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25만 여명, 연간 6000여 명의 신규불자 양성, 1100여 개의 가정법회, 국녕사 등 4개 국내지원과 태국.뉴욕 등 3개 해외지원. 지난 1985년 28평 규모의 사글세 법당에서 시작한 서울 능인선원의 현재 자화상이다. 성공한 대표적인 도심포교당으로 꼽히는 능인선원이 20여 년 만에 거둔 이같은 성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삼사순례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는 서울 능인선원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사진설명: 서울 능인선원은 개원 20년이 지난 지금도 3000명에 이르는 불자들이 부처님 정법을 배우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제42기 불교대학 강의를 듣기위해 대법당을 가득채운 불자들.>
지난 5일 찾아간 능인선원에서는 교육 열기로 가득했다. 지난 1일부터 개강한 제42기 불교대학의 두 번째 강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당으로도 부족해 능인선원 안의 공간이란 공간에는 모두 신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4개월 과정의 불교대학 강의를 듣는 신도 수는 어림잡아 3000여 명. 주지 지광스님이 직접 강의하는 대법당에 자리 잡지 못한 수강생들은 각 법당에 설치된 TV 등을 통해 실시간 영상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986년 1기 불교대학이 불과 47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이제 20년이 넘은 세월에도 수강생은 매 기수마다 3000여 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정법 교육에 목마른 신도들이 아직도 많다는 증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역마다 수많은 불교대학이 들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도 수천 명에 이르는 수강생이 몰리는 현상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새벽예불 20년 한결같은 주지스님 공덕에
28평 사글세서 신도 25만명의 대법당으로
신규불자만 年 6천여명…해외지원도 3곳
능인선원 신도들은 그 이유를 주지 지광스님의 원력과 유기적인 시스템에서 찾았다. 지광스님은 20년이 지난 요즘에도 해외출장을 제외하고는 새벽예불을 단 한차례도 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포교를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증언이다. 또 지광스님의 현대적인 강의도 인기 비결이다. 현대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쉽고 친절한 강의를 듣다보면 내용 이해는 물론이고 신심까지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심포교당 주지스님들의 대체적인 생활이 원력의 차이가 있을 뿐, 지광스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볼 때 조직과 시스템으로 귀결점이 모아진다. 능인선원의 조직은 방대하다. 선원 내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총간사장 아래 50여 개의 본부가 있다. 각 본부마다 본부장이 있으며 그 아래 또 부원들이 있다. 이 본부는 전체 행정을 관할하는 행정조직과 신도를 담당하는 지역조직으로 다시 구분된다.
행정조직은 기획실을 중심으로 교육, 법회, 기도, 불사, 판매, 구매 등으로 세분화 돼있다. 지역조직은 1100여 개에 이르는 가정법회를 관장한다. 한 달에 한 번 각 지역마다 봉행하는 법회는 대략 5~10명으로 구성돼 능인등을 이룬다. 3~10개의 능인등이 모여 능인장이 된다. 지역별 능인장은 다시 현법사가 관리하고 가정법회의 모든 책임은 정법사가 진다.
주요한 행정업무와 지역업무는 매주 두 차례 모든 책임자가 모이는 전체회의에서 논의되고 결정된다. 나머지 일반 업무는 운영의 자율권을 가진 조직 책임자가 결정한다. 주지 지광스님은 그저 최종 결재만 담당할 뿐이다.
이런 방대한 조직을 이끌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은 일. 하지만 능인선원의 종무원은 모두 신도들이다. 경비 등 용역직원 10여 명을 제외하고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신도들이다. 신도들은 교통비조차 사양하고 자신의 일처럼 매진하고 있다. 밤을 새는 일도 다반사다. 이렇듯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신도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다.
이런 자부심은 교육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능인선원에 처음 들어서면 은행창구 같이 일렬로 늘어선 안내데스크가 눈에 띈다. 분야별로 나뉜 데스크마다 안내를 맡은 사람들도 모두 신도들이다. 이들은 데스크에 서기 전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 생전예수재 기도 접수를 맡은 신도에게는 생전예수재의 의미와 유래를 교육한다. 친절 교육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능인선원은 지난 1999년 연수원을 발족하기도 했다.
아무리 신도들이 자원봉사로 능인선원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고인 물이 썩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 능인선원 신도들은 ‘NO’라고 단언한다.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총간사장은 임기가 1년. 대부분 하부 조직부터 단계를 밟아 능력이 검증된 신도 중에 선출된다. 총간사장을 거치면 하부조직에서 다시 일한다.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다. 능인선원에서 ‘직책’은 그야말로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일 뿐, 명예나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재숙(64, 법명 대비성)총간사장은 “교육을 통해 정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여러 잡음은 그저 남의 일이 돼 버린다”며 “평소 자비와 보시의 중요성을 설한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면 그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조직과 시스템은 능인선원을 불자들의, 불자들에 의한, 불자들을 위한 법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스님에 따라 흩어지고 모이는 신도들이 아닌,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진정한 불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주지스님이더라도 부처님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불자들이 바로 능인선원 신도들이다.
능인선원은 체계적인 교육과 유기적인 시스템이 양 바퀴를 이루며 전법의 수레를 굴려 정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현대적 감각으로 쉽게 강의
능인선원 이끄는 지광스님
‘포교 사관학교’ 수장인 지광스님은 철저하고 치열한 스님으로 신도들 사이에서 소문났다. 해외출장 관계로 새벽 1시에 능인선원에 도착했어도 새벽3시30분 아침예불에 가보면 어김없이 기도하고 있다. 능인선원 개원 후 20년이 지난 요즘까지 단 한 번의 예외가 없었다.
“사명감을 품고 자신감을 갖고 포교해야 한다.” 능인선원 지광스님은 포교 덕목을 이같이 일갈했다.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스님의 행보는 포교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지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열성을 다해 뛰고 있지만 ‘포교제일’ 지광스님에게도 아쉬움은 짙다. “아직 종단 내에서는 수행과 포교를 별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중생에게 보살도로 이바지하는 것이 출가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깨닫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포교하느냐’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수행과 전법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자신도 포교를 목적으로 출가한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포교 현실을 보니 심각했다. “부처님 말씀은 지혜와 자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자비는 이웃과 사회가 없이는 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이 없는 불교는 미래가 없습니다.” ‘현장에서 깨닫자’는 원력이 그렇게 생겨났다. 포교 모델을 만들어 부처님 법을 널리 전하자는 스님의 서원은 현재 포이동 법당으로 이전하게 된 10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제 2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유지하고 정리하는 데도 정신없지만 지광스님은 ‘무소의 뿔’처럼 전진하고 있다. 바로 경기도 화성에 건립하고 있는 ‘한국불교대학원대학’ 불사가 그것이다. 스님은 이 대학 건립을 마지막 원력이라고 말했다. “포교의 가장 좋은 방편은 불교사상과 이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포교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 전문 포교사인 ‘불교 부흥사(復興師)’를 양성할 것입니다.” 대학은 오는 2008년 완공될 예정이다.
● 연 혁
- 1985.12. 강남구 서초동 삼익상가에 능인선원 개원
- 1986. 3. 제1기 불교학교 개설
- 1988. 6. 사회복지법인 능인선원 인가
- 1995. 8. 새 법당으로 이사(강남구 포이동 55번지)
- 1995.12. 능인종합사회복지관 개관
- 1996.12. 능인신용협동조합 창립총회
- 1997. 9. 재단법인 능인불교선양원 출범
- 2004.11. 개원20주년 기념법회
- 2005. 9. 교육관 개관 법회 및 점안식
- 2006. 4. Y.B.A 창립총회