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은데 하기 싫고 바쁜데도 심심하다면 ‘상상 놀이’를 추천한다.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두서없이 적으면 소소하게 재미있다. 요즘에는 은퇴한 다음에 할 일을 상상하는 중이다. 닥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이겠지만 오늘의 생각만큼은 내 자유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매년 사계절에 맞춰 꽃 여행을 가고 싶다. 겨울이 되면 당연한 듯이 ‘올해도 동백꽃을 보러 가야지. 암, 가야 하고 말고.’ 이런 생각으로 떠나고 싶다. 동백을 만나기 전에는 준비도 할 것이다. 동백꽃은 매우 문학적인 모티브여서 그것을 사랑한 시인이 여럿이다. 매년 그 시들을 모아 읽고 짐을 싸고 싶다. 그때 읽으려고 모아둔 시 중에서 하나를 추천한다. 꽃 시를 추천하는 일은 매우 기쁘다. 추천하는 마음이 꼭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 같다.
이 시는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요, 사랑을 되돌아보는 마음이요, 동백꽃을 즐기게 해주는 가이드다. 언젠가는 동백숲길에 가서 ‘잉걸불’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발음해 보고 ‘알전구’ 같은 꽃을 바라보겠다. 시 덕분에 상상은 생생해지고, 상상 덕분에 인생은 계속되기도 한다.
작은 창문을 돋보기처럼 매단 늙은 우체국을 지나가면 청마가 생각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창유리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청마 고층 빌딩들이 라면 상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머나먼 하늘나라 우체국에서 그는 오늘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까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우체국 옆 기찻길로 화물열차가 납작하게 기어간다 푯말도 없는 단선 철길이 인생이라는 경적을 울리며 온몸으로 굴러간다 덜커덩거리며 제 갈 길 가는 바퀴 소리에 너는 가슴 아리다고 했지 명도 낮은 누런 햇살 든 반지하에서 너는 통점 문자 박힌 그리움을 시집처럼 펼쳐놓고 있겠다 미처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를 들고 별들은 창문에 밤늦도록 찰랑이며 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