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에서 산마루를 넘어
전날 동진해 연안 트레킹에서 용원 어시장을 둘러보고 온 십이월 중순 일요일이다. 새벽녘 생대구를 소재로 ‘겨울 용원에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크레인 우뚝하고 아파트 숲을 이뤄 / 신항만 매립으로 포구는 사라져도 / 좁다란 뱃길은 남겨 어패류가 모인다 // 모항에 돌아와서 알 슬어 쏟으려고 / 진해만 찾아오는 성체 된 대구 어족 / 좌판에 나란히 누워 아가미를 닫는다”
날씨는 여전히 추워도 아침 식후 자연 학교로 길을 나섰다. 북면을 둘러 내봉촌으로 가는 13번 버스를 타려고 원이대로로 나갔다. 정한 시각에 대방동을 출발해 온 버스에는 승객이 아무도 없어 첫 손님으로 탔다. 일요일이라 학생이나 회사원이 탈 일이 없어 그런가 싶었다. 충혼탑에서 창원대로를 둘러 명곡교차로로 와 도계동을 지난 소답동에서 천주암을 거쳐 굴현고개를 넘었다.
감계 신도시가 바라보인 화천리를 지나 마금산 온천장에 닿아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 바깥신천에 이르니 낙동강 강변이었다. 북면 수변 생태공원은 강둑을 따라 명촌으로 이어지고 버스는 하천 초등학교에서 앞실을 지나 내산으로 갔다. 기사는 초소로 가서 20여 분 기다렸다가 차를 돌려 다시 시동을 걸어 되돌아 나오는데 나는 내산에서 내렸다. 거기를 반나절 트레킹 기점으로 삼았다.
마을 앞 삼거리 공터에는 부녀 예닐곱이 그물망에 양파를 채워 쌓고 있었다. 지난여름 들녘에서 캔 양파를 저온 창고에 저장해두었다가 꺼내서 선별 포장하는 중이었다. 양파는 저온 창고에 몇 개월 두면 껍질끼리 서로 닿은 부분은 썩기도 하는데 상품 가치 유무를 가려 상한 양파를 버렸다. 대부분 농산물이 그렇지만 제철을 넘겨 저온 저장을 거쳐 나오면 가격이 오를 이유가 있다.
버스가 초소에 이르도록 계속 타고 있으면 상천 고개를 넘어 내봉촌으로 가는데 앞서 내린 셈이다. 고개 너머 내봉촌은 행정구역이 함안 칠북면이라도 창원에서 시내버스가 그곳까지 갔다. 내봉촌에서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어 얼마간 가면 창녕함안보가 나오는데 그곳으로 가려다가 도중에 내린 셈이다. 내산에서도 고개를 넘어 오곡을 거쳐 강변을 따라 가면 창녕함안보에 이른다.
고개를 넘기 전 남향 기슭 전원주택과 펜션이 들어선 작은 동네가 나왔다. 오곡으로 가질 않고 비탈길을 올라 고갯마루에 서니 낙동강이 바라보이고 건너편은 창녕 길곡면이었다. 응달 산기슭은 단감 과수원으로 개간된 농로가 나왔다. 농로가 끝난 곳은 아카시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자라는 숲이었고 벼랑으로 이어졌다. 강가로 내려서 덤불을 헤쳐 물길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갔다.
창녕함안보로 가려던 마음을 바꾸어 양수장이 있는 명촌으로 가볼까 싶어 검불을 비집고 갔다. 강 언저리는 벼랑이 나왔는데 한 약초꾼이 손에 작은 쇠스랑을 쥐고 타고 와 산세를 물으니 조금 험하다고 했다. 그것은 약초꾼 기준이고 고소 공포를 느끼는 나에게는 더 나아갈 상황이 아니라 발길을 돌렸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은 노고지리 생태공원을 돌아 본포로 흘러갔다.
약초꾼은 저만치 강기슭을 거슬러 가고 나는 단감 과수원 묘목장 쉼터에서 배낭에 넣어간 빵과 커피로 간식을 겸한 이른 점심을 때웠다. 앉았던 자리에서 고개를 넘어 내산으로 가니 아까 부녀들을 양파 선별과 포장을 마치고 화목을 모아 지핀 불을 쬐며 손을 녹였다. 시내로 들어갈 버스가 오길 기다리다 제1 수산교에서부터 라이딩을 나서 창녕함안보로 가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마을버스 15번을 탔더니 앞실에서 어윳골을 거쳐 마금산 온천에서 내렸다. 대중탕 입욕을 위함이 아닌데도 온천장을 한 곳 숙박 여건을 확인하고 예약해 두었다. 해가 바뀐 연초 여름과 겨울에 얼굴을 보는 대학 동기 여덟 명이 북면 온천에서 모이기로 되어서다. 대중탕 프런트에서 일을 보고 나오자 바깥은 온천 족욕탕이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수에 한동안 발을 담갔다가 왔다. 2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