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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 더구나 제가 속해 있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이라면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제가 오랫동안 활동하며 지켜본 알럽이라는 공간은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내놓고, 그 차이를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때로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면서도, 결국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곳. 저는 알럽이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 제가 올리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제게는 꽤 개인적이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특정한 교회나 목회자, 혹은 다른 신앙을 가진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또한 제가 가진 생각이 옳다고 설득하기 위한 글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개신교인으로서 제가 오랫동안 품어온 고민과 반성,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신앙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종교와 신앙에 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만 헤아려주시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신학을 공부했고 목회자가 되었으며, 한동안 일반적인 형태의 교회 목회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 목회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아니고, 어떤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것도 아닙니다. 제 의지로 일반적인 교회 목회의 길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렇다고 목회 자체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씁니다. 제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고민해온 신학과 신앙에 관한 생각을 글로 나누며, 저 나름의 방식으로 문서선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신앙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책을 읽으며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신앙나눔터이자 독서토론모임터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이상한 목회자의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저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있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봉헌하는 대신 제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몫을 사회의 어려운 이웃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저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라는 정체성 역시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앙과 목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가 개신교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은 개신교를 떠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제가 몸담았고 지금도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안에서 고민하며 살아갈 신앙이기에 오히려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며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신앙이 너무 쉽게 정답의 언어가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 대해서도, 구원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확신합니다. 내가 배운 교리가 정답이고, 내가 속한 교단의 해석이 정답이며, 내가 이해한 성경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오히려 반대의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었고, 성경을 깊이 읽을수록 성경이 몇 개의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뛰어난 신학자들조차 같은 본문을 붙들고 고민하면서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때때로 그 모든 고민이 너무 쉽게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나의 성경 해석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높인다고 생각하면서 실은 자기 자신의 확신을 높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나누는 모습도 오래전부터 마음에 걸렸습니다.
신자와 불신자,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교회 안과 교회 밖, 정통과 비정통.
물론 신앙에는 고백도 필요하고 기준도 필요합니다. 모든 차이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어보면 묘한 장면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당시 누구보다 종교적인 확신에 차 있던 사람들과 예수님은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반대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고 공동체의 주변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며 사랑과 환대보다 정죄와 배타성을 먼저 떠올린다면, 세상이 교회를 미워한다고 말하기 전에 교회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일반적인 교회 목회를 일부러 그만둔 것도 이러한 고민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목회가 반드시 한 교회 안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교인들을 돌보며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형태로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라는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람들을 섬기는 수많은 목회자를 존중합니다.
다만 그것만이 제가 평생 걸어가야 할 유일한 목회의 형태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설교단 대신 글을 선택했습니다.
글을 통해 제가 공부한 것을 나누고, 이미 정해진 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 글을 읽으며 자신의 신앙을 다시 생각해보고,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질문 하나를 품게 된다면 그것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문서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계획하고 있는 신앙나눔터와 독서토론모임터 역시 같은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정답을 전달하는 공간보다는 신앙이 있는 사람도, 의심하는 사람도, 질문이 많은 사람도 부담 없이 찾아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설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명확하게 나뉘는 곳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곳, 누군가의 질문에 성급하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곳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꿈꾸는 또 다른 형태의 목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제가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교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해서도 아닙니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가진 의미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매주 특정한 교회 건물에 들어가 정해진 예배에 참석하는 행위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동일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신앙 전체를 판단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봉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현재 교회에 정기적으로 봉헌하기보다 그 몫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당연히 재정이 필요합니다. 목회자의 생활도 필요하고, 예배 공간을 유지하고 여러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봉헌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반드시 교회의 헌금함을 거쳐야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덜어 누군가의 한 끼가 되고, 치료비가 되고, 생활비가 되고, 절망한 사람에게 작은 버팀목이 되는 것 역시 충분히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떼어놓을 수 없다면, 이웃에게 건넨 것이 하나님께 드린 것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전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교회 건물 안으로 데려오는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영접기도를 하게 만들고, 등록교인 숫자를 한 명 늘리는 것으로 전도가 완성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고통받는 사람 옆에 머물며, 내가 믿는 복음이 실제로 나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
저는 오히려 그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교인이 몇 명인지, 예배당이 얼마나 큰지, 헌금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목회자가 얼마나 유명한지가 어느 순간 교회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사용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런 숫자를 보고 교회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사람을 끝까지 품어주는 교회, 실패한 사람이 눈치를 보지 않고 다시 앉을 자리가 있는 교회, 질문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꾸짖기보다 함께 고민해주는 교회가 저는 훨씬 교회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두려움을 이용하는 신앙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지옥에 갈까 두려워 하나님을 믿고, 벌을 받을까 두려워 순종하며, 의심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 질문을 멈추게 하는 신앙 말입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어 자신을 섬기도록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복음이 정말 ‘기쁜 소식’이라면 그 중심에는 두려움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을 이야기하더라도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되고, 죄를 이야기하더라도 인간을 향한 연민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개신교에 대한 비판을 적으면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개신교인으로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에게,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마음을 다친 분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누군가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던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해서 사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부족한 한 사람의 개신교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보여준 모습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사람이라는 듯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자신의 잘못보다 세상의 잘못을 더 열심히 지적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정죄했을 때, 복음을 전한다면서 정작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을 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보다 교회의 성장과 성공에 더 큰 관심을 보였을 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기독교 자체에 마음을 닫게 되었을 때.
저 역시 개신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이웃을 섬기고 자신의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수많은 개신교인과 교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까지 함부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과가 진심이라면 결국 교회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 개신교에 필요한 것은 세상을 향해 더 큰 목소리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 듣고, 돌아보고, 사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특이한 위치에 서 있는 개신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교회 목회를 제 의지로 내려놓았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으며, 교회에 하던 봉헌을 사회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앙 자체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며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서선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모여 신앙과 삶과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신앙나눔터이자 독서토론모임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에게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먼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도,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도, 신앙에 수많은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의 모습을 교회 밖의 신앙이라고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목회라고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제가 선택한 방식이 모든 개신교인이 따라야 할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저 역시 제가 비판했던 독선에 빠질 테니까요.
교회에 충실하게 출석하고 봉헌하며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의 삶도 존중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만큼 조금 다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신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쉽게 믿음의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를 버리고 싶어서 개신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비판하고, 여전히 복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안해하고,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꿈꿉니다.
교회가 조금 덜 확신하고 조금 더 질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덜 성공하려 하고 조금 더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 앞에서 변명부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진짜 기독교가 아닙니다”라고 선을 긋기에 앞서, 그 사람이 겪은 아픔부터 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그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설교단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라도, 큰 교회 건물이 아니라 작은 신앙나눔터와 독서모임의 공간을 통해서라도 제가 믿는 복음이 누군가를 겁주고 판단하는 소식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살아갈 힘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이 글에서 하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글은 교회를 향해 던지는 돌이라기보다 제가 살아온 개신교와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제 신앙을 함께 비춰보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형태의 목회를 이어가게 될지는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설교를 하든 글을 쓰든, 교회에 봉헌하든 어려운 이웃에게 직접 나누든, 그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충분히 보여드리지 못했던 개신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말보다 삶으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특정 종교를 떠나 저에게도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저도 지난 삶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종교를 떠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주셨다는 말씀이 참 감사하네요.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다른 누군가를 비판하기에 앞서 제 자신부터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조금 덜 판단하고 더 귀 기울이며,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이 그런 생각을 해보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어마어마한 글이네요. 제가 생각했던 기독교에 대한 짧고 짧은 생각에 대한 엄청난 고민과 사유가 있으셨네요.
긴 기간동안 고민하셨고, 본인만의 길을 찾아가신 긴 여정이 너무나도 쉽게 읽히고, 그 고민이 읽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네요.
기독교를 떠나서 긴 시간동안의 개인의 여정과 사유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느꼈습니다.
제 글을 이렇게 깊이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꽤 조심스럽고 개인적인 이야기라 글을 올리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기독교라는 주제를 넘어 한 사람의 고민과 여정으로 읽어주시고 그 마음까지 헤아려주셨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네요. 제가 오히려 이렇게 진심 어린 감상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용기 내어 글을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Messi 추가로, 왜 기독교에는 이런 목회자나 교인은 없을까 하던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목회자나 신도에 가장 가깝게 계신것 같습니다. 학교를 기독교계열 학교를 어쩔 수 없이 많이 다녀서 느꼈던 의문이였는데, 제 생각 자체를 엄청나게 뛰어넘는 사유와 여정을 겪으신 분을 처음 뵙네요. 정말 공유 감사드립니다. 현재 기독교는 어마어마한 영업조직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농담섞어서요.
영업에 강력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무기가 있어. 영업조직?이 무급보수로 뛰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돈을 내면서 영업을 해주는 소비자? 겸 영업조직... 아.. 얼마나 행복해. 존경까지 받고.. 정말 자신의 믿음이 확보한 목회자는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 라구요. (이건 비꼼이 아님니다. 진짜로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행복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목회자뿐만 아니라 신도도요)
@데보라 너무 과분한 말씀을 해주셔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상적인 목회자나 신도에 가까운 사람인지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 역시 오랫동안 의심하고 흔들리고, 제가 배운 것과 믿어왔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질문하다 보니 지금의 생각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영업조직’이라는 표현도 농담으로 하신 말씀의 취지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ㅎㅎ 믿음을 전하는 것과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도 누군가를 제 생각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보다는,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곁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술을 안드셨군요!! ㅋㅋㅋ
앜ㅋㅋㅋㅋ 전 술 담배 둘 다 개신교인이 해도 된다고 보는 입장이랍니다 ㅎㅎ 저도 가끔씩 해요 ㅋ 건강상 자제하는 것이랍니다 ㅎㅎ
건물이나 제도로서 한정된 교회 너머의 교회를 꿈꾸시는군요~ 저는 그런 사람들과 월1회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랍비에게 토라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토라는 토라에 대한 해석이라고 답을 했다고 하죠.
저는 이런 열린 랍비의 태도야 말로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응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건물이나 제도로서 한정된 교회 너머의 교회’라는 표현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을 참 잘 담아주신 것 같습니다. 월 1회 그런 모임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진리를 이미 완성된 답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끊임없이 묻고 해석하고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함께 찾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결국 그 진리가 우리를 억압하거나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것이어야겠지요. 귀한 말씀과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모태신앙이고 실제 이름도 성경이름을 쓰지만 교회를 안다닌지는 20년 넘게 되었네요. 메시님 글과 하나도 공유되지 않는 목사님 사모님 장로님 권사님만 10트럭은 봤을 겁니다.
교회는 내 마음속에 있고, 항상 창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제 살아생전 한국 교회를 다시 다니지는 못할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모습들을 보고 또 여러 생각을 하셨을지 제가 감히 다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참 마음이 무겁기도 하네요…
저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특정한 건물이나 제도 안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만 신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속에서 창조주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 역시 너무나 귀한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다시 한국 교회를 다니셔야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질문하고 고민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도 이미 교회는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오랜 시간 품어오신 생각에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귀한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린시절(80년대)에는 쭈쭈바 준다고해서 교회갔었고 군대시절에 종교활동으로 교회 나가면서 힘든 군생활에 위안도 많이 받았었는데 그때 담당 군목이 "교회(기독교)빼고 다 이단이다"라는 취지의 설교를 듣고서는 이후로 교회 근처도 안가고 있네요.
성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문제죠.
힘든 군 생활 가운데 교회에서 위안을 얻으셨다가 그런 설교를 들으셨다면 많이 당혹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만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는 식의 신앙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보다 오히려 벽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경을 어떤 눈으로 읽고 해석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배제하기 위한 근거가 되는지, 아니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사랑하고 품는 방향으로 이끄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경험까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으니 제가 왜 오랫동안 ‘해석’이라는 문제를 고민해왔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와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시선과 교리에 대한 해석 그리고 거기에 많은 교인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었네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으셨다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기쁩니다 ㅎㅎ 제 글이 개신교와 신앙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시고 귀한 말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주교 집안인 저한테 전도를 하시며 천주교는 이단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한 분들을 보며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인식만 생겼고 지금도 교회 다닌다 하면 선입견부터 생기게 되는 저를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런 경험을 하셨다면 개신교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이 생기신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자신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다른 사람의 믿음을 틀렸다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앙이 깊어질수록 타인의 생각과 삶을 더 존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부족한 글인데 자신의 경험과 생각까지 되돌아보며 읽어주셨다니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한 말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태신앙으로 45년간 개신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신도들이 다 같은 신을 믿고 있는 것일까?"
한 1년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 "모두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신" 을 믿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신을 스스로 만들어서 믿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성경의 해석을 각자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40여년간 나가던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믿는 신은 그대들과는 다른 신이다 라는 생각 으로요.
그 이후로 이런 저런 상황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고민은 아니지만 저도 나름대로 종교 관련 고민을 최근 많이 한 상태여서 조금 끄적거려 봤습니다 ㅋ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신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말이 참 인상 깊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신앙과 성경을 고민하면서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때로는 자신의 욕망이나 이해관계를 하나님께 투영하기도 하니까요. 저와는 고민 끝에 도착하신 자리가 조금 다르지만, 40년 넘게 이어온 신앙을 다시 돌아보고 다른 길을 선택하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긴 고민의 결과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네요^^
자연보호가 신의 뜻이라면 혹은 건강증진을 위한 운동이 신의 뜻이라면 기독교인은 러닝크루나 캣맘같은겁니다.
재미있는 비유네요 ㅎㅎ 결국 신앙을 '무엇이 신의 뜻인가를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본다면 말씀하신 러닝크루나 캣맘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면도 있겠네요 ㅋ 다만 기독교 신앙에서는 무엇을 하느냐뿐 아니라, 왜 그것을 하는지와 그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까지 중요하게 본다는 차이는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관점 감사합니다 ㅎㅎ
@Messi 전부는 아니지만 메시님께서 우려하시는 기독교내 몇몇의 몰지각한 분들에 대한 일방주의를 비난해보았습니다.
@hooper 어떤 취지로 말씀하셨는지 알겠습니다 ㅎㅎ 저 역시 그런 식으로 자신의 해석만을 절대화하고 다른 신앙을 쉽게 재단하는 태도에는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도 결국 그런 획일성과 배타성에 대한 문제의식이었고요. 말씀하신 비유의 의도를 알고 나니 더 재미있게 읽히네요ㅋ 감사합니다^^
교회가 조금 덜 확신하고 조금 더 질문했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마음에 남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 부분이 이 글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믿음이 꼭 모든 것에 확신을 갖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질문을 품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생각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부 교회의 문제이긴 하지만 교회가 정치에 나서는걸 보는순간 , 대형교회의 기업화 등등
저도 35년간 다닌 교회를 몇해전 끊었습니다.
양질의 좋은글 감사하고 , 건강하세요.
오랜 시간 다니셨던 교회를 떠나기까지 여러 생각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정치 참여나 대형교회의 기업화 문제 역시 제가 고민했던 지점 중 하나랍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따뜻한 말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비슷한?활동 하시는 목사님 계시는데 (김동은 님), 혹시 그분인가 싶었네요.
아, 비슷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 또 계시는군요 ㅎㅎ 저는 그 분은 아닙니다. 비슷하게 느끼셨다니 어떤 글을 쓰시는 분인지 저도 한번 궁금해지네요^^
@Messi 이 분입니다. 본문 내용이 저 목사님이 말씀하신 거랑 비슷해서...
@그러든지 아, 그렇군요. 다만 저는 이분을 오늘 처음 알았고, 해당 글이나 활동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ㅎㅎ 제가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공부해온 내용을 적은 글이라, 혹시 오해가 생길까 봐 이 부분은 말씀드리고 싶네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몸이 아닌 글도 교회가 될수 있는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네요^^
용기내어 사과하는 모습에 뭔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기있는 일본인은 그들이 하지 않은 그들의 과거에 대해 사과해야하는가? 라는 뭔가 이상한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ㅎㅎ
결론을 내릴수 없고 타협이 어려운 주제에 대해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독할 수 있었어요!
'글도 교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말씀은 제게 너무 과찬이네요… 저 역시 아직 답을 찾는 과정에 있고, 제가 했던 생각과 고민을 조심스럽게 나눠본 것뿐인데 이렇게 깊이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말씀하신 일본의 과거에 대한 사과 문제도 개인과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긴 글 정독해주시고 생각까지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