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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제73회-2
송강은 철면공목 배선을 불러,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군령장 두 장을 쓰게 하고 각자 서명했다. 송강이 서명한 군령장은 이규가 갖고, 이규가 서명한 군령장은 송강이 가졌다. 이규가 또 말했다.
“그 젊은 놈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시진일 것이다.”
시진이 말했다.
“나도 같이 가지.”
이규가 말했다.
“네가 안 간다 해도 상관없다. 만약 그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네가 시(柴)대관인이든 미(米)대관인이든 내 도끼 맛을 보게 될 거다.”
시진이 말했다.
“그것도 괜찮겠지. 네가 먼저 가서 기다려라. 만약 우리가 먼저 가면, 또 우리가 무슨 수작을 꾸몄다고 의심할까 염려된다.”
이규가 말했다.
“그렇군.”
이규가 연청을 불러 말했다.
“우리 둘이서 먼저 가자고. 만약 저들이 오지 않으면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그때는 돌아와서 끝장내 버리면 돼.”
연청은 이규와 함께 다시 유태공의 장원으로 갔다. 유태공이 맞이하며 물었다.
“호걸들께서 가신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규가 말했다.
“지금 내가 송강을 이리로 오게 했으니, 그자가 맞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어르신 내외분과 하인들도 모두 자세히 확인해 보십시오. 만약 그자가 맞으면 바로 사실대로 말해 주십시오. 그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때 하인이 와서 알렸다.
“10여 명의 말을 탄 사람들이 장원에 당도했습니다.”
이규가 말했다.
“바로 그자요. 다른 사람들은 한켠에 있게 하고, 송강과 시진만 들여보내시오.”
송강과 시진이 초당으로 와서 자리에 앉아, 이규는 도끼를 들고 옆에 섰다. 노인이 맞다고 하면 곧바로 손을 쓰려는 것이었다. 유태공이 송강에게 인사를 하자, 이규가 노인에게 물었다.
“이 자가 따님을 강탈해 간 자가 맞습니까?”
노인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송강이 이규에게 말했다.
“자, 이제 어떡할 거냐?”
이규가 말했다.
“니네들 둘이서 째려보니까 노인이 두려워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거잖아.”
송강이 말했다.
“그럼 장원에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서 확인시켜 봐라.”
이규는 즉시 장원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확인을 시켰는데,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송강이 말했다.
“유태공! 저는 양산박의 송강이고, 이 형제는 시진입니다. 댁의 따님은 제 이름을 거짓으로 빌린 놈이 속여서 빼앗아 간 겁니다. 만약 소식을 알게 되면, 산채로 와서 알려주십시오.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송강이 이규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너하고 말하지 않겠다. 산채로 돌아가서 따져 보자.”
송강과 시진은 일행과 함께 먼저 산채로 돌아갔다.
연청이 이규에게 말했다.
“형님! 어쩔 겁니까?”
이규가 말했다.
“내가 성질이 급해서 잘못했나 봐. 기왕 머리를 바치겠다고 했으니, 내가 머리를 잘라 줄 테니 연형이 가지고 가서 형님께 바치게.”
“이만한 일로 죽을 것까지는 없잖아요? 제가 한 가지 방도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른바 ‘회초리를 지고 죄를 청한다.’는 방법입니다.”
“회초리를 진다는 게 무슨 말인가?”
“웃통을 벗고 밧줄로 몸을 묶은 다음 가시나무 회초리 한 묶음을 등에 지고서, 충의당 앞에 엎드려 ‘형님! 마음껏 때려 주십시오.’ 하고 비는 겁니다. 그러면 형님도 차마 어쩌지 못하고 용서해 줄 겁니다.”
“좋은 방도이긴 한데, 창피한 노릇이니 차라리 머리를 잘라 바치는 것이 깨끗하겠네.”
“산채에는 모두 우리 형제들뿐인데, 누가 비웃겠습니까?”
이규는 다른 방도가 없어, 할 수 없이 죄를 청하기 위해 연청과 함께 산채로 돌아갔다.
한편, 송강과 시진은 먼저 산채로 돌아와 충의당에서 여러 형제들과 이규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 흑선풍 이규가 웃통을 벗은 채 가시나무 회초리 한 묶음을 등에 지고 와서, 충의당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야! 시커먼 놈아! 회초리는 왜 지고 있냐? 그런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규가 말했다.
“아우가 잘못했습니다. 큰 몽둥이를 골라 몇 십대라도 때려 주십시오!”
“나는 너랑 머리 자르기 내기를 했는데, 회초리를 지고 와서 어쩌겠다는 거냐?”
“형님이 정 저를 살려두지 않으시겠다면, 칼로 머리를 자르십시오. 할 수 없죠.”
여러 두령들이 이규를 대신해 용서를 빌자, 송강이 말했다.
“네가 살고 싶으면, 그 가짜 송강 두 놈을 잡고 유태공의 딸을 찾아서 돌려줘라. 그러면 널 살려 주마.”
이규는 그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가서, 독 안에 든 자라를 잡듯이 그놈들을 잡아오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놈들은 두 명이고 말도 가지고 있는데, 너 혼자 가면 그놈들에게 접근하기도 어려울 거다. 다시 연청과 함께 가도록 해라.”
연청이 말했다.
“기꺼이 가겠습니다.”
연청은 방으로 가서 석궁과 키만큼 긴 봉을 들고 나와 이규와 함께 다시 유태공의 장원으로 갔다. 연청이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묻자, 유태공이 말했다.
“그자들은 해가 저물 무렵에 와서 자정쯤에 갔는데,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감히 뒤쫓아 가지도 못했습니다. 우두머리는 체구가 왜소하고 얼굴이 검고 여위었으며, 다른 자는 체격이 크고 수염은 짧고 눈이 컸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이 유태공에게 말했다.
“태공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저희들이 따님을 찾아오겠습니다. 우리 송공명 형님이 저희들에게 따님을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어찌 그 명을 어기겠습니까?”
마른 고기를 굽고 떡을 찌게 해서, 각기 봇짐을 싸서 등에 메고 유태공의 장원을 나선 두 사람은, 먼저 북쪽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북쪽으로 가면서 보니 황량하고 외진 곳이라 인가도 없었다. 이틀을 걸었는데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또 이틀을 걸어 능주 고당의 경계까지 갔는데,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규는 초조하고 열이 났다.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또 이틀을 걸었는데,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산기슭에 있는 사당에 들어가 제사상 위에서 잠을 잤다. 이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제사상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때 사당 바깥에서 사람이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규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니, 한 사내가 박도를 들고 사당 뒤편의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규는 그 뒤를 따라갔다. 연청도 소리를 듣고 석궁과 봉을 들고 이규를 따라가며 말했다.
“형님! 쫓아가지 마시오! 제게 방도가 있습니다.”
그날 밤은 달빛이 희미했다. 연청이 봉을 이규에게 건네주고 바라보니,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연청은 뒤따라가면서 석궁에 화살을 메겨 쏘면서 속으로 빌었다.
“언제나 내 뜻대로 된 화살아! 이번에도 내 뜻을 어기지 마라.”
화살은 사내의 다리에 명중했고, 사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규가 달려가서 사내의 멱살을 잡고 사당으로 끌고 와서 물었다.
“네 이놈! 유태공의 딸을 빼앗아 어디로 끌고 갔느냐?”
사내가 말했다.
“호걸님! 소인은 그런 일 모릅니다. 유태공의 딸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소인은 그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사소한 재물을 털었을 뿐입니다. 남의 집 딸을 빼앗아가는 그런 큰일을 어찌 감히 저지르겠습니까?”
이규는 사내를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도끼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놈을 스무 토막 내 버릴 것이다!”
사내가 소리쳤다.
“일단 소인을 앉혀 주시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연청이 말했다.
“좋다! 우선 화살부터 뽑아 주지.”
연청은 화살을 뽑아 주고 사내를 앉힌 다음에 물었다.
“유태공의 딸을 어떤 놈이 빼앗아갔느냐? 너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풍문이라도 들었을 것 아니냐?”
사내가 말했다.
“짚이는 데는 있는데, 진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서북쪽으로 15리쯤 가면 우두산이 있는데, 산 위에 오래된 도관이 하나 있습니다. 근래에 새로 두 강도가 도관을 점거했는데, 한 놈은 왕강이라 하고 또 한 놈은 동해라고 합니다. 두 놈 다 산속에서 도적질하던 놈들인데, 도사와 도동들을 모두 죽이고 대여섯 명의 졸개들과 함께 도관을 점거하고서 민가를 약탈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송강이라고 칭한다니까, 아마 그놈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연청이 말했다.
“그 말이 그럴듯하군. 이봐! 우리를 무서워하지 마. 나는 양산박의 낭자 연청이고 이 사람은 흑선풍 이규야. 자네 화살 상처를 치료해 줄 테니까,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 주게.”
사내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청은 박도를 찾아서 돌려주고, 상처를 싸매 주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연청과 이규는 사내를 부축하여 15리쯤 가니 산이 하나 보였다. 크게 높지는 않았는데 과연 소머리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산에 올랐을 때에는 아직 날이 밝기 전이었다. 산정에 올라가 살펴보니, 주위가 흙담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20여 칸의 방이 있었다. 이규가 말했다.
“내가 먼저 담을 넘어 들어갈게.”
연청이 말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규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담을 뛰어 넘어 들어갔다. 그때 안에서 고함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박도를 휘두르며 이규에게 달려들었다. 연청은 일이 실패할까 염려되어 봉을 들고 담을 넘어갔다. 그 사이에 화살을 맞았던 사내는 한 줄기 연기처럼 달아나 버렸다.
연청은 뛰쳐나온 사내가 이규와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몰래 다가가서 봉으로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사내가 이규 앞으로 쓰러지자, 이규는 도끼로 사내의 등을 찍어 쓰러뜨렸다.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연청이 말했다.
“놈들이 필시 뒷길로 달아났을 겁니다. 나는 뒷문을 막을 테니, 형님은 앞문을 지키시오. 함부로 뛰어들지 말고.”
연청은 뒷문 쪽으로 가서 담장 아래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그때 방의 뒷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열쇠를 가지고 나와 뒷대문을 열려고 하였다. 연청이 뛰쳐나가자, 사내가 보고 처마 밑을 돌아 앞문 쪽으로 달아났다. 연청이 소리쳤다.
“앞문 막아!”
그 소리를 듣고 이규가 달려들어 도끼로 사내의 가슴을 쪼개 버렸다. 이규는 두 사내의 머리를 잘라 한데 묶었다. 이규는 성질이 폭발해서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몇 놈이 부엌으로 도망갔지만, 이규가 한번에 하나씩 모두 도끼로 내리쳐 죽여 버렸다. 어떤 방에 들어가 보니, 과연 한 여인이 침상 위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구름 같은 머리칼을 지닌 미려한 여인이었다. 연청이 물었다.
“유태공의 따님이시오?”
여인이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10여 일 전에 두 도적에게 붙잡혀 왔는데, 밤마다 두 놈이 번갈아 가며 저를 욕보였습니다. 저는 밤낮으로 울면서 지냈는데, 죽으려고 해도 감시가 심해서 죽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구해 주시니, 부모님이 다시 낳아주신 것과 같습니다.”
“저놈들에게 말이 두 필 있었다는데, 어디 있습니까?”
“동쪽 방에 있을 겁니다.”
연청은 말을 찾아 안장을 얹어 끌고 나왔다. 방안에 있는 금은과 재물을 수습하니 약 4~5천 냥이 되었다. 연청은 여인을 말에 태우고, 금은을 싼 보자기와 머리 두 개를 다른 말에 실었다. 이규는 마른 풀을 묶어서 불을 붙여 집 사방에 불을 질렀다. 두 사람은 여인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 곧장 유태공의 장원으로 갔다.
유태공 부부는 딸을 보자 너무나 기뻐하면서 두 사람에게 절을 했다. 연청이 말했다.
“저희들에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산채로 오셔서 우리 송공명 형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십시오.”
두 사람은 술과 음식도 마다하고 말을 타고 산채로 돌아갔다. 산채에 당도하자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세 관문을 지나 금은과 사람머리를 실은 말을 끌고 충의당으로 가서 송강에게 절을 했다. 연청이 지난 일을 자세히 얘기하자, 송강은 크게 기뻐하였다. 사람머리는 땅에 묻게 하고 금은은 거두어 창고에 넣고, 말은 외양간으로 보냈다.
다음 날, 연회를 열어 연청과 이규를 축하하였다. 유태공이 금은을 가지고 산채로 와서 충의당 앞에서 송강에게 절을 했다. 송강은 금은을 받지 않고, 유태공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서 장원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 후로 양산박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봄이 되었다. 하루는 송강이 충의당에 앉아 있는데, 관문들 지키던 졸개들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고 와서 말했다.
“한 무리의 소떼 같은 자들을 붙잡았는데, 7~8대의 수레에 봉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송강이 보니, 다들 표범 같은 체격을 지닌 덩치가 큰 사내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들은 봉상부에서 태안주로 향을 사르러 가는 길입니다. 3월 28일은 천제성제(天齊聖帝)의 탄신일인데, 저희들은 모두 봉술 시합에 나가려고 합니다. 사흘 동안 수백 번의 시합이 벌어집니다. 금년에는 유명한 씨름꾼도 한 사람 나오는데, 그는 태원부 사람으로 임원이라 합니다. 키가 10척이나 되어 스스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경천주(擎天柱)’라고 합니다. 그는 늘 ‘씨름으로는 세상에 내 적수가 없다. 내가 천하제일이다.’라고 큰소리칩니다.
그는 2년 동안 시합에 나섰지만 적수가 없어서, 시합도 않고 상을 탔다고 합니다. 금년에도 방을 붙여 놓고 도전자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소인들이 거기 가려는 것은, 첫째는 향을 사르고, 둘째는 임원의 실력을 구경하고, 셋째는 봉술도 배우고자 함입니다. 대왕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송강이 듣고 나서 소두목을 불러 말했다.
“이 사람들을 산 아래로 빨리 보내주고, 털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해라. 앞으로 향을 사르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놀라게 하지 말고 보내주도록 해라.”
그 사람들은 감사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그때 연청이 일어나 송강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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