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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승리(精神勝利)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이라고 왜곡해 자기 위안을 삼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精 : 정밀할 정(米/8)
神 : 정신 신(示/5)
勝 : 이길 승(力/10)
利 : 이로울 이(刂/5)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이라고 왜곡하여 정신적 자기 위안을 하는 행위이며 실상은 자신의 망상으로만 이기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명소설 아Q정전(阿Q正傳)에서 나온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Q는 성격이 거의 찌질이에 가까운 사람인데, 길을 가다가 무뢰배를 만나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이내 "저 녀석들은 내 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들에게 찍힌 것뿐이다"고 정신적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신 역시도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사람, 비구니 등을 때리고 비웃는 등 전형적인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무자비한 모습을 보인다.
아Q는 길을 가다가 불한당에게 자주 얻어터졌는데 그 때마다 "저 놈이 내 육체는 망가뜨렸지만 내 정신에는 아무것도 못했으므로 내가 이긴 거다"라고 망상했는데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겼다 하여 정신이 승리해서 '정신승리'라 한다. 풀네임으로 "육체는 패배했으나 정신은 승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의 자기만족과 비슷하다.
■ 정신승리(精神勝利)
최근에 다소 코믹하게 회자되는 '정신승리'라는 단어가 있는데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문헌상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저명한 문학가인 루쉰이 지은 아큐정전에 등장하는 아큐라는 인물은 당시 중국 민중의 실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아큐는 객관적으로 자기에게 모욕적이고 불리한 상황을 왜곡하여 자신을 위안한다. 실제 현실과 정 반대의 상황을 주관적으로 만들어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위안하며 주장하는 방법을 정신승리법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큐는 자본주의 일반 현대인의 보편적 모습이다. 현실은 상대적으로 거세고 그것을 헤쳐나갈 능력은 힘에 부친다는 상황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자조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옛말에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다. 음양적으로 보면 좌측의 청룡이 양이고 우측의 백호가 음이다. 동방의 정신문명이 양이라면 서방의 물질문명은 음이다. 호랑이 굴 비유는 자본주의 물질 속에 파묻혀 사는 현대사회일수록 살아날 방도는 정신에 있다는 속담으로 풀어볼 수 있는 것이다. 진짜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딱 죽기 쉬운 시대이다.
■ 정신승리(精神勝利)
개요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이라고 왜곡하여 정신적 자기 위안을 하는 행위이며 실상은 자신의 망상으로만 이기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설명
이 말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명소설 '아Q정전(阿Q正傳)'에서 나온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Q'는 성격이 거의 찌질이에 가까운 사람인데, 길을 가다가 무뢰배를 만나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이내 "저 녀석들은 내 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들에게 찍힌 것뿐이다"고 정신적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자신 역시도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사람, 비구니 등을 때리고 비웃는 등 전형적인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무자비한 모습을 보인다.
루쉰은 당대의 중국 민중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이 작품을 "가련한 아Q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보통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상대도 못하는 중국인들을 다루었다고 하나 그것이 어디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아Q란 모습은 현대인들,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아Q는 길을 가다가 불한당에게 자주 얻어터졌는데 그 때마다 "저 놈이 내 육체는 망가뜨렸지만 내 정신에는 아무것도 못했으므로 내가 이긴 거다"고 망상했는데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겼다 하여 정신이 승리해서 '정신승리'라 한다. 풀네임으로 육체는 패배했으나 정신은 승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의 자기만족과 비슷하다.
아Q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상의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중략) 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역시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자기경멸을 잘하는 제 1인자라고 생각했다. '자기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1인자'이다. 장원도 '제1인자'이지 않은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 루쉰, 아Q정전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이겼다고 생각할 때, 본인의 인물 시세는 크게 하락한다. 이상하게도 완고한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면목을 세웠다고 생각하므로, 이후로 남이 경멸하여 상대해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생각한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공교롭게도 위의 두 작가는 각각 근대 중문학, 근대 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대문호들이다. 대문호들부터가 일찍이 정신승리를 경계하고 비판했음을 알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자기방어기제 중 자기합리화에 해당한다.
위 사례들이 이해나 공감하기 힘들다면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 했지만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따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며 지나치려는 대목을 생각하면 쉽다. 이 또한 자신의 상황이 목표를 이루지 못함에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목표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걸 포기하는 자신이 훌륭하다고 포장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그렇게 크지는 않은 규모의) 사고나 사기 등에 휘말려서 손해를 입었지만, '더 큰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은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위로삼아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상상속의 피해를 피했다는 방어기제이므로 합리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경우 본인 정신 건강에는 실제로 이롭다.
한국사에서 정신승리의 예시는 조선이 있다. 소중화(조선중화주의) 사상도 병자호란에서 참패한 것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 컸고, 박씨전이나 임진록도 당대 민중들이 시전한 정신승리법의 일종이다.
일본의 경우 국가의 발전이 늦은 고대사 부분에서 자존심 고취를 위해 한반도계 국가들을 깔보고 왜국을 우위로 두는 일본서기의 진구 황후의 삼한정벌 같은 선전들도 정신승리의 일종이며,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왜곡들도 이에 해당한다.
1. 일상 속 정신승리
유명한 짤방. 하지만 저 내용도 어디까지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의 원론적인 얘기고, 정말로 품격이 좋다던가 질이 떨어진다던가는 본인들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남보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 라는 말 역시 정신승리인 경우가 매우, 매우 많다.
위 짤방이 인터넷에 돌아다닌 이후, 말문이 막히면 건성으로 맞장구쳐주며 다투지 않는게 현명하다 여기는 일이 많은데 사실 그것도 대표적인 정신승리 예시이다. 정말 저 위와 같이 행동할려면, 처음부터 말을 섞으려 하지도 않았어야 한다.
윗 문단만 보고 '말 안통하면 조롱하고 댓글 안달면 내가 이긴거네~' 라던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얘가 이상한거지'라는 식의 사고 방식은 틀림 없는 정신승리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객관적인 기준 없이 상대를 깎아내리는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2.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행동을 한 이후에 초자아(superego)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자아(ego)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단, 요즈음에는 리플리 증후군이나 공상허언증이다 해서 지나치게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자기고문을 할 필요는 없다. 잠잠히 눈을 감고 생각해볼 때 논리적으로 얼추 맞는 것 같으면 그건 정신승리는 아니다.
3. 오해
토론은 싸움적인 측면이 있지만, 논증과 근거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승부는 아니다. 타협, 인정, 합의도 없이 상대방을 '정신승리'라고 지칭하는 것은 지금까지 상대방에게 시비와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언쟁 중에 '정신승리'란 말을 자주 한다면 자신이 논증과 근거없이 상대 주장을 무시하는것인지 거듭 확인하자.
인터넷 상에서는 토론을 무슨 전쟁처럼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논증과 근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타인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토론을 논증과 근거도 없이 무슨 목숨을 건 진검 승부처럼 생각하거나 지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도구로 삼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국회, 재판소, 공청회,학술토론 등에서의 공적인 토론들은 정말 사생결단이 되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닌 인터넷이나 일상에서의 토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시간과 에너지만 버리는 껍데기에 불과한 정신 승리자들을 양산하는 태도이다.
나무위키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공간에서는 '토론 후 상대편을 발라버렸다, 깨부쉈다' 식의 호전적 평가를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이렇게 토론을 승패의 여부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서로를 정신승리자로 매도하게 된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합리적인 의식을 키워주지 못하는 학교, 사회의 문화가 익명성을 띤 공간과 만났을 때 생기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토론의 본질은 상대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닌, 서로 의견을 공유하여 이에 따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
너 자신이 네 운명의 주인이다. 너의 운명대로,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의 충동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 프리드리히 니체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의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정신승리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큐는 성도 이름도 없다. 고향이 어딘지도 분명치 않은 날품팔이다. 그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간다.
노름을 하다 돈을 잃거나, 길을 가다 이유도 없이 깡패들에게 얻어맞아도,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녀석들과는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다."
정신승리법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해 정신적으로 만족을 얻으며 아픈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고 우쭐대다 도둑의 누명을 쓰고 혁명당에 잡혀 총살형을 당한다.
어제 저녁 부부공부모임에서 '아큐정전'의 발제자가 말했다. "아큐정전을 읽으며 차츰 내 자신이 아큐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일정 부분 아큐다.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준, 기존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기존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위치가 있다. 높은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낮은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남과의 비교에 의해 나오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아큐의 마음이 된다. 당하며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정신승리법을 쓰게 된다.
부당하게 당하며 어찌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짐승들 같으면 생각이라는 게 없어 정신승리법을 쓰지 못한다. 짐승들은 부당한 대우에는 끝까지 대들다 죽어 버리든지 도망을 친다. 정신적으로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위가 높건 낮건 불행한 삶을 살다 간다. 한평생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다 언젠가는 나가떨어진다. 그런데 인간은 기존의 세계 속에서만 살지는 않는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생각하는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기존의 세계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밀고 갈 때 자신의 세계가 열린다.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말초적이고 향락적일 수 있지만, 차츰 고상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 정신'이 깊고 넓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깊은 영혼 속으로 들어가고, 세상을 향해 넓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가 크고 강해질수록 그는 고상해진다. 기존의 세계 속에서도 그의 견고한 위치가 생긴다. 그는 비로소 자존심을 넘어서는 자존감을 갖게 된다. 자존감을 갖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않게 된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갖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정신승리법을 쓰며 살아가다 가끔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된다.
삶의 허무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큐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한다. 그래서 허망한 종말을 맞는다.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우리도 아큐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게 된다.
접시 속 낙지의 몸이
사방으로 기어나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
몸은 힘차다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
무궁무진하다는 듯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
몸뿐이라는 듯
- 조은, '낙지' 부분 -
인간에게 정신이라는 게 있어, 많은 인간들이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다간다. 낙지는 오로지 몸으로 살아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이다. 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
부정하기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자료를 들고 누군가 반박하면 "못 믿겠다"로 일관한다. 그 자료가 아무리 객관적이고 신뢰성이 있는 것이라도 무조건 부정한다. 자료 작성주체나 극단적인 소수의 예로 트집잡기도 유효하다. 이러다보면 상대방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할 상대임을 깨닫고 "에휴, 내가 말귀도 못 알아먹는 짐승새끼 붙잡고 뭐하겠냐. 시간 아까우니 그냥 가자"라며 가버리는데, 이 때 "거 봐라, 내 말이 맞으니까 도망가는거다"라며 승리선언.
말꼬리 잡기
논쟁의 본질과 상관없이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상대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를 곧이 곧대로 해석한다든가, 맞춤법이나 기타 자질구레한 문제로 논의에서 계속 멀어져 가는 것이 포인트. 소위 말하는 훈제 청어. 이러다 보면 상대방도 결국 지쳐서 포기하고 이때 승리선언을 해주면 된다. 근데 여기서 반론을 잘못하면 저멀리 안드로메다행이다.
난독증으로 몰기
무조건 "내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네가 잘못 읽어서 그런거다."로 몰고 간다. 상대가 뭐라고 하던 상관없이 상대의 항의는 전부 다 글을 잘못 읽은거라고 몰아부치다 보면 결국 쥐쥐친다. 남은 것은 승리선언 뿐.
열폭으로 몰기
위의 난독증으로 몰기와 유사하다. "네가 잘난 사람이라면 내 글에 화낼리가 없다. 네가 찔리는게 있으니까 화내는 거다"라고 주장하면 된다. 아무리 상대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해도 몰고가면 그만이다. 인신공격에 지친 상대가 떠나갈 때 승리선언을 해주면 된다.
낚시사칭
병크를 터뜨려 신나게 남들에게 두드려 맞다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방법. "난 사실 이런 병신이 아니지만 너희들을 낚기 위해 일부러 도발을 한 거다. 너희들은 리플 다는 순간 나한테 다 낚인거다"라고 주장하면 된다. 현실의 자신은 사실 잘났음을 계속 내세울수록 초라함은 더해져만 간다.
인신공격
상대방의 주장의 타당성과 논리성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을 인신공격하는 방법. 예를 들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벌어지는 좌빨 VS 수구꼴통의 병림픽이 있다. 이런 경우는 상대방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서로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매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또는 "내 주장 반대하면 넌 수꼴(또는 좌빨)"이런 식의 우물에 독뿌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메타 정신승리
정신승리법을 사용한 후 상대방이 이를 문제삼아 까기 시작할 때, "내가 정신승리하는 것을 너희들은 막지 못했으니 너희들은 병신이다"고 주장하면서 승리 선언을 또 하는 행위.
뒷치기
게시판등에서 자주 보이는건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용해서 처절하게 발리다가 시간이 지나 게시판이 페이지를 넘어가서 조용해지면(1페이지에 있던게 2,3페이지로 넘어갈때) 그때서 다시 나타나서 일인극으로 승리하는 척하기...(그대로 논쟁과정을 그대로 처음부터 본사람이 그걸 본다면 단순한 찌질극이지만 상대방이 거기에 딱히 대응을 안하면 스스로 승리했다는 만족감에 방방뛰는 재밌는 병크를 볼수있다)
무승부 선언
사실상 논쟁에서 자기자신이 완전히 발렸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남들이 보기엔 무승인양 보이게 하기 위해서 적당하게 꾸며서 "이런건 계속 떠들어봤자 똑같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한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는 행위이다. 이렇게 하면 자기자신은 전혀 논쟁에서 발리지 않았다는 인상을 상황 모르는 제3자들에게도 주고, 더불어 자기도 지지 않았다는 정신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게 된다.
우월감 표출
주로 17대 1의 양상에서 자주 보이는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병맛스러운 글을 써놨음에도 자신이 개념인인양 자신의 의견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하등한 인간으로 깎아내리는 수법이다. 주로 중2병 계열이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듯. 이 방법을 사용하면 상대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에게도 분노를 일으켜 논쟁이 초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 수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보면 정작 통신어나 욕 등의 소위 저급한 발언들은 자기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이런식으로 논쟁이 시작되면 보통 1번의 부정하기로 이어져 다 떠나가고 혼자 남아서 승리선언.
모순적인 태도
어떤 논리도 양면으로 차단하여 논리 자체를 막아버리려는 태도. 예로 상대가 무언가를 까면, 그 무언가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서 까는 티가 날 경우에는 "깔려면 제대로 알고 까라"고 반론한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가 무언가에 대하여 잘 알고 까는 티가 날 경우에는 "알건 다 아는 주제에 깐다"고 반론한다.
■ 19세기版 정신승리 vs. 21세기版 정신승리
지난 정권의 운동권식 항쟁은, 19세기 우금치에서 보여준 군중들의 비현실적 믿음(부적,주술)과 그 지도부의 막연한 희망에 닮아 있다.
'정신승리(精神勝利)'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이렇게 된다. 어떠한 사건을 가지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의 의견은 무시하고 근거없는 논리를 펼치며 자신이 논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또는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하게 종합하면,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자기만족 내지 착각쯤 된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이런 '정신승리'가 전통 문화의 하나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다. 명분과 말을 앞세우는 한국 특유의 분위기 탓(주자학, 성리학)인지 모르겠다.
1894년 11월, 충청도 우금치에서 군중들(동학농민)이 보여준 행동은 이러한 정신승리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집결한, 만 명에서 최다(最多) 수 만 명으로 추정되는 동학농민들은, 중무장한 일본군을 향해 인해전술식 돌격을 감행했다. 손에 든 것은 죽창과 화승총이었다. 밀집대형을 갖춰 돌격한 당시 군중들은, 일본군 기관총(캐틀링 건) 앞에서 속수무책 추풍낙엽이 되었다. 이러한 인해전술식 돌격은 40~50차례 반복되었다.
누가 봐도 무모했던 이러 시도의 배경으로는, 당시 군중(동학농민)의 비현실적 확신(믿음)과 동학농민 지도부의 막연한 희망이 어우러진 탓이다. '총알이 피해간다'는 부적과 주문(주술)은 당시 군중(동학농민)에게 절대적 믿음으로 받아들여졌고, 한번은 성공할 것이라는 지도부의 근거 없는 희망은 인해전술인해전술식 돌격을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작전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군중의 비현실적 믿음과 지도부의 막연한 희망이 합작하여 큰 비극으로 이어진 셈인데, 여기서의 '비현실적 믿음'과, '막연한 희망'은, '정신승리'라는 말이 갖는 사전적 의미(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자기만족 내지 착각)와 큰 틀에서 일맥상통한다.
안타깝게도 21세기에 들어와서 조차, 이러한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자기만족 내지 착각 현상은 한국을 휩쓰는 중이다. 일본제품 불매하고 일본여행 보이콧하며, 촛불 들고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가 이웃 나라 지도자(아베 총리)를 비난하면, 일본이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게 되어 마침내 한국이 이기게 된다는 확신이 오늘날 한국의 군중에게는 일종의 믿음(신앙) 같이 자리잡은 것 같다.
일본기업들과 일본의 지역경제(관광지)가 곧이라도 망할 것처럼 과장 보도하는 언론의 선동에 더하여, 문재인 정권의 운동권식 대일(對日) 자세는 군중들로 하여금, '일본을 기선 제압했다'는 생각과 함께 '더 밀어붙이면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했고, 이것은 부푼 기대감(일본은 곧 무릎 꿇는다)으로 연결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은, 국산화, WTO제소, 정보협정파기, 화이트리스트 제외 맞대응, 방사능 이슈 제기 등의 운동권식 투쟁과 더불어, 이같은 군중의 뒷받침(불매운동)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본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러한 기대감(일본이 곧 무릎)은, 요즘 한국의 전계층과 전분야에 만연하여, 남녀노소, 공무원, 민간이, 너나 가릴 것 없이 항일(抗日)을 실천하게 만들었다. 그 실천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진 탓인지 여기저기서 코미디 내지 소아병적 수준을 넘어 마녀사냥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같은 한국의 기대감 그리고 지난 정권의 '운동권식 항쟁'은, 19세기 우금치에서 보여준 군중들의 '비현실적 믿음'(부적, 주술)과, 그 지도부의 '막연한 희망'에 섬뜩하리만치 닮아 있다.
불매운동으로 악영향 받는 일본기업은 전체 일본기업 중 극히 일부인 것이 현실이며, 피해 보는 일본기업의 그 피해 정도 또한 한국 언론이 전하는 것만큼 치명적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일본여행 취소에 따른 일본 현지의 피해규모 역시 한국 언론이 전하는 것만큼 심각한지 여부도 좀더 지켜봐야 한다. 불매운동이나 일본 안가기 운동이 국내에서 향후 영원토록 지속된다고 쳐도, 그에 따른 일본의 피해는 시간이 좀 지나면 원래 상태로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일본 제품을 한국인들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여행을 한국인들만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중에 남는 것은, 같은 한국인들끼리의 고통(소매매출 부진, 여행사 파산, 실업자 증가 등)과, 이에 따른 내수 침체라는 자충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 精(정할 정/찧을 정)은 ❶형성문자로 精(정)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쌀 미(米; 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靑(청, 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靑(청)은 푸른 색깔, 깨끗하다, 깨끗하게 하는 일을 뜻하고, 米(미)는 곡식으로, 精(정)은 곡식을 찧어서 깨끗이 하다, 정미(精米), 애벌 찧는 것을 粗(조)라는 데 대하여 곱게 찧는 것을 精(정)이라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精자는 '깨끗하다'나 '정성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精자는 米(쌀 미)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靑자는 초목과 우물을 함께 그린 것으로 '푸르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푸르고 깨끗함을 뜻하는 靑자에 米자가 결합한 精자는 '깨끗한 쌀'이란 뜻으로 만들어졌다. 수확한 벼는 탈곡 후에 다시 도정(搗精)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정 과정을 잘 거쳐야만 깨끗한 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 옛날에는 오로지 사람의 노동력으로 도정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精자는 '깨끗하다'라는 뜻 외에도 '정성스럽다'라는 뜻도 함께 갖게 되었다. 그래서 精(정)은 (1)정수(精髓) (2)정수(精水) (3)정기(精氣) 등의 뜻으로 ①정(精)하다(정성을 들여서 거칠지 아니하고 매우 곱다) ②깨끗하다 ③정성(精誠)스럽다 ④찧다(쌀을 곱게 쓿다) ⑤뛰어나다, 우수(優秀)하다 ⑥가장 좋다, 훌륭하다 ⑦총명(聰明)하다, 똑똑하다, 영리(怜悧)하다 ⑧세밀(細密)하다, 정밀(精密)하다, 정교(精巧)하다 ⑨정통하다, 능통하다, 능(能)하다 ⑩순수한, 정제(精製)한, 정련한 ⑪몹시, 매우, 대단히 ⑫정기(精氣), 정신(精神), 정력, 원기(元氣) ⑬요정(妖精), 정령(精靈), 요괴(妖怪) ⑭도깨비 ⑮정액(精液)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정할 전(奠), 정할 정(定), 반대 뜻을 가진 한자거칠 조(粗)이다. 용례로는 마음이나 생각 또는 영혼을 정신(精神), 온갖 성의를 다하려는 참되고 거짓이 없는 성실한 마음을 정성(精誠), 가늘고 촘촘함이나 아주 잘고 자세함을 정밀(精密), 정밀하고 교묘함을 정교(精巧), 자세히 살피어 읽음을 정독(精讀), 정성을 들여 잘 만듦을 정제(精製), 정밀한 계산을 정산(精算), 어떤 사물에 대하여 밝고 자세하게 앎을 정통(精通), 상세하고 확실함을 정확(精確), 뼈 속에 있는 골 또는 사물의 가장 중심이 되는 알짜를 정수(精髓), 썩 날래고 용맹스러움 또는 정련된 군사를 정예(精銳), 암수의 생식 세포가 서로 하나로 합치는 현상을 수정(受精), 곡식 등을 찧거나 쓿는 일을 도정(搗精), 조촐하거나 깨끗하지 못하고 거칠거나 지저분함을 부정(不精), 자세히 연구함을 연정(硏精), 마음을 가다듬고 성의껏 힘씀을 여정(勵精), 순수한 금과 좋은 옥이라는 뜻으로 인격이나 문장이 아름답고 깨끗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정금양옥(精金良玉), 쇠붙이가 충분히 단련되었다는 뜻으로 충분히 숙련되고 많은 경험을 쌓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정금백련(精金百鍊), 사리에 밝고 판단에 민첩하며 역량과 재능이 뛰어나다를 이르는 말을 정민강간(精敏强幹), 삼가 게을리 하지 않고 일에 힘쓴다를 이르는 말을 정려각근(精勵恪勤),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하다를 이르는 말을 박이부정(博而不精), 몹시 애를 쓰고 정성을 들인다를 이르는 말을 각고정려(刻苦精勵),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라는 뜻으로 자식은 부모로부터 그 정신과 육체를 물려받았음을 이르는 말을 부정모혈(父精母血),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한다를 이르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작은 것이 정밀하고 세차다는 뜻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다부지고 강한 면모가 있다를 이르는 말을 단소정한(短小精悍) 등에 쓰인다.
▶️ 神(귀신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申(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申(신)과 만물을 주재하는 신(示)의 뜻을 합(合)하여 정신을 뜻한다. 申(신)은 번갯불의 모양이고, 示(시)변은 신이나 제사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神(신)은 천체(天體)의 여러 가지 변화를 부리는 신, 아주 옛날 사람은 천체의 변화를 큰 신비한 힘을 가진 신의 행위라 생각하고 그것을 번갯불로 대표시켜 神(신)자로 삼았다. ❷회의문자로 神자는 '귀신'이나 '신령', '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神자는 示(보일 시)자와 申(펼 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申자는 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번개는 신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申자는 '하늘의 신'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申자가 '펴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示자를 더한 神자가 '신'이나 '신령'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神(신)은 (1)인간의 종교심(宗敎心)의 대상이 되는, 초인간적 위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존재. 명명(冥冥)한 중에 존재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능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신령(神靈). 곧 종교 상 귀의(歸依)하고 또 두려움을 받는 대상 (2)하느님 (3)귀신(鬼神) (4)신명(神明) (5)삼신(三神) (6)영묘 불가사의(靈妙不可思議)하여 인지(人智)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것 (7)거룩하여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 신성(神聖) 등의 뜻으로 ①귀신(鬼神) ②신령(神靈) ③정신(精神), 혼(魂) ④마음 ⑤덕이 높은 사람 ⑥해박한 사람 ⑦초상(肖像) ⑧표정(表情) ⑨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 ⑩신품(神品) ⑪신운(神韻: 고상하고 신비스러운 운치) ⑫영묘(靈妙)하다, 신기하다 ⑬화하다 ⑭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⑮소중히 여기다 ⑯영험이 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신령 령/영(靈), 귀신 귀(鬼), 넋 혼(魂), 넋 백(魄)이다. 용례로는 선도를 닦아서 도에 통한 사람을 신선(神仙), 신과 사람 또는 신과 같은 만능의 사람을 신인(神人), 죽은 사람 위(位)를 베푸는 나무 패를 신주(神主), 신의 종복이란 뜻으로 기독교 신도가 스스로 낮추는 말을 신복(神僕), 신령의 자리로서 설치된 것이나 장소를 신위(神位), 영성의 생명 또는 신의 명령을 신명(神命), 신묘하고 기이함을 신기(神奇), 신령을 모신 집을 신당(神堂), 신기하고 영묘함을 신묘(神妙), 신의 공덕을 신덕(神德), 귀신이 몸에 접함을 신접(神接), 마음이나 생각을 정신(精神), 사람의 죽은 넋으로 어떤 일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을 귀신(鬼神), 본 정신을 잃음을 실신(失神), 땅을 맡은 신령을 지신(地神), 신을 받들어 공경함을 경신(敬神), 비밀에 속하는 일을 누설함을 일컫는 말을 신기누설(神機漏泄), 신이 행하는 뛰어난 계략을 일컫는 말을 신기묘산(神機妙算), 큰 일을 당해도 냉정하여 안색이 평소와 다름없이 변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신색자약(神色自若), 예술작품 따위에서 신비한 기운이 어렴풋이 피어 오름을 일컫는 말을 신운표묘(神韻縹渺), 신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분노할 만큼 증오스럽거나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신인공노(神人共怒), 비밀에 속하는 일을 누설함을 이르는 말을 신기누설(神機漏泄), 큰 일을 당해도 냉정하여 안색이 평소와 다름없이 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신색자약(神色自若), 헤아릴 수 없는 변화의 재주를 가진 힘을 일컫는 말을 신통지력(神通之力), 귀신처럼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는 뜻으로 날쌔게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신출귀몰(神出鬼沒) 등에 쓰인다.
▶️ 勝(이길 승)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힘 력(力; 팔의 모양으로, 힘써 일을 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朕(짐)으로 이루어졌다. 근육(月)을 써서 힘써 싸운다는 뜻이 합(合)하여 이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勝자는 '이기다'나 '뛰어나다', '훌륭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勝자는 朕(나 짐)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朕자는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천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朕자는 천자가 자신을 뱃사공에 비유하여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力자가 더해진 勝자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천자가 힘을 발휘한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즉 勝자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나라를 훌륭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기나'나 '뛰어나다', '훌륭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勝(승)은 (1)일부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승리(勝利)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이기다 ②뛰어나다 ③훌륭하다 ④경치(景致)가 좋다 ⑤낫다 ⑥승리를 거두어 멸망시키다 ⑦넘치다 ⑧지나치다 ⑨견디다 ⑩바르다 ⑪곧다 ⑫기회(機會)를 활용하다 ⑬뛰어난 것 ⑭부인(婦人)의 머리꾸미개 ⑮훌륭한 것 ⑯이김 ⑰모두, 온통, 죄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극(克), 견딜 감(堪), 참을 인(忍), 견딜 내(耐),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패할 패(敗), 질 부(負)이다. 용례로는 겨루어 이김을 승리(勝利), 이김과 짐을 승패(勝敗), 이김과 짐을 승부(勝負), 송사에 이김을 승소(勝訴), 꼭 이길 만한 좋은 꾀 또는 가망을 승산(勝算), 경기나 내기 따위에서 이겨서 얻은 점수를 승점(勝點), 경치가 좋은 높고 밝은 곳을 승개(勝塏), 뛰어나게 좋은 경치를 승경(勝景), 경개 좋기로 이름난 곳을 승지(勝地), 경치가 좋음 또는 좋은 곳을 경승(景勝),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승(名勝), 크게 이김을 압승(壓勝), 운동 경기 등에서 이기고 짐을 마지막으로 가림을 결승(決勝), 성미가 억척스러워서 굽히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기승(氣勝), 경기나 경주 등에서 첫째로 이기는 것을 우승(優勝), 힘이나 가치 따위가 딴 것보다 썩 나음 또는 크게 이김을 대승(大勝),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통쾌한 승리 또는 시원스럽게 이김을 쾌승(快勝), 잇달아 이김을 연승(連勝), 완전하게 이김 또는 그런 승리를 완승(完勝),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한 번도 지지 않고 전부 이김을 전승(全勝), 승전의 결과를 적은 기록을 일컫는 말을 승전보(勝戰譜), 재주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함을 일컫는 말을 승기자염(勝己者厭), 이기고 짐을 판가름하는 운수를 이르는 말을 승패지수(勝敗之數),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백전백승(百戰百勝), 어떤 일에 앞장서는 자나 맨 먼저 주창하는 자를 이르는 말을 진승오광(陳勝吳廣),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한다는 뜻으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임을 이르는 말을 자승자강(自勝者强), 나은 자는 이기고 못한 자는 패함 또는 강한 자는 번성하고 약한 자는 쇠멸하는 적자 생존을 일컫는 말을 우승열패(優勝劣敗), 한 번 이기고 한 번 짐을 일컫는 말을 일승일패(一勝一敗),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약한 것을 보이고 적의 허술한 틈을 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능승강(柔能勝剛), 교묘한 꾀로 먼 곳의 싸움을 이기는 것을 이르는 말을 결승천리(決勝千里), 이름난 지구와 경치 좋은 곳을 이르는 말을 명구승지(名區勝地),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하도 수가 많아서 이루 셀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불가승수(不可勝數), 명승과 고적 즉 훌륭한 경치와 역사적인 유적을 일컫는 말을 명승고적(名勝古跡), 남과 겨루어서 꼭 이기기를 즐기는 성벽을 일컫는 말을 호승지벽(好勝之癖), 매우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일컫는 말을 희부자승(喜不自勝), 이길지 질지 분간이 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분승부(不分勝負), 스스로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버릇을 일컫는 말을 자승지벽(自勝之癖), 공은 사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공적인 일에도 사사로운 정이 끼여들게 마련이라는 말을 공불승사(公不勝私), 싸울 때마다 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연전연승(連戰連勝), 지세가 좋아서 승리하기에 마땅한 자리에 있는 나라를 일컫는 말을 형승지국(形勝之國),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땅을 일컫는 말을 형승지지(形勝之地), 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호승지심(好勝之心), 승부가 서로 같음 즉 서로 비김을 일컫는 말을 상승상부(想勝相負), 재주는 있으나 덕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재승덕박(才勝德薄), 재주는 있으나 덕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재승박덕(才勝薄德), 수효가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지불승굴(指不勝屈),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길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중승천(人衆勝天),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승가강(自勝家强), 싸움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계속 적을 몰아침을 일컫는 말을 승승장구(乘勝長驅), 기묘한 계략을 써서 승리함을 일컫는 말을 출기제승(出奇制勝) 등에 쓰인다.
▶️ 利(이로울 리/이)는 ❶회의문자로 勿(물)은 여기에서는 쟁기와 흙을 나타내는 모양이며 논을 갈아 엎는 모양이다. 禾(화)는 벼라는 곡식을, 利(리)는 곡식을 만드는 밭을 가는 쟁기로, 쟁기날이 날카롭다, 나중에 날카롭다는 것과의 관계로 부터 勿(물)을 刀(도)로 쓰게 되고, 또 刀(도)는 돈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익의 뜻으로도 쓰여지게 된 듯하다. ❷회의문자로 利자는 '이롭다'나 '유익하다', '날카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利자는 禾(벼 화)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벼와 칼을 함께 그린 것이니 利자는 벼를 베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利자는 본래 칼이 벼를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 利자에 아직도 '날카롭다'나 '예리(銳利)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利자는 후에 '이익'이나 '이롭다'라는 뜻이 파생 되었는데, 벼를 베어 추수하는 것은 농부들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利(리)는 ①이롭다, 이하다(이익이나 이득이 되다) ②이롭게 하다 ③유익하다 ④편리하다 ⑤통하다 ⑥날카롭다 ⑦이기다 ⑧날래다 ⑨탐하다 ⑩이자 ⑪이익(利益) ⑫승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더할 가(加), 더할 증(增), 더할 첨(沾), 더할 첨(添), 더할 익(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해할 해(害)이다. 용례로는 편리하게 씀을 이용(利用),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된 것을 이익(利益),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남에게 돈을 빌어 쓴 값으로 무는 일정한 비례의 돈을 이자(利子), 돈벌이를 하는 동안에 남는 돈을 이윤(利潤), 적을 이롭게 함을 이적(利敵), 자기 이익만 꾀함을 이기(利己), 이익을 탐내는 욕심을 이욕(利欲), 다른 이에게 이익을 주는 일을 이타(利他), 겨루어 이김을 승리(勝利), 이익이 있음을 유리(有利),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쉬움을 편리(便利), 빌려 준 돈의 이자를 금리(金利), 조건이나 입장 따위가 이롭지 못함을 불리(不利), 날이 서 있거나 끝이 뾰족함을 예리(銳利),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을 폭리(暴利),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실지로 얻은 이익을 실리(實利), 이해 관계를 이모저모 따져 헤아리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이해타산(利害打算),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로움과 해로움 이나 얻음과 잃음을 일컫는 말을 이해득실(利害得失), 이익과 손해가 반반으로 맞섬을 일컫는 말을 이해상반(利害相半), 이욕은 사람의 밝은 지혜를 어둡게 만듦을 이르는 말을 이령지혼(利令智昏),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이국편민(利國便民), 이를 찾는 문과 명예를 얻는 길을 일컫는 말을 이문명로(利門名路), 이가 되든지 해가 되든지 간에를 이르는 말을 이불리간(利不利間), 적을 이롭게 하는 짓을 이르는 말을 이적행위(利敵行爲), 이로움이 있는 곳을 말함을 이르는 말을 이지소재(利之所在), 이해를 따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이해불계(利害不計), 이해에 관하여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따진다는 뜻으로 인색함을 가리키는 말을 이석추호(利析秋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