍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지났다. 올봄부터 자주 지나간 곳이라 눈을 감고 있어도 어디쯤인지 짐작된다. 주 한두 차례는 진영으로 가는 국도나 본포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때로는 열차로 진영 한림정으로 나가 들녘과 강둑을 걸었다. 이번에는 1번 마을버스 종점이 가까운 상리까지 갈 생각이라 내가 마지막 손님이 되어 내리지 않을까 생각 들었다.
일반산업단지를 지난 가술에서 한 할머니가 타고 모산리와 제1 수산교를 지났다. 좀 전 탔던 할머니와 함께 종점을 앞둔 상리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당연히 현지 주민일 테고 나는 이방인이었다. 두어 차례 지나쳐 지형지물이 익은 골목길을 지나 구름 사이 일출 기운이 비치는 들녘이 바라보인 찻길로 나왔다. 본포에서 강변 따라 내려가는 지방도인데 차량이 다니질 않아 한산했다.
상리마을은 평리마을로 이어져 송정으로 가는 길로 들었다. 저지대 논은 연근을 경작해 캐지 않은 상태로 잎줄기는 시든 채였다. 농부가 외국인 청년 셋을 데리고 연밭 위로 그물이 될 바둑판 같은 줄을 치려고 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농부와 인사를 나누고 무슨 작업이신가 여쭸더니 오리가 날아와 연근을 파먹지 못하도록 막는 중이라 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두 가지 알게 되었다.
연밭은 물을 채워두었는데 겨울 추위에 빙판이 되어도 땅속은 깊이 얼지 않아 김치냉장고와 같은 원리였다. 연근을 이미 캐 시장에 내다 판 농가가 있는가 하면 겨울을 넘겨 내년 봄으로 늦춰 캐기도 했다. 일을 돕는 청년들은 베트남에서 왔을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일꾼도 다수인데 캄보디아 청년이 더 순진하고 고분고분 따라 쓴다고 했다.
농부와 헤어져 구산마을로 가는 들머리는 죽동천 물길이 시작되어 아득하게 흘렀다. 대산 들녘 여름 농사는 본포 양수장에서 퍼 올린 낙동강 강물이 죽동천으로 보태지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경우는 죽동천은 냇물이 불어나 들녘을 꿰뚫고 흘러 북부리와 유청 배수장에서 낙동강으로 넘겨 보내졌다. 길고 긴 천변에 조경수로 심어둔 산수유나무에는 붉게 익은 열매들이 보였다.
구산마을 입구에서 죽동당산 앞으로 갔다. 마을 뒤 기괴스럽게 구멍이 뚫린 바위는 장군바위라고도 불렸다. 옛적 남아선호 시절 아들을 점지해 주십사고 그 구멍으로 돌을 던져넣던 성혈 설화 현장이다. 다른 한 가지는 지리산 계곡에서 전하는 우투리설화 변형으로 바위 구멍에서 투구를 쓴 아기 장수가 나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고 주남저수지에 빠져 생을 마친 이야기가 전해 왔다.
죽동당산에서 길게 이어진 농로를 따라 걸으니 좌우는 온통 사계절 비닐하우스였다. 물방울이 서려 내부가 보이지 않아도 겨울에도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따내는 듯했다. 들녘 어디쯤 빈 이랑에 배춧잎과 무청이 헝클어져 있었다. 버려진 농사 부산물이라 발품을 판만큼 손길을 움직여 시드는 무청을 몇 가닥 주워 봉지에 채워 들고 대방을 지나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거쳐 가술로 갔다.
대산면 행정복지센터와 농협 아파트단지가 가까운 공원에는 인부들이 CCTV 설치 작업을 했다. 행정 관서에는 어린이공원 아이들 안전을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고 했다. 쉼터에서 아까 손에 들고 왔던 무청을 가려 놓고 인근 식장으로 가서 추어탕을 시켜 점심을 때웠다. 식후 펼쳐 놓았던 무청을 수습해 놓고 오후에는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고 해가 저물기 전 시내로 들어왔다. 2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