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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제74회-1
연청은 비록 천강성의 끝자리였지만, 지혜도 있고 식견도 넓어 천강성 앞자리의 35명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연청이 송강에게 아뢰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노원외를 따라다니면서 씨름을 익혔는데, 아직까지 강호에서 적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다행히 좋은 기회를 만났습니다. 3월 28일이 가까우니 아무도 데리고 갈 필요 없이 혼자 가서 시합에 나가 임원이란 자와 한 번 겨뤄 보고 싶습니다. 만약 시합에 져서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 만약 이기게 되면, 형님도 더욱 빛나게 될 겁니다. 그날 필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이니, 그때는 형님께서 사람들을 보내 구원해 주십시오.”
송강이 말했다.
“아우! 임원이란 자는 키가 10척이고 생긴 것도 금강역사 같으며 천근을 들 수 있는 기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자네는 그에 비하면 힘도 약하고 체격도 작으니, 비록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를 당하겠나?”
“그 자가 체격이 장대한 것은 겁나지 않습니다. 다만 제 수단에 걸려들지 않을까 봐 염려될 뿐입니다. 원래 씨름이란 힘이 있으면 힘을 쓰고 힘이 없으면 지혜를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청이 입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하여 상황에 따라 대처하면 멍청한 놈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연청은 어릴 때부터 씨름을 배워 실력이 대단합니다. 본인이 가고 싶어 하니, 보내 주십시오. 기일이 되면 제가 가서 접응하여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송강이 물었다.
“언제 떠나려는가?”
연청이 대답했다.
“오늘이 3월 24일이니까, 내일 산을 내려가겠습니다. 도중에 하룻밤 유숙하고, 26일에는 동악묘에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27일에는 하루 정탐한 다음, 28일에 그놈과 한번 겨루어 보겠습니다.”
다음 날, 술자리를 마련하여 연청을 전송하였다. 연청은 시골사람처럼 수수한 차림을 하고 몸의 꽃 문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으로 가렸다. 산동의 행상으로 분장을 하고, 허리에는 작은 북을 꽂고 잡화가 든 멜대를 멨다. 사람들이 그 모양을 보고 모두 웃자, 송강이 말했다.
“자네가 기왕에 멜대를 멘 행상으로 분장을 했으니, 산동의 행상들 노래를 한번 불러 보게.”
연청이 한 손으로는 북을 두드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박판을 치면서 태평가를 부르는데, 산동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이 또 모두 웃었다. 술이 약간 오르자, 연청은 두령들을 작별하고 산을 내려가, 금사탄을 건너 태안주를 향해 떠나갔다.
그날 저녁, 연청이 객점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이! 연형! 기다려!”
연청이 멜대를 내려놓고 돌아보니, 흑선풍 이규였다. 연청이 말했다.
“왜 따라왔소?”
이규가 말했다.
“자네는 나랑 형문진에 두 번이나 같이 갔잖아. 이번에 자네 혼자 가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송공명 형님한테 말도 하지 않고 몰래 내려왔네. 자네를 도와주려고.”
“형님은 별 소용이 없으니 빨리 돌아가시오.”
이규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자네가 진짜 호걸인 것 같아서 내가 호의로 도와주러 온 건데, 자네는 도리어 악의로 생각한단 말인가! 그래! 가라면 가지!”
연청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규의 의기를 무시한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
“형님이랑 같이 가기 싫다는 게 아니오. 천제성제의 탄신일이니까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건데, 그 가운데는 형님을 알아보는 사람도 제법 많을 거요. 내가 말하는 세 가지 조건만 따라준다면, 같이 갈 수도 있소.”
“그러지.”
“지금부터 길을 갈 때 앞뒤로 서로 떨어져서 각자 가고, 일단 객점에 들어가면 함부로 나가지 말 것. 그게 첫 번째 조건이오. 두 번째 조건은, 동악묘 부근의 객점에 들어갈 때는 병에 걸린 척하면서 얼굴을 감싸고 코를 킁킁대면서 절대 말하지 말 것. 셋째 조건은, 당일 동악묘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구경을 하되 결코 소란을 피우지 말 것. 어때요?”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자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하겠네.”
그날 밤은 객점에 투숙하여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객점을 나섰다. 연청이 말했다.
“형님이 반리쯤 먼저 가시오. 나는 뒤따라 갈 테니까.”
가는 도중에 향을 피우러 가는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는데, 임원의 실력이 대단하여 2년 동안 적수가 없었으며 올해까지 3년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청은 그 말을 듣고 더 겨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후에 동악묘에 당도하여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뭔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청이 멜대를 내려놓고 사람들 헤치고 들어가 보니, 두 개의 팻말이 서 있었다. 한쪽 팻말에는 ‘태원의 씨름군 경천주 임원’이라 쓰여 있고, 다른 팻말에는 작은 글씨로 ‘주먹으로 남산의 맹호를 때려잡고, 발로는 북해의 창룡을 걷어찬다.’라고 쓰여 있었다.
연청은 그걸 보고 멜대를 빼서 팻말을 박살내 버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멜대를 메고 사당으로 갔다. 그걸 본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면서 재빨리 임원에게 달려가, 금년에는 팻말을 부순 적수가 나타났다고 알렸다. 연청은 이규를 만나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원래 동악묘 부근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120개 길에서 객상들이 오고갈 뿐만 아니라, 객점만 해도 1천4~5백 개가 있어 천하에서 향을 사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보살에게 기도하는 때가 되면 그 많은 객점들이 손님으로 가득 찼다.
연청과 이규는 시가지 끝에 있는 작은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멜대를 내려놓고 침상에 이불을 깔자 이규는 바로 잠이 들었다. 점원이 물었다.
“손님들은 산동에서 오신 장사꾼 같은데, 비싼 방값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연청이 그 지방 사투리로 말했다.
“자네는 왜 사람을 얕보는 건가? 이 작은 방 한 칸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큰 방보다야 싸겠지. 남들이 내는 만큼 낼 테니 걱정 말게.”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이 많은 시기라, 먼저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나는 장사하러 온 사람이니, 아무데나 묵어도 상관없네. 그런데 도중에 생각지도 않게 고향 친척을 한 사람 만났는데, 그가 감기에 걸려 이 객점에 들어오게 된 거네. 내가 먼저 동전 다섯 관을 줄 테니, 밥과 차를 좀 가져다주게. 나머지는 떠날 때 한꺼번에 계산하겠네.”
점원을 돈을 받고서 밥과 차를 가지러 갔다.
얼마 후 객점 바깥이 시끌벅적하더니, 2~30명의 사내들이 객점으로 들어와 점원에게 물었다.
“임원의 팻말을 부순 호걸이 어느 방에 들었는가?”
점원이 말했다.
“그런 사람 없는데요.”
“사람들이 모두 이 객점에 들었다고 하던데.”
“저희 집엔 방이 둘뿐인데, 하나는 비어 있고 하나는 산동에서 온 장사꾼이 아픈 사람 하나와 들었을 뿐입니다.”
“그 장사꾼이 바로 팻말을 부순 사람이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남들이 들으면 웃습니다. 그 장사꾼은 덩치가 작은 애송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 우리를 그에게 안내해 주게. 한 번 봐야겠네.”
점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방입니다.”
사내들이 방으로 가 보니, 방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창으로 가서 들여다보니, 침상 위에 두 사람이 자고 있었다. 사내들은 그자가 맞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이미 팻말을 부쉈다면 분명히 호적수가 될 만한 사람일 거야. 만만히 볼 사람은 아니야. 남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일부러 병이 난 것처럼 꾸미고 있을 거야.”
“맞아. 저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생각할 것도 없어. 때가 되어 구경하면 되지.”
하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황혼이 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묻는 바람에, 점원은 일일이 대답하느라 입술이 다 닳을 판이었다.
저녁이 되자 점원이 두 사람에게 밥을 갖다 주었다. 그때 이규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내밀자, 이규를 본 점원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이고! 이 분이 바로 씨름하실 분이구나!”
연청이 말했다.
“씨름을 할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네. 저 사람은 지금 병이 났어. 씨름을 할 사람은 바로 날세.”
점원이 말했다.
“에이, 속이지 마십시오, 저도 임원을 본 적이 있는데, 손님은 한입에 삼켜 버릴 겁니다.”
“날 우습게보지 말게. 나한테는 나름의 방법이 있지. 사람들이 한바탕 웃게 만들어 줄 거야. 상을 많이 타면 자네에게도 나눠주지.”
두 사람이 밥을 먹고 나자 점원은 밥그릇을 챙겨서 주방으로 돌아갔는데, 연청의 말을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나서 연청이 이규에게 말했다.
“형님은 방문 닫고 잠이나 자시오.”
연청이 사람들을 따라 동악묘로 가 보니, 과연 천하제일이었다. 연청은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 초참정에 들어가 참배하고, 향을 사르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씨름꾼 임원은 어디 있습니까?”
“영은교 아래의 큰 객점에 있는데, 2~3백 명의 뛰어난 제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청이 영은교 아래로 가 보니, 다리 난간에 씨름을 배우는 2~30명의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데 그 앞에 금박을 입힌 깃발이 꽂혀 있고 비단 장막이 줄지어 펼쳐져 있었다. 연청이 객점으로 슬쩍 들어가 보니, 임원이 정자에 앉아 있는데 참으로 늠름한 풍채를 지닌 금강역사 같은 모습이었다. 떡 벌어진 가슴은 예전에 호랑이를 때려잡았던 이존효 같은 위엄이 있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항우와 같은 산을 뽑을 듯한 기세가 있었다.
임원은 앞에서 제자들이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 가운데 연청이 팻말을 부수는 것을 본 자가 몰래 임원에게 알리자, 임원이 벌떡 일어나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올해는 어떤 죽고 싶은 놈이 내 손에 목숨을 바치러 왔느냐!”
연청은 고개를 숙이고 급히 객점을 나왔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연청은 객점으로 돌아가 이규와 함께 술과 음식을 먹었다. 이규가 말했다.
“나더러 잠만 자라고 하는데, 답답해 죽을 지경이야!”
연청이 말했다.
“오늘밤만 참으시오. 내일은 자웅을 가리는 걸 볼 수 있을 거요.”
자정이 되자 북소리가 한 차례 울렸다. 사당에서 향을 사르러 온 사람들이 성제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2시경에 연청과 이규는 일어나서 점원에게 물을 가져오게 해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다음, 연청은 안에 무릎 보호대를 묶고 밑에는 잠방이를 입고 위에는 적삼을 입고 허리띠를 묶었다. 두 사람은 아침밥을 먹고 점원에게 분부했다.
“방안에 행리가 있으니, 잘 보고 있게.”
점원이 말했다.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이기고 돌아오십시오.”
그때 객점 안에는 향을 사르러 온 사람들이 2~30명 있었는데, 모두 연청에게 말했다.
“젊은이! 잘 생각해 보게. 자칫 목숨을 잃지 말고.”
연청이 말했다.
“제가 갈채를 받을 때, 여러분은 저를 대신해서 제가 상으로 받는 물건이나 잘 챙겨 주십시오.”
사람들이 먼저 나간 다음에, 이규가 말했다.
“도끼를 가져가는 것이 좋겠는데.”
연청이 말했다.
“쓸 일이 없을 거요. 사람들이 알아채게 되면 큰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가서 사당의 복도 아래에 숨을 숨기고 있었다.
그 날은 향을 사르러 온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어 그 큰 동악묘가 사람으로 넘쳐나서, 지붕 위에까지 구경꾼들이 올라가 있었다. 가녕전 앞에는 시렁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금은 그릇들과 비단이 놓여 있었고, 문 밖에는 준마 다섯 필이 묶여 있었는데 모두 안장과 고삐가 갖추어져 있었다. 부윤도 나와서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한 늙은 제관이 죽비를 들고 나와 제례를 치른 다음 말했다.
“올해 씨름할 사람들은 나와서 겨루시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10여 명의 봉을 든 사람들이 들어왔다. 앞에서는 수놓은 깃발 네 개를 들고 뒤에는 임원이 가마를 타고 들어오는데, 가마 앞뒤에는 팔에 문신을 한 2~30명의 사내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제관이 임원에게 가마에서 내리라고 하면서 아첨하는 말을 몇 마디 하자, 임원이 말했다.
“내가 2년간 우승을 했는데, 시합도 하지 않고 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팔을 걷어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임원의 말이 끝나자, 한 사람이 물통을 들고 씨름판 위로 올라왔다. 임원의 제자들은 모두 씨름판 위로 올라와 주변에 빽빽하게 둘러섰다. 임원은 웃통을 벗고 두건도 벗었다. 비단옷을 걸치고는 큰소리로 신에게 참배한 다음, 방금 가져온 신수(神水)를 두 모금 마시고 비단옷을 벗어던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제관이 말했다.
“교사께서는 2년간 적수를 만나지 못했는데, 올해로 세 번째가 됩니다. 천하에서 향을 사르러 온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 없습니까?”
임원이 말했다.
“4백 개의 주(州)와 7천 개의 현(縣)에서 향을 사르러 오신 여러분이 성제를 공경하여 바친 재물을 임원이 2년간 거저 받아갔습니다. 올해는 성제에 작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동으로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서로 해가 지는 곳까지, 남으로는 남만(南蠻)에서부터 북으로는 유연(幽燕)에 이르기까지, 나랑 상을 겨루어 볼 사람 없습니까?”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연청이 사람들의 어깨를 밀치고 나오며 소리쳤다.
“여기 있소!”
연청이 사람들을 뛰어넘어 곧장 씨름판 위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제관이 맞이하며 물었다.
“호걸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고향이 어디며, 어디서 오셨소?”
연청이 말했다.
“나는 산동에서 온 장사꾼 장가입니다. 저 사람과 상을 겨루어 보려고 왔습니다.”
“호걸! 당신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보호자가 있습니까?”
“내가 보호자입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누가 보상하겠습니까?”
“웃옷을 벗어 보십시오.”
연청이 두건을 벗자, 깔끔하게 빗은 머리가 드러났다. 짚신을 벗고 맨발로 씨름판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 보호대를 풀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적삼을 벗어 시렁 위에 내던졌다. 구경꾼들이 모두 갈채를 보내고 나서 조용해졌다. 임원은 연청의 온몸에 새겨진 꽃 문신과 탄탄한 체격을 보고 다소 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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