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134022367
1682년 프랑스, 한창 유럽에서 제일 잘 나가는 정복군주였던 루이 14세.
한때 그의 정부(情婦)였으며 마리 테레즈 왕비의 시녀장이었던 수아르송 백작부인의 차남 외젠이 그를 찾아와 청원했다.
"제 나이 19살. 군문에 들어가 폐하를 위해 봉사하도록 허락해주십시요."
외젠의 청원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나의 군대에 두기에는 못생겨서 내키지 않는다"
Video Player
루이 14세에게 거절당한 외젠은 오스트리아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많은 귀족들이 그랬듯 그의 가계도도 복잡하여 독일계 친척들이 여럿 있었으니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타고난 군재가 있었다. 1683년부터 시작된 대 오스만 전쟁에서 차근히 군공을 쌓아 30세 무렵에는 야전 사령관 자리까지 올랐고, 1696년 젠타전투에서 무스타파 2세의 친정군을 궤멸시켜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헝가리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오스만은 동유럽 일대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상실했다)
그리고 1701년부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를 버린 프랑스를 부순다"
외젠은 1702년 크레모나 전투와 루차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큰 피해를 입혔고, 이 공로로 1703년 오스트리아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말보로 공작 존 처칠과 오스트리아-영국-네덜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1704년 블레넘 전투, 1706년 라미예 전투 및 토리노 공방전, 1708년 오우데나르데 전투 및 릴 공방전에서 승전을 거두며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려던 루이 14세의 야망을 좌절시켰다.
만약 루이 14세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더라면 서유럽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사족
1. 훗날 나폴레옹은 그에게 영향을 준 유럽 역사의 7대 명장 중 한 명으로 외젠을 꼽았다. "내 승리의 비결은 별 게 없다.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프리드리히 2세, 구스타브 2세, 사보아 공자 외젠, 튀렌 자작 앙리 도베르뉴(30년 전쟁 시기 최고의 명장)의 전쟁기록을 수없이 연구했을 뿐이다."
2. 외젠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외모 때문은 아니었고,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하사한 재산이 하필 수도원이었던 터라 결혼을 하면 이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
첫댓글 ㅋㅋㅋㅋㅋㅋ수도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 재밌다
수도원 하사 뭐냐 ㅋㅋㅋㅋㅋㅋㅋ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행히 수도원을 받아서 외모가 묻힌거일수도
글 존나 흥미돋...
얼마나 못생겼나했더니 진짜 못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