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중앙일보/시(詩)와 사색』2025.02.22. -
책상 위에는 저와 함께 세 번째 겨울을 지나고 있는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창문 가까이 두어도 겨울 해가 짧은 탓인지 잎은 빛을 잃었고 줄기도 시들시들합니다. 다만 지난해 겨울에도 지지난해 겨울에도 식물은 꼭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를 대하는 저의 마음. 혹여나 완전히 시들어 죽게 되는 것일까
이제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이 식물은 이런 방식으로 겨울을 보낸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분명 새봄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 생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춥고 척박한 날들이 이어질수록 기다림은 푸르고 무성해지는 듯합니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