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2-5)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① 전에 살던 집 근처에 탁구장이 있어서 가끔씩 가서 운동 삼아 재미 삼아 치곤했었는데 그곳에는 탁구를 교습하는 코치가 오전반 한 명, 오후반 두 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후반 코치 두 사람의 가르치는 방법이 서로 좀 달랐어요! 한 사람은 여자였는데 그야말로 교본대로 가르쳐요! 처음부터 기본에 충실하게 잘 가르쳐요! 그런데 문제는 제멋대로 오랫동안 탁구를 쳐서 잘못된 폼이 굳어진 사람은 그 폼을 고쳐주려고 하다보니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서로 힘든 거예요!
② 그런데 다른 한 남자 코치는 초보자의 경우는 교본대로 원칙에 따라 가르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좀 구력이 오래 돼서 잘못된 폼이 굳어진 사람의 경우는 그 굳어진 폼대로 치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좀 더 잘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그 남자 코치가 좀 더 지혜롭게 가르친다고 판단했어요!
③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면 ‘완전’과 ‘온전’의 차이를 말씀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완전’은 원칙대로예요! 원칙대로 하면 완전하게 되는 거예요! 반면 ‘온전’은 본래대로 다른 말로는 생긴 대로인 거예요! 그래서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요!
④ 오늘 본몬 말씀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이신 거예요! 할렐루야!
⑤ 첫인류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어요! 완전한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죠!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죄를 지었어요!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삶의 법칙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게 되었어요! 앞서 탁구 이야기를 했는데 잘못된 폼으로 인해서 공 줍느라 힘들고 더 이상 발전을 못해요!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죄에 빠진 사람들을 본래대로 회복시키셨어요! 아멘!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편한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게 하세요! 할렐루야!
⑥ 본문 말씀 마태복음 11장 2절 이하를 보면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2-5) 아멘!
⑦ 말씀의 상황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어요!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여기의 요한은 세례요한인데 지금 옥에 갇혀 있어요! 세례요한은 당시에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 왕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은 것을 세례요한이 크게 질타하자 왕 헤롯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옥에 가두었어요! 그런 가운데 세례요한이 옥에서 예수님의 하신 일들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소문이 자기가 생각해온 메시야의 모습이 아닌 거예요!
⑧ 물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거예요! 그 때 세례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저에게 세례 받으러 오셨습니까?”하고 황송해했어요!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있으면서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가 오셔서 조국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하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윗왕 때처럼 강한 나라를 만드실 것으로 생각한 거예요!
⑨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은 고작 병자들을 고쳐주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어 당신의 정체를 물어보게 했어요! 3절에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이실진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하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윗 왕 때처럼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드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과연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분이 맞습니까?’
⑩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어요! 4절 이하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 아멘! 사실 동문서답이었어요!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 “당신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곧 왕이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다!”라고 대답하신 거예요!
⑪ 세례요한마저도 예수님을 단지 한 국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셨다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더 근본적이고 더 큰 인간 본연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어요!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로마의 압제하에서 구해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간 전체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거예요! 아멘!
⑫ 예수님의 대답을 다시 보면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아멘! 맹인이 보게 되고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되고 나병환자 곧 문둥병자가 깨끗이 낫게 되고 못 듣는 자가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⑬ 여러분, 당연히 있어야 할 눈이 그 기능을 잃어버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까요? 우리 정상인은 그 고통을 결코 알 수 없어요! 당연히 있어야 할 다리가 그 기능을 잃어버려 도무지 걷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은 과연 얼마나 클까요? 당연히 있어야 할 귀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그 또한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어요! 그리고 마침내 죽은 자는 아무 것도 아니죠!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⑭ 문둥병, 온 몸의 살이 문드러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은데 지금은 나병 혹은 한센병이라고 하죠! 한센병의 병폐는 첫째, 사람을 부정하게 해요! 신체적으로 도무지 깨끗할 수가 없어요! 둘째, 신체를 파괴해요! 말 그대로 문드러지는 거죠! 여러분, 두부를 손으로 만지면 어떻게 되죠? 결국은 부스러지고 없어져요! 셋째, 신체 일부분에서 몸 전체로 퍼져요! 넷째, 다른 사람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져요! 참으로 무서운 병이죠!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 잘 고칠 수 있다고 해요!
⑮ 아무튼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들인데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기적이 덜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요? 과학의 발전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많아지니까 믿음이 작아져요! 그리고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의술이 발달하다 보니까 인간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게 되고 또 그것이 직업화되다 보니까 경제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보니까 하나님도 그러한 기적을 덜 허락하시는 것 같아요!
⑯ 그래서 말씀인데 이제는 본문의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을 해요! 눈이 있어도 진실을 보지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나병에 걸린 듯 부정하고 남과 소통할 수 없는 담을 쌓는 삶을 살고 귀가 있어도 진리에 귀 닫는 삶을 살고 그래서 결국 죽었어요!
⑰ 그런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순간 진실을 보게 되고 바른 길을 걷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게 되고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살아나는 그리고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⑱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한 크리스찬 외과 의사가 가난한 동네의 한 아이가 다리 하나를 못 쓰고 힘들게 우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가여워서 그 다리를 고쳐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도 그 부모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참 큰 보람을 느꼈어요!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동네를 다시 찾게 된 의사가 이제는 청년이 된 그 아이의 부모를 만났는데 참 어이없는 불행한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⑲ 그 다리 고침받은 아이가 폭력배가 되어서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듣게 된 말이 “그냥 지체 장애로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을!” 여러분, 무슨 뜻일까요! 제대로 못 걷는 아이가 다리를 고침 받은 것은 복음임에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더 근본적인 복음은 그 아이가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⑳ 결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어요! 그러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 사람됨이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이고 그분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때 자기도 행복하게 살게 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㉑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은 물론이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지 못해요! 그러다보면 자기는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모두가 불행해지고 말아요! 그래서 인간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셨다는 거예요! 아멘!
㉒ 복음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거에요! 앞날을 내다보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복음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 되기를 원하노라.” 아멘! 복음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말씀이에요!
㉓ 사도요한도 같은 복음을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아멘! 사도바울과 사도요한이 서로 만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같은 말씀을 하고 계세요! 복음이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㉔덴마크는 프러시아 전쟁에서 패한 후 옥토를 빼앗기고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줘 완전히 망한 나라였어요! 매일 술만 마시다 길바닥에 엎드려 죽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때 그룬투비 목사가 3개의 모토를 가지고 국민 운동을 일으켰어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흙 사랑, 그렇게 해서 덴마크는 지상 천국이 되었어요! 예수님의 온전케 하시는 은혜 때문이에요!
㉕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고 우리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어요! 예수님을 잘 믿음으로 온전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여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