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頭言 2006년 9월호 <제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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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의 옛날 歷史와 文化를 알려면
朴錫武
茶山硏究所 理事長 / 檀國大學校 理事長 / 本聯合會 指導委員
며칠 전 筆者가 관계하는 茶山硏究所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수많은 讀者들에게 메일로 서비스했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요즘의 몇 가지 즐거운 소식
西洋 論理 아니고는 어떤 것도 대접받을 수 없도록 세상은 바꿔지고 있고, 英語를 잘하지 못하면 職場에 들어갈 수도 없도록 판세가 기울어버린 오늘, 오래된 옛날의 우리 것이나 漢文으로 된 우리 論理는 설 자리가 없는 형편이 지금 이 나라의 실정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세상 物情을 모르는 낡은 인간의 수작이라는 非難을 받기 마련인데, 非難을 감수하고라도 우리 것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서울대 朴熙秉 敎授가 燕巖 朴趾源의 글을 번역하고 해설까지 곁들인 『燕巖을 읽는다』라는 책을 보내주셨고, 成均館大 大東文化硏究院에서는 며칠 전 『卞榮晩全集』 상·중·하 세 권을 보내왔습니다. 근세 서울의 양대 文章家라던 爲堂 鄭寅普와 山康 卞榮晩 중에서 山康의 漢文 文集을 飜譯한 책과 다른 글까지 모아 全集으로 간행한 것입니다. 누가 그런 따분한 책을 읽는다고 그 책을 飜譯해서 간행해주었는지 눈물겹도록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버지의 漢文 글을 따님이 번역하고 延世大 國學硏究院에서 간행한 『薝園文存』이라는 爲堂 鄭寅普의 문집 상·중·하 세 권의 번역본을 따님인 鄭良婉 교수께서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英祖·正祖時代의 대표적 문학가 燕巖의 글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당대의 學者이자 文章家들인 山康과 爲堂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쁜 소식이자 慶事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요. 시대야 18세기의 글이고 20세기의 글이지만, 그런 글 속에 우리 것들이 들어 있고 우리의 論理가 가득 담겨 있으니 어떻게 그런 것들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爲堂의 『薝園文存』은 이 나라 國學을 알려면 必讀의 책임은 어떤 학자도 否認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인데, 그런 책을 누구나 읽도록 번역판이 나왔으니 경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영어가 판을 치고 영어 아니면 就職을 못할수록, 그런 國學의 책을 읽어야만 한다면 잘못된 생각일까요.
爲堂을 거쳐야만 茶山의 眞面目을 안다고 여기는 筆者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로 기쁜 소식이어서 우선 소식부터 전해드립니다.”
짤막한 글이고 앎이 적은 사람의 소박한 생각의 글이지만, 그런 책을 받아보고 정말로 기쁘고 반가워서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은 글임은 분명합니다. 아무런 商業性이 없는 옛날의 漢文으로 된 글을 번역했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 눈물겹고 감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따분한’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지만, 山康의 글을 번역한 實是學舍 諸賢의 勞苦에 감사드리고, 또 책을 간행해준 大東文化硏究院의 희생적인 愛國心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難解하기 이를 데 없는 爲堂의 글을 번역한 따님 鄭良婉 교수의 노고는 얼마나 컸으며, 그걸 간행한 延大 國學硏究院의 수고는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燕巖이라는 稀代의 文章家의 글을 번역하고 해설한 朴熙秉 교수의 애쓰심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新羅 이후 수많은 文人과 學者들에 의해서 저술되고 편찬되어 圖書館의 古書室에 가득가득 쌓인 그 귀중한 漢籍의 책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漢字를 가르치고 漢文을 敎育하는 일은 낡은 짓이고 陳腐한 일로 알려진 오늘, 누가 있어 그 글을 읽고 그 글에 담긴 옛사람들의 지혜를 찾아내 現代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게 할 것입니까.
예부터 東洋3國이라고 해서, 中國․韓國․日本은 대체로 漢字文化圈이었습니다. 아직도 日本이나 中國은 의당 漢字를 배우고 쓰면서 옛날의 傳統文化와 큰 단절 없이 그대로 文化와 歷史가 이어져가건만, 유독 韓國만 漢字는 外國文字이고, 그런 論理나 史上에 물들면 事大主義者이고 非愛國者라는 비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여 세상이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燕巖 朴趾源의 주장대로 「法古創新」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文化暢達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옛 것, 내 것, 우리의 것은 송두리째 팽개치고, 남의 것, 남의 논리만 주워다가 어떻게 새롭게 創造하고 發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飜譯을 잘하고 훌륭한 우리말을 구사한다고 해도 전혀 漢字 言語에 익숙하지 않고서야 옛 글을 번역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專門的으로 옛 漢文冊을 번역할 수 있는 能力者도 반드시 國家에서 양성하는 길이 강구되어야 하고, 一般人들도 교양으로 漢文과 漢字에 관한 소양을 길러 5천년 유구한 文化的 傳統을 이어가고 전승시킬 수 있는 普通敎育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한글을 배척하여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참다운 한글사랑을 위해서라도 오랜 歷史로 굳어진 漢字 言語이자 우리 言語인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正規的인 漢字敎育이 絶對 不可缺의 要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글사랑은 바로 愛國이고, 한글도 사랑하지만 그 폭을 넓히고 文化의 깊이를 파고들기 위해서라도 漢字敎育을 竝行해야 한다고 말하면 賣國奴인 것처럼 여기는 그런 我執은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느 정도 漢字에 대한 敎養이 있고, 飜譯된 燕巖의 글이나 山康과 爲堂의 글을 읽는다면 얼마나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요.
산더미처럼 쌓인 漢籍들을 보면서, 저런 책들을 어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또 양해해달라는 너스레를 떨게 되었습니다. 우리 것, 내 것, 그것들만이 참답고 주체적인 歷史와 文化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