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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64번째 무료강의 시작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 중 제1탄 1대 단군왕검 ~ 10대 노을단군님까지 업적에 대하여 설명
■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64번째 주 내용: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 중 제1탄 1대 단군왕검(檀君王儉) ~ 10대 노을(魯乙)단군님까지 업적에 대하여 설명
■ 일자: 신축년(辛丑年) 단기 4354년 서기 2021.5.6.목요일.(음력 3.25.)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정정당당한 미래를 위해 우리 젊은 후손들에게 대홍익역사(大弘益歷史)배움터와 천지학당(天地學闛)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힘찬하루 보내세요.
제11마당 설명 중 64번째 무료강의 시작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단군님의 업적에 대하여(제1탄)
아아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의 국사책에 보면 단군조선의 위대한 47대까지의 역사와 북부여의 6대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세계역사를 통하여 증명이 되는데 기가차는 것은 딱 단군왕검 이라는 4글자뿐이라는 것이다. 아아 아래에 세계역사 속에서 위대한 인물과 전쟁 등이 일어난 것을 올리오니 우리나라의 국사책을 새로 정립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이 역사 속에서 우리의 위대한 업적 등을 배우므로 해서 나라를 힘차게 또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주장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곧 역사의 위대함을 알아야 대응, 대책, 방책을 세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곧 역사 속에는 위대한 업적 등이 있다 이러한 것을 가르치고 알아야 과거의 업적 등을 기초로 하여 현재를 미래를 올바르게 판단과 결정을 하여 앞으로의 대응책과 방책 등을 세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즉 신명나게 일할 줄도 알고 신명나게 놀 줄도 아는 민족이다. 이러한 위대한 문화와 풍속과 역사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모두가 47대까지 단군의 역사가 있었기에 신명나는 문화를 즉 아픔을 딛고 실패를 딛고 새로운 용기와 도전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조상님을 기리는 설날과 추석의 명절이 있으며 이러한 신명문화(神明文化)외에 홍익인간정신의 얼을 우리들 가슴에 심어 놓았다고 봅니다.
세계역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와 그 전에 한웅국(桓雄國)=환웅국=배달국(倍達國)=신시국(神市國)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이집트 고대역사는 다음과 같다.
■ BC 7000년~BC 5000년에는 이집트의 나일강문명이 태동하였다. ≪ 이러한 시대는 우리나라의 한인국(桓因國)=환인국 시대이다. ≫
■ BC 3500년에는 이집트인의 시간과 달력을 사용했다. ≪ 우리나라 역사로는 5대 한웅(환웅)시대에 복희씨가 한역(桓易)=환역=희역(羲易)을 만든 시대이다. ≫
■ BC 3300년에는 미라(시신을 썩지 않게함)를 만들었다. ≪ 우리나라 역사로는 제7대 거련(居連)한웅(환웅)시대이다. ≫
■ BC 3200년에는 상고시대가 시작되었다.
■ BC 3200년에는 이집트문자 히에로글리프를 사용하였다. ≪ 우리나라 역사로는 8대 한웅(환웅)시대에 염제신농씨의 시대이다. ≫
■ BC 3150년에는 메네스 라는 파라오=임금이 이집트 왕국을 통일하여 다스렸다.
이때에 이집트의 왕을 태양의 아들이란 뜻으로 파라오(Pharaoh)라고 했다.
■ BC 2700년에는 고왕국시대가 시작되었다.
■ BC 2650년에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 우리나라 한웅국=환웅국역사로는 총 18대 중 14대 치우천왕 시대이다. 중국역사로는 사마천 사기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황제헌원 시대이다. ≫
■ BC 2500년에는 스핑크스를 만들었다. ≪ 이러한 때에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16대 축다리(祝多利)한웅(환웅)시대이며 재위는 BC 2509년~BC 2453년이며 재위기간은 56년간 하였다. ≫
곧 이집트의 역사는 복희씨(伏羲氏: BC 3528년~BC 3413년)의 역사보다 그전에 세계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 나일강의 문명이 일어났다.
다시 말하여 BC 2650년에 이집트역사에서 세계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피라미드 라는 파라오=왕의 묘를 만들었다.
곧 이집트역사로 이때는 BC 2650년이다. 이러한 시대는 한웅(환웅)시대의 14대 치우천왕시대(BC 2774년~BC 2598년)이다. 그리고 중국역사로는 사마천 사기에서 처음으로 나라를 시작하고 있는 황제헌원 시대이다.
그리고 이집트의 파라오의 묘의 수호신인 즉 피라미드의 수호신인 스핑크스는 BC 2500년에 만들었다.
곧 사마천 사기에서는 황제헌원부터 역사가 시작한다. 곧 포희씨=복희씨는 황제헌원보다 836년 전의 역사이며 5대 한웅(桓雄)=환웅시대의 역사이며 복희씨=포희씨가 서거하고 황제헌원보다 526년 전에 8대 한웅(환웅)시대인 염제신농씨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이후 14대 치우천왕시대가 먼저 나라를 다스리고 동시대에 황제헌원의 역사가 같은 시대에 시작되고 있다.
≪ 제14대 자오지(慈烏支)한웅=치우천왕은 신시(백악산)에서 청구국(靑邱國: 지금의 중국 산동반도)으로 도읍을 옮김. 재위는 BC 2707년~ BC 2598년이며 곧 재위는 109년간이며 151세 까지 사셨다. 청구국(靑邱國)은 14대 치우천왕의 국호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웅국=환웅국의 총 18대 역사가 지나서 단군조선의 역사인 초대 단군왕검이 단군조선 이라는 나라를 이어가게 되어 47대로 막을 내리고 해모수(解慕潄)가 북부여를 일으키고 북부여의 역사는 6대로 이어가고 이어서 고구려가 이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홍익인간정신의 얼을 가지고 고구려의 위대한 역사를 세웠다. ≫
곧 이집트의 고대 역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고대사인 한웅국(桓雄國)=환웅국시대에 역경(易經) 즉 주역의 시조이신 복희씨와 의약의 시조이신 염제신농씨 등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 염제신농씨의 아버지가 소전(少典)이며 이 소전의 후손이 공손씨이며 이 공손씨의 후손이 바로 황제헌원이다. 사마천 사기에서 황제헌원은 신농씨의 뒤를 이었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
상기와 같이 이집트의 역사가 있었기에 이를 통하여 한웅국=환웅국=배달국=신시국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고 있다.
한웅=환웅의 역사를 이어받은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업적을 올리옵니다.
곧 이 단군조선의 47대 역사를 거쳐야 북부여의 6대 역사가 나오며 이러한 후에 고구려의 역사가 나온다.
왜 47대까지 단군조선의 역사와 6대까지 북부여의 역사가 중요하냐 하면 이러한 동안에 세계역사를 보면
■ 이집트 역사에서 고왕국시대의 종말시대가 BC 2150년 이라고 나오며 ≪ BC 2150년 이때는 제3대 가륵(嘉勒)단군 재위 33년이다. ≫
■ 하나라 멸망이 BC 1766년 이라고 나오며 ≪ BC 1766년 이때는 13대 흘달단군 재위 17년이다. ≫
■ 바빌로니아 왕국 역사에 함무라비 법전이 BC 175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750년경 이때는 제13대 단군이신 흘달(屹達)=대음달(代音達)단군 재위 33년이다. ≫
■ 트로이전쟁이 BC 130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300년경 이때는 중국역사로는 은(殷)나라 무정(武丁)왕 시대이며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제21대 소태(蘇台)단군 재위 36년이다. ≫
■ 모세와 여호와 약속한 구약성서가 BC 1290년경 이라고 나오며 ≪ BC 1290년경 이때는 21대 소태단군 재위 48년이다. ≫
■ 은나라 멸망이 BC 1122년 이라고 나오며 ≪ BC 1122년 이때는 25대 솔나(率那)단군이신 재위 29년이다. ≫
■ 공자(孔子)가 BC 551년에 노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나오며 ≪ BC 551년 이때는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제38대 다물(多勿)단군 재위 40년이다. ≫
■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나오며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며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신 알렉산더대왕이 BC 336년 이라고 나오며 ≪ BC 336년 이때는 제46대 단군이신 보을(普乙)단군 재위 6년이다. ≫
■ 1차 포에니전쟁이 BC 264년 이라고 나오며 ≪ BC 264년 이때는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 재위 32년이다. ≫
■ 주나라 멸망이 BC 249년 이라고 나오며 ≪ BC 249년 이때는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 재위 47년이다. ≫
■ 초나라 항우가 BC 232년에 탄생이 나오며 ≪ BC 232년 이때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재위 8년이다. ≫
■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BC 221년 이라고 나오며 ≪ BC 221년 이때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재위 19년이다. ≫
■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BC 202년에 한고조가 되었다고 나오며 ≪ BC 202년 이때는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 재위 38년이다. ≫
■ 3차 포에니전쟁이 끝났는 것은 BC 146년이다. ≪ 이때는 북부여 3대 고해사(高奚斯)단제(임금) 재위 24년이다. ≫
■ 전한 한무제가 BC 108년에 번한조선(番韓朝鮮)을 침범하여 즉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하여 위만조선 이라 하고 위만조선의 손자 우거왕을 멸하였다고 사마천 사기 130권 중 55권 조선열전과 우리나라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 때 저술한 단기고사(檀奇古史)에 나온다. ≪ BC 108년 이때는 북부여 4대 고우루(高于婁) 재위 13년이다. 곧 BC 108년에 고두막한=동명왕(東明王)=동명단제=동명성왕이 한나라가 북부여를 침략하자 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동명왕 이라 하고 한나라를 물리치고 BC 86년에 북부여의 5대를 이어갔다. ≫
◉ 로마는 후일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의 양아들=아우구투스 황제가 됨)의 승리로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자살을 하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코브라 독뱀에게 가슴에 물리게 하여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때는 BC 30년이다. 결국 이집트는 망하고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 BC 30년 이때는 중국역사로는 전한 11대 효성제(孝成帝) 유오(劉驁) 재위 3년이며 우리나라 역사로는 북부여 마지막 6대 고무서가 BC 58년 10월에 운명하고 그의 유명으로 BC 58년 10월에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난 뒤 곧 BC 30년 이때는 고구려의 고주몽 재위 29년이다. ≫
이 단군의 역사와 북부여의 역사는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 세계역사에서 상기와 같이 나오므로 단군의 47대역사와 북부여의 6대역사는 아주 주요합니다.
그리고 이 북부여의 6대 역사를 거쳐야 고주몽의 고구려 역사가 BC 58년 10월에 탄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단군의 업적 등의 글을 올리옵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우리나라의 삼국을 건국한 위대한 임금을 황당무계(荒唐無稽)하게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기록은 역사를 농락한 짓으로 왜놈의 짓인지 아니면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인지를 반드시 밝혀야 하며 이러한 역사의 대범죄를 영구히 물어야 한다.
곧 상기 세계역사에서는 수 백년 수 천년 전의 역사에서도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기록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삼국사기에서 괴상스럽게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기록은 역사를 농락하는 처사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으로 왜놈의 잘못인지 우리나라의 김부식이 잘못했는지를 영구히 그 역사의 대범죄를 물어야 한다.
기가차는 것은 이 삼국사기의 원본은 우리나라에는 없고 2차 사본이 일본에 있다.
좌우간(左右間)=자우간(自又間)에 이 왜곡 날조된 또 단군조선의 47대 역사도 북부여의 6대 역사도 언급을 못하고 있는 이 삼국사기의 잘못된 알에서 태어났다는 황당무계한 해독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삼국사기에서 괴상하게 임금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고구려 건국연도를 BC 37년이라고 한 기준을 삼을 수가 없다. 진정한 고구려 건국연도는 BC 58년이 맞는 역사다. 좌우간에 누구의 잘못인지를 밝혀서 빠른시일내에 올바른 역사를 세워야 한다.
만약에 괴광사관=식민사관관들이 반성을 않하면 능지처참해야 하며 반성을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 나라를 매국당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므로 반성을 하면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아래에 단군의 47대까지 위대한 업적을 알고 새로운 역사관을 세우는데 앞장서야 하며 바로세워서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위대한 우리단군의 얼을 찾아서 가르쳐치는데 힘을 슬기를 모아야 합니다.
▣ 단군조선 역사 1대~47대까지 업적.
➜ 1대 단군왕검(檀君王儉) 시대에 업적 < BC 2333년~BC 2241년 >
■ 단군팔조교(檀君八條敎)를 만들었으며 부모, 하늘, 충성, 효도와 한웅(환웅)의 옛 제도를 이어받았으며 삼한(三韓: 진한조선. 변한조선. 마한조선) 등의 역사가 있다.
■ 참성단(塹城檀)을 만듦
戊午五十一年(무오오십일년): 무오년(戊午年)이며 재위 51년에 즉 BC 2283년에
帝命雲師倍達臣(제명운사배달신): 단제이신 단군께서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設三郞城于穴口(설삼랑성우혈구): 혈구에 즉 지금의 강화도에 삼랑성을 짓게 하고
築祭天檀於摩璃山(축제천단어마리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今塹城檀是也(금참성단시야): 지금의 참성단(塹城檀)이 바로 그것이다.
➜ 2대 부루(扶婁)단군 시대에 업적 < BC 2240년~BC 2183년 >
■ 친상(親喪)에 대한 삼년상(三年喪)의 원조와 국제회의인 도산회의(塗山會議) 등의 역사가 있다.
□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의 친상(親喪)에 대하여
2대 부루단군의 재위기간은 BC 2240년~BC 2182년이며 58년간 재위하였다.
단군세기(檀君世紀)의 역사서에서 말하기를 2대 단군이신 부루(扶婁)단군 때에 임인년(壬寅年)이며 재위 2년인 BC 2239년에 단군께서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은 친상(親喪)을 잘 치루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원문에 기록하기를
先是少連大連 善居喪(선시소련대련 선거상): 이보다 앞서 소련과 대련은 친상을 잘 치루었다.
三日不怠(삼일불태):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에 지극히 애통함을 사흘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三月不懈(삼월불해): 석 달 동안 느슨하지 않았고
朞年悲哀(기년비애): 한 해가 지났을 때까지 슬퍼하고 애통해 하였으며
三年憂(삼년우): 삼년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다.
自是擧俗 停喪五月(자시거속 정상오월): 이때로부터 온통 풍속이 변하여 상을 치름에 5달로 멈추던 것을
以久爲榮(이구위영): 이후로는 오래될수록 영광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此非天下之大聖(차비천하지대성): 이 어찌 천하의 큰 성인이라 하지 않을 것인가!
其能德化之流行(기능덕화지류행): 이렇게 덕으로 교화하면 백성이 이를 따르고 행함이
如是傳垂之速者乎(여시전수지속자호): 마치 우편말의 빠름과 같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二連以孝聞 亦見稱於孔子(이련이효문 역견칭어공자): 소련과 대련은 이렇듯이 효로서 알려졌으니 즉 2대 부루단군으로부터 1688년이 지난 후에 역시 공자도 이를 칭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느슨하지 않았고 3년 동안 서러워했다. 3년상 이것이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소련(少連=小連)과 대련(大連)에 대하여 중국의 각 문헌은 다음과 같다.
■ 사마천(司馬遷)의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세가(世家) 30권 중 17번째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소련(少連)은 처신이 청렴했으며 권도에 맞게 행동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공자가어(孔子家語) 제10권의 곡례자하문(曲禮子夏問)과
■ 논어(論語) 제18편 미자편(微子篇)과
■ 예기(禮記) 제21편 잡기하편(雜記下篇)과
■ 소학(小學) 내편(內篇) 제4편 계고편(稽古篇)의 명륜(明倫)에서 소련과 대련의 비애(悲哀)에 대하여 각각 기록 보존하고 있다.
소학에서 소련과 대련의 기록을 보면
小連 大連 善居喪(소련 대련 선거상): 소련과 대련은 친상을 당하여 잘 처리했다.
三日不怠(삼일불태):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에 사흘 동안 지극히 애통해 함을 늦추지 않았으며
三月不解(삼월불해): 석 달 동안 해이하지 않았으며
期悲哀(기비애): 기년까지 즉 1년 동안 슬퍼하고 애통해 하였으며
三年憂(삼년우): 삼년까지 근심하였다.
東夷之子也(동이지자야): 소련과 대련은 동이족의 아들이다. 즉 단군의 자손이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곧 중국의 이러한 각각의 문헌에 기록한 것을 보면 전부 다가 즉 소련과 대련은 동이족(東夷族)이라고 기록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삼년까지 근심하였다는 등의 글들이 있다는 것은 곧 단군조선의 나라가 분명히 실존해 있었다는 증거들이다.
다시 말한다면 세계역사가 증명하기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설한 시대가 BC 2650년이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단군역사 이전인 한웅국=환웅국=배달국=신시국이며 곧 동이족의 뿌리인 한웅국(桓雄國)=환웅국이 총 18대 중 14대 치우천왕시대이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중국의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서 처음으로 중국나라를 시작하고 있는 황제헌원 시대이다. 곧 우리나라 한웅국(환웅국)의 14대 치우천왕이 나라를 먼저 다스리고 난 후 같은 시대에 중국의 황제헌원이 나라를 열었다.
곧 이집트 역사를 통하여 한웅국=환웅국의 나라가 실존했다는 것이 증명이 되며 그리고 위대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단군조선이 이어받아서 단군왕검으로부터 시작하여 47대까지 나라를 이어왔다는 것을 알고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재조명해봅시다.
특히 2대 부루단군시대에 주요한 역사를 종합적으로 올리고 계속하여 단군의 위대한 업적을 올리옵니다.
□ 2대 부루단군시대에 도산회의에서 도산국과 오나라와 월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단군조선의 제2대 단군이신 즉 부루(扶婁)단군(임금)께서 단조(檀朝)의 태자였을 때에 중화의 우(禹)와 더불어 친하다가 부루(扶婁)께서 보위에 오르니 제2대 단군에 즉위하였다.
중화의 우(禹)도 순임금의 자리를 대신하여 요임금의 나라인 당(唐: 요임금의 나라)나라 왕이 되었다.
제2대 부루단군 재위 2년인 BC 2239년 그 때에 홍수가 9년 동안 천하에 범란하여 중화는 우(禹)가 치수(治水)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彭吳)에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禹)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 BC 2239년은 이집트역사로는 고왕국 제5왕조에 들어서면서 파라오(왕)의 권위는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한 시대다. ≫
부루단군(임금)께서 팽오(彭吳)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禹)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였다.
또한 2대 부루단군시대에 소련(少連=小連)=과 대련(大連)이 친상을 잘 치루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삼년상(三年喪)에 대한 소련(少連=小連)과 대련(大連)의 친상(親喪)이 동양문화에 3년상의 원조의 역사가 되었다.
곧 친상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로부터 시작하여 공자가어(孔子家語) 논어(論語) 예기(禮記) 소학(小學) 등에서도 기록이 되어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연구하고 바로 찾아서 가르쳐야 한다.
제2대 부루(扶婁)단군(단제=임금) 시대에 이 도산회의(塗山會議)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회의이자 최초의 치수법(治水法) 기술이전을 위한 회의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회의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인 도산국(塗山國)에서 열렸다.
도산국(塗山國)은 단군조선에 속한 작은 나라이며 그곳은 동이족(東夷族)의 한 갈래인 회이(淮夷)들이 살던 땅이다.
도산(塗山)은 옛 치우천황(蚩尤天皇)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도산(塗山)은 중국 안휘성(안후이 성: 구글지도 검색 상해=상하이 서쪽) 회남시(淮南市) 북동쪽 방부시(蚌阜市) 서쪽이다.
서경(書經)의 우서(虞書)편에 우임금은 취우도산(娶于塗山) 즉 도산(塗山)=도산국(塗山國) 제후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즉 도산국(塗山國)은 수춘현(壽春縣) 북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사마천 사기 130권 중 본기가 12권이며 이중 2번째 하본기(夏本紀)에서 우(禹)가 도산씨족(塗山氏族)에 장가든 지 나흘 만에 집을 떠나 치수사업을 하다가 아들 계(啓)를 낳았는데도 아들을 귀여워할 틈도 없이 오직 물과 땅을 다스리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왕(禹王)이 동쪽 회계(會稽)에서 별세하자 익(益)에게 넘겨주었으나 삼년상이 끝나자 익은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넘겨주어 하나라 2대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 사기 130권 중 열전이 70권이며 이중 58번째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 수춘(壽春)=수춘현(壽春縣)에 사는 장지(莊芷)라는 사람을 시켜 BC 123년 원삭(元朔: 한무제 3번째 연호) 6년에 이렇게 천자에게 글을 올리도록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통감(東國通鑑)의 신라 문성왕 7년 편에서 말하기를
하(夏)나라는 도산(塗山)=도산씨(塗山氏)=도산국(塗山國) 제후의 딸 덕분에 흥하였고
은(殷)나라는 신씨(㜪氏) 덕분에 번창하였으며
주(周)나라는 포사(褒姒) 때문에 멸망하였고
진(晉)나라는 여희(麗姬) 때문에 어지러워졌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곧 상해=상하이주변 지역인 이 양자강(揚子江)=장강(長江) 쪽에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세워진 곳이다.
사마천 세가(世家) 30권 중 첫 번째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서 중옹(仲雍)과 그의 후손인 우중(虞仲)에 대하여 말하기를
은나라시대에 태왕(太王)인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아들이 3명이 있었다.
첫째아들인 태백(太伯)은 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의 말씀에 3째 아들인 계력(季歷: 문왕의 아버지)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고 즉 태왕(太王)의 둘째 아들이며 태백의 바로 아래 동생인 중옹(仲雍)과 함께 형만(荊蠻)으로 가서 오(吾)나라 태백(太伯)이 되었다. 즉 오태백(吾太伯)이 되었다.
그 후 태백이 아들 없이 별세하자 아래 동생인 중옹(仲雍)이 형 태백을 이어서 오나라의 임금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중옹의 아들이 4대째에 주장(周章)이 오나라의 임금자리에 올랐다.
이때에 주나라 문왕의 아들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무왕이 태백과 중옹의 후손을 찾다가 주장(周章)은 오나라의 군주가 되어 오(吾)나라에 봉했으나 주장의 동생 우중(虞仲)에게는 주나라의 북쪽에 있던 옛 하나라 도읍터에 봉해주고 제후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곧 도산국(塗山國) 주변이 바로 치우천왕의 활동무대였으며 한웅국=환웅국=배달국을 이은 2대 단군이신 부루(扶婁)단군시대에 단군조선에 속하였던 나라 라는 말입니다.
부루단군의 역사는 즉 재위기간은 BC 2240년~BC 2183년이다.
이러한 부루단군시대에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중화의 우임금이 요청한 시기가 바로 부루단군 재위 2년인 BC 2239년이다.
곧 역사에서 오(吳)왕 합려(闔閭)와 월(越)왕 구천(句踐)의 싸움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한배를 탓어도 풍랑을 만나면 원수지간이지만 서로 살길을 찾아야한다. 즉 죽음에 이르면 오직 싸워 이겨야 산다)의 고사성어가 나왔다.
이러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지역이 바로 단군조선의 2대 부루단군시대에 속하였던 도산국(塗山國)의 나라가 먼저 세워졌던 지역들이다.
사마천 세가(世家) 30권 중 11번째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그의 조상이 우임금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회계(會稽)에 봉해져 우임금의 제사를 받들어 지켰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월왕 구천은 마침내 주나라 25대 원왕 4년인 BC 473년에 오왕 부차를 쳤다.
≪ BC 473년은 무진년(戊辰年)이며 단군조선의 41대 음차(音次)단군 재위 19년이다. ≫
오나라는 3번 싸워 3번 패했다.
월나라의 재상 범려가 오왕 부차를 살려주면 않된다고 했다.
범려가 말하기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벌을 받는 법입니다.
오왕 부차가 말하기를 나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오자서를 자결케 했으니 그를 볼 면목이 없구나 하고는 자결하였다. 즉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고소대에 올라가 자결하였다.
사마천 세가 중 첫 번째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합려 15년에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빈상(儐相: 귀한손님 안내)이 되었다.
합려 19년 여름에 오나라 합려가 월나라를 정벌하였으나 월왕 구천의 군사에게 손가락을 크게 다쳐 죽음에 이르자 합려는 태자 부차(夫差)에게 왕으로 세우고는 월나라를 복수해달라고 유언을 남기고는 별세하였다.
부차는 3년 뒤에 월나라에 복수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뒤 월왕 구천에게 오나라는 멸하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130권 중에서 열전(列傳)이 70권이며 이중에서 제5권 째인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오왕 합려는 손자(孫子)=손무(孫武)가 용병에 뛰어난 것을 인정하였고 마침내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단군(檀君)과 기자(奇子: 번한조선을 말함)=번한조선(番韓朝鮮)의 역사를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 때에 저술한 역사서를 단기고사(檀奇古史)라고 한다.
단기고사(檀奇古史) 서문 첫머리에서 저자 대야발(大野勃: 대조영의 동생)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과 설인귀(薛仁貴)가 백제와 고구려 멸망당시 그 국서고(國書庫)를 부수고 단군의 조선사와 고구려사와 백제사를 전부 불태워버린 관계로 다시 고대사(古代史)를 편집하고자 여러 의견과 많은 사기(史記)를 참고하여 그 윤곽을 잡았음을 밝히고 있다.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대진국(大震國) 즉 발해(渤海)의 건국 시조인 대조영(大祚榮=高王)의 아우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해에 널려 있는 사서(史書)를 수집하고 석실(石室)에 있는 장서(藏書)와 옛 비문(碑文)과 역사적 평론을 참고하다가 돌궐국(터키)에까지 두 번 들어가 고적을 탐사하여 의심되는 것은 빼고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여 13년이 걸려 729년 천통(天統) 31년에 완성한 단군의 역사와 기자(奇子)=번한조선의 역사를 저술한 것이 바로 단기고사(檀奇古史)이다. 그 외 대진국=발해 때는 많은 단군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중국에서 현재 요동, 요서지역과 만주지역 등을 모조리 중국역사로 위작(僞作)을 할러고 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이제는 이러한 도산국(塗山國) 등의 역사를 연구하여 대책을 세워야한다. 라고 봅니다.
계속하여 단군의 위대한 업적을 올리옵니다.
➜ 3대 가륵(嘉勒)단군 시대에 업적 < BC 2182년~BC 2138년 45년간 재위함. BC 2150년에 이집트역사로는 고왕국시대의 종말함. >
■ 한인(환인)과 한웅(환웅)의 역사를 기록한 배달유기(倍達留記)와 한글의 근원이 되는 정음삼십팔자(正音三十八字) 즉 가림다문자(加臨多文字)와 천하의 으뜸의 교훈이 되는 가륵조서(嘉勒詔書) 등의 역사가 있다.
■ 배달유기(倍達留記)의 역사서는 그 후 대진국=발해시대에 조대기(朝代記)를 만들었으며 이후 고려말에는 진역유기(震域留記)를 만들었으며 그 후 조선시대에는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저술하였다.
■ 정음삼십팔자=가림다문자는 한글을 만들 때 이를 근거로 하였다.
<제 네이버블로그에는 가림다문자=가림토문자 38자가 올려져있음>
□ 가륵조서(嘉勒詔書)
爲佺九桓(위전구한): 삼대경전 중 참전계경을 위하면 구한(九桓)이 편안해 지고
爲倧盖其道也(위종개기도야): 삼대경전 중 천부경, 삼일신고를 위하면 나라의 바른 도가 다스려지게 됩니다.
이를 일명 가륵조서(嘉勒詔書)라 하며 또한 가륵칙서 라 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欲爲父者 斯父矣(욕위부자 사부의): 대저 그 길은 어버이가 되고자 하면은
어버이답게 하여야 하고
欲爲君者 斯君矣(욕위군자 사군의): 임금이 되고자 하면은
임금답게 하여야 하고
欲爲師者 斯師矣(욕위사자 사사의): 스승이 되고자 하면은
스승답게 하여야 하고
爲子爲臣爲徒者(위자위신위도자): 아들이 되고 신하가 되고 일꾼이 되면은
亦斯子斯臣斯徒矣(역사자사신사도의): 이도 역시 아들답고 신하답고 일꾼다워야 합니다.
이곳에 단군세기보다 먼저 단군의 47대 역사서를 저술한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 가륵조서(嘉勒詔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암(李嵒)선생님의 후손으로 조선 11대 중종 때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선생님이 지은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역사서에서 가륵조서(嘉勒詔書)=가륵칙서(嘉勒勅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天下大本 在於吾心之中一也(천하대본 재어오심지중일야):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은 내 마음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는데 있는 것 이니라.
人失中一 則事無成就(인실중일 즉사무성취): 사람이 중심을 잃으면 곧 일을 성취할 수 없고
物失中一 則體乃傾覆(물실중일 즉체내경복): 물건이 중심을 잃으면 곧 형태가 기울어지고 자빠진다. 즉 흐트러진다.
君心惟危(군심유위): 그러면 임금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衆心惟微(중심유미): 뭇 중생의 마음은 오직 미약할 뿐이다.
全人統均立中 勿失然後(전인통균립중 물실연후): 모든 사람은 중립을 세우고 골고루 거느린 연후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며
乃定于一也(내정우일야): 이러하면 마침내 하나로 평정 되느니라.
惟中惟一之道(유중유일지도): 오직 중정과 하나가 되는 도는 즉 중정과 일체가 되는 도는
爲父當慈(위부당자): 어버이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애로 와야 되고
爲子當孝(위자당효):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를 하여야 하며
爲君當義(위군당의):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정의로 와야 하며
爲臣當忠(위신당충):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스러워야 하며
爲夫婦當相敬(위부부당상경):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여야 하며
爲兄弟當相愛(위형제당상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아껴야 하며
老少當有序(노소당유서): 늙은이와 젊은이는 마땅히 순서가 있어야 하며
朋友當有信(붕우당유신): 친구로서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될 지니라.
➜ 4대 오사구(烏斯丘)단군 시대에 업적 < BC 2137년~BC 2100년 >
■ 신서(神書: 한웅=환웅의 역사서)를 하나라 사람이 가져갔다. 등의 역사가 있다.
■ 신서(神書)
秋八月夏人來(추팔월하인래): 무자년이며 즉 BC 2133년 가을 8월에는 하(夏)나라 사람이 찾아와서
獻方物求神書而去(헌방물구신서이거):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神書: 한웅=환웅의 역사서이며 곧 한웅=환웅의 훌륭한 말씀과 역사서를 물려받은 역사서)를 구해 갔다.
■ 하나라 정벌
壬寅十九年 夏主相失德(임인십구년 하주상실덕): 임인년이며 재위 19년에
즉 BC 2119년에 하(夏)나라 5대왕 상(相)이 백성들에게 덕을 잃어버리니
帝命息達(제명식달): 단제께서는 식달(息達)에게 명령하여
率藍眞弁三部之兵往征之(솔람진변삼부지병왕정지): 람(藍)과 진(眞)과 변(弁)의 삼부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 5대 구을(丘乙)단군 시대에 업적 < BC 2099년~BC 2084년 >
■ 책력(冊曆)을 만듦의 역사가 있다.
乙丑四年(을축사년): 을축년이며 재위 4년에 즉 BC 2096년에
始用甲子作曆(시용갑자작력): 처음으로 육십갑자를 사용하여 책력을 만들었다.
➜ 6대 달문(達門)단군 시대에 업적 < BC 2083년~BC 2048년 >
■ 제사(祭祀)의 참뜻 등의 역사가 있다.
■ 제사의 참뜻
신지비사(神誌秘詞)란 즉 하늘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참뜻은
백성을 위하여 복을 빌고
신을 축복하여 나라를 일으킴에 있다. 곧 훌륭한 조상의 얼을 기리어 나라를 일으킴에 있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 제사의 참뜻은
살아계실 적에 반드시 먼저 좋은 것만을 상징 시키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家庭)에 제사를 지내는 참뜻은
자식을 위하여 복을 빌고
조상님의 훌륭한 얼을 받들어 곧 훌륭한 얼을 기리어
내 가정을 일으킴에 있다. 라고 봅니다.
■ 하늘에 제사의식
祭天之儀(제천지의): 하늘에 제사하는 의식은
以人爲本(이인위본):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爲邦之道(위방지도): 나라를 위하는 바른 길은
以食爲先(이식위선):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하나니.
農者萬事之本(농자만사지본): 농사는 만 가지 일의 근본이요.
祭者五敎之源(제자오교지원): 제사는 다섯 가르침의 근원이라. 즉 오교란 효(孝) 충(忠) 신(信) 용(勇) 인(仁)을 가르치는데 있다.
곧 신지비사(神誌秘詞)란 나라에 제사를 지내는 참 뜻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나아가 이 세상의 어떠한 신앙보다도 더 위대한 영혼불멸(靈魂不滅)의 신앙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9대 아술(阿述)단군 시대에 업적 < BC 1985년~BC 1951년 >
■ 새 궁궐 구월산에 창건하였다는 역사가 있다.
創新宮于九月山南麓(창신궁우구월산남록): 새 궁궐을 구월산(九月山)의 남쪽 기슭에 창건하게 하셨다.
➜ 10대 노을(魯乙)단군 시대에 업적 < BC 1950년~BC 1892년 >
■ 신원목(伸寃木)=신원함(伸寃函) 설치 등의 역사가 있다. ≪ 신문고(伸聞鼓=申聞鼓)의 원조 ≫
乙未五年(을미오년): 을미년이며 재위 5년에 즉 BC 1946년에
宮門外設伸寃木(궁문외설신원목): 궁문 밖에 신원목(伸寃木)=신원함(伸寃函)을 설치하고
以聽民情中外大悅(이청민정중외대열):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으시니 멀리 사는 이들까지 크게 기뻐했다.
≪ 신원목이 BC 1946년에 설치되던 시대에 이집트역사로는 고양국이 무너지고 BC 2080년에 중왕국시대가 시작되던 시대이다. 곧 이집트 중왕국의 시작은 아메넴하트 1세가 BC 1937년~BC 1908년이며 이시대의 불안정한 정권을 보조하기 위해 그의 아들 세누스레트 1세가 BC 1917년~BC 1872년이며 이가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중왕국은 모든 혼란을 떨쳐버리고 통일왕국을 다시 이룩해 주변의 민족들을 지배하며 강국으로 군림한다. 곧 신원목 이것이 바로 신문고의 근원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 3대 태종시대인 1401년 8월에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유롭게 청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곧 억울한 사연을 북으로 쳐서 그 억울함을 듣고 직접해결해주기 위해 설치한 제도였다.
이 신문고는 서기 960년에 송나라 태조 조광윤시대에 등문고(登聞鼓)를 설치한 것을 본따 태종이 송나라의 등문고가 설치된 후 441년이 지난 후 설치되었다.
곧 우리나라의 10대 단군시대에 최초의 신문고인 신원함(伸寃函)을 설치한 것은 송나라의 등문고보다도 2,906년 전에 이미 설치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주기 위해 운영하였다. ≫
아아 우리나라의 역사는 위대하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 가르치는 일들이 남아있다.
[64번째 무료강의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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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전자책 2020.4.29. 발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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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마다 홍익방을 만들고 특히 홍익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체력단련실과 또 공간을 잘 활용한다면 층간소음을 평생 해소는 물론 더 나아가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곧 세계에서 제일 멋진 주택(아파트)건축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민을 위하고 또한 고급아파트 등을 짓고자 같이 사업하실분 연락주세요.
■ 그대가 대선에 승리할려면은 반드시 전세와 월세와 주택(아파트)값을 영구히 안정시키는 비법을 활용한다면 대선에도 승리할 수 있으며 힘들고 어려운 국민도 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크게 이바지를 할 것이다.
전세와 월세와 주택(아파트) 등을 영구히 안정시키는 즉 주택대란을 영구히 안정시키는 비법 및 묘책을 알고자 하시는 분은 열락주세요. 협의 후 결정하겠습니다.
♬ 나라에서 최고의 보배는 역사다. 곧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연구하여 방책을 세우는데 있다. ♬
신축년(辛丑年) 단기(檀紀) 4354년 서기(西紀) 2021년 5월 6일 목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