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금을 보았네 (외 1편)
황형철 바닥을 보인다는 게 사방에서 꽂는 해적 룰렛의 칼 같아서 먼저 악수를 청하기 꺼리는 건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 숫자를 셀 때 새끼손가락부터 펴는 당신에게 괜히 핑계라도 걸어 볼 게 있나 싶은데 하나 둘 셋 천천히 드러나는 손금을 보고 있자니 지루한 슬픔을 노래하는 목소리와 한 박자 빠른 리듬으로 땡볕도 장마도 지나고 질문이 많은 눈과 입은 봄날 꽃잎 같아 사람은 평생에 몇 번 벚꽃을 볼까* 생의 개화기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렸을까 자꾸 먼 데로 향하는 시선 애써 돌리며 밖으로 뻗은 선을 살곰이 바라보는 것으로 빙하를 가르는 쇄빙선처럼 뜨거웠어 나는
*이바라기 노리코 시 「벚꽃」 중에서
바다 한 알
가무락조개 한 바구니 해감하자니 차르르 차르르 수십 수백만 물결 조가비에 새기며 파란도 바람도 견디고 세상 뒤집을 태풍도 가지고 있어 썰물도 먼 데까지 나가려는 단단한 그리움이란 말이지 연신 쌀 씻는 소리로 출렁이는 한 알 바다가 되기까지 지난했을 조개를 골똘히 다독이자니 문득 대번에 수평선을 달려와 뜨겁게 빗줄 긋던 그 사람 생각 뻐금, 입을 벌리는 것이지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 2024.1 ----------------------- 황형철 / 1975년 전북 순창 출생.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 『그날 밤 물병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