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고인돌(지석묘)
고창에는 80 여곳에 2,000기 이상의 고인돌
고창 읍성에서 선운사 가는 길에 고인돌 군락
커다란 돌덩어리의 용도를 모르던 시절,
주민들이 내다 버린 돌만 500개가 넘는다
<BC 10세기 전후 ~ 청동기시대까지> 축조
규모가 큰 것은 300톤에 달한다고 한다.
죽림리, 상갑리, 도산리 일대 6개 탐방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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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사적 제391호 고창지석묘군(高敞支石墓群) 지석묘란 선사시대., 고인돌 무덤
고창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 1.8㎞
야산 기슭에 있는 440여기의 고인돌
기원전 400년∼500년경 이 지역 족장들의 가족무덤
당시 농사 짓기 좋은 이 지역에 터를 잡았던 것 같다.
바둑판 모양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각종 형식을 갖추고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아는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아산면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남쪽 한계선으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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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전세계 7만기 중 우리나라에 3만기
우리나라 고인돌 밀집지역은 고창, 화순, 강화
고창은 남방식·북방식·개석식 등 2천여 기 분포
화순에 500기 남방식, 강화도에120기 북방식 분포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돌덩이 여러 개 운반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
소 한마리에서 소 열마리., 무계의 돌들
또는 수십마리 소를 합친 만큼 큰 고인돌.
고래잡이 종족이 아니면 운반이 불가할듯.
제 4빙하기 후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143m 상승
저지대가 바다로 바뀌자 삶의 터전을 잃은 민족들.
'서해 남해 동해' 속에 잠긴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탈출.
빙하가 급속도로 녹아 흐르며 해수면이 급상승.
하룻밤 자고나면, 수십리씩 물속에 잠긴 저지대.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대홍수 무렵인듯 싶다.
지석묘군은 저지대 민족이 남긴, 흔적들.
큰 고인돌일수록, 강력한 부족 집단임을 과시.
저지대 민족을 모두 다 수용하기에 좁은 한반도.
저지대 민족들은 살길을 찾아 전 세계로 흩어진듯.
탈출 중 진로가 막혀 섬에 갇히기도 했고
정착한 섬이 통째로 물에 잠기기도 했던듯.
하여, 서해와 남해 앞바다 섬속에도 지석묘군.
대홍수가 일어나며 천재지변이 발생.
인류가 예전에 겪어본적 없던 대재앙.
그 무렵 민간신앙이 싻튼듯 추정된다.
인류가 거대한 돌 구조물을 남긴 이유는,
아마도 그곳에 영험한 힘이 깃들여 있다는
옛사람들의 민간신앙이 깃들어있기 때문일듯.
첫댓글 고인돌도 보시고 공룡이 발자국도 보시고,넘겁게 보내신거 같아서 보기 넘 좋아요^^
한에 한번씩 여행다니는 4 친구앞으로도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건강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엔 지금처럼만 지내신다면 건강이 더욱더 좋아지실꺼라 생각됩니당^^근데 요즘 술 안하시죠 ^^
술의 유혹을 절제할 자신이 없어.,3.18 산사모 시산제에 신청 못하는 이 마음보고싶은 후배들 많지만 늘 신경써줘서 고마워..(감동의 눈물)..^^.
저도 이런 여행 좀 다녀야할텐데..
나도 깡 후배 나이로 돌아갔으면..
좋은곳 갔다오셨네요,,,^^
삼천포 산악회..후배들이 있어서리..들렀어요..겸사겸사~~*
고창은 내 고향인데....... 좋은 여행하고 오셨네요....^^
송창식 노래 ‘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바람불어 설움날에 말이예요/동백을 보신적이 있나요/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말이예요.” //그곳 핏빛 상사화 가득 필 무렵에 한번 더 갈 계획입니다. 참 좋아서요. 그리고, 목포까지 려가야 하겠지요 ^^.
<<산행정보 추천란.,글번호 599>> .......지리산 이야기 - (고인돌. 임자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참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