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사상(梅花四象)
박주병
우리집 매화는 참으로 성급하다. 누구를 닮아 그런지 모르겠다. 11월에 들어서면 미처 낙엽이 다 떠나지도 않았는데 꽃눈이 부푼다. 꽃눈도 꽃이다. 나무에 금줄을 친다. 간난아기 하나로 나의 봄은 이미 충만해 있다.
12월을 지나고 1월을 거치면서 꽃눈은 벌써 꽃봉오리 태가 난다. 처녀 태가 난다. 무엇인가 앗길세라 무너질세라 소한 대한을 조신하고 또 조신한다.
빠르면 대한 무렵에도 첫 송이가 피지만 대개는 입춘 무렵에 벌어진다. 2월에 만발하고 3월에 쇠잔해진다. 일 년 열두 달 중 다섯 달을 매화는 꽃으로 산다. 나 또한 그렇다. 대단히 오만하고 대단히 도도해진다. 삼공육경이 나의 코앞을 지나가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깟 도주의돈 같은 것들이야 개똥 보듯 한다.
4월에서 10월까지 매화는 잎으로 몸을 가린다. 가인(佳人)이 초간(草間)에 섞여 풀이 된다. 풀이 되어 긴긴 이 일곱 달 동안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편치 않다. 왜 그리 야위었냐고 이백인가 누가 물었을 때 글 때문이라고 답한 자가 아마 두보였지. 나는 이 일곱 달 동안에 퍽 수척해진다. 수척해지거나 말거나 매화는 본체만체한다. “이 몸 얽어매어 어찌 뜬 이름에 쓰랴!”(何用浮名絆此身) 두보의 「곡강」에서 나는 옆구리가 헛헛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