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 94년 2월 17일 화요공부방
□ 김정탁 교수님 강연
-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반갑습니다.
제가 25년 째 교수 생활이 되어가는데 학기 초에는 늘 긴장이 됩니다.
두 번째 강의까지는 강단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곤 합니다. 특히나
이렇게 새롭게 만나는 분들하고는 더 긴장이 됩니다.
저와 같은 법동지이기 때문에 굉장히 위안을 받습니다.
사실 김교무님에게 이 제의를 받았을 때 상당히 기뻤습니다.
제가 이제 학자로서 이제 좀 철이 들어서 책다운 책이 나오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책이 ‘노자의 의사 소통 사상’ 입니다.
2년 뒤면 ‘동양의 의사 소통 미학’ 또 2년 후에는 ‘왜 의사 소통인가?’
또 2년 뒤에는 ‘유가의 의사 소통 사상’ 마지막으로 ‘불가의 의사 소통
사상’ 하면 대강 정년이 되면서 학자로서 보람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뒤 늦게 철이 들어서 공부하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공이 신문방송학인데 왜 이런 것들을 하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신문방송학도 크게 보면 커뮤니케이션학이죠?
커뮤니케이션은 매체를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감각기관을 통해서 합니다. 오감을 통해서
하죠. 그런데 인간만이 언어와 문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감각기관의
연장입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언어라고 하는데, 그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편리하게 합니다.
그냥 눈으로 보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해석하면 되지만, 인코딩
디코딩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문자는 저와 김정탁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죠? 그냥 붙인 것이죠? 그걸 해독해야 하니까 지능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지능이 발달하게 되지만, 유.불.선의 공통된
사상 특히 불가에서 가장 극단적인 점이 이 감각기관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을 편리하게 할지 모르지만, 감각기관이 우리를 미망에
빠지게 한다고 합니다.
저는 작은 차가 좋습니다. 프라이드를 오랫동안 몰고 다녔는데,
‘선생님 프라이드가 뭐예요?’,
‘어디든지 주차가 쉽고, 기동력이 빠르고, 좁은 길도 갈 수 있고,
기름도 적게 들고, 흠집이 나도 아깝지 않고, 잃어버려도 아쉬운 맘 없고,
난 자동차가 내 다리 기능의 연장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냐?’
제가 언론정보대학원 원장 할 때, 원생들이 더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데
원장이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면 자기들 입장이 난처하니까.
그래서 ‘뭘 타야하느냐?’ 물으니, ‘소나타 정도는 타셔야죠.’
그게 눈의 미망이죠. 다리 기능의 단순한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튼튼하고
고장 안 나고 저렴하면 되는데, 우리는 그 차를 통해서 인격이 아니라
차격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만큼 마음이 허한 사람들이 더 그렇습니다.
여러분 배우자 찾을 때 이왕이면 이쁜 여성 찾고 멋있는 남성 찾을까요?
자기 눈에 안경이죠. 자기가 좋으면 좋은 건데, 요즘 미를 객관화하려고
합니다. 성형외과에서 1등급 미인, 2등급 미인 정해놓죠? 이것도 시각의
장난입니다.
제가 중앙일보에 있을 때, 한 달간 주간중앙에서 수습하는데 탤런트들
정말 실물 보면 아닙니다. 카메라 잘 받으려면 전부 슬림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저런 여자들을 데리고 사나?’ 할 정도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런 감각의 미망도 보통 문제가 아닌데 그 감각의 연장인 언어와 문자의
미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 그러면 벌써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보죠? 지금 저를 처음 보는 사람은 저랑
김정탁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저로써 보여주고 싶은데
제 이름 앞에 호를 하나 그럴듯하게 붙이면 사람이 멋있게 보이게 되죠?
아유 저 사람 재산이 많다고 하면 더욱 멋있게 보이죠? 그런 것이 다
숫자의 미망입니다.
제 친구 중에 돈 많은 친구가 있는데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워낙
부자여서 지금도 먹고 삽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돈 이란 평생 쓸 수
있는 것만이 돈이지 그 나머진 돈도 아니야. 그냥 숫자야.’ 그렇죠?
우리의 오감을 가지고 하는 미망은 그런대로 봐 줄 수 있는데 ‘저 사람
재산이 100억 이야!’ 그건 잘못된 것이다. 돈이 10억이 넘으면 10억이나
100억이나 1000억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그것이 바로 숫자, 언어,
문자의 미망입니다.
그래서 선불교가 나온 것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가 그런 데서 나온
것입니다.
제가 커뮤니케이션학을 하다 보니까 서양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능만
있습니다. Function(기능). 어떻게 하면 많은 메시지를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대표적이죠?
제가 오늘 여기서 여러분과 만나고 나서 일 주일 뒤에 저를 만나신다면
아니 일 년 후에 만난다면 제가 오늘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기억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미지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다. 그것은 무얼 얘기 하느냐? 제가 이 자리를 위해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해왔지만 여러분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이 강의
내용이 아니라, 제가 얼마나 잘 전달 했느냐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아니라. 그 사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인간 어떻더라. 그것이 남는
것이죠?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미학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어떻습니까? 외국어를 잘 안 쓰는데
기술이란 말과 테크놀로지가 좀 다르기 때문에 -로지가 들어가면 론이
되는 것이죠. 기술이 아니라 공학이 됩니다. 테크놀로지를 기술로
번역하면 테크닉에 가깝기 때문에 안 씁니다. 이래서 신문방송학 하는
사람이 의사소통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길 재산도 별로 없지만 있어도 자식에게 남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 학생들에게 김정탁 선생님은 이런 분 이었다. 강의 잘
가르치는 학원 선생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정말 괜찮은 사람 이였다. 그것이 바로 미학인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미학이고 소통의 미학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해 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왜 정치를
못합니까? 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분은 말을 하면 할수록 미학적이지
못합니다. 오바마 허상도 많이 있지만 그 사람이 연설하면 멋있게
보입니다.
우리 민주당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애국자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애국자입니다.
편 가르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똑같은 애국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은 전부 편가르기죠?
그 편가르기 정권이 동양적 정권이 아닙니다. 아주 서양적 정권입니다.
어떻게 보면 잘못된 기독교가 그런데 기여를 했습니다. 적과 아, 선과 악.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50대 들어간 교수들은 다 공부 안 하는데,
저는 이걸 잡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회 내에서
아는 분들은 부러워합니다. 어떻게 한자를 아냐. 한자 몰라도 동양학
다 합니다. 한자 아는 사람이 더 엉터리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정말 엉터리입니다. 엉터리 중에 상 엉터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비판한 어떤 여성분은 더 엉터리 입니다.
저도 옥편 찾아가면서 합니다. 왜 영어 사전만 찾습니까?
제가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쳐 오다 보니까. 세 가지만 잘하면 됩니다.
첫째, 분석력, 로지컬해야 합니다. 과학적 분석력입니다.
여러분은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그것만 배워왔습니다. 사이언스란
이름 아래에서 특히 대학은 분석력을 가르칩니다. 사회과학을 하니까
사회과학적 분석력,
둘째, 상상력, 인문학적 상상력입니다. 이것만 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됩니다.
셋째, 표현력, 예술적 표현력입니다. 분석력과 상상력만 잘 가르치면
표현력은 테크리컬하게 됩니다.
중앙일보가 중립지를 표방했을 때, 중립지를 왜 했느냐? 좌도 우도 아닌
중간. 이것이 신문이 잘 팔리겠다는 시장조사 분석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 것인가?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할 것은 이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래에는 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경쟁력이 결정됩니다.
어떤 광고회사가 이렇게 했습니다.
< 예쁜 여자와 젊은 남자가 길을 걸어 갑니다. 어떤 남자가 덮쳤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치한이구나.’ 하는데 카메라 앵글이 위를 비추니
화분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 저 사람 의인이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사건은 양면이 있습니다. 저희 신문은 양면을 다 보여주겠습니다. >
이런 중립이라는 개념을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입니다.
우리는 분석은 잘합니다. 문제는 상상력에 의해 여러분의 경쟁력이
달라지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냐. 인문학 가지고는 안됩니다.
이 나라의 인문성이 죽었습니다. 인문성은 인문학자들이 살려내지 못하고
비인문학자들은 더욱 더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한자 입니다. 우리는 최고의 표음문자인
한글과 최고의 표의문자인 한자를 겸용 할 때 표음문자로부터는 분석력
표의문자로부터는 상상력이 생겨납니다.
앞으로 한자공부 하십시오. 제가 옥편 찾다 보면 이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자는 단어하고 의미가 100% 연결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거기에 우리의 상상력이 투입이 됩니다. 그래서 상상력이 개발
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 만들 때 한글 만 쓰라고는 안
하셨습니다. 한자가 너무 어려우니까 한글로 보안하라는 의미지.
지금 한글만 전용하는 것 보면 세종 대왕이 화내셨을 것입니다.
한글만으로는 표현이 안됩니다. 한글이 기본적으로 한자에서 나온
단어들인데 그 뜻을 모르고 한글은 정말 멋없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여기까지가 서론입니다.
오늘은 노자 이야기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저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각을 하셨다면 그 다음에 글 쓰는 것은 의미가
없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아마 정산 종사님이 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원불교 교리를 보면 노자 장자에 대한 것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정산 종사님 영향이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자 도덕경에서 제일 어려운 해석이 바로 1장 입니다. 수 많은 도덕경
책이 있지만 바로 이것 하나 보면, 아 이 사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은 61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 2장, 3장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해석하기 힘듭니다.
1장은 우주와 세상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리를 도(道)와
현(玄)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리는 ‘도’ 그것은 번역될 수 없습니다.
그럼 모습은 어떠냐? ‘가물 현’ 이렇게 씁니다. 가물타 가물타 이렇게
번역하면 안됩니다. ‘현’ 그냥 현하다. 제가 한자 중에 제일 좋아하는
한자가 밝을 명과 가물 현입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나면 이렇게 좋은
말 좋은 한자라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2장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수신에 관한 것입니다.
1장은 천도, 하늘의 원리라면.
2장은 인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3장은 왕도, 어떻게 사회를 매니지먼트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 한 것이죠? 나머지 58장은 그것을 계속 되풀이 한 것입니다.
1장, 2장, 3장만 제대로 해석하면 도덕경 다 읽은 것입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이야기는 가끔씩 듣죠? 화두 삼아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것은 돌아가신 성철 스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당나라의 청원유신선사께서 하신 말씀을 성철 스님이 인용한 것입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고 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덕경 제 1장)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이 도는 명사입니다. 그 다음 도를 도라고 하면 동사입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상도가 아니다는 말입니다. 도가 아닌 것이 아니라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는 말입니다.
기의=기표 서양식으로 시그니파이어(signifier : 기표)와
시그니파이드(signified : 기의)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저를 김정탁 이라고 하더라도 늘 그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제가 늘 그러하지 않죠? 변할 수
있는 거죠? 상도 늘 그러한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함부로 이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를 도라고 이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 名可名 非常名 ‘
명가명 비상명’
어떠한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늘 그러한 이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저널리스틱한 표현입니다. 지금 이것을 얘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내세운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그게 뭔데?
‘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무명. 무를 동사로 하는 것보다 무를 명사로 명을 동사로 해석 하는 것이
낫습니다. 무는 천지의 시작이라고 이름하고 유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이름한다.
‘ 故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
고 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요
고로 상무욕. 항상 이것도 동사입니다. 무로써는 그 묘함을 보고자
함이고, 여기서 욕은 욕심 ‘욕’자가 아니고 뭐를 하려고 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무는 그것으로써 그 묘함을 보고자 함이고, 유는 그것으로써
그 묘함을 보고자 함이다.
‘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차양자. 유와 무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동사로 해석해야 합니다.
동출.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을 달리할 뿐이다. 그것을 가리켜서
‘현’이라고 한다.
‘ 玄之又玄 衆妙之門 ‘
현지우현 중묘지문
현하다 또 현하다. 그것이 모든 모여있는 중묘. 묘가 모여있는 묘함의
문이다.
일원상서원문에 보면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
‘유상’이 여기서는 ‘무’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자가 항상 ’상’자
이거든요. 항상 ‘상’이 계속 있다는 것은 무에 해당합니다. 천지의 시작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무상 항상이 없는 것이니까 변하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이것은 변하니까
만물지모가 됩니다.
천지의 시작은 뭐냐? 천지의 시작은 어떻게 생겼을까?
혼돈의 상태 입니다. 서양은 혼돈 카오스에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서양은 부정적입니다. 카오스는 무질서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동양은 특히 노장철학은 이 카오스 혼돈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다윈의 종의 진화에서 쭉 올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물은 하나로
귀결이 되겠지요? 분화와 진화를 통해서 계속 생겨나는 것입니다. 앞으로
10만년 100만년이 지나가면 인간도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할지
모릅니다.
만물의 시작이 모든 것과 연결된 혼돈의 상태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시작입니다. 그럼 만물의 어머니는 무엇이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죠?
사람도 나오고, 식물도 나오고, 코끼리도 나오고, 무궁화꽃도
나오고, ....모두 다… 이름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유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엄청난 시간의 근원입니다. 단지 이것은 평면적으로 보았을
따름입니다. 모든 변화라 해서 나타남, 드러남, 이것이 만물의 지모입니다.
무를 보면, 그 묘함을 본다는 것은 혼돈의 상태이니까 심원하고 그윽한
것입니다. 거기는 구분이 안 됩니다. 우리들이 백만 년 전으로 올라가면
오로지 하나로서 귀결되는 그 상태, 그윽하고 심오하고, 그래서 우리가
묘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로 보면, 있는 드러나는 것을 보면 관기요觀其徼 이것을
사람들이 해석을 잘못합니다. 이것이 ‘가장자리 변방’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근대 사회의 가장 큰 변화가 노동의 분화 division of
labor 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그래서 직업이 이렇게 많이 나타난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우리가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해서 살았습니다.
농사 하면서 책상 만들고 의자 만들고, 아버지가 되면 가르치고 혼자
다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동을 분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 사회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결국 노동의
분화 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사회학, 경제학 모두 만든 것입니다.
인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의미의 분화 division of meaning 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되어있습니다. 원숭이와 인간이 구분되어도 코끼리가
볼 때는 인간과 원숭이는 같을지 모릅니다. 거기에 언어와 문자가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숭이, 이것은 인간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원숭이와 인간을 따져볼 때 코끼리 눈에, 아니 메뚜기 눈에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가 없는데도 언어로 규정하면 대단히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변방 이냐. 의미 분화가 계속 늘어나면 동물의 종류가 많아집니다.
저 끝에서는 혼돈의 상태는 중앙에 있는 것입니다. 계속 분화가
이루어질수록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더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어로 명명하게 되면 굉장히 차이가 있게 되는 것
100만 년 전쯤에는 구분되는 것이 100가지였다면, 지금은
10,000가지나 된다. 드러나니까 다 이름을 붙여야 된다.
그래서 변방이라는 뜻은 변방 가장자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안 되고
생명분화, 의미분화, 노동분화 수 많은 직업이 생기는 상태가 바로 ‘요’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 역사와
동양 역사의 차이는 서양은 구분을 하지만 동양은 유로 보면 이렇고 무로
보면 이렇고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차양자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을 달리할 뿐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현玄 이라고 한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다 아시죠?
우리 선조들이 훌륭합니다. 천자문을 외울 때도 다 세상의 원리를
가르치면서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늘 천, 감을 현. 따 지. 땅은 누를 황. 누렇다는 우주의 원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늘은 왜 현하냐? 하늘은 구분이 없죠. 동쪽
하늘이나 서쪽 하늘이나 똑같습니다. 그게 현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땅을 보면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숲도 있고, 강도 있고 별것이
다 있습니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불가 사상은 현의 극단적인
사상입니다.
노장은 특징적인 것이 현입니다. 유가는 황입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복장에서 다 신분을 드러냅니다. 말투도 드러냅니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야. 본받을 사람이야 이렇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황이 서양적 사유방식 입니다.
현이 어떤 때 있는가... 그 현한 상태가 되려면 해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 가물게 됩니다. 저 앞에 두 사람이 오는데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물이 검을로 됩니다. 구분이 안된 상태가 현의 상태 입니다.
그래서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상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현의 상태는 A가 B가 될 수 있고 B가 A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A, B가 서로 교환될 수 있습니다.
유무가 서로 교환이 되니 현하고 현하다. 그래서 문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현지우현 중묘지문)
문(門)의 반대말은 무엇이겠습니까? 벽입니다. 울타리입니다. 문은 언제든
여기와 저기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의 상태입니다.
바로 동양적 사유는 구분을 하면서도 서로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태극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저 문(門)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인물 1페이지 하단 도표 참조)
서양은 인식론에 있어서 개념으로서 의미를 묶는다. 자동차란 개념 안에
모든 것을 집어 넣습니다. 사유의 기본이 울타리적 개념입니다.
모든 사유는 개념적 사유고 개념이 없으면 존재 자체도 없고 사유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언어와 문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칸트는 모든 현상은 인식주체의 인간의 선험적 인식구조에서 구성되고,
하이데커 조차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것이 우리의
노장사상하고 대단히 큰 차이입니다.
역사-history는 관점이 없이 그냥 서술하는 것이다.
문명-civilization은 인류가 어떻게 문명화-civilized 되었는지 그런
관점에서 서술한 것입니다. 역사와 문화사는 다른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역사라고 안하고 문화사라고 합니다. Civilized 어떻게 시민화
되었는가? 어떻게 문명화 되었는가? 참 재미없는 말이죠?
Civilization을 동양 사람들은 ‘문명’이라고 번역했다. 훌륭한 번역입니다.
한자는 원인과 결과가 다 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Civilization 결과만 있는 것입니다. 문명에서 문은 원인에 해당하고,
명은 결과에 해당한다. 문에 의해서 명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civilization 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문은 무엇인가? 문은 꾸밀 ‘문’ 입니다. 왜 꾸미느냐?
제가 만약 언어와 문자를 쓰지 않으면 이 소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들죠. 그런데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꾸미게 되면 소통이 쉬워집니다.
저만 쉬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머리도 맑아집니다.
제가 만약 언어와 문자 없이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심전심…
그래서 언어와 문자가 고마운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명료화 객관화
해 주어서 제가 전달하기 쉽게 만들어 줍니다.
그 다음에 명(明)자를 주목해 주십시오. 여러분들 명이라고 하면 해의
밝음을 생각합니까? 달의 밝음을 생각합니까? 밝을 명(明)자는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을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해의 밝음은 햇빛 아래서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명료화되고 객관화
됩니다. 이것은 분석력을 키우는데 좋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법학입니다.
달의 밝음 아래에서는 어떻습니까? 아까 현(玄)과 비슷합니다.
저기 두 사람이 있는데 누구지? 저게 뭘까? 저의 상상력을 발휘해야지
그 대상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분석력과 상상력의 조화가
명(明)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명입니다.
그런데 서양은 태양의 밝음만 추구한 것입니다. 서양의 존재론,
형이상학을 가리켜서 ‘태양중심주의’라고 얘기 합니다. 그 태양중심주의가
있기 때문에 플라톤은 이데아를 가정하고 현상계를 가정해서 이데아를
통해서 현상계를 보자고 한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존재인 이데아를
놓고 지금 현상계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과 악의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 의해서 기독교 신앙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개념을 차용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급진적인-radical 유태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된다. 개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수 유대교에서 로마 황제를 자처한다고 예수를 모함해서 죽인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여 만든
것이 지금의 기독교입니다. 바울이 각색한 것입니다.
바울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만든 태양중심주의 철학을 가져다 놓고
기독교를 만들었다. 기독교의 아킬레스건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인데, 하느님이 만든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왜 힘듭니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위해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원래 에덴의 동산은 참 좋은 데였는데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어서 선과 악이 생긴 것이다. 그런 논리로서 하느님이
만든 세상도 모순투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태양중심주의 사유입니다. 이 태양중심주의가 과학을
급속하게 발전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객관화 하고 명료화 하니까 과학적
사유를 일으키기에 바람직합니다. 이것이 기능적인 사유인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과학적 규명을 통해 무질서한 상태를 질서로 옮겨 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무질서도
좋고 질서도 좋은 것입니다.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굳이 무질서에서
질서로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양적 사유과 서양적 사유의
결정적인 차이 입니다.
서양은 태양만 봐서 모든 것을 이분법적 사유로 만들고 근대 이후에는
과학을 발전시켜 오늘날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게 되었다.
동양은 해 뿐만 아니라 달의 밝음을 생각하면서 분석력과 상상력의 결합.
나아가서 질서와 무질서의 조화. 유와 무의 조화에서 사는 삶이다.
태극기를 보면 정말 멋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극입니다.
서양은 Yes or No 입니다. 그 ‘Yes or No’를 극단화한 언어가 오늘날
디지털입니다. 디지털 언어는 세상을 객관화 하고 명료화 하는데 기여를
하고,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고, 과학의 발달이 언어의 발달을 가져오고,
그 극단으로 디지털 언어까지 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나의 존재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회의에 빠지게 되겠죠? 바로 그 점을 대종사님은
일찍 깨달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 감각입니다. 감각의 연장인 언어와 문자가 만들어 내는 미망은 더욱
크다. 우리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나 서양은 객관화, 명료화 때문에
디지털 언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과학과 물질문명을 발달 시킨 것입니다.
이 물질 문명의 가장 핵심이 언어의 문제입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요즘 행복한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 미망. 부질 없는
곳에 내가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학자로서의 공부, 마음공부 입니다. 그런데도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이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동양에도 있었을까요? 우리는 24절기 4계절이
있죠. 기후라는 말이 24절기. 오후... 우리는 5일 단위입니다.
좋은 것들이 모두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행설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까 파워포인트 좀 켜주시겠습니까?
|
방향 |
계절 |
의미 |
五色 |
五味 |
五音 |
五臟 |
六腑 |
|
木 |
동 |
봄 (만물 생성) |
창조 생명 신생 |
靑 |
酸 |
궁 |
肝(仁) |
膽(쓸개) |
근육 |
火 |
남 |
여름(만물 무성) |
생성 정열 적극 |
赤 |
苦 |
상 |
心(禮) |
少(小腸) |
혈관 |
土 |
중심 |
|
고귀함 |
黃 |
甘 |
각 |
脾(信) |
胃 |
살 |
金 |
서 |
가을 |
결백 진실 순결 |
白 |
辛 |
치 |
肺(義) |
大(大腸) |
피부 |
水 |
북 |
겨울 |
인간의 지혜 |
黑 |
鹹 |
우 |
腎(智) |
膀(방광) |
뼈 |
우리는 오행설이 목화토금수에서 방향을 의미하고, 계절을 의미하고,
다섯 가지 맛도 의미하고, 오미는 신맛하고 연결됩니다. 오음, 오장,
육부로 연결이 됩니다. 서로 교차하는 시스템입니다.
서양은 철저히 나눕니다. 나눈 사이에는 연결이 없습니다. 왜 나누는가?
오로지 편리성과 유용성입니다. 거기서는 분석력, 과학적 정신만 있으면
됩니다. 동양이 보는 세계관은 다 얽혀 있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서양의 존재론은 모든 것을 개별화 해서 개인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죠...
동양은 관계론 속에 있기 때문에 의미를 잘라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구분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니까 오행설로 분리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섯 가지가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까 말한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너드 스윗 박사 인터뷰>
“내게 열여섯 살 된 아들이 있다. 그 아이가 입고 다니는 티셔츠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라. '주여, 제발 당신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저를 구원해 주세요. (Please, Jesus save me from
some of your followers)' 그게 젊은이들의 정서다.”
우리 나라에서는 더 하겠죠?
“교회를 컴퓨터에 비유하면 불필요한 소프트웨어와 바이러스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교회 자체가 문제이지, 예수님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 다음이 재미있습니다.
-다시 가까워질 수 있나.
"있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 동.서양적인 마인드를 함께 주셨다.
그러나 서양에선 예수님 말씀을 쪼개고, 나누고, 분석하고, 해체했다.
늘 이원론적인 방법으로만 접근했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높음과
낮음으로 나누었다. 이런 서구적인 방식을 통해선 한계가 명백하다.
동양적인 마인드가 열쇠다."
-동양적인 마인드란 뭔가.
"동양적인 마인드는 원형적이다. ---
다시 순환한다는 말입니다. 태극을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을 무극이라고 합니다. 무극이 되어서 태극인 것입니다.
도가의 태극에는 눈알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극은 극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음의 한가운데는 양하고 통하고 양의 한가운데는 음하고
통한다. 극단론자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극단론을
싫어하고 언어 사용에 있어서 극단적인 것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장면을 목사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소통의 미학은 아닌 것입니다.
--- '나는 평화를 주러 왔고, 동시에 칼을 주러 왔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라'고 했다. 예수님 말씀은 철저히
반(反)이원론적이다. 그 반이원론적인 정서와 토양이 바로 동양에
있다."
관계론 입니다. 그 다음은 한 번 읽어 보십시오. 미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미국에서 존경 받고 영향력 8위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교회 내부로부터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대통령이 취임하자 마자 ‘악의 축’ 발언을 했습니다. 북한, 이란,
이라크를 지목했습니다. 적은 enemy 이고 악은 evil 입니다. 그게 그거
같은데 아닙니다. 왜 그 사람은 악이란 말을 썼느냐? 일본은 과거에 적
이었지만 지금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또 의미분화를 합니다. 적중에
영원한 적은 악이다. 그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적은 있는 것입니다.
의미 분화가 되면 될수록 극단적으로 됩니다. 서양의 개념은 내 편이냐,
아니냐, 아군과 적군의 개념만 있습니다. 이원론적인 사유방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양은 어떻습니까? 중화외교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조공무역이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습니다. 중국 정부가 웬만하면
조공 안 하려고 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너희는 오랑캐지만 중국의 변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분 나쁘지만,
가까운 변방인 조선은 우리랑 친하게 지내자. 좀 먼 변방인 일본은 그냥
친하게 지내. 더 먼 변방 아. 필요 없어. 너무 멀어. 멀고 가까운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외교를 하는데 있어서 사고방식이 이렇게 다른 것
입니다.
저는 한국의 기독교가 우리의 전통적 유,불,선 사유을 받아들여 다시
교리를 만들면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경전이 있는 기독교로
거듭나겠다고 생각합니다.
동도서기가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동양은 도 서양은 기.
도자기는 20세기 전까지는 우리의 반도체 같은 것입니다.
생활에 밀접하고 기술 수준이 높아야 됩니다. 동도서기 쓸 때 기가
기계 ‘기’가 아니라 그릇 ‘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그릇을 잘 만들려면
흙이 좋아야 합니다. 흙이 도에 해당합니다.
동양은 원리. 동도. 그러니 사상이 강한 것입니다.
서양은 그것을 응용해서 잘 만드는 기술. 서양은 과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사유는 서양사람보다 우리가 높습니다. 노장사상의
해석서가 서양에서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500년 지나면
노장사상은 동양사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서양화 됩니다. 인도불교가
중국에 와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중국의 불교가 왜래사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중국의 전통불교 전통사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노장사상에 등한시 하고, 현재 서양 사람들은 노장사상에 많이
빠져 있습니다. 불교학의 최고의 권위는 옥스포드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불교에 굉장히 빠져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고방식이 한계에 도달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 신자 수는 어느 단일 기독교 교파들 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불교 신자들의 지적 수준이 높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나
원불교는 상당히 고급 종교입니다. 믿쑵니까?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고급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진입하기가 힘들지 진입
하기만 하면 빠져들어 갑니다.
|
의미 |
내용 |
인물 |
대표적 경전 |
이론 |
초기불교
(근본불교) |
|
석가모니 가르침 |
|
아함경 |
緣起論
苦集滅道의 四聖諦 八正道 |
부파불교
(사후 100년부터) |
교리연구 |
석가모니
가르침에 대한
교리학적 연구 |
바수반두
붓다고사 |
說一切有部
淸淨道論 |
三藏(經藏, 律藏, 論藏) |
대승불교
(사후 500년부터) |
신불교 운동 |
空사상과 唯識사상 |
龍樹보살
(나가르주나) |
금강경반야경 화엄경.. |
개인에서 사회구제로 |
중국불교 (선불교) |
불교의 동북아시아권화 |
대승불교+노장사상 |
達磨→慧能
(六祖) |
|
不立文字 敎外別傳 |
한국불교 (원불교) |
세계화로? |
유불선 |
소태산 |
정전 대종경 |
일원론 (구체적으로?) |
불교의 변화를 보면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초기 불교가 나타나죠?
그리고 100년 후에는 교리학적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부파불교라고 합니다. 바수반두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쓰고,
부다고사는 청정도론-淸淨道論을 썼습니다. 아래 것이 남방불교로
소승불교의 기초가 되고 바수반두의 설일체유부는 티벳으로 북방불교로
가게 되죠? 경장, 율장, 논장은 경을 가지고 논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것을 보고 100주년 기념 사업을 우리 원불교 교리 연구를 몇 백
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대종사님이 깨우친 바를 일단 정산
종사님이 정리를 하셨고, 그 다음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건물 짓는
것이 아니라 저걸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러분이 돈 벌어서 많이 희사하는 것 보다 원불교
긴 역사를 볼 때 여러분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교리로 보답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500년 후부터는 출가 교도들의 보수화된 것을 서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여 재가 교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경전을 대표하는 금강경, 반야경, 화엄경이 나오게 됩니다.
달마스님이 중국으로 가면서 중국의 노장 사상하고 결합해서 선불교가
나옵니다. 그 선불교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갔는데 지금 선불교가
중국을 다 없어졌습니다. 공산당 하면서..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의 현각스님도 선불교를 공부하러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선불교는 인도의 불교를 동아시아에 펼치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이 불교사상을 세계화 하려면 새로운 교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것을
원불교가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이 세계인의 표준에 맞게 그 교리를
개발해야 합니다.
혹시 오늘 저하고 만남의 인연이 되어서 뿌리도 내릴 수 있고 줄기도
키울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아주 의미 있는 얘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내용을 얘기 했습니다. 여기까지 준비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 질문 과 답변 =====================
Q_김해관 : 현재 교화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원불교가 세계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_김정탁 : 유학시절에 보던 미국하고 생활인으로서 보는 미국은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 사람들이 이 동양적 사유에 빠져들 수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이 많이 든다.
국내에서는 한울안신문에 한번 글을 썼는데 우리가 이 불교 발전에서
보듯이 석가모니의 말씀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사람들이 교리를 만들어서 그 시대에 맞게 교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한 한의사 교도 한 분이 우리가 신약 개발에 늦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교단차원에서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화가 이루어 지려면 마케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교리개발.
제품이 잘 나와야지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입니다. 옛날 제품은 아무리
품을 들여도 잘 안 팔리잖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Q_이태성 : 아까 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면서 문이 있어서 드나들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의미가 넓어지고 부정확해지고, 소통이
어려울 것 같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A_김정탁 : 우리의 오감은 다 나름대로 쓰임이 있습니다. 인간이 소리
언어를 만들어서 귀가 발달했습니다. 문자가 나오면서 시각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시청각에 의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오감 중에 어떤 것이
잘 통할까요? 촉각이죠? 한 번 안으면 말이 필요 없죠? 촉각이 가장
인간적인 감각입니다. 우리는 시청각으로 중심이 되면서 촉각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순간 느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책을 통해서 배우듯이 그것은 어느 일정 부분은
가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현재 자료, 정보, 지식, 지혜의 서열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료가 100개면 정보가 30개 지식이 10개 지혜가 1개 나오는 수직적인
체계였습니다. 요즘같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자료는 10,000개 정보
1,000개 지식은 100개 지혜는 1개가 나올까 말까합니다. 대단히
비생산적인 시스템입니다.
파워포인트는 지혜로 가지 못합니다. 지혜는 자기와 무언의 대화를 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는 언어도단의 경지입니다. 언어와 문자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그것이 전부다 의사소통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가, 노자는 언어와 문자는 그냥 필요한 도구일 뿐이지
절대로 거기에 의존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보완점으로 이성이냐 아니냐... 감성적 사고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문자, 활자를 발명하기 전에는 시각은 멋있다.
아름답다 등 형용사 부사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눈으로 들어온 정보는
머리로 가지 않고 가슴으로 갑니다.
그런데 청각으로 들어오는 정보... 이것은 중간에 들어온 분이 있으면
제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연속극도 중간에
들으면 모른다. 이 메시지 구성은 인과관계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현재 문장을 이해 하려면 반드시 앞의 문장을 이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귀는 쫑긋하고 들어야 합니다. 해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머리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머리의 이성과 가슴의 감성의
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근대 이후 활자가 급속히 발달되면서 더욱 더 정형화 되었습니다.
문법적으로 완벽해야 되고, 논리적 이어야 하고, 개념적으로 분명해야
됩니다. 청각의 논리 정도가 아닙니다. 청각은 피드백이 되기 때문에
적당히 알지만, 글로 펴내면 피드백이 안되기 때문에 문법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시각마저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가서 근대인간은 이성만이 발달한
인간이 되어서, 합리성이 근대의 가치가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은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다. 고로 인간이다.’라는 말입니다.
정이 통하는 것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 서구의 근대성입니다.
그 근대성의 한계를 서구 사람들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머리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Q_박원허 : 여러 종교가 화합을 하려면 기독교 내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교수님이 알고 계시는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_김정탁 : 이화여대 종교학자이신 최준식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한국의 19세기를 정신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기로
생각하십니다.
하나의 종교를 만든다는 것은 그 민족의 우수성의 극치라고 합니다.
민족 종교가 3개나 나온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합니다.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그런데 이 종교들이 우리의 전통 종교를
버전 업- version-up 한 것입니다. 천도교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도
있지만 주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증산교는 도교를,
원불교는 불교를…
거기에서 얘기가 끝났으면 그런가 보다 하갰는데..
‘그런데 기독교는 무엇이겠습니까?’ 하고 묻더군요.
‘여기엔 없는데요’ 라고 답하니.
‘아니에요. 샤머니즘이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이 샤먀니즘의 영향이 제일 강한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 이 샤머니즘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유불선보다 우리의 의식 속에 더욱 깊숙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불교도 한국에 들어와서 샤머니즘화 된 면이 많이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하나는 최준식 교수님 말씀대로 샤머니즘적
속성이 우리 한국인의 핏속에 강화되면 기독교의 모습이 상당히 갈
거라고 보면서 오리지날 기독교는 아니다.
미국의 가장 큰 종교연감에 보면 한국은 한국기독교라고 따로 나온다고
합니다. 정통 기독교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세대들을 보면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런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좋은 점을 자꾸만 알려서 우리가 더 마음공부하고 이런데
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Q_이진원 : 청년 교화에 있어 기독교보다 많이 뒤쳐져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새롭게 교화하는 친구들에게 영육쌍전 등 원불교의 좋은 점을
어떻게 부각을 시켜야 하나...
요즘 젊은이들은 해야 할 일도 많고 다들 너무 바빠서 다가가기가 어렵다.
A_김정탁 : 저도 같은 교도이지만, 이런 것을 싫어한다. 목표 정해놓고
언제까지 교도 얼마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의하면 어떻게 확산이 이루어지느냐면 때가 있다고 합니다.
차를 살 때 무작정 가서 사지 않습니다.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괜찮네 그 차.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래 사자
하는 행동 변화가 옵니다. 보통 S자 곡선을 그립니다.
그래서 기초를 잘 다져야 합니다. 이해를 잘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교도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것은 그냥 행동변화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듭니다. 우리가 곡식을 거둘 때도 논을 갈고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비료도 주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우린 전 단계가 없는 것입니다.
무조건 행동변화 이것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원불교 가자고 하면. ‘원불교가 뭔데?’ 이해가 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거 사이비 종교 아니야?’ 이럴 때도 있죠? 더 황당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화대불공을 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을 자꾸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 원불교 그것 참 괜찮나 봐? 원불교를 다녀볼까?
저는 이런 모임들 이런 모임에서 친구들을 데려와서 원불교가 괜찮은
종교라는 인식을 확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화는 멀리
봐야죠. 목표를 정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_송종원 : 영상과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교화방법?
A_김정탁 : 테크놀로지는 인간 기능의 확장입니다. 미디어는 인간의 기능
중 감각기관의 확장입니다. 멀티미디어는 시청각 중심이죠.
영상이라는 것은 이해나 태도변화까지만 된다. 결정적으로 행동변화는
대인 커뮤티케이션- intepersonal communication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디어의 특성을 대인 커뮤니케이션에 잘 융합하는 것이 효과적인
미디어 촬영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핑: 류현진
편 집: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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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마음공부방 ◆
940217_화요_명인명사(14)_김정탁 교수님 강연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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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05 12:5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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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수고많았어요 정원교우님!~
고맙습니다. 김자비 교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