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하듯이 아침 설거지를 마치자 마자 남편은 대뜸 경주에 놀러가자고 한다. 경주? 지금이 9시가 넘었는데, 게다가 왕복 6간이나 걸리고,아이들 점심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이건 또 왠 번갯불에 콩볶는 소릴까?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신문을 뒤적이니 혼자라도 간다던 남편은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커피를 두 잔 태워서 나에게 머그잔을 건넨다. 어젯밤 늦게까지 보고서 작성하느라 바빴던 터에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든 놀아(?)줘야 할 운명인가보다. 지도를 뒤적이며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단양 온달산성이나 구인사쪽으로 가보자고 합의를 보고, 아이들 점심으로 초밥을 사놓고, 도서관에 빌린 책도 갔다주고 그러고 나서니 벌써 11시 30분이 지나버렸다. 죽령터널이 개통되고 나서는 단양까지 1시간 걸리던 것이 20분이면 도착을 한다.
▲ 드라마 '연개소문'세트장이 단양 온달산성 입구에 있었다. '태왕사신기'도 이 곳에서 촬영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연개소문'도 '태왕사신기'도 보지 않아서 감흥이 별로 나지 않았다. 다만 문경새재의 '왕건'세트장에 비해 웅장했다. 고구려의 위상을 한 껏 나타내었고 모든 것들이 중국의 모습과 많이도 닮아있었다. 중국과 고구려의 지역적으로 인접해있음이 그대로 드러남이겠지.
▲ 모든 건물이 붉은 색이 주된 색이었다.
▲ 전시장 붓들이 시선을 끌었다. 종이에 도대체 몇 자나 쓸 수 있을까? 먹은 또 얼마나 팔아프게 갈아대어야 할까?
▲ 이것은 그나마 작은 편에 속한다.
▲ 형장을 사람들이 제일 재밌어 했다. "네 이놈! " 여기저기서 소릴 질러대고 주리를 틀고, 볼기짝을 때리는 시늉을 해대며 깔깔 웃었다.
▲ 온달동굴. 나는 동굴을 정말 싫어한다. 입장료를 5천원이나 주고 들어와 어쩔 수 없었다. 드라마 세트장과 온달동굴 온달산성을 한 번에 표를 끊어야 했다. 대신 주차료는 없다. 동굴만 들어가면 다시는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장담을 했건만...... 입구에서 안전모를 지급했다. '머리조심'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써여있고.
▲ 이렇게 힘든 동굴도 처음이다. 안전모를 안 썼다면 아마도 열 두 번도 더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동굴천장이 너무 낮고 여기저기 지나치다 보면 안전모에서 빡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안전모를 잡고 얼마나 놀랬는지? 게다가 어떤 곳은 쪼그려 앉아서 토끼걸음으로 기다시피 지나쳐야 하고, 또 어떤 곳은 쪼그려 앉아 미끄럼을 타면서 지나야 하기도 했고, 뚱뚱한 사람은 절대 통과할 수 없는 아주 좁은 곳도 있었다. 협소하고 좁은 곳을 미끄러져 빠져 나오는데, 방앗간에서 가래떡 나오듯 사람이 하나 둘 통과해 혼자 얼마나 소리내어 웃었는지?
▲ 동굴너머에는 저리도 평화로운 남한강 줄기가 구름과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온달장군이 이 동굴엔 왜 들어갔을까? 다리가 너무 풀려 남편은 온달산성엔 나혼자 갔다오라고 베짱을 내밀었다. 온달산성, 아마도 산 꼭대기에 있겠지? 다음 기회로 남겨두었다.
▲ 온달장군이 엄지손가락으로 바위에 윷판을 찍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조형물. 전설은 허풍이 다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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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풍경화처럼 원문보기 글쓴이: agenes
첫댓글 온달은 아차산에도 있는데..
온달장군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나봐요.
아녜스님은 동굴을 싫어하시는군요.근데 힘들게 동굴을 통과하고난뒤 맞이하는 평화로운 풍경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 다음에가면 저도 그곳에가서 머리를 몇번씩 빡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싶어요.^^
'톰소여의 모험'에 보면 동굴에서 허크와 함께 살인자도 봤는데.... 박쥐도 날올 것 같고, 물 속에서 괴물도 나올까 겁나고, 동굴 입구가 막혀버릴까, 동굴 속의 전기가 정전이 되어버릴까, 동굴의 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이는 동안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별별 생각을 다 하는라고 다시는 안갈려고 했는데 그 결심이 또 깨어져 버렸어요. 다음엔 진짜로 안가야지~~
전 아무생각없이 아무곳이나 기회만 닿으면.... 단순 무식해서리 ㅎㅎ 아녜스님의 상상력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봐요. 재밌어요. 다음엔 진짜로 가지 마셔요. ㅎㅎ
겁이 많아서 그래요. 잘 놀래서 늘 핀잔을 들어요. 우리 가족들은 그러려니 한답니다.
놀아줘야하는 아녜스님 남편 덕에 저희도 온달산성을 구경 자알 합니다~ ㅎㅎㅎ 그래도 지방이기에 짧은시간에 가볼만한 곳들이 꽤많아서 좋을것 같아요... 저희도 예전에 구미살때 그런점이 참 좋았거든요... 지금은 도시이름들을 잊어버렸는데...서울에서 살면 먼거리 여행일 될만한 곳들인 구미 주위의 이곳저곳 주말이면 신나게 놀러다녔던 때가 생각나네요~ ^^
멀리 가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1~2시간 반경으로 돌려니 늘 다녔던 곳 뿐이에요. 구미의 금오산도 좋지요. 사실 수능이 열흘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놀러가자니 마음이 안내켜서 미적미적 그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