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리 겨울 강가에서
아침 기온이 빙점 부근에 머무는 십이월 중순 화요일이다. 근교 강가와 들녘으로 나가기 위해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원역 앞으로 갔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소답동을 거칠 무렵 회사원들과 학생들로 버스는 일시 혼잡해져 창원역에 이르니 거의 내렸다. 각자 어디론가 환승을 해 가려는 이들인데 나는 횡단보도 건너 1번 마을버스 출발지로 가 배차 시간을 준수한 차를 탔다.
버스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자 동읍과 대산 일대 풍광이 펼쳐졌다. 덕산에서 용잠삼거리를 거쳐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지났다. 자리가 없어 서서 가가도 한 마을버스는 대산 일반산업단지에 이르니 손님은 거의 내렸다. 가술에서 국도를 달려 북모산에 이르러 내가 마지막 손님으로 하차했다. 기사는 차를 몰아 신전 종점으로 가고 나는 마을 안길을 걸었다.
북면에서 김해 생림으로 뚫는 신설 국도 굴다리를 지나자 강둑이 나왔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은 삼랑진으로 흘렀는데 그새 강심을 가로지른 다리를 세 개 거쳐왔다. 상류에 본포교가 학포로 건넜고 수산에 이르러 제1 수산교와 수산대교가 눈앞에 바라보였다. 둑에서 바라보인 겨울 강가의 모습은 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내다본 풍경과 사뭇 달라 고즈넉이 무척 아름다웠다.
둑에서 둔치의 시든 물억새와 가지가 앙상해진 버드나무를 바라보였고 강 건너 밀양 명례지구 강변과 낮은 산이 나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듯했다. 둑에서 대산 플라워랜드로 내려서니 여름을 지나 늦가을에 이르도록 화사하던 꽃들을 모두 저물어 깔끔하게 정리를 마쳐 놓았다. 당국에서는 지역민 일자리를 창출시키고 발품 판 산책객들은 눈이 호사를 누리도록 넓은 꽃밭을 조성했다.
겨울이 되어 꽃밭을 가꾸던 인부들은 근로 계약이 종료되어 나타날 일 없었다. 지난여름은 무척 더워 이른 새벽 김을 매고 물을 주느라 십여 명 부녀들과 서너 명 사내들이 힘을 합쳐 고생하던 모습을 본 바 있다. 겨울은 일시적 실업 상태로 지내다 내년 봄 다시 일터로 나와 꽃밭을 돌보지 싶다. 장미의 줄기와 소국의 땅속뿌리는 여러해살이라 봄이면 순이나 움이 터 자라지 싶다.
꽃밭에서 강가 자전거길로 나가 물억새와 버드나무를 더 가까이서 살펴보고 수산교 방향으로 걸었다. 강둑으로 올라서자 자전거로 라인딩을 나서거나 산책하는 이들이 간간이 지나쳤다. 강변에 노송이 몇 그루 선 정원이 아름다운 요양원 근처에서 들녘으로 들어섰다. 사계절 비닐하우스 작업실에서는 가지나 풋고추를 따 상자에 채워 포장했는데 본격적인 출하가 되기는 이른 때였다.
농로를 따라 더 나아가니 벼를 거둔 들녘은 뒷그루 작물로 당근을 심으려고 비닐하우스 설치를 거의 마쳐 놓았다. 추수가 진행되던 지난 시월 유례가 드문 가을 호우가 내려 논바닥이 한동안 젖은 상태라 트랙터가 진입 못해 작업 진척이 더뎌 농민들은 손을 놓고 기다렸다. 벼농사보다 일손이 많이 가고 소득이 높은 당근 농사인데 비닐하우스 설치에는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했다.
들녘에서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가봤다. 지나간 여름에 상품성이 쳐져 포장 선별에서 제외된 하품 오이를 몇 차례 수집해 우리 집과 이웃으로 보냈던 농장이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주인장을 뵈어 인사를 나누고 농장 안을 둘러보니 베트남 청년들이 딴 오이들이 상자에 채워져 갔다. 후일 다시 들러 처진 오리를 가져와도 될 듯했다.
들녘을 가로질러 흐르는 죽동천을 건넌 들녘에도 비닐하우스단지였고 빗돌배기 단감 체험농장을 지나다 홍시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수확기 지나고도 가지 끝 남긴 홍시 / 날씨는 겨울답게 빙점을 오르내려 / 파랗게 시려 보이는 하늘색과 대비다 // 모였다 흩어지는 까치 떼 네댓 마리 / 꽁지를 쫑긋 세워 쪼을까 그냥 둘까 / 한동안 머뭇거리다 어딘론가 떠난다” ‘얼음 홍시’ 전문. 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