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사이트 야구 게시판에 주저리 주저리 쓴 글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다른 팀의 연패에는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길 뿐, 저팀이 왜 자꾸 졌는지 저 팀 팬들이 요즘 왜 열받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한화이글스가 어땠는지 <타팀 팬>들에게 한번 보여주기 위해서 써 본 글입니다.
그런데 워낙 길게 써놔서 여기에도 한번 올려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한화 사정을 잘 모르는 타팀팬들 보라고 쓴 글이구요. 지난 20일간의 충격적인 연패를 기억하기 싫은 분이라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나한테 생긴 비극은 남들보다 훨씬 더 애절하며, 내 스토리가 누구보다 더 비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지금 내 상황이 남들보다 좋고, 내 비극이래봤자 타인의 그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인데도, 그저 "그 일이 나한테 일어났기 때문에" 훨씬 크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한화이글스에게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정말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보다 더 슬프고 방귀를 뀌려고 했는데 똥이 나와버린 상황보다 훨씬 더 황당했습니다.
(1) 최영필의 시즌 아웃
지난 5월31일 잠실 두산전에서 한화이글스는 불펜의 핵인 최영필의 시즌이 끝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중전 안타 이후 홈으로 주춤주춤 백업을 들어가다 사정없이 돌아가는 그의 발목은 마치 2000년 시드니에서의 송지만을 떠올리게 만들었죠. 예상대로 발목 골절이었고 구대성 앞에서 궃은일을 도맡아 하던 필사마는 결국 전력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게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한화팬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운 위기감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경기에서 송진우의 호투와 타선의 분발, 그리고 안영명-차명주-김해님의 효율적인 계투로 승리를 낚았고, 이튿날은 류현진이 8이닝 2안타 12K를 기록하며 질주를 계속했죠. 게다가 그 다음날은 땜빵선발이 1회에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롱맨으로 나온 안영명의 호투로 승리했습니다. 아주 기분좋은 3연승이었고, 이 승리로 인해 한화이글스는 28승 16패를 기록하며 +12승의 여유로 시즌을 운용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최영필의 부상이 오히려 선수단을 단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 같았고, 다른 투수들이 조금씩 더 고생하면 필사마의 공백도 그럭저럭 메꿀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장춘몽이었습니다.
(2) 대성불패의 체력
3연승의 마지막 날 구대성은 2이닝동안 45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도 경기를 매조지 했습니다. 사실 구대성은 그때까지 꽤 많은 게임수와 이닝수를 책임지고 있었고 WBC에서도 불펜의 핵심으로 애니콜 노릇을 해왔습니다. 제 아무리 소문난 철완이라고 해도 그는 올해 38살인데 말입니다.
결국 사단이 났습니다. 3연승 끝에 맞이했던 6월 4일 현대전, 구대성은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쿠옹놀이가 잘 안 통하네요> <괜찮아요 쿠옹, 다음 경기는 확실하게 막아주삼^^>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지쳐있었고 칼날같던 제구력도 약간 무뎌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한화이글스는 찜찜한 1패를 당한 뒤 홈으로 돌아갔고, 최영필의 공백과 구대성 연투에 의한 체력저하. 라는 불안요소를 갖고 운명의 그 날을 맞았습니다. 올 시즌이 끝날때까지 잊을 수 없는 현충일의 악몽. 바로 오석환의 악질적인 <끝내기 오심> 말입니다.
(3) 1패는 그렇다 치더라도, 팀 분위기는?
6월 6일 현충일, 그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뛴 선수들과 더위를 참으며 선수들을 응원한 팬들은 한 심판의 끝내기 오심으로 많은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패전투수 구대성>이라는 낯선 상황을 접했던 바로 그 다음 경기에서 가슴을 회칼로 도려내는듯한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가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테고 그 역시 벌금과 출장정지를 당했지만, 그 절묘한 타이밍에서의 1패, 그리고 망가질대로 망가진 팀 분위기는 아무도 보상해주지 못했습니다.
4대3으로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9회에 구대성을 올려 역전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구대성은 바로 전 두경기에서 86개의 공을 던진 후 딱 하루 쉬고 등판했지만 9회를 잘 막았고 한화이글스는 동점타를 치며 찬스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심판만은 그 동점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구대성이 모자까지 집어던지며 고래고래 악을 쓰고 항의했지만 오석환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한화이글스는 1패를 떠않게 됐습니다.
잔혹한 아픔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아주 추풍 낙엽이었습니다. 최근 몇 경기에서 왠만한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기록한 구대성은 바로 다음 경기에 또 나왔습니다. 뭐 이겨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계속 불안했습니다. 결국 대성불패는 최정에게 스리런을 맞고 회장님의 승리를 날렸죠. 비록 승이 패보다 10개나 많았지만 완전히 시즌 GG를 쳐야할 분위기였습니다. 한 없이 무너져내릴 분위기였으니까요. 이때부터 연패의 책임을 <오석환>이 아니라 <감독님>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수면위로 속속 떠오르기도 했지요.
다행히 다음 경기에서 류현진이 기적같은 완투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한화이글스의 힘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다음 경기는 선발투수의 힘에서 밀려 패했고, 그 다음 경기는 한기주에게 완벽하게 당했으며, 그 다음 경기는 구대성이 아예 5실점(2자책)을 하면서 팀도 3연패, 구대성도 3연패가 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대성인데 9회 3점차를 못 지켜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최근 5경기동안 200개 가까이 던졌으니까요. 네이버 댓글에는 대성필패라는 조롱이 넘쳐났고 X대성 이라는 치욕적인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4) 추풍 낙엽처럼 무너지는 투수진
이렇게 된 이상 이제 거칠 것이 없습니다. 숨막힐 듯이 얻어맞고 지기만 하면 됩니다. 구대성 5실점 악몽의 다음날은 문동환이 나왔는데 12대3으로 졌습니다. 다행히 이튿날 회장님의 눈물겨운 투혼으로 197승을 엮어냈지만 요즘 계속 무리중인 권준헌-안영명-구대성을 줄줄이 투입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겨우 짜낸 승리였습니다. 물론 팀이 어려운 상황이니 당연히 힘을 짜내야 했는데 문제는 그들의 나이와 최근의 연투를 감안할 때 한번 짜내니까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구대성의 첫 패전 이후 12경기에서 2승 10패, 그 10패중 4패가 <구대성>이며 "참사"라고 부를만한 특급 역전패가 4경기 있었습니다. 끝내기 오심도 당했고, 에이스의 7실점도 당했고 쉴 새 없이 얻어맞으며 그로기 상태가 됐네요. 어제 문동환의 부활과 함께 꾸역꾸역 1승을 했으면 뭔가 좀 추스렸을텐데 어제도 저렇게 지면 솔직히 할 말이 없습니다.
최영필이 없으니 구대성이 연투하면서 피로가 가중됐고, 조원우-신경현-김민재-클리어가 크고작은 부상으로 계속 플래툰 출장하고 있으며, 4번타자부터 6번타자까지 죄다 .260을 치고 있으니 이기면 그게 이상하겠죠. 제 아무리 팀이 안 나갈때는 안 좋은 면만 보인다고 하지만, 글쎄요...이건 쉽게 회복될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3점이건 4점이건 그냥 뒤집히고 그것도 전부 8회, 9회에 벌어지는 사태이니 말입니다.
뭐....시즌을 치루다 보면 5연패 6연패도 몇번 쯤 해보고 살다보면 한 10연패 까지도 할 수 있지만, 이건 좀....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악재가 겹쳐도 어떻게 저렇게 겹치나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구대성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선수가 시즌아웃, 심판의 끝내기 오심, 마무리의 GG.
뭐 못나갈 때가 있으면 잘나갈 때도 있겠지만, 구대성에게 집중된 투수진의 과부하를 풀어주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여서 더 답답합니다. 내놓은 대안이라고는 <<안영명 6월 9일부터 어제까지 8경기 연속 등판>> 이런 식이니 더 가슴이 아프기도 하구요. 주전 야수도 아니고 투수가 17경기에서 14경기를 나오는데 뭐 방법이 있겠습니까. 던질 선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럼 그나마 던지는 그 선수도 쓰러지겠죠.
뭐 원래 5~6위 할 팀이니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수도 있지만, 저렇게 처참하게 자리를 찾아가면 마음이 좀 아프네요. 지더라도 좀 티 안나게 지던가........쿨럭.;;;;
첫댓글지더라도 좀 티 안나게 지던가... 제 말이요. 1번 선발님 글 읽으니 참혹했던 지난 6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마음이 아프네요. 아침부터 아버지가 제 사무실로 전화하셔서는 <팀내에 불화가 있는건 아니냐> 고 진지하게 물어보시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아냐구요 아버지... 전 구단 직원이 아니걸랑요... 답답합니다. 그저 이 비가 모든걸 씻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첫댓글 지더라도 좀 티 안나게 지던가... 제 말이요. 1번 선발님 글 읽으니 참혹했던 지난 6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마음이 아프네요. 아침부터 아버지가 제 사무실로 전화하셔서는 <팀내에 불화가 있는건 아니냐> 고 진지하게 물어보시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아냐구요 아버지... 전 구단 직원이 아니걸랑요... 답답합니다. 그저 이 비가 모든걸 씻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이게다 오석환 주심의 오심에서부터 시작된일이다. 하일성은 오석환 오심하는동안 어디서 뭐한겨,
유라님 아버님...^^ 에혀...그러게요...티안나게 지던가...무튼 걱정이 많습니다...
정말 잔혹사라는 표현이 딱인 요즘입니다.
오심오심오심......ㅡㅡ; 잊을수가 없네요.
티안나게 지던가... 이거 너무 확 와닿는데요. 아.. 오심. 오심.. 그 오심이 저 역시 잊혀지지가 않네요.
주제에서 한참 벗어난 얘기지만 아버님과 그런 대화를 나누시는 유라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6월 6일 승리하던날은 보다못한 팬들이 실제로 1루 관중석에서 돼지머리 사다가 몰래 고사를 지냈답니다. 상황이 어려운건 알겠지만 선수들이 조금만 더 집중하고 악착같이 해줬으면 합니다. 적어도 누상에서 산보하듯이 걸어다니는 선수는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