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 천변을 따라
십이월 셋째 수요일이다. 아침 식후 자연 학교로 가는 등굣길에 나서 원이대로를 지났다. 창원역까지 가질 않고 소답동에 내려 횡단보도 건너 김해 외동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140번 버스를 기다렸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버스에 오르자 가사는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었다. 소형 마을버스 기사로 여성을 두세 분 보았는데 시외 구간 대형 버스에서는 처음 뵙는 분이다.
교외로 벗어난 동읍에서 덕산을 거쳐 진영으로 가는 도중은 물론 국도변 크고 작은 공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다수 타고 내렸다. 시내에도 각종 사업체에 여러 일자리가 많을 텐데도 근교 일터로 가는 이들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듯했다. 김해 시내까지 가서 용무를 봐야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짧은 구간인 자여 입구 창원 시계를 벗어난 진영 좌곤리에서 내렸다.
근교 국도변에 낡은 아파트단지를 지나 대산 들녘으로 빠지는 차도에는 교통량을 분산시킨 밀양 방면 출근길 차량이 꼬리를 이어 달렸다. 4호선과 25호선이 일부 구간 겹쳐 우회해 온 국도가 진영 외곽으로 향하는 교차로를 지난 남포교를 건넜다. 주남저수지에서 흘러온 주천강 천변 마을이 남포로 창원 대산면 남쪽이다. 거기서 둑길을 따라 진영 방향으로 걸어 밀포마을로 갔다.
진영을 거쳐 들녘으로 흘러 낙동강 샛강이 되는 주천강은 생태 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둑길이 포장되고 냇바닥이 정비되고 나면 진영에 사는 이들이 주남저수지까지 산책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나서기 좋을 듯했다. 내가 가는 밀포는 진영에서는 주천강 건너편으로 섬처럼 고립된 작은 농촌 마을인데 근래 전원생활을 누리려고 귀촌한 이들도 몇몇 집이 있지 싶다.
주천강 물길은 갈래로 나뉘어 상포에서 중포로 흐르는 천변을 따라가니 벼를 거둔 빈 논에 수백 마리 오리가 날아와 먹이를 찾아 먹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젊은이가 경적을 울려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가 지나질 않았다면 살금살금 다가가 떼 지은 오리들을 휴대폰 카메라 앵글에 담을 생각이었는데 나보다 앞서가면서 내가 폰을 펼치기도 전에 녀석들을 모두 쫓아버려 아쉬웠다.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었다면 근처 덤불에서 기다리면 다시 나타날 듯했으나 그럴 여건이 못 되어 농로를 따라 걸었다. 벼를 거둔 겨울 들판에 농부들은 아무도 보이질 않고 천변 물길을 상포에서 중포로 흐르는 건너편을 대산면이었다. 들녘에서 남향을 바라보니 저만치 바라보인 금병산이 둘러친 진영은 신도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천변에도 주민들이 사는 집이 몇 가구 보였다.
들녘에서 일모작 아닌 비닐하우스는 절화용 꽃을 키우는 농가들이었다. 비닐 필름에 수막이 형성되어 내부가 보이질 않아 바깥에서는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라디오 소리가 들려와 인부들이 작업을 하는 중인 듯했다. 상포마을과 마주한 외딴 농가 마당귀에 까치가 집을 지은 종을 알 수 없는 높다란 나무가 보였다. 까치는 감나무 집을 짓지 않는 습성으로 미루어 감은 아니었다.
밀포 천변 들녘이 끝나면 진영에서 나뉘어 온 25호 국도가 가술에서 수산을 거치는데 차량이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30여 년 전에는 전방이 훤히 트인 농지였으나 근래 그곳 국도변은 아울렛 상품을 파는 가게를 비롯한 상가들이 농지를 잠식해 예전과 다른 풍광이다. 아침에는 기온이 쌀쌀하게 느껴졌으나 햇살이 퍼지니 추운 모르고 천변 들녘을 따라 어느새 국도변에 이르렀다.
천변에 작은 공장을 지나자 남향으로 전원주택이 한 채 보였다. 울타리를 삼은 남천이 맺은 열매를 보고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울타리 둘러 심어 경계를 구분 짓고 / 사계절 상록성은 친환경 돋보이는 / 한겨울 남천 이파리 자줏빛이 감돈다 // 여름날 피던 꽃은 수수해 보이더니 / 가을에 맺은 결실 익으니 붉디붉어 / 세밑에 사랑의 열매 따스함을 느낀다” ‘남천 열매’ 전문이다. 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